아마..중복일수도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내용일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양해 바라겠습니다.
요즘 김정일 관련글이 몇개 보여서 자료 찾아와 올립니다.
출처는 MK Days 라는 곳입니다.
그럼...즐거운 시간 되시길...
사진 - (시계방향으로) 장남 김정남을 낳은 것으로 알려진 성혜림, 차남 김정철, 삼남 김정운의 생모 고영희, 김정일 생모 김정숙, 김정일 와병설 당시 병상을 지켰다고 보도된 김옥 1. 김영숙 / 홍일천 - 부친 김일성이 직접 간택했으나 은폐된 삶을 강요당한 비운의 정식부인, 딸 설송 출생설... - 김정일은 설송이란 이름의 딸을 낳은 김일성이 인정한 공식 부인 김영숙을 두고 있다. 처가 득세에 염증이 난 김일성이 직접 고른 시골 출신의 단아한 미인이란 얘기가 있다. 그러나 부친 몰래 이미 연상의 유부녀 여배우와 동거하고 있던 김정일은 시골 출신에 그다지 센스도 뛰어나지 않은 김영숙에게 별 애정은 없었다고 한다. 김영숙은 김정일의 딸을 하나 낳았다고 알려졌으나, 김정일의 거듭된 여성 편력으로 인해 공식 석상에 한번도 부인으로 등장하지 못하고, 잊혀진 존재로 비운의 삶을 강요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영숙과 설송의 사진은 철저히 은폐되고 있다. 한편 중국에서 주로 주장되는 다른 가설에 의하면 김정일의 첫부인은 김영숙이 아니라 홍일천이란 여자라고도 한다. 김일성대 러시아학부 출신의 혁명가 유자녀인데, 1966년 혜경이란 이름의 딸을 하나 낳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일이 친구 부인으로 딸을 하나 둔 유부녀 인민배우 성혜림과 동거하며 홍일천과 이혼했다는 것이다. 홍일천/김혜경 역시 김영숙/김설송과 마찬가지로 북한 당국에 의해 그 존재와 사진등이 철저히 은폐되고 있다.
2. 성혜림 - 남편의 친구 권력자에 눈에 들어 일생을 망치고 모스크바에서 쓸쓸히 죽어간 비운의 인민배우, 김정일 장남 김정남 출생.
- 성혜림은 김정일의 친구 부인이자 이미 딸을 하나 낳아서 기르고 있던 연상의 유부녀 여배우였다. 탁월한 미모의 소유자는 아니나 동양적인 단아함과 차분함으로 모성애 결핍을 채워주는 분위기를 지녀 김정일의 눈에 들었다고 분석된다. 성혜림에게 반해 몰래 비밀 동거 생활을 하며 정남을 낳았고, 이 아들의 존재를 김일성에게도 숨긴채 김일성이 소개한 여자와 결혼해 설송이란 딸을 낳은 것이라 한다. 성혜림은 이후 김정일이 고영희와 동거를 시작하자 모스크바로 밀려나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2002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혜림의 친언니 성혜랑의 아들로 정남의 외사촌인 이한영씨는 오스트리아 유학중 대한민국 대사관을 통해 망명했다. 이후 한국에서 대학(한양대)을 졸업후 모 방송국에 입사해 생활하다가 김정일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수기 출판 후 1997년초 분당 아파트 자택앞에서 북한공작원으로 추정되는 괴한에게 피격 사망당했으며, 성혜랑은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3. 고영희 - 빼어난 미모의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김정일의 최장기 동거녀. 정철, 정은, 여정등 삼남매를 낳고 김의 실질적 부인 대우를 가장 오래 받았으나 04년 유방암으로 파리에서 사망.
- 고영희는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품고 귀국한 재일교포의 딸로 무용수 출신의 미모의 여성으로 김정일과의 사이에서 정철, 정은등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혜림과 동거생활을 5년여 이어오다가 18세의 고영희를 보고 즉시 고씨와 동거를 시작하며 성혜림은 모스크바로 유랑을 떠나야 했다고 한다. 사실상 김정일이 인정하는 부인으로 국모추대운동을 벌이는 대상으로 알려졌으나 2004년 51세의 나이로 프랑스에서 유방암 치료등을 받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5월말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1973년 발간된 북의 대외 선전용 사진잡지 ‘조선화보’에서 1970년대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한 고영희의 미공개 사진이 포착되었다고 보도했다. 한편 1998년 5월 김 위원장이 총애했던 고영희(2003년 사망)의 동생 고영숙과, 고영숙의 남편 박모씨(40대 후반)가 스위스 주재 미국대사관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 김 위원장이 뉴욕 증권시장에 투자한 사실을 미국에 제보해 동결시키도록 하기도 했다고 월간조선은 보도했다.
4. 정일선(정혜선)과 기타 여인들 - 일시적 김정일의 동거녀, 자식 출산한 경우 해외에서 호화생활을 하며 비자금등 은밀히 관리하는 역할 맡기도
- 그 외에 정혜선 또는 정일선으로 알려진 여배우가 현재 마카오 고급 빌라에 거주하며 김정일의 어린 아들 김한솔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재스퍼 베커의 저서 <불량정권>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정혜선은 1991년 5월 약관 20세의 나이에 김정일 생모 김정숙과 꼭 닮은 외모로 김정일을 사로잡았으며 이후 애첩이 되었다고 한다. 생모를 닮았다면 미인과는 거리가 먼 투박한 인상인데(김정일 생모는 무식하고 키가 작은 빨치산 출신임) 일부에서는 정혜선이 고영희를 능가하는 미모의 소유자라는 엇갈린 정보도 있다. 또한 정일선이라는 이름은 마카오뿐 아니라 스위스등 국제적으로 검은돈 유치가 가능한 국가마다 등장하는 일종의 암호명으로 쓰인다는 분석도 있다. 김정일의 비자금 및 최후의 경우 망명을 선택할때 필요한 자금줄 및 라인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카오등을 떠도는 성혜림 아들 김정남도 이 정혜선 내지 정일선과 교류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40억달러 플러스 알파에 이르는 해외 김정일 비자금 관리에 관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무명의 김정일 딸 출산 여성 2인. 성혜림의 친구로 성씨가 김정일의 첩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요덕수용소에 끌려가 10여년 세월을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가족 7명중 3명을 잃은 탈북자 김영순씨의 증언에 따르면 최초의 장기 동거녀로 알려진 성혜림과의 사이에 정남을 낳기 전에도 이미 김정일은 다른 여자 둘과의 사이에서 각각 딸을 둘 낳았다고도 한다. - 김옥은 김정일의 실질적 부인 역할을 하던 고영희 사망후 김정일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여자로 알려졌는데, 2008년 하순 김정일 와병설 당시 병상을 지켰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탈북시인 장진성에 따르면 김옥은 왕재산 경음악단 피아니스트 출신이며 권력욕이 대단하고 김정일이 총애해서 생전에 고영희조차 김옥에게는 말을 조심했다고 함. 지나친 야심으로 김일성에 의해 마카오로 쫓겨나 한동안 유랑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5. 윤혜영 - 꽃다운 나이에 60대 김정일의 열혈 구애를 받고 연인과 동반 투신 자살을 기도, 비공개 처형설이 나돈 <준마처녀>의 가수 - 이외에도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의 저자인 탈북자 장진성씨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에게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하룻밤 유희용 여자를 제외하고 일정 기간을 두고 동거나 출산에까지 이른 첩이라 불릴 만한 여자가 김옥이 임신을 끝까지 반대하자 자살기도까지 한 라혜경(1973년생으로 평양음대 피아노과 졸업, 부친이 중앙당 간부), 보천보전자악단 출신 윤혜영 등 최소 9명에 달한다고 한다.
- 김정일의 구애를 거부하고 연인과 동반 투신 기도를 한 후 중상을 입고 실종되어 처형설이 나돌았던 <준마처녀>의 가수 윤혜영의 최근 생존한 모습이라 추정되는 사진. 김정일의 구애 당시 22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위 여인의 모습이 투신 이후 곡절끝에 목숨을 건진 윤혜영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사진은 준마처녀 공연 동영상 일부이지만, 그 진위 여부가 확실히 확인된 바는 없다. 풀 동영상에는 출연 여성들 이름이 모두 등장하는데 윤혜영이란 이름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윤혜영이라는 여자는 보천보전자악단 여가수 출신으로 당시 22세의 꽃다운 나이였으며, 김정일이 추근댈때 그는 61세였다. 당시 김정일은 40여년 가까이 어린 윤혜영에게 눈이 뒤집혀 유럽에서 공수해온 최고가 선물 공세를 펼치는 등 과하게 집착했다고 한다. 그러나 윤혜영은 보천보전자악단 피아니스트 김성진과 이미 연인 사이였으므로 김의 구애를 거부했다고 한다. 격노한 김의 보복이 두려워 두 젊은 연인은 옥상에서 동반 투신 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이후 철저히 실종되면서 북한 고위층 내부에서 윤이 링거를 꽂은채 비공개 처형당했다는 설이 파다했다고 한다. '준마처녀'라는 곡이 윤혜영의 곡인데 수년전 탈북해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란 시집으로 유명해진 탈북자 장진성씨가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라는 두번째 시집에서 이 윤혜영 사건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장시인이 RFA 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투신으로 중상을 입긴 했으나 윤혜영은 당시 곧바로 죽지는 않은 것은 분명하다고 한 바 있다. (http://www.rfa.org/korean/weekly_program/st/seoul_tongshin-05222009143844.html?searchterm=None) 다만 이후 북 내부의 가설대로 윤이 처형되었으리라는 입장에서 시적 상상력을 발휘해 서사시를 완성한 바 있다. 준마처녀는 웹 검색하면 지금도 들을 수 있다. 북에서는 김정일의 첩자리를 거부하고 동반자살한 윤혜영-김성진 사건이 상당히 큰 파장을 일으켜 철저한 정보 통제에도 일파만파 퍼졌으며, 이 여파로 보천보악단이 해체되었다고 한다.
2011년 6월초 윤혜영의 생존설이 중국발 일부 언론을 통해 국내에도 보도된 바 있다. 윤이 이른바 북한판 '세시봉'에 출연해 노래를 했으며 그 방송 화면도 캡쳐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정보를 은폐하거나 가공 조작해 공개하는 북한의 특성 및 이에 대한 검증장치가 전혀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 보도의 진위 여부는 불분명하다고 보인다. 만일 윤혜영이 생존해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면 당시 중상을 입었으나 결국 김정일이 처형하기엔 아직 추한 욕정이 남아 살리라 지시해 목숨을 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외의 가능성은 2011년 6월 초순 윤혜영의 활동이라는 북한발 중국 동영상 캡쳐 기사(이에 대한 확실한 동영상 캡쳐 사진은 함께 보도되지 않음. 다만 윤혜영의 진위 논란이 있는 출처가 불분명한 동영상과 사진만 떠돌아다닐 뿐) 자체가 조작되었거나, 윤혜영 활동 당시의 옛날 모습이거나, 처형당한 윤혜영 대타를 윤이라 내세웠을 경우 등이다. 어떤 경우건 세계 유례 없는 언론탄압국인 북한에서 대중 연예인들이 자유롭게 국내외 언론이나 대중과 접촉해 자신의 생사나 상황에 대한 사실 발언조차 할 수 없으므로, 김정일이 죽고 북한이 붕괴된 연후에야 윤혜영의 투신 이후 처형 내지 부활 논란이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군사력, 금력, 조직력등 모든 권력을 일인 독재로 틀어쥐고 있는 김정일 일인 절대 독재 국가인 북한인만큼 남의 부인을 빼앗아 살며 출산을 하는 반인륜적 행동을 서슴치 않고 하거나 당사자 의사와 무관하게 수백 수천의 처첩을 거느리고 호의호식하고도 전혀 통제받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으나, 머쟎아 김정일이 사망하고 체제가 붕괴되면 그 일인독재의 횡포속에 희생당한 무수한 인민들 뿐 아니라 여인들의 삶도 상당수 밝혀지리라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