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의 자매중에 한사람이 뜰의 포도를 뜯다 고운 백색 치마폭에 포도물이 들었다. 어쩔줄 몰라하는 자매에게 신사임당이 포도껍질을 짓이긴 물로 어여쁜 포도를 그렸다."
하이얀 종이가 있다.
혹은
노오란 종이가 있다.
그리고 까만 펜이 있다.
그러면 나는 세상을 창조해낼 수 있다.
신의 능력이다.
과대망상증 환자의 지껄임이려니, "나는 신이다! 나를 따르라"는
미친 광인의 외침이려니 생각해버려도 좋다.
그러면 나는 우리 모두는 신이라고 읊조릴테니까.
우리 모두는 공평하게 <삶>을 부여 받았다. 공평하다는 것은 누구는 하나고 누구는 1+1의 두개의 삶 뭐 이따위가 아니라 딱 하나의 삶을 받았기에 공평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린 각기 다른 육신과 영혼 환경을 랜덤형식으로 초이스 되어 세상에 띡 존재하게 되었다. 하여 이 세계는 폭발적으로 흥미진진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어느 누구도 똑같을 수 없이 다양한 경우의 수를 통해 창조되었으니.
우열이 있는가? 그럴지도. 누구는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상판 떼기와 길쭉길쭉한 팔다리를, 타고난 갖가지 능력들을, 부유한 뒷배를 갖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순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1차적인 조건에 불과하다. 어떤 식으로 기본 베이스가 깔렸든 우리는 모두 같은 <삶>을 부여받았다.
나라는 존재가 1차적으로 갖추지 못한 요소가 제 아무리 많을 지라도 한마디로 <꾸릴지라도> 우리는 꼴리는 그 모든 요소를 꼴리는 대로 새롭게 재창조할 수 있는 1세기라는 삶을 우리 손안에 쥐고 있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나는 눈이 있다! 하여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싱그러운 웃음을 매일 매순간 순간 하루 종일 이라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그리고 나는 코가 있다! (어릴 때 엄마가 눕혀 재워서 그런지, 요즘 플라스틱 설저리 세상에서는 낮은 편이긴 하지만) 세상에나! 하여 나는 아침에 엄마가 끓이는 된장찌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리고 아빠의 방귀냄새가 날 경우 가족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이리저리 대피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입이 있다. 비록 가끔은 난잡하고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것들이 나와 타인의 마음에 의도치 않게 바늘로 꿸지라도, 나는 언제나 사랑의 언어들을, 칭찬과 눈부신 말들을 구사하여 나의 그대들을 찬양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팔과 다리가 있다! 하여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타이핑을 하여 뭔가를 지껄일 수 있다. 그리고 이 튼실한 매우 튼실한 두 다리로 아빠의 등 위를 꾹꾹 눌러 안마해 드릴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하얀 밤을 지새우며 클럽에서 경건하고 진지하게 춤을 출 수 있다.
이 외에도 내가 가진 것들은 끝도 없다. 나는 오장육부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있으며, 정웅이와 쌍둥이처럼 닮긴 했다만, 어깨가 붙어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부모님이 두 분 다 건강히 계시며, 나는 하루 3끼는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매우 안락한 가정의 품안에 있다. 아마 세상에서 나만큼 축복받은 이도 없을 것이다. 신이 있다면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여 성심성의껏 내 1차적 조건들을 구성해 주었다고 자신 있게 착각한다.
내 착각의 끝은 낭만적인 편집증을 넘어서 신의 능력이 내게도 부여되었다고 굳게 믿기 까지 하기도 한다.
신이 나를 창조했듯이 나는 내가 창조할 수 있는 나만의 창조물에 영혼을 담는다. 담고 담는다. 꾹꾹 눌러 담는다. 미세한 공기방울 하나 남기지 않고 완벽히 밀봉시킨 꽉 찬 영혼이다.
하이얀 종이가 있다.
혹은
노오란 종이가 있다.
그리고 까만 펜이 있다.
그러면 나는 세상을 창조해낼 수 있다.
신의 능력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다들 어마한 거금을 들여 엘리트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엘리트가 된다? 되든지 말든지 아무튼. 지식인 교육을 받는단다. 그런 교육을 진정 하는지 아닌지 말던지 아무튼. 지식인으로서 뭉태기처럼 쌓인 지식을 뽐내고 싶어서 낑낑대는 개새끼처럼 몇 마디 지껄여보겠다.
Pareidolia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달을 본다. 토끼가 보인다. 그게 저 P로 시작하는 머시기다.
콩이 두 알 있다. 사람 눈으로 보인다. 그게 저 페레이돌리아이다.
나는 저 피머시기가 병적으로 심하다.
병적인 수준을 넘어서는데도 그다지 미치지 않고, 정상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예술가>라는 멋진 칭호를 부여 받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아무튼 나는 저 병적인 시각적 병폐와 유아기적 행위를 통해 그림을 그린다.
그대가 상상도 못할 만큼 빠져든다.
침을 흘린다.
나는 고도로 집중을 하면 침을 흘린다. 다행히 동영상에는 나오지 않아 안심이다.
그대가 상상도 못할만큼 즐겁다.
엄청난 쾌감이다.
옆에서 원빈이 보자고 해도 '잠깐만 이것만 그리고' 라고 할 정도로
그런 <것들>이 저기에 담겨있다.
나는 지금 언어라는, 문학이라는 또 다른 예술을 통해 이 예술을 과포장하고 있다. 어쩌면 그럴지도. 하지만 예술로서 예술과 소통하는 것은 또 다른 예술을 낳는 다는 게 내 에고이즘적 사고방식이다.
난해한 말들로 저 선들의 형상은 '현대인의 외로움과 괴리감을 표현'했다거나, '정체성의 혼란'을 표현했다는, 팝아트가 뭐시기 미디어아트가 뭐시기 정말 머릿속에 뭐만 차는 것 같다. 지식을 귀에 걸고 코에 건 사람들, 그들은 지혜가 되지 못할 지식만 머리에 우겨넣고 학위를 냅다 던져버리면 발가벗겨질 사람들이다.
걍 저것들은 어떤 광인의 행복함을 마음 한껏 담아내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일 뿐이다.
자기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하는 나르시시즘적 충만함에 몸서리치는 손놀림과 선들이 노란 종이위에서 춤을 추는 장면 장면일 뿐이다.
존재라는 것, 삶이라는 것을 열렬히 사랑하는 어떤 이의 소소하다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의 삶의 전부인 <10분>인 것이다.
저 <10분>만큼은 그의 직업이 신이 되고
또 다른 세계의 창조가 되는
그리고 저 10분을 본 후,
깊이 깨달을 단1%의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예술이다.
자신의 존재를 깨닫길 바란다.
그대도 똑같이 그대의 <삶>을 창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신>임을.
그대가 진정 내가 원하는 1%라면,
그리하여 그대 자신을 볼 수 있다면,
나는 저 모든 행위들을 1세기라는 내 온 생애를 바쳐 끊임없이 행할 것이다.
끝도 없이 새로운 형태로 창조되는 저것들은 말 그대로 <무한>하다.
그대의 가능성처럼.
하이얀 세상이 있다.
혹은
노오란 세상이 있다.
그리고 까만 내가 있다.
그러면 나는 세상을 창조해낼 수 있다.
신의 능력이다.
아니,
바로,
그대의 능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