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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나는 미희의 고백

최미희 |2011.07.09 08:38
조회 35 |추천 0

진정한 쾌활함은 가식적이지 않다.


그것은 세상의 무게나 날씨와 상관없이

현재를 경험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쾌활함은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실제로 적절한 유머는 그 무엇보다 빨리 우리

스스로 자초한 불행한 기분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자신의 처지에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문제점을

축소하지 않고 넘어설 수 있다. 우리 자신을

고통과 분리해서 보고 느끼고 이해한다.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극복한다.


                    - 알렉스 파타코스의 <의미 있게 산다는 것> 중에서 -


나는 내가(최 미희가 존재함이) 밝고 쾌할해 질 정도로 이 세상을 뒤 흔들고

싶다는 소망이 글을 쓰는 자로, 마음을 위로할 줄도 아는 자로, 있기 때문이라고


난 언제나 생각해 왔던 거 같고, 또 앞으로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함이 언제나 들 끊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하지 못하는 단 한가지로의 어머니와 딸이라는

입장을 경험하면서 이건 정말 아닌데 라 나는 강조하건 만 동생과 나라는

 

존재함에 있어서


유독히 나에게만 (나 미희에게 허락됐던 31년 세월의 눈물과 웃음

물론 울음 슬픔이 많았었겠지만) 이젠 그 마음을 이해하려는 조금은 섬뜩한

 

느낌의 힘듬도 약간 있지만 지금 미희는 연습의 연습을 거듭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이라는 연습의 표현뿐이지 그 말로 향한다는 연습이 나로서는

고통스러울 때가 많아 난 너무나 힘들어 질 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난 오늘도


희망이라는 작은 희망(웃음치료사 레크 때 나의 닉네임)만을 꿈꾸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세상 속의 편견 장애인이라는 꼬리맘을 가지고 사는 자라

참 어머니께서 예민해서 슬픈 나의 심정 이야기도 고려하지 못하면서 나의 어린시절

 

순간부터 참 희망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도 희망은 없다라고 말씀 하시던

엄마를 엄마라 부를 수가 없어서 어머니인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나의 마음이


부정적이 되도록 내가 희망적으로 시작하려는 모든 부분 이야기 전부 다를 나를

기분 나쁘게 떠 보는 것처럼 말씀 하시다 끝내 허락하시던 그 모습 처음엔 정말 나를 낳아주신

 

우리 어머니가 맞나 라고 들 정도로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너 계모랑 사냐 라는 말 주변으로도

  

난 정말 어린마음 하나로 그 걸 의심해 보면서 참 나의 모든 것들 중에서 기억나는

학급에서 도단사건이 일어나거나 대학시절 때도 그런 일 비슷하게 있었는데

   

다 나를 나쁜 놈으로 이끄는 바람에 참 그 순간의 어린마음의 나나 어른이라는 타이틀로

조금 성장된 대학시절 때도 조금 내가 도둑놈 폭력자로 지목될 만큼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에는 그냥 억울함으로 묻어갔었는데


성장되었던 시절에는 또 그렇게 묻어가야 했던 기억이 있던 반면에 반대로는 cctv의

자료화면으로 나의 억울함이 풀렸던 경험 암튼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찔한 나의 작은 세상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이 오기 전 까지 나는


2009년 6월 22일 중앙대산업교욱원 사회복지 재학으로 인해 사회복지 실습으로

만나 3년 넘도록 나는 정말 모든 어려운 마음 까지도 까발릴 정도로


나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지금의 남친이 있어 행복했었는데


도둑고양이처럼  비겁한 사랑만 하다 지난 7월 2일의 비겁하다 못해 답답하기 했던

상견례 진행을 하면서 (지금 상견례 진행 추억사진들 다 지워져서 속상할 따름이지만)

 

지금 현재 이 순간 위에서도 답답함을 하늘로 찌르는 나이는 나와 같은


31살이지만 말하는 말주변이나 또는 생각하는 자체에서도

언제나 밑바닥같았던


지금 이 글 쓰는 순간까지에서 눈물이 나지만 그래도 내가 그토록 원했던

가족의 웃음 이야기 일단 홍기를 보고 누가 웃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웃는 


바이러스가 전염된 거 같이 난 홍기가 상견례 이후에도 참 생각 없게만 구는


홍기의 힘든 속사정 이야기는 들어보지를 못해서 언제나 불안하고 두렵기 까지만

했던 나만이 아는 핸드캡 땜에 참 속상하다 못해 마음 언저리에서도


내 삶은 오로지 생방송일 뿐인데 홍기의 부적절한 주변머리 없는 그 이유 땜에


나도 지쳐가도록 아파가는데 재방송을 원하는 것만 같았던 홍기 땜에


참 상견례 진행을 어렵다 못해 또 어렵게 지금 홍기가 취직준비생이지만

취직을 못해 울 부모님께서 외삼촌께 부탁해 구로디지털 단지역 이마트 쪽에


카이스트 학교와 관련되어 있는 컴퓨터 학원에서 수료하자마자 상견례를

양쪽 어르신들 다 동의 아래 진행을 했었는데 내가 말이 많은 거 아니까 홍기의 말


너 말 하지 말고 있어 내가 알아서 말할 테니까 라고 양가 어른들의 말 대화로도


정말 답답하다 못해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있었는데 정장 차림으로 깔끔하게

입고 있던 홍기는 아무말도 없이 그냥 먹을 것만 먹고 있던 거


아무리 상견례를 진행했다 하더라고 우리 어머니의 막말은 더 심해지면서

그러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는데


상견례 있던 어느 날 나의 미처 말하지 못했던 어려운 이야기를 다 꺼내며


어머니는 이해하실 듯 말듯 가우뚱 거리면서도 나에게 여전히 막말과 더 불어

내가 아프다면 약을 사다 주셨으면 좋겠는데 넌 맨날 아프데 라는 말로


약 사러 갈 때나 무엇을 할 때도 역시 어디를 나간다는 변명을 두면서

도둑고양이처럼 세상과의 소통 홍기 학원으로 도시락 싸서 나르는


바람에 나는 골병 나는대로 나 있었고 홍기는 맛있다라는 이야기 한 마디도

안하면서 신경질은 났는데 그래도 내가 세상소통을 할 수 있는


아나벨 커피점과 더 불어 아느린 유기농 빵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행복한 돈을 지불해서 내가 하루를 살았다는 증거 행복이었다.


물론 그 돈 까지도 내가 절약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내 삶은 금방 지랄맞는 삶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거짓말로 덮어진다는 사실

나에겐 참을 수 없는 한계 같음이었다.


그 마음을 내 남친 홍기와 더불어 홍기의 동생인 민기까지도 언발란스 하게

하고 있었고 지금은 상견례가 진행됐던 상황일 뿐인데 연예시절 때 보기 안 좋았던


행동과 말투들을 또 하는 홍기를 보면서 또 다르게는 민기를 보면서

참 할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난 이 마음처럼 움직일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딱 한번 마음과 몸이 움직여서 청년예배를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목사님께서 기억에 남는 멘트를 날리신 적이 바로 그때의 새벽기도회 였었다.

한번 지나간 말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어느 날의 청년 새벽 기도회 마음처럼 난 그렇게 홍기와 달려가고 싶었다.


홍기 덕분에 내가 그토록 종합검진 하고 싶다 노래 불러도 가벼운 피 검사나

소변검사가 전부였던 나의 이유에서 드디어 종합검진을 받을 수가 있었는데


유방 쪽에 섬유종 같은 예쁜 혹이 나 있었다는 유방촬영 하다 발견 됐다는 데


암튼 환자의 기분좋은 마음을 생각해서 아주 좋고 아주 이쁘게 설명해 주시던

선생님으로 하여금 지금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움직이는 형체로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 6개월 있다 오라고 해서 그 마음을 새기면서 난 행복해 지려 합니다


홍기와도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라면 기꺼이 그 길 같이 걸어 갈 테고


홍기도 우리 가족에게 남 모르는 상처를 받았던 것 처럼 나 또한도 지금 역시

까지에서도 홍기의 말 주변 없는 죄로 조금 분명치 않는 마음을 구하긴 하는데


일일이 설명해 줄 수도 없는 문답이겠지만 암튼 행복한 내 생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의 이유를 꼬리무는 모든 것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미희가 사는 세상을 살맛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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