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2011-07-10]
지난 주말 한국 국가원수로는 처음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이 나라 군인들의 6 · 25전쟁 참전 기념비에 헌화했다. 남아공 더반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확정지은 직후였다.
에티오피아의 최정예 부대였던 황실근위대원 6000여명은 6 · 25전쟁에 참전,수백명의 사상자를 내면서도 단 한명 포로로 잡히는 일 없이 용맹하게 싸웠다. 하지만 전쟁을 마치고 귀국한 군인들의 대가는 참담했다. 1970년대 말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축출하고 집권한 친북(親北) 공산주의자 멩기스투 정부로부터 무참한 탄압을 받아야 했다. 모든 공훈을 박탈당한 뒤 빈민가로 내쫓겼고,10여년간 사실상의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다. 몇 달 전 그곳을 다녀온 조윤선 의원이 "고초 속에서도 자신들이 목숨을 바쳐 지킨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에 감격하고,고마워하는 그들의 모습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들려주던 기억이 새롭다.
호주 시드니 근교의 홀스워디에는 'Gapyong Battalion(가평대대)'이라는 이름을 큼지막하게 써 붙인 군부대가 있다. 중공군의 침공으로 전세(戰勢)가 기울어 후퇴를 거듭해야 했던 1951년 4월24일,서울에서 불과 56㎞ 떨어져 있던 가평 전선을 사수(死守)한 호주 육군3대대는 그날 이후 부대 이름을 그렇게 바꿨다. 가평전투 당시 스물여섯의 나이에 남편 찰스 그린 중령을 잃고 미망인이 된 올윈 그린 여사(86)는 60년 넘게 수절하며,매년 4월이 오면 남편이 묻혀 있는 한국을 찾는다. 호주 내 한인 이민사회의 '대모(代母)'로 조용히 활동하고 있는 그의 "가평전투 이후 나는 한국과 재혼했다"는 말이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2전3기' 끝에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따낸 한국 사회가 한껏 들떠 있다. 자랑스러워할 만한 성취다. 국제사회에서 불고 있는 '한국 돌풍'은 자동차 전자 조선 등 산업과 경제 분야를 뛰어넘었다. 젊은 클래식 음악가들의 '차이콥스키 콩쿠르 대첩'과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까지 뒤흔들고 있는 'K팝'의 물결에 이르기까지 문화 분야에서도 선진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2009년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반세기 만에 신흥국으로는 처음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신하는 기록도 세웠다. 무엇보다도 후발 개도국들에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야말로 가장 큰 성취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국제사회에 갚아야 할 '빚'이 많은 정치적 · 사회적 채무국이다. 그것을 제대로 갚고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봐야 할 때다. 한국의 개도국 원조액은 국민 1인당 월 3000원꼴로 경제규모가 비슷한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원조규모만이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어 살고 있는 개도국 사람들을 무시하고 차별해 빚어지는 '불편한 진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주한 외국인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을 누란의 위기로부터 건져준 필리핀 태국 등 참전국 국민들이기도 하다.
겸손한 자세로 우리가 이뤄 온 성취의 자산과 부채에 관한 대차대조표를 만들고,진정한 세계시민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숙제'를 서둘러야 할 때다. 그것이 '평창'의 의미를 완성하는 일이 아닐까.
〔한국경제신문 편집부 이학경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