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Live 2011-07-22]
뭇사람의 우려와 달리 배우 김여진씨(39)는 요즘 바쁘다. MBC 라디오 < 손석희의 시선집중 > 에 못 나와도, 한나라당 자문위원에게 막말을 들어도, 드라마를 찍고 영화를 준비하고 연극을 연습하고 책을 쓰느라 정신이 없다.
김씨를 더 바쁘게 만드는 건 세상이다. 지난겨울 김씨를 '사회참여 연예인' 중 한 사람으로 만든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은 이제 끝난 줄 알았다. 최근에는 한진중공업 일에 마음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홍익대가 노조 측에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달 75만원을 받고 하루 10시간씩 일하다가 집단 해고당하자 49일간 농성을 벌인 학내 청소노동자들이 학교와의 합의 끝에 일터로 돌아간 것이 지난 2월이다. 그로부터 한 학기가 지난 시점, 학교는 이들에게 2억8134만원을 물어내라고 했다.
손해배상 소송의 소장은 간략했지만 뒤에 7㎝ 두께로 첨부된 영수증 서류더미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깨알 같았다. 농성 중 교직원과 임시 대체 인력이 식당·편의정빵집 등에서 지출했다는 뼈다귀해장국·김밥·백반정식·커피믹스·종이컵·초코파이·과일·오렌지주스 따위 영수증이 빼곡했다. 담요 구입비(110만원), 담요 세탁비(20만원), 난방용 손난로 구입비(2만400원)를 비롯해 심지어는 '참이슬 후레쉬' 다섯 병과 '맥스 피처' 한 병을 편의점에서 산 영수증도 첨부돼 있었다.
소송 사실이 홍익대 청소노동자에게 통보된 건 소장 접수일인 5월25일을 한 달 넘긴 지난 6월29일. 하필 학생들의 출입이 뜸해진 여름방학 중이었다. 지난 1월 '해고 철회' 농성을 시작할 때도 겨울방학이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서복덕씨(57)와 김 아무개씨(57)는 "겨울에 얼어죽이더니 여름에는 우릴 쪄죽이려나 보다"라며 가슴을 쳤다(김 아무개씨는 자녀가 인터넷에서 기사를 보고 걱정한다며 익명을 요청했다).
김여진씨가 7월5일, 다시 홍익대를 찾게 된 까닭이다. 지난 1월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를 두르고 홍익대를 찾았던 김씨는, 이번에는 산뜻한 여름 원피스를 입고 청소노동자들을 만났다. 연이어 날아오는 궂은 소식에 수심이 가득하던 김씨 얼굴이, 아주머니 두 분의 손을 덥석 잡고 난 뒤 활짝 펴졌다. 공감과 격려가 오간 그들의 수다 자리에 < 시사IN > 이 동석했다.
김여진
:손해배상 청구되고 나서 어머니들 요새 어떠세요?
서복덕
(서):다들 울분에 차 있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잖아. 자기 얼굴에 침 뱉기 아냐?
김 아무개
(김):어제 동료들하고 총학생회장이 만나서 얘기했는데, (손해배상이 청구된 노조 간부 6명 가운데) 우리 이숙희 분회장만 취하해달라고 학교랑 협상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 우리는 전면 취하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거절했지. 학생회장도 도와준다고 하긴 하던데, "방학 때라…"라며 난감해하더라. 학교가 기다린 거지, 방학 때 터뜨리려고. 학교 관계자가 우리 업체 사람한테 "(손해배상 소송 때문에) 또 파업 들어갈 수 있으니까 대비하라"고 했대. 그 사람들도 각오하긴 했나봐. 근데 이제 우리는 그렇게 멍청하게 안 하지.
서
:일하면서 싸우는 거지. 우리가 굳이 파업까지 할 필요가 없잖아(웃음).
김여진
:1인 시위든, 뭐든 해요. 2억8000만원을 100원씩 모아서라도…. 총학에 가서 그래요. 자기들이 가서 학교랑 협상하고 그러지 말고, 어머니들이랑 학생들이랑 같이 주점을 하든 뭐든 일을 벌여서 하라고.
서
:그나저나 방학이 돼서 대청소도 하고 일이 엄청 많은데 큰일이야. 학기 중에 못하던 물청소도 하고 문짝이나 벽도 싹싹 닦고 계단 노란색 모서리 부분도 하나하나 닦아야 하는데…. 이렇게 일이 많은데 왜 자꾸 학교에서 다른 일을 만들어주는가 모르겠어.
김여진
:학교가 분했을 거예요. 앞으로 또 그렇게 파업하고 그러면 이렇게 대응할 테다, 보여주려는 것도 있었을 거고요.
서
:내년에 재계약 들어가니까 그걸 대비하는 거라는 얘기도 들리는데, 아니 어쨌든 학교에는 아줌마들이 필요하잖아. 경비도 필요하고. 어느 정도 해주고 사람을 써야지, 왜 적을 만들어? 한식구인데. 그죠?
김
:나는 학생들이 참 안됐어. 비싼 등록금으로 공부하면서…. 중간에서 힘들기도 할 거고. 학교가 왜 학생들 처지에서 생각을 안 하나 싶어. 얼마 전 광화문에서 반값 등록금 집회가 한창일 때 우리는 학생들을 좀 도와주고 싶더라고.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6시에 만나서 광화문에 가자"라는 대자보가 학교에 붙었기에 아주머니들이 분회장한테 거기 연락 한번 해보자 했지. 모두에게 사줄 순 없겠지만 우리 홍익대생만이라도 음료수라도 사서 주자고.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참석한 학생이 서너 명밖에 안 된대.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김밥을 주문하러 나가서 100줄을 할까 200줄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지. 서너 명이라니까 아이고, 실망도 좀 되더라고.
김여진
:앞으로 서명받고 할 때, 꼭 홍익대생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 힘도 모으고 하면 될 거예요.
서
:아휴. 근데 난, 일하면서 하려니 이게 걱정인 거야. 체력들은 다 바닥나 있고.
김
:농성 끝나면 다 끝난 건 줄 알았는데.
김여진
:그때 겨울에 어머니들하고 같이 했던 '날라리당' 친구들 요새 아주 날아다녀요. 그때가 되게 좋았었나봐. 다들 시켜서가 아니라 알아서 여기저기 도와주고 있어요.
서
:김장 같이 할 때 많이 기억나.
김
:김치가 보기에 진짜 어설펐거든? 근데 정말 맛있더라.
김여진
:요리 전문가 선생님이 레시피를 적어주셨어요. 정확한 레시피대로 만들었더니…(웃음).
김
:그래도 다 초보잖아(웃음). 옆에서 볼 때는 아우, 심란한 거야. 날씨는 춥죠, 하는 폼들은 어색하죠, 김치가 될까 싶었지(웃음). 근데 너무 맛있었어.
김여진
:그때 바자회 하면서도 감동 많이 받았어요. 아침에 행사를 열어야 하는데 전날 밤에 눈이 많이 와서 날라리 세 분이 낑낑대며 눈을 치웠대요. 그런데 밤새 또 눈이 온 거야. 다들 걱정이 돼서 눈 치우려고 일찍 모였는데 벌써 홍익대 어머니·아버님들이 치워놓은 거예요. 다 감동했죠.
서
:농성할 때 쓰던 피켓으로 다 치웠다더라고(웃음).
김
:그때 겨울에 그렇게 연대를 안 해줬으면 포기할 사람들 많았을 거야. 너무 힘들고 몸이 안 좋아도 남의 일을 내 일같이 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 다들 견디자, 견디자 그랬어. 하여튼 영원히 못 잊을 거야.
서
:그래도 안 하는 게 좋지(웃음). 한 번은 해도 두 번은 못해, 진짜. 여름에는 특히.
김
:다들 아이고, 모르곤 해도 알고는 못해요 그래(웃음).
김여진
:어머니들 그때 이후로 뭐가 바뀌셨어요?
김
:그 전에는 신경을 안 쓰니까 몰랐는데, 농성하고 나니까 김진숙도 그렇고 성모병원 노동자나 경마장에서 마권 파는 아줌마들이나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전에는 나만, 우리 식구만 위해서 살았잖아. 넓게 못 보고. 근데 농성하고부터는 보는 눈이 넓어졌어.
서
:나도 이제 그것만 보여. 전에 한번은 남대문시장엘 갔다 오는데, 어떤 사람이 길에 뭐 빨간 피켓을 들고 가는 거야. 아이고, 어디 농성하나 하고 뒤돌아서 한참을 봤지. 근데 보니까 예수 믿으라고 쓰여 있더라고(웃음). 참, 텔레비전에 한진중공업도 자주 나오던데 얼마 전에는 회사랑 협상한 사람들도 있던데?
김여진
:협상이… 제대로 된 협상이 아니에요.
서
:근데 왜 협상을 했어?
김여진
:노조 지회장이 판단할 때 싸움이 길어지기도 하고…. 힘들었겠죠. 모르겠어요. 내부 정황은.
서
:그건 잘못된 거야.
김
:우리도 학교나 용역업체나 노조랑 아무 상의도 없이 합의한 거잖아. 업체에서도 합의하기 전에 우릴 만나서 일할 사람이 얼마나 필요한지 산정해야 하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해버린 거야. 그러고 나서 일을 하려니 학교에 쓰레기는 넘쳐나지, 인원은 모자라지….
서
:올해는 그렇고 내년에 다시 맡게 되면 충원을 해준다 그러는데, 절대 충원해주진 않을 것 같아. 왜냐면 입찰 금액이 있잖아. 1년 됐다고 얼마나 팍팍 올려주겠어? 학교가 어떤 덴데. 청소 물품도 찔끔찔끔 주지, 작업복도 하나만 주지. 원래 2년 계약인데 1년만 한 것도 학교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김여진
:자녀분이나 가족이 노조 활동 같은 것 그만두라 그러면 뭐라고 대답해요?
서
:한번 했음 끝까지 해야지. 중간에 나올 것 같으면 시작도 안 했어. 이길 때까지 할 거라 그러지(웃음).
김
:딸은 걱정스러우니까, 처음엔 이거 하면 잡혀 들어간다고 그러더라고(웃음). 남편은 "너희 엄마가 말린다고 듣냐?"라면서도 도와줘. 살림도 다 해주고(웃음).
ⓒ시사IN 조우혜 김여진씨는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서
:그래도 하고 나서 더 용기가 생긴 게, 교수님들이나 조교들이 직접 나서지는 못해도 우릴 보면 붙잡고 "추운데 고생했다"라고 격려해줘. 그럴 때 보면 그래도 우리가 잘한 일이구나,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
김여진
:저도 그렇고, 청소 아주머니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들 달라졌어요. 어느 건물을 가도 계신 분들인데도 이전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홍익대 청소 어머니들 덕분에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 알고, 스스로 목소리 내고 싸우시는 거 보면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전 처음 서울대 병원, 동국대 아주머니들 싸움 시작하는 거 보면서 마음에 걸렸다가, 서울시 환경미화원인가 노동자 한 분이 1인 시위하는 사진을 봤어요. 팻말에 "손 씻을 공간이 필요하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뒤엔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는데, 그렇게 트리에는 세금을 쓰면서 청소하는 분들에겐 손 씻을 공간조차 없다는 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죠. 그렇게 조금씩 마음이 가다가 홍익대 어머니들 일에 참여하게 된 거죠.
서
:여진씨가 올 줄은 아무도 몰랐지.
김여진
:저도 제가 갈 줄 몰랐어요(웃음).
김
:댓글은 안 남겨도 트위터에 들어가서 여진씨 글 열심히 보고 있어. 근데 걱정되기도 해. 전에 한진에서 경찰에 잡혀갔다니까, 우리 아줌마들 다 "어머, 안 되는데. 우리도 희망버스 타고 저기 내려가야겠다. 여진이 구하러 가야겠다" 그랬는데 금방 또 나왔더라고(웃음).
여
:구출될 뻔했네요(웃음).
김
:근데 집에서 뭐라고 안 해?
여
:내놨어요. 아주머니 남편분처럼. 네가 말린다고 되냐, 이래요(웃음).
많이 웃었다. "현장에 가면 가장 마음이 편하다"라는 평소 김여진씨 말이 이번에도 들어맞았다. "멀리서 보면 안타깝고 슬프고 비장한데, 막상 어머니들 만나보니 제가 걱정했던 것만큼 주눅 들어 계신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한진중공업 농성 현장도 그렇다. "가 있으면 서로가 서로를 보고 힘을 낸다. 그저께 즉흥적으로 갔는데, 거기 분들도 화들짝 놀라시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고, 아기들도 저한테 다 달려들어서 쫑알거리고…."
그래도 김씨는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200일 가까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때문이다. 이미 '베스트 프렌드'가 돼 "나중에 같이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시장도 보고 여행도 가자"라고 약속한 김진숙씨에게 여러 번 내려오라고 간청했단다. "계속 내려가는 꿈을 꾸신단다. 그런데 꿈에서조차 웃을 수가 없단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라면서…. 저 상태로는 내려와서 못 사실 것 같다. 그 마음도 알 것 같다."
한진중공업이 '폭도'에 점거당했다고 보도하는 언론이 섭섭하고, 약자를 밟고 오로지 힘으로만 해결하려는 우리 사회에도 환멸을 느낀단다. 하지만 김씨는 환멸스러운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울며불며 싸우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대신 김씨는 "한진 조합원분들이 연행돼갈 때 다들 쭈쭈바 빨고 계셨던 것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무리하지 않고 싸우는 '태연함'을 유지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항상 웃으면서, 함께, 끝까지 세상일에 간여할 계획이란다. "힘센 사람들이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누구 하나 입 막아서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것이다. 나뿐 아니라 이미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변화했고 관계가 형성됐다. 이걸 없앨 순 없을 거다."
〈시사INLive 변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