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hulbert.or.kr/
KBS 역사스페셜 2011년 6월 30일 방영
http://blog.naver.com/ragod/40134613384
지루하다고 생각하지마시고 꼭한번 보시는것도 인생에 도움이될만한것같네요
헐버트박사님은 헤그 특사 파견 등 우리나라독립을위해 한평생살아오신분입니다

만국평화회의를 앞두고 만들어진 위임장에는 1907년 6월 25일
고종황제가 자신의 전권을 헐버트에게 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네덜란드 헤이그
일본의 강압에 의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4월 22일 : 이준이 서울을 떠남
4월 26일 : (부산을 거쳐)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가 이상설을 만남
5월 21일: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이위종 합류
6월 25일: 헤이그 도착

회의장 입장이 거부되었으나 다양한 매체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의 입장을 전할 수 있었는데

헐버트의 헌신+노력+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헐버트가 유럽 여러 나라를 돌며 언론 관계자와 사전접촉 함)
그렇다면 조선을 사랑했던 헐버트는 누구인가?
1949년 7월, 8.15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86세의 나이로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8월 11일 광복절 행사를 보지 못하고 한국에서 생을 마감한다

더 놀라운 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유언장까지 작성한 후에 한국에 왔다는 것 (여기서 좀 짠-했음)

헐버트를 밀사로 임명했을 당시, 조선은 9개 국가와 수교를 맺고 있었다. 을사늑약에 대항하는 여러 외교전략을 세웠으나
헤이그 사건으로 일제가 고종을 퇴위시키면서 친서를 전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네 사람을 통해 우리의 의지를 분명히
했는데..
1895년 을미사변 이후
불침번을 자초하며 고종의 곁을 지켰던 헐버트는 사실 2번의 특명을 더 받았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우리나라는 더 불리해졌는데
고종은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민영환의 추천으로 헐버트 박사를 워싱턴으로 보낸다
당시 헐버트의 회고록에는 이 일을 맡고나면 자신의 본분인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잠시 멈춰야 했지만
서신을 전달하기 위함에는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고 적혀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미국은 선위조처를 약속했었는데
여기서 선위조처란 공동방위조약이란 개념이 없을 그 당시, 안보를 보장한다는 외교용어다
하지만 루즈벨트는 헐버트를 만나주지 않았다. 우리는 몰랐지만, 일본과 가쓰라 테프트 조약을 체결하여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한국을 차지하기로 합의를 해놓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루스벨트를 기다리다 헐버트는
1905년 11월 18일,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이에 분개하며 글로 루즈벨트를 비판한다

일본의 눈을 피해 고종은 독일은행에 비자금을 예치해 뒀는데
독립자금으로 쓰기 위해 마련한 금과 은, 현금 17만불 (오늘날 1000만불이 넘는 금액)을 찾아오라고
헐버트에게 마지막 밀명을 내린다

고종은 두 가지 안전장치를 걸어두었다. 하나는 독일영사의 보증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종황제의 친서나 친필 서명이 없으면
절대 인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이 이 돈을 빼돌렸는데
어떻게 그랬는지는 아직까지 미스테리다. 헐버트는 불법인출을 주장하며 이 돈을 꼭 찾아야된다는 신념으로 살았다고 한다
여기는 어딜까? (궁금하다..)

헐버트가 지은 책들
1) 사민필지: 세계지리 책, 선비와 백성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제목을 달고
조선을 중심으로 다른 나라를 비교하는 묘사가 들어감


고종에 의해 설립된 육영공원에 교사로 활동하다가 헤이그 특사가 된 것인데
교사로 온지 3년만에 한글로 글을 썼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다 (영어도 가르치고)

서재필 주시경과 같이 독립신문발간에도 기여하고
띄어쓰기를 하면 오해를 줄이고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한국소식이란 잡지에 논문도 썼다

그 외에도 2) 한국의 역사, 3) 대한제국멸망사, 4) 엄지마법사 등

전래동화도 서방에 알린다
국보 86호 경천사 10층 석탑도 일본에 빼앗겼다 헐버트의 활약으로 돌아온다 
외국인의 땅은 빼앗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명의를 이전해주고
약탈이 끝나면 같은 값으로 돌려준다는 확약서도 써 주었다
헐버트는 조선이 어떤 말과 문화, 역사를 갖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제의를 받고 왔다 (다트머스 졸업)
그는 천 팔백만 한국인들에 대한 사랑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말한다
국가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늘 생각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이 시대의 안타까움을 함께했다
한국은 잘 지원만 하면 근대적 문명국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정치외교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나는 항상 속상하다
우리나라만큼 역사 속 왕들과 국가의 원수인 대통령을 비하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헐버트와 더불어 고종을 재조명 할 수 있었던 다큐를 보면서
또 같은 생각에 잠긴다
다 잘하고 싶을 것이다. 그게 국가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짊어지고 가는 지도자의 진심이다
그래서 그냥 항상 힘을 주고 응원하고 싶었다
세계지도를 펼치고 한국을 보고 있으면 항상 대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유럽은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 영국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강대국들이 돌아가며 시대를 지배했다
아시아에는 한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떠오르는 중국과, 지금은 좀 주춤하나 여전히 막강한 일본을 사이에 두고 잘 버티고 있다
우리가 왜 이정도 밖에 못하는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이 살떨리는 치열함 속에
어제도 오늘도 잘 살고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애국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갈 국민의 힘으로
이 나라는 더 빛을 발할 것을 믿는다
이 땅에 돌아와 영면한 호머 헐버트, 그를 보며 반성하고 다짐한다

[출처] 고종의 밀사, 헐버트의 꿈|작성자 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