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이미 다문화(다인종) 사회의 모순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다문화 정책 폐지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단계에 와 있다.
노르웨이 테러는 그러한 분위기를 한층 가속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데
오직 한국에서만은 그 사건을 이용해서 민족주의를 더욱 탄압하고
더 강력한 다문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여론조성에 온힘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노르웨이 테러를 통해 우리가 분명히 해야할 것이 하나 있다.
암이 발생한 것은 암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암은 몸이 여러가지의 부정적인 상태에 놓였기 때문에 만들어진
미친 세포의 일종이다.
발암물질, 스트레스, 운동부족, 인스턴트음식, 공해 등
여러가지 요인이 결합하여 암이 만들어지는바,
그것은 몸이 스스로 살고자 하는 최후의 외침이며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최후의 경고인 것이다.
과연 무엇이 평범한 노르웨이의 청년을 미치게 만들었는가?
어떤 이들은 극우적 성향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극우적인 성향은 태어날 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사회와 교류하면서 형성된 결과적인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극우성을 만들어낸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다문화주의이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왜 부모에게 버림받고 미국의 양부모에게서 길러진 아이가
자기를 버린 그 한국의 부모를 찾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오는가.
자기정체성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누구나 그런 갈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가정에서,씨족에서,민족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하고 그것을 유지발전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다문화주의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본능을 나치즘으로 매도한다.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가족을 꼭 미워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꼭 타민족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즉 민족주의라는 것은 배타성을 전제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문화주의자들은 마치 민족주의는 타인종을 죽이기만하는
악마의 사상쯤으로 치부하여 민족주의를 억압한다.
다민족주의자, 다문화주의자들이 알아야할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타민족 타문화 타인종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바로 내가 속한 민족부터, 문화부터, 인종부터
사랑하는 방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찌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어찌 자기 문화를 소중히 하지 않는 자가 타인의 문화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유럽의 다문화주의는 지난 50년간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유럽인들의 정신을 끊임없이 억눌러왔다.
그 결과 스트레스 받은 몸에 암세포가 피어나듯
브레이비크라는 극단적인 테러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암세포는 몸이 살고자 하는 외침이듯
브레이브크 또한 유럽이라는 몸이 살고자 하는 외침이다.
암에 걸린 것을 두고 암세포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암은 단지 건강하지 못한 몸이 만들어낸 결과물임을 사람들은 알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테러를 단지 한명의 테러리스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마치 암환자가 암세포에게 욕설을 하는 것과 같은 단세포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암이 발병하면 일단 암세포 조직을 떼어내는 것이 급선무이듯
유럽에서 다시 그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브레이비크와 관련된 조직을 색출하여 소탕하는 것이 선결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몸의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암은 몇년안에 매우 높은 확율로 재발하기 마련인 것처럼,
다문화주의에 신음하는 유럽의 체제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반드시 제 2, 제 3의 브레이비크가 나올 것이다.
유럽은 다문화라는 음식을 먹고 암이 걸렸다.
지금의 한국 또한 그 다문화라는 음식을 열심히 먹고 있는 중이다.
딴놈은 걸려도 나는 절대 암 안걸린다는 신념으로
오늘도 열심히 다문화 찬양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수은을 먹고 불로장생을 바랬던 진시황처럼
한국은 유럽을 망하게 한 그 다문화가 한국에게는 발전의 원동력이 될거라고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걸고 있다.
(물론 최상류층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한국이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건강은 미리미리 지키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