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유관순 열사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유언 -
이봉창 의사
제 나이가 이제 서른 한 살입니다.
앞으로 서른 한 살을 더 산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
이제부터는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독립 투쟁에 몸 바칠 목적으로 상해에 왔습니다.
선서문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야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대한민국 13년 12월 20일
(임시정부 수립 기점이라 추론됨)
선서인 이봉창
한인애국단 앞.
--------------------------
*적성: 새빨간 정성
*도륙: 무참하게 마구 죽임. 죄다 무찔러 죽임.
--------------------------
이봉창 의사 [李奉昌, 1900.8.10~1932.10.10]
그는 이 선서문을 작성하고 일년이 채 안되어 사형당한다.
단재 신채호![]()
![]()
백범 김구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道)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고 있으나
만일 그들이 합하여 천당 극락을 세워준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나는 절대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이끌고 가지 않을 것이다.
![]()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동포 여러분! 이러한 나라가 될진대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네 자손을 이러한 나라에 남기고 가면 얼마나 만족하겠는가. 옛날 한토(漢土)의 기자(箕子)가 우리나라를 사모하여 왔고, 공자(孔子)께서도 우리 민족이 사는 데 오고 싶다고 하셨으며, 우리 민족을 인(仁)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였으니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는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도마 안중근![]()
안중근의 옥중 수기에서 마지막 유언 ...
내가죽은 뒤에 나의뼈를 하얼빈 공원에 묻어두었다가.
우리의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 회복을 위해 힘쓸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노래를 부를것이다.
ㅡ 순국직전에 '정근. 공근' 두 아우와 홍 신부에게 남긴말 ㅡ
안중근..
1910년 32세
조국을 아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010년 현재..
우리는 그의 유해조차 찿지 못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가 생을 마감한지 100년이 되었고 독립한지가 한참이나 지난 지금까지
유해조차 찿지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있어서도 크나큰 비극이다.
도산 안창호![]()
대성 학교 학생과
후배 청년에게 항상 훈유(訓諭)하기를
![]()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
나라가 없고서 한 집과 한 몸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받을 때 혼자만이 영광을 누릴 수 없다.
개인은 제 민족을 위해서 일함으로
인류와 하늘에 대한 의무를 수행한다.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군부(君父)의 원수는 불공대천(不共戴天)이라 했으니,
평생에 죽어도 다시는 거짓말을 아니 하리라.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백성의 질고(疾苦)를 어여삐 여기거든 그대가 먼저 의사가 되라.
의사까지는 못되더라도 그대의 병부터 고쳐서 건전한 사람이 되라.
![]()
윤봉길 의사![]()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 윤봉길 의사의 말씀중에서 -
![]()
피끓는 청년 제군들은 아는가?
무궁화 삼천리 우리 강산에
왜놈이 왜 와서 왜걸대나
피끓는 청년 제군들은 모르는가?
돼놈 되와서 되가는데
왜놈은 와서 왜 아니 가나
피끓는 청년 제군들은 잠자는가?
동천에 서색(曙色)은 점점 밝아오는데
조용한 아침이나 광풍이 일어날 듯
피끓는 청년 제군들아 준비하세
군복 입고 총 메고 칼 들녀메고
군악 나팔에 발맞추어 행진하세
윤봉길 의사는 24살의 꽃다운 청춘에 가마니에 무릎 꿇린 채 팔을 네 곳이나 묶인 다음 10미터 거리에서 머리에 총을 정조준 당해 처참히 젊은 생을 마감하셨다.
단지 일본놈들에게 빼앗긴 당신의 나라 대한민국을 되찾기 위해 싸웠다는 그 이유 하나로..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수많은 의사 열혈지사들이 민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순국하셨다는 사실을.
민족과 나라가 없다면,
강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삶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처형 당시 참관한 검안의는, 윤 의사의 최후 장면에 대해
“경멸하는 듯한 미소를 띠었으며,
태도가 극히 침착하고 의젓했다” 고 기록했다.
또한 유언을 묻자 윤 의사는 "사형을 미리 각오했는데,
지금와서 무슨 말을 더 하겠느냐" 는 말을 남겼다 한다.
삼일절 노래
듣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