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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받지 못할 편지

tenine |2011.09.17 23:30
조회 606 |추천 3

 

 

 


당신은 지친 표정으로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별을 하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을까. 왜, 그렇잖아. 이별을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이유는 너무 많은 것 같아. 내가 생각하기에는 말이지 이별을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인 것 같은데.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하였던, 어떤 것에 무던히도 싫증이 나서, 지친 표정이였습니다. 저는 그 어떤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곧 당신이 무언가 말을 하여 제가 그것을, 마음이 아닌 순전히 머리로만, 이해하고 받아 들였을 때에, 크나 큰 상처를 받게 될 사실까지도 저는 알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살아오는 동안에, 그만큼 간절하였던 순간은 없었습니다. 저는 제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절박하고 또 가장 비굴한,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 얼마나 초라해지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또 그것이 저 뿐만이 아니라 당신도 힘들게 만들 것임을, 저는 정말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너무 한심하였지만 여전한 표정으로 당신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당신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당신의 마음 속에서 아주 작은 흔들림이라도 생기어 저를 부디 내치지 않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심정이였습니다. 그 작은 흔들림이 사그라든 애정을 되살리지는 못하겠지만, 저는 사그라든 애정을 대신해서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생기기를 바랐습니다. 헤어짐을 헤어짐이라 받아들이지 못하고 터무니없이 동정심에라도 의지하여 어떻게든, 당신이 말할 현실을 부정하는 저의 심정은 처참하였습니다. 저는 그 정도로 절박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은 저의 절박함을 짓밟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차마 믿지 못할 그 말을, 당신은 어떻게든 믿으라는 듯이 단호한 태도로 말하였습니다.

 

 

 

이별을 하는 이유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야. 정말 그게 다야. 다른 이유들은 전부 허울뿐인, 그럴 듯한 핑계들이지. 우리가 헤어지는 이유도 단지 내가 더 이상은 너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것 외에는 어떤 다른 이유도 없어.

 

 

 

당신의 잔인함을 탓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사랑들을 의심하고 싶었습니다. 이별을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건조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것을 이해하여야 했습니다. 우리의 이별은 전적으로, 서툴렀던 저에게 잘못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당신은 영원히 떠나고 저는 영원히 남겨졌습니다. 당신은 어떤 다른 새로운 사랑의 출발에 서게 되었고 저는 후회와 미련이 남은 이별의 끝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이별을 말하였고 그렇게 저는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모진 고통을 겪을 만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째서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별을 결심하고 있을 때에 그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던 것일까요.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동안에 당신은 제게 싫증을 느끼고 있음을, 제가 당신을 만나고 있는 동안에 당신은 이별을 생각하고 있음을, 어째서 저는 알지 못했던 것일까요. 하물며 저는 당신이 어떤 계기로 인하여 이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리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다고 한들, 이별이라는 굳은 결심이 있기 까지는 무던한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 터인데, 저는 아무런 것도 모르고 있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때만이 유일하게 제가 행복할 수 있는 시간임을, 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당신에 대해서 결국은 어떤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사랑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저 혼자만의 사랑이였고 관계의 사랑은 분명 아니였습니다.

 

 

 

당신은 언제부터 우리의 헤어짐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결코 알아낼 도리가 없습니다. 당신이 웃고 있을 때, 저는 당신이 행복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당신이 울고 있을 때 제 품에 안기어 울음을 그칠 때면, 저는 당신이 제게서 위로를 받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어리석은 저는 이제서야 당신의 감정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웃고 있는 동안에도 당신은 행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신이 울음을 그칠 때에도 당신은 슬픔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이 아니라 바로 그때 이러한 것들을 깨달았어야만 했습니다. 당신이 제게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당신이 웃을 때 제가 마주보며 따라서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는 것이 아니였고 당신이 울고 있을 때 말없이 따뜻한 품을 마련해주는 것도 아니였습니다. 따뜻한 미소는 없었을지라도, 따뜻한 품도 없었을지라도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저는 제 온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위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상은 전혀 그러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여린 마음을 서투른 손길로나마 쓰다듬어줄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따뜻한 품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위로할 수 있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어리석은 사랑을 했던 사람이였습니다. 당신은 그렇기 때문에 저와의 이별을 결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제는 실감을 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어느 다른 연인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던, 이별을 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는 그날의 이후로 더 이상은 당신을 만나지 못합니다. 당신의 연락 또한 없어졌습니다. 당신과 이어졌던 인연의 끈이 끊어지고 당신의 부재는 냉혹한 현실이 되어 저를 무자비하게 덮쳤습니다. 당신과 헤어진 후 첫 일주일 동안은, 저는 항상 어떤 것이 휘몰아치는 그곳의 중심부에 외로이 서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몹시 괴로웠습니다. 당신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저에게 당신의 부재가 그것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당신은 제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당신은 떠나면서 한 순간에 모든 것이 텅 비어버린 제 마음을 채워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항상 공허함이 휘몰아치는 그곳의 중심부에 서 있는 것만 같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고통스런 일주일이 지나간 후로 저는 당신이 남겨놓은 공간들을 하나씩 천천히 채우고 있는 중입니다. 앙상하게 헐벗은 겨울나무와 같이 지금 제 마음은 마르고 여위었습니다. 그마저도 아주 커다란 구멍이 이곳저곳에 숭숭 뚫려 있어서 더욱 더 그렇습니다. 저는 그 커다란 구멍들을 메우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그것을 당신과의 추억들로 메우고 있기 때문에 그 추억에 다시 한 번 감사하고 또 그 추억에 다시 한 번 행복합니다. 하지만 저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메우고 메워도 구멍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소중한 추억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떠난 후의 제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무한한 것 조차도 견줄 수가 없이, 절대적으로 공허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도저히 메울 수가 없었고 그래서 슬펐습니다. 당신이 떠난 후로 저의 눈물샘은 마를 새가 없이 언제든 뜨거운 눈물을 울컥울컥 쏟아내곤 합니다. 얼마나 많이 눈물을 닦아내었던지 이제는 눈가에 불덩이를 올려 놓은 듯 화끈거려서 몹시 고통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이유로 눈물이 그치지는 않습니다. 눈물을 닦아내는 손등이 또 한 번 아릿하게 부비어질 때면 당신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얼마나 아픈 그리움인지 알 것만 같습니다.

 

 

 

저는 당신에 관한, 실재하였고 저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어떤 현실적인 것들을 잊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당신에 대한 모든 것들에 어느 정도의 느낌이였는지 생각하고 생각하여도 떠올릴 수가 없어졌습니다. 당신의 손이 어느 정도로 작고 따뜻했는지, 당신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로 유연하고 나긋나긋했는지, 당신의 팔이 어느 정도로 하얗고 가느다랐는지, 당신의 머리칼이 어느 정도로 빛나고 향기로웠는지, 저는 다만 그렇다는 기억만 날 뿐 당신만의 고유한 느낌의 정도는 제 기억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당신에 대한 기억이, 그것의 위로 차마 닿지 못할 그리움만 켜켜이 쌓여 흐릿하게 바래고 만 것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단지 그랬었다는' 기억마저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당신을 완전히 잊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제 기억에 잔류하고 있는 나머지의 그 기억들을 깨끗이 지우면, 비로소 당신을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더 이상 아파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어쩌면 당신이 아닌 새로운 사람과 행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태껏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비참하게 고통으로 일그러진 순간보다는 분명 행복한 순간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저는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 정도지만,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과의 이별 이후로 2주가 흘렀습니다. 저는 그 시간 동안에 제게 당신이 없는데도 세상은 변함없이 앞으로 진행되어 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당신이 없는 제 삶은, 제 삶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하고 커다란 톱니바퀴가 하나 빠져서 그 외의 부수적인 것들도 맞물려 돌아가지 못하는, 그런 삶이 되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한동안은, 예상했던 대로, 지독하고 끈질긴 고통과 동행하며 현재의 시간을 맞이하고, 어느새 현재의 시간이 과거의 시간으로 변하여 지나치면, 사라지지 못할 후회가 남으며 그것을 보내어 주는 생활을 되풀이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어리석고 이상한 생활이였습니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는 저의 생활은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게 꼭 맞는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별을 한 사람이 어떻게 지극히 정상적이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이별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이상해 보이는, 하지만 정작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2주가 흐른 지금, 저는 문득 제 생활에 의문심이 들며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언제까지나 이런 평범하지 못한 생활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로 철저히 고립된 시간은, 2주라는 시간으로 충분하였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죄를 물었습니다. 저는 당신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랑을 하였습니다. 당신을 너무 사랑하여서 저는 당신의 마음을 그리고 제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그런 이기적인 사랑을 하였던 것입니다. 잘못을 한 사람은 저입니다. 그리고 그 죄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도 저입니다. 당신은 매정하게 저를 남기고 떠나 갔습니다. 떠나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을 보지 못합니다. 저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투명히 당신을 끝까지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의 이별을 차마 믿지 못하는 제게 확신을 심어주려던, 단호한 한걸음 한걸음을 저는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완전한 타인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키려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던, 냉정한 당신의 뒷모습을 저는 남겨진 사람으로서 가슴이 미어지지만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저는 어느 것에도 감히 견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당장이라도 제가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과의 이별으로 인하여 모진 고통을 겪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별을 한 사람으로서의 이상하지 않은 것 같던 생활에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하며 이제는 당신을 너무 사랑하였던 이유에서 이기적인 사랑을 하였던 저의 죄에 대한 가혹한 형벌을 벗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누구도 아닌 제가, 스스로에게 죄를 묻는다면 2주간의 철저한 고립과 부수적인 아픈 시간들로 그 죄의 책임을 다 하였다고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당신을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을 잊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제게 주어지는 가혹함에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을 뿐입니다. 이런 생활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신이, 비록 저의 곁에서는 아니지만, 그 어딘가에 존재하여 저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였습니다. 상처만 남기고 떠난 당신이 '이런 생활'을 제게 안기어 주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죽음과도 같은 좌절의 낭떠러지로 몰아붙인 당신입니다. 그곳에서 버티며 살고자 하는 것도 당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과 이별이 때로 얼마나 비상식적이며 모순되고 납득이 안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습니다. 사랑은 인간의 감정이지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넘어서는 그런 경우가 있음을, 저는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모순되는 것이 바로 올바른 것임을, 저는 이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생활은, 당신과의 시간과 무관히, 계속되겠지만 그렇게 얼마 만큼의 시간이 흘러서 조금이나마 이 아픔을 잊어가고 아픔에 무뎌질 때면 다시 이 가혹함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며 당신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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