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2011-09-19]
추락하는 아스널엔 날개가 없다
아스널이 또 졌다. 올 시즌 개막해서 다섯 경기밖에 안 치렀는데 벌써 3패째다. 다른 팀도 아니고 빅클럽 아스널이라서 추락이나 몰락 같은 격한 표현을 써도 무방하다.
17일 있었던 블랙번 로버스 원정은 아스널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아르센 벵거 감독은 공격수 박주영을 빼고 수비형 미드필더 프란시스 코켈랑을 출전 명단에 넣었다. 안 좋은 분위기에서 맞이한 원정에서 좀 더 안전하게 가겠다는 나름대로의 복안이었다고 풀이된다. 그러나 아스널은 무려 4실점 하며 무너졌다. 수비에 신경 썼는데 수비가 뻥 뚫려서 진 것이다. 정말 힘 빠지는 결과다.
▲ 경험 많은 수비수들을 영입했는데…
물론 불운을 탓할 수도 있다. 4실점 중 두 골이 자책골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런 변명이 통할 수 없다. 경험이란 명분 아래 영입한 페르 메르테사커의 부진이 실망감을 더 크게 했다. 우선 야쿠부의 골 장면을 복기해보자. 중앙을 지키던 메르테사커는 크로스가 날아오자 어정쩡하게 자기 영역을 벗어났다. 덕분에 야쿠부는 문전에서 자유롭게 골을 연결시킬 수 있었다. 오프사이드 오심 덕도 봤지만 어쨌든 메르테사커는 가장 위험한 공격수를 가장 위험한 곳에 방치했다. 코시엘니의 자책골(네 번째 실점) 장면에서는 메르테사커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역습을 따라가기엔 그가 너무 느렸기 때문이다. 열심히 뒤쫓아왔다가 화를 당한 코시엘니만 불쌍해질 뿐이다.
안드레 산투스의 아스널 데뷔전은 아주 조용했다. 물론 첫 경기부터 제 기량을 모두 뽑아내는 선수는 많지 않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갓 입단한 파트리스 에브라도 정말 끔찍했다. 그러나 지금은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평가 받는다. 산투스가 지금 당장 가엘 클리시가 했던 것만큼 해주기 바란다면 지나친 요구일 수 있다. 단, 그런 과도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벵거 감독이 28세의 레프트백을 사기로 결심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적응기간이 필요하지만 너무 길어지면 곤란하다.
▲ 구심점이 없다
지금 아스널의 수비는 정상이 아니다. 주전 센터백은 부상 중이고 네 명 중 두 명이 신입생이다. 조직력이 나올 리 없다. 시간이 지나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빠질 수 없다는 게 희망적이다. 진짜 문제는 구심점 부재다. 파트리크 비에이라 혹은 윌리엄 갈라스라도 있었다면 아스널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 같은 역사적 치욕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블랙번전도 마찬가지였다. 팀이 세 골, 네 골을 내주는 상황이라면 누군가는 정신 차리라고 또는 포기하지 말라고 소리쳤어야 한다. 카메라에 비친 아스널 선수들은 하나같이 고개가 땅을 향하고 있었다. 로빈 판 페르시는 자기 팔에 감겨있는 고무 밴드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별난 공동체 의식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출신 선수치고는 너무 조용하다. 영어도 잘하는 친구가 말이다.
▲ 스쿼드 수준 저하를 커버할 정신력 실종
벵거 감독은 얼마 전 이렇게 말했다. 지난 시즌보다 스쿼드의 퀄리티가 나아졌다고. ‘대어급’ 두 명이 빠진 구멍을 ‘중간급’ 여러 명으로 메워놓고 “작년보다 강해졌다”라고 강변하는 모습은 솔직히 안타깝다. 아스널의 스쿼드 수준은 분명히 떨어졌다. 구성원 수준이 떨어지면 팀 전력은 당연히 하락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올 시즌 아스널이 못하는 이유는 ‘잘하는 선수들이 없어서’라는 간단명료한 답이 나온다. 진짜 문제는 객관적으로 실력이 줄어든 것보다 낙폭이 크다는 점이다.
모든 종목이 그렇듯이 선수들의 심리 상태와 동기 부여는 객관적 기량 발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신감에 넘치면 강팀을 꺾기도 하고, 그 반대에서는 한 수 아래 팀에 덜미를 잡히기도 한다. K리그 선두를 달리는 전북 현대 선수들은 요즘 하나같이 “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라고 입을 모은다. 아마 맨체스터의 두 클럽이 지금 그런 상태일 것이다. 아스널은 지금 정확히 반대편에 서있다. 파브레가스와 나스리가 떠난 이후 아스널 선수들은 마치 “지금 여긴 어딘가? 나는 지금 누군가?”라는 패닉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실력과 자신감의 동반 하락은 추락 속도를 높였다. 이런 면에서 벵거 감독의 위기대처능력이 아쉬워진다. 그는 컴퓨터처럼 선수들의 기량을 측정할 수 있을지언정 퍼거슨 감독의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강력한 무언가’를 갖추진 못한 것 같다.
지금의 아스널의 성적은 원래 실력 이하로 떨어져있다. 토마스 베르마엘렌과 잭 윌셔가 복귀하고, 신입생들도 분위기 파악을 마치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다만 그렇게 정신과 기력을 되찾을 때까지 시즌 일정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향후 2주일간 아스널은 주중 경기까지 치러야 한다. 계속 뛰면서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러면 당연히 회복이 더디다. 뭔가 결정적인 터닝포인트가 필요하고 당연히 벵거 감독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참고적으로 이날 경기의 최대 관심사는 스티브 킨 블랙번 감독의 경질 여부였다. 경기 전 블랙번 팬들은 킨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까지 벌였다. 그런데 킨 감독은 아스널을 꺾으며 기사회생했다. 바닥에 닿기 전에 스스로 날개를 만들어 단 셈이다. 더 떨어지기 전에 벵거 감독도 빨리 자신을 구할 날개를 찾아야 한다.
〈스포탈코리아 홍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