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태풍엄마의 노란색일기(2탄)

태풍엄마 |2003.12.16 17:04
조회 1,214 |추천 0

태풍이와 나란히 누워 동화책을 폈다.  아홉마리 아기양과 늑대가 나오는 그림동화책이다.

나는 늑대도 되었다가, 아기양도 되었다가, 신나서 책을 읽고 있는데, 태풍이는 발버둥을 치며 울고

있다. 조금더 늑대목소리는 굵직하게, 아기양 목소리는 깜찍스럽게 읽어도 주었지만 영 반응이 시원

찮다.  태풍이가 앙앙  우는 소리에 친정엄마가 나오셨다. (참고: 살림집이 시내와 먼 관계로 태풍이

백일때까지 우리 세식구는 지금 친정집에 얹혀살고 있음   상황봐서 계속 눌러 붙을까 생각중)

 

엄마:      애기 우는데 안 달래고 뭐하냐?

나   :      어~ 책읽어주고 있어. 근데 재미가 없나? 계속 우네..

엄마:      이제 50일된 간난 애기한테 무슨 책을 읽어줘. 극성떨지 말고 어서 우유나 줘라.

             배고파서 젖달라고 우는거잖어.

나  :       우리 태풍이! 배고파서 울었어? 엄마가 맘마 주께. 맘마먹고 또 책 읽자. 응~~~

 

태풍이는 아까보다 더 크게 울부짖는다. 태풍이는 아무래도 책읽는게 싥은가 보다............

 

극성..............

엄마가 왜 나에게 극성맞다고 하셨는지 나는 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

.

.

나에게 형제라고는 딱 언니 하나뿐이다. 그래서  유난히 정이 돈독한 우리 자매.

언니는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다. 내가 25살에 태어난  조카녀석은 정말 세상을 모조리 뒤져도

하나뿐인 나의조카, 나에게 이모라는 이름을 안겨준 고마운 녀석이다.

지금부터 나의 조카사랑은 시작된다.

조카녀석이 처음 태어난날 나는 회사를 조퇴하고 일찌감치 병원엘 달려갔다.

사무실 사람들은 언니가 애를 낳는데, 당신이 왜 조퇴를 하냐며 의아해 했지만,

언니의 진통은 곧 나의 진통이요. 언니의 출산은 곧 나의 출산이였다.

언니가 낳은 아기를 처음 보는순간, 요동치는 나의 가슴과 쉴새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 .........

언니 시어머니, 그러니까 나한텐 사돈 마나님이 사돈처녀 그만좀 우시라고 말릴때까지 나의 눈물은

그칠줄을 몰랐다. 그렇게 나에게는 귀하고 소중한 조카가 생긴것이다.

직장에 다니는 언니때문에 애기를 울엄마가 봐주셨기에 조카는 항상 우리집에 있었다.

조카가 두살때, 나는 직장생활하며 틈틈이 모아만든 7돈짜리 금목걸이를 팔아서 조카 교육교재를 

샀다. 신나는 어쩌고 하는 교재로 정말 재미나게 조카랑 놀았다. 나는 곰돌이 가면도 쓰고, 토끼 가면

도 쓰고 춤도추고, 우는 흉내도 내고.......정말 애를 앉혀놓고 이것저것 쌩쑈를 했던 기억이 난다.

조카가 놀이방을 다닐때는 놀이방버스에 태워 보내기가 너무 마음이 아파 일년이 넘도록 태워다주고

출근하고, 퇴근길에 데릴러 가고.......꼬맹이 놀이방에서 조그마한 행사라도 있으면 우린 식구 전부가

출동을 했다. 놀이방서 엄마,아빠 오시래요. 하면 우린 꼭 언니, 형부, 그리고 나까지 셋이갔다.

때되면 놀이방 선생님 찾아가고, 가끔 애들 간식거리 잔뜩 사들고 찾아가고, 그래서 놀이방에서 나는

누구누구 이모 하면 유명해진 인물이 되고 말았다.

"지 자식한테도 저렇게는 못한다" 는 소리를 수도없이 들었다.

덕분에 언니와 형부는 애가 다 크도록 둘이 영화도 자주보고, 스키도 잘타러가고 신혼처럼 신났다.

언니는 나더러 "시집가서 애기 낳으면 그때는 내가 잘해주께" 라고 수도없이 말했던것 같다.

놀이방에서 조카가 누구한테 맞았다하면 나는 그길로 달려가 그녀석을 혼내켰고,

어디 견학이라도 간다하면 꼭 내가 꼬마김밥으로 도시락을 싸줬다. 

나는 내하나밖에 없는 조카 사랑한답시고, 언니한테는 하나뿐인 아들한테 엄마노릇 할 기회조차

주질 않은 것이다.

 

" 누구누구는 엄마 아빠는 둘다 얌전한데, 그 이모는 성깔 대단하다."

조카랑 미술학원을 같이 다니는 어떤 학부모께 들은 이야기다. 벌써 학부모들 사이에도 조카사랑

유별나기로 소문이 난것이다. 조카를 데릴러 갔는데, 담임선생님이 어딜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나랑 한판 붙은적이 있었는데, 그때 원장까지 뜯어말리고 하여간 그일이 있은후론, 조카 데릴러

가면 뛰어놀던 아이들이 내 반대쪽으로 막 뛰어 도망치며,

" 누구누구 이모왔다. 도망가자"

했었다. ㅠ.ㅠ

 

그런만큼 나와 내조카는 각별히 사이가 좋다. 내가 고추 누가 달아줬냐고 물으면 맨날 이모라고

말하던 녀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고추 누가 달아줬냐고 물으니 하느님 이라고 대답한다.

내가 결혼한다고 할때 조카는 울고불고 난리였다.

이모 결혼하지 말고 자기랑 살자고, 배신자라고 발버둥치던 조카는

결혼식날도 골이나서 사진마다 볼따구니가 띵띵 부어서 나왔다.

어느날, 몰래 조카의 그림 일기장을 훔쳐본적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 난 이모부가 제일 싫다. "고 써있었다.

 

내가 태풍이를 낳자 조카의 심술은 더해졌다.

학교들어가서 제법 의젓하던 녀석이 자꾸 애기 흉내를 내고, 태풍이가 우유를 먹으면 자기도

우유병에 타달라고 조른다.

그리곤 다큰놈이 우유병을 빨며 누워서 먹는다.

화장실서 응가하고 밑도 잘 씻던 녀석이 이젠 응가를 하고는 " 이모~ 이리좀 와봐" 하고 부른다.

내가 태풍이 똥 치우는것도 힘든데 너 똥까지 닦아줘야 하냐고 소릴 냅다 질렀더니,

금새 서러운지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흐른다.

소릴 질러 놓고도 미안하고 마음이 찡하여 얼른 달래고, 닦아주고 안아줬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 조카인데, 내가 내자식 낳았다고 조카한테 서운하게 하면 안되지......

 

언니와 형부는 우리 태풍이를 보면서,

"너가 우리 애  잘 키워줬으니 태풍이 우리가 델꾸가서 키워줄께" 한다.

나는 키우는건 내가 키울테니 양육비를 좀 달라고 했다가 거절 당했다.

 

 

"이모. 아기가 자꾸 꿈틀꿈틀거려 "

조카의 말이 귀엽고 또 대견하다.

꿈틀대던 녀석이 어느새 커서 초딩이 되고, 내가 그때의 그녀석 만한 아이를 낳고....

.

.

.

.

 

울 엄마말대로 내가 극성스러운걸까?

나는 극성스럽단 말보단 애정이 넘친다고 표현하면 안되려나...... 하는 욕심이 든다.

50일된 아기한테 뭘 가르칠려고 책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나와  예쁜 그림도 함께보고,

예쁜 상상도 함께하고, 예쁜 꿈도 함께 꾸려고 하는것이다.

신랑은 쪼그만 애한테 무슨 책이냐며 눈 사팔된다고 펄쩍뛴다.

아니, 누가 자기자식 눈 사팔 되도록 책 읽히는 부모 있어?  원...참

 

자식을 낳아보아야 정말로 사랑이 무언지를 알게되나보다.

나보다 더 누굴 사랑하는 마음. 이건 연애할때 신랑을 사랑하는 맘하고는 또 쪼금 틀린 무엇이다.

저쪽에서 걸어오는 울 엄마. 스텝이 멋지다. 마치 스포츠댄스의 스텝과도 같다.

먼지나니까 태풍이 앞에선 뒤꿈치를 들고 걸으라고 해서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댄스스포츠 동아리

회원이다.

너무 유난을 떠는걸까?

 

아기체육관(아기들 운동하고 노는 놀이기구)을 주문했다고 하니까, 울신랑 애기가 무슨 체육관 갈일

있냐고  또 펄쩍뛴다.

애들은 그저 잘 먹고, 잘 자면 그게 최고라고........

내가 혼자 낳아온 자식도 아니고....엉엉

 

그래도, 난 ................ 오늘도 극성스럽게 태풍이를 사랑한다.  - 이상 태풍엄마가 -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