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안성전투(建安城戰鬪)
이세적의 요동도행군은 마침내 고구려 요동반도 방어선의 가장 중요한 대성인 요동성으로 진군하였다. 요동성주 고지순은 부하 장수들과 함께 이세적의 당군을 막을 방법을 고민하며 의논했다.
“지금 당나라 최고의 명장이라는 이세적이 개모성을 손아귀에 쥐고 이 요동성을 치러 오고 있소. 그러나 이세적의 군대는 우리 고구려를 침략한 당군의 선봉부대이고 뒤이어 당주 이세민의 친정군 삼십만이 도착할테니 나는 일단 나가서 당군의 예봉을 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 제장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고지순이 자신의 전략을 이야기하자 제장들은 그것이 낫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지순은 장수들을 돌아보며 군령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싸울 준비를 해야겠소. 계무서 장군은 군사 1만 3천을 이끌고 요동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앞산 고개에 매복하시오. 당군이 반쯤 고개를 넘어오면 숲에서 나와 당군 행렬의 허리를 치고 고개를 점령한 후 군사 3천으로 당군이 더 이상 고개를 올라오지 못하도록 저지하면서 바위돌을 굴리고 각궁을 쏘시오. 그리고 군사 1만으로 이미 고개를 넘은 당군을 내달아 치시오! 나는 고개 밑에 주둔하고 있다가 내려오는 당군을 치겠소.”
계무서는 고지순의 지시대로 앞산으로 나아가 고개 옆에 매복했다.
이윽고 개모성을 함락시킨 당군은 의기양양하게 요동성 앞산에 도착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행군총관 장군예(張君乂)가 선두에 서서 군사 1만명을 지휘하여 산에 올랐다. 산에 올라 바라보니 한눈에 요동성이 들어왔다. 돌로 만든 석성인데 아주 견고해 보였다.
장군예는 고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군사들을 독려해서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고개 위에 있던 군사들은 반 이상 자리를 떴다. 이어서 아사나두이(兒社那杜伊)가 이끄는 후군이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함성이 들리더니 숲에서 고구려군이 뛰쳐나와 산 고개를 점령하고 당병들을 닥치는 대로 참살하였다. 계무서는 고지순 성주의 지시대로 군사 3천명으로 하여금 올라오는 적군을 막아내게 하였고, 군사 1만명을 지휘하여 이미 고개를 넘어 내려가는 당군의 뒤를 파고들었다.
장군예가 흙빛이 된 얼굴로 외쳤다.
“산을 내려가지 말고 돌아서서 싸워라!”
그러나 이미 대세가 판가름 난 상태였기에 장군예의 호령도 별 소용이 없었다. 당병들은 너도나도 숲 속으로 도망쳐 들어갔지만 곧 숲에 매복한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고 많은 사상자를 낼 수밖에 없었다.
계무서가 거느린 고구려 군사들은 신나게 당군을 도륙하면서 산 밑으로 당군을 몰았다. 산 밑까지 내려간 장군예가 정신을 수습해서 다시 대오를 짜려는 순간, 북소리가 울리면서 좌우 숲 속에서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한참 후 화살이 그치더니 요동성주 고지순이 군사를 거느리고 숲에서 나왔다.
장군예는 이때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뒤에서도 고구려군이 내려오고 있고, 앞에서도 고구려군이 까맣게 몰려들어 당군을 협공하니 당군 병사들은 싸우려는 의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저 한 목숨 살자고 이리저리 도망다니다가 고구려 군사의 창과 칼에 목숨을 내주었다. 이때 죽은 당군이 8천여명 정도 되었다. 고구려군의 대승이었다.
아사나두이의 부대도 악전고투를 벌이다가 결국 자군의 진영으로 물러났다. 이세적은 장수들을 불러다 놓고 한탄했다.
“장군예가 고구려군을 앝보고 덤벙대다가 일을 그르쳤소. 척후병도 안 보낸 모양이니 스스로 화를 자초했구려. 장군예는 이미 함차에 가두었소. 폐하께서 오시면 그때 처리하기로 하겠소. 그나저나 고구려 군사들이 산 고개에 진을 치고 있으니 어찌해야 좋겠소?”
아사나두이가 말했다.
“별 수 없습니다.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올라가서 사생결단을 내서라도 고개를 탈환해야 합니다.”
이세적이 탄식했다.
“무조건 돌격하면 아군의 피해가 클 텐데 걱정이오.”
계필하력(契苾何力)이 말했다.
“그래도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폐하를 맞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진격해야 합니다. 쇠로 만든 방패로 상체를 가리고 고개까지 밀고 올라가 백병전을 벌여야 합니다. 고구려군은 고작해야 삼천 정도일 것입니다. 밀어붙이면 안 될 것도 없습니다.”
이세적이 날카롭게 되물었다.
“만약 고구려군이 화공을 쓰면 어떻게 하겠소?”
“만약 내일 비가 오면 쳐들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으로 미루지요.”
그 대답을 듣자 이세적이 마침내 허락했다.
다음날 아침, 하늘이 당군을 돕는지 이날따라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아사나두이가 돌궐족 병사 2천을 포함해서 1만명의 결사대를 차출하여 철제방패와 단도를 쥐어 주고 산을 오르라고 명령했다. 이세적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뒤따라 올라가기로 했다.
이에 1만의 결사대는 방패로 상체를 가리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모든 당군이 뒤를 따르니 사방천지가 까맣게 당군 투성이였다.
산의 정상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계무서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오랑캐들이 철제방패를 들고 산을 오르니 쇠뇌가 아무리 강한들 소용이 없다. 또 비가 이렇게까지 내리니 불화살을 쓴들 무엇하리요!”
계무서는 탄식을 마치고 부하들에게 하명하였다.
“적의 기세는 매우 강하다. 우리는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백병전을 벌여야 한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여기서 죽는다고 생각하고 최후의 한 사람까지 적을 죽여라!”
이에 3천의 고구려 군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이날 밤늦게까지 계속된 치열한 백병전 끝에 당군이 마침내 산 고개를 점령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때 죽은 당군은 3천여명이었고 고구려군도 1천명 이상이 전사했다.
아주 늦은 밤까지 전투를 벌인 계무서는 살아남은 2천의 고구려군을 이끌고 요동성으로 귀환했다.
“우리가 어제 당군과 싸워 장수급 20여명의 목을 베었고 졸개는 8천명이나 척살하였다. 또 오늘은 하루 종일 산 고개에서 전투를 벌여 당군 결사대 3천을 죽였다. 적은 이번 싸움에서 1만명이 넘게 죽었고 우리는 겨우 1천 5백명이 희생되었는데 어찌 계 장군은 그리 자책(自責)하는가? 우리가 대승을 거둔 것이다.”
요동성주 고지순은 소와 돼지를 잡아 그날 밤 크게 잔치를 벌였다.
숱한 희생을 무릅쓰고 요동성 밖까지 다다른 이세적의 군대는 돌로 쌓아 단단하고 높은 요동성을 바라보니 절로 한숨만 나왔다. 옆에서 이세적의 심중을 헤아린 계필하력이 간했다.
“우리는 지금껏 너무나 많은 군사를 잃었습니다. 고구려인들은 축성술이 뛰어나 평벙한 방법으로는 성을 공략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일단 폐하의 친정군이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여기서 영채를 세우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세적이 가만히 들어보니 계필하력의 말이 맞았다. 5만 정도의 군사로 단단한 요동성을 깰 수는 없었다. 그들은 성에서 십여리쯤 떨어진 산기슭에 영채를 세우고 태종의 친정군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세적이 요동성에서 고전하는 사이, 영주총관 장검은 요하 하류로 내려가 미리 만들어 둔 뗏목을 이용해 야음을 틈타 강을 건너서 건안성 앞에 진을 쳤다. 건안성은 요동반도 요하의 하구에 있는 석성산에 있는데, 발해만 최북단의 고구려 해양방어요새였다. 631년에 축조된 건안성은 해발 4백 미터 정도의 석성산의 여러 봉우리를 이어 포곡식으로 성을 쌓았고 총 둘레가 이십리가 넘는 비교적 큰 성이었다. 서쪽은 자연암벽으로 되어 있으며 북쪽은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건안성주 고원부(高元部)는 나이는 젊지만 냉정하고 생각이 깊은 지장(智將)이었다. 건안성은 그 당시 국내성에서 파견된 경당(扃堂) 출신 군사들을 합해 약 2만 정도의 군사가 있었고, 양곡은 2년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장검은 수하 군사들을 거느리고 성문 밖에 와서 고구려군에게 항복하라고 외쳤다.
“건안성주는 죽고 싶지 않으면 성문을 열고 투항하라!”
고원부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비웃음을 날렸다.
“하하하! 너는 내 상대가 될 수 없으니 이세민더러 덤벼보라고 해라.”
고원부는 각궁(角弓)을 들어 유엽전(柳葉箭) 한 대를 장검에게 쏘았다. 그의 화살은 허공을 가르며 날아 장검의 투구를 명중시켰다. 장검은 정말 죽는 줄 알고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졌다. 부하 장수들이 깜짝 놀라 장검을 부축하고 영채로 돌아갔다.
장검(張儉)은 한참 만에 눈을 껌벅거리며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기가 천상(天上)이냐, 지옥이냐?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맞느냐?”
부하 장수들이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가리고 피식 웃었다.
“아까 적장이 쏜 화살은 장군님의 투구에만 맞았습니다. 상처도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장수들의 말에 장검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고구려 군사들은 너무 용감하다. 그러니 함부로 나가서 싸우지 말고 지원군이 오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
중랑장(中郞將) 마진성(馬振成)이 나섰다.
“건안성을 공격하라고 우리를 파견했는데 첫날부터 잔뜩 겁에 질리시면 어떻게 저 고구려군과 싸우시겠습니까?”
“그래서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냐! 잠시 쉴 테니까 잠시 나가 있거라.”
장검은 다시 침상에 누워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았다. 이에 모든 장수가 혀를 끌끌 차면서 군막을 나왔다.
마진성이 장수들에게 말했다.
“장검 총관만 믿고 있을 수는 없겠소. 우리라고 무슨 대책을 세워야겠소.”
진장(眞將) 유승달(劉昇達)이 물었다.
“무슨 방책이라도 있으십니까?”
마진성이 대답했다.
“오늘 총관이 건안성주의 화살에 맞아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전부 다 보았으니, 이틈에 우리가 고구려 군사들을 유인해 냅시다. 먼저 총관이 죽은 것처럼 소문을 내고 조기(弔旗)를 걸고 군사들을 시켜 곡(哭)을 하게 하는 겁니다.”
마진성의 이야기에 모든 장수들의 귀가 솔깃해졌다.
“여기서 오십리쯤 가면 계곡이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가 여기에 군사들을 매복시켜 놓는다면 추격해오는 고구려군을 일망타진할 수 있습니다.”
별장(別將) 하후경(夏侯經)이 물었다.
“고구려군이 과연 성 밖으로 나오겠소?”
마진성이 대답했다.
“총관이 죽었다며 곡을 하고 영채를 뽑아서 회군하면 저들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장 총관이 화살에 맞아서 말에서 떨어진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에 모든 장수들이 기뻐했다. 그들은 전군에 영을 내려 조기를 걸게 하고 장송곡을 부르게 했다.
성루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고구려 장수들은 장검이 죽은 줄 알고 기뻐했다. 부하 장수들이 성주 고원부에게 말했다.
“장군님! 아까 우리가 쏜 화살에 적장 장검이 죽었나 봅니다. 이때 우리가 쳐들어가서 한 번 뒤흔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군 진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고원부가 얼굴을 돌려 대답했다.
“아니다. 저것도 일종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장검은 죽지 않았다. 아까 화살은 투구에 맞고 튕겨 나가지 않았느냐? 저것들은 지금 우리를 성밖으로 유인해 내기 위해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장수들이 고원부의 관찰에 탄복하였다.
“그러면 그냥 내버려 둘까요?”
“물론이다. 그냥 두어라. 이것들은 아마도 회군하는 척을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냥 둔다. 그러면 회군했다가 이삼 일 후 하는 수 없이 다시 와서 영채를 세울 것이다. 당군들은 자기네 계략에 우리가 빠지지 않아서 매우 실망하며 규율이 해이해 질 것이다. 그때 우리가 공격해도 늦지 않다.”
과연 고원부의 말대로 건안성 밖에 있던 당군들은 영채를 뽑고 회군하기 시작했다.
거의 철군이 끝났는데도 고구려 성문은 조용했다. 마진성은 오던 길로 오십 리를 돌아가 계곡에 군사를 매복시키고 말했다.
“틀림없이 오늘 밤에 고구려 군사가 들이닥칠 것이다.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하여라.”
그러나 깊은 밤이 되었는데도 고구려 군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날이 샜다.
장검이 부아가 났다. 당장 마진성을 불렀다.
“너의 말대로라면 고구려 군사들이 이 계곡으로 왔어야 했을 것 아닌가? 지금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마진성이 쩔쩔맸다.
“건안성주가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그때 장군께서 화살에 맞았을 때 입술이라도 깨물어 피라도 흘리셨다면, 고구려 군사들도 감쪽같이 속았을 텐데…….”
장검이 대로하였다.
“너는 내가 죽기라도 바란단 말이냐? 썩 물러가라!”
마진성도 말을 하면서도 아차 싶었다. 그래서 무안해서 자리에서 슬그머니 나가 버렸다.
당군들은 흐르는 냇물을 길어 밥을 해 먹었다. 이날도 하루 종일 고구려군을 기다렸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장검은 부하 장수들과 의논 끝에 하룻밤만 더 기다린 다음, 그래도 고구려군이 쳐들어오지 않으면 다시 건안성 앞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날 밤에도 당군들은 고구려군을 기다리느라 밤을 꼬박 새웠건만 고구려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하는 수 없이 장검은 군사들을 끌고 다시 건안성 앞으로 돌아가야 했다. 쓸데없이 영채를 뽑고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당군 병사들은 매우 지쳤다.
건안성 밖에 우르르 몰려들어 영채를 다시 세우면서 당군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투덜거렸다.
“다시 돌아 올 것이면 무엇 하러 갔느냐 말이다.”
“그러게 말이네. 무슨 전략이 어찌 이리 우스운지.”
“그건 그렇고 저 건안성에 있는 고구려의 군사들은 싸울 의사가 도통 없는가봐?”
“그게 예전부터 내려오는 고구려의 전법인데 청야전술이래. 시간만 끌다가 요동의 추위가 닥치면 어차피 우리는 회군해야 하고, 이때 고구려 군사들이 우리 뒷덜미를 공격한다지 아마.”
당병들은 이렇게 씨부렁거리며 영채를 세우고 있으니 군율이 매우 해이해졌다. 특히 군사들은 이틀 동안 잠을 못 자 피곤에 지쳐 있었다.
성루에서 이 광경을 주시하고 있던 고원부가 드디어 군령을 내렸다.
“즉시 성문을 열고 경기병을 내보내서 닥치는 대로 당군을 베되 성에서 너무 멀리 나가지는 말아라.”
드디어 건안성의 성문이 활짝 열리고 용맹을 자랑하는 고구려의 경기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군은 깜짝 놀랐다. 당군은 어느 누구도 고구려 군사들이 싸우러 나올 것이라는 것을 생각 못했다. 그동안 그렇게 싸움을 걸었지만 조용히 있었던 고구려 군사들이었다. 심지어 후퇴하는 것도 멀리서 바라만 보던 건안성의 군사들이 벌건 대낮에 갑자기 쏟아져 나오니 당군들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영채를 세우고 있었던 당병들은 불시의 습격을 받아 허둥댔다. 어디에 칼이 있고 방패가 있는지도 몰랐다. 고구려 기병들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당군들을 이리 찌르고 저리 베면서 무인지경 나가듯이 척살했다. 미쳐 병장기도 손에 쥐지 못한 당군들은 왔던 길로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이날 당군들은 무수히 죽어 나갔다.
간신히 도망친 장검은 군사를 수습하였다. 3만의 정병 중에 벌써 2만을 잃었다. 장검은 눈앞이 깜깜했다. 그로서도 고구려군이 성문을 열고 나온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고구려 군사들이 정말 싸울 뜻이 있었으면, 후퇴를 할 때 성문을 열고 나왔어야했다. 영채를 뽑고 회군했다가 이틀 만에 다시 돌아가니 군사들이 몹시 지쳐있는데다가 또 다시 영채를 세운다고 부산을 떠니 대오가 흐트러져 있었고 기강이 서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 틈을 타서 저 무서운 고구려 군사들이 닥치니, 그 누구라도 당했을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장검은 이런 일들이 엉터리 계책을 만들어낸 마진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장검은 칼을 빼어 들고 마진성을 찾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모든 장수들이 말리는 바람에 씩씩거리며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장검은 요동도행군총관 이세적에게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렸다.
건안성전투(建安城戰鬪)에서 당군이 대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세적은 불같이 노했다. 당장 장검을 참수하고 싶었으나 아직 황제인 태종이 오지를 않았기에 당장은 참기로 했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