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일본 마루타 생체 실험☆★

흔녀 |2011.09.29 21:26
조회 48,315 |추천 39

*비위가 약하신분들은 보지마시길*

여러분은 일본 마루타 생체실험사건을 아세요?

이러고도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 할수있나요?

이러고도 한국인들은 하루하루를 참아갈수있을까요?

--------------------------------------------------------

[Information] 마루타 731부대

 

 

731부대란 무엇인가?

 

[1] 731부대의 형성

1932년, 이시이 시로 장군은 육군 전염병 예방 연구소라는 의무부대의 사령관으로 임명돼 부하들과 종마 수용소를 건설했다.

이 때 수용소는 베이인 허에 있는데 이시이는 이곳에서 토고 부대를 조직해 화학, 생물학 작전을 하기 위한 비밀 연구하였다.

하지만 1935년 탈옥과 폭발이 있어 결국 수용소를 닫고 후에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핑팡으로 가서 관동군 방역급수부, 동향부대를 만들었다.

이 부대는 나중에 관동군으로 통합되어 731부대(공식적으론 전염병 예방부)가 되어 이시이 부대와 와카마쓰 부대로 나뉘어졌다.

731부대는 제국청년군, 대학의 연구소, 헌병대의 지원을 받고 만주의 헌병대, 정보기관, 정규 경찰, 거류민 위원회, 민족주의 정당

그리고 일본 비밀 정보기관과 긴밀히 연락했다. 이들은 일본의 정치와 군사 사상의 대표였다.

 

[2] 731부대의 정보

731부대는 일본 육군 관동군 소속의 비밀 생물학전 연구와 개발 기관으로 일제가 세운 생물학전연구기관중 하나였고

히로히토의 칙령으로 설립한 유일한 부대이며, 히로히토의 막내 동생이 그 부대의 장교(고등관)로 복무하였다.

731부대는 중일전쟁을 거쳐 1937에서 1945년까지 생물 및 화학 무기의 개발 및 치명적인 생체 실험을 마루타(まるた)에게 행하였다.

이들은 방역급수, 헌병대 정치, 전염병 예방에 대한 목적으로 공식적으로 알려졌고 이는 이시이가 731부대의 사실을 위장한 것이다.

이외에 731부대의 역할을 뒷받침한 516부대, 543부대, 773부대, 100부대, 1644부대, 1855부대, 8604부대, 200부대, 9420부대

그리고 동아시아 각지에 세워진 기관이 있었고 이들은 731부대를 지원하는 일제의 헌병대가 관리하였다.

731부대는 일본 정치적 선전, 일본군 사상적 대표로 일본의 우월성, 인종주의 이론, 방첩 활동, 정보활동, 정치적 사보타주, 적전선 침투에 활동했다.

초기엔 공산주의 정치에 대항했으나 후에 영역이 확대되어 화학 및 세균전쟁 준비를 위한 연구와 산 사람을 대상(마루타)으로 생체 실험을 하였다.

마루타는 민간인과 군인을 합친 수만 명의 중국인, 조선인, 몽골인, 러시아인, 그리고 일부 미국인과 유럽인 등 연합군 전쟁 포로로 이루어져있다.

 

[Postscript] 마루타(まるた)는 일본어로 나무토막이란 뜻이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땔감을 뜻한다.

즉 부대원들은 생체실험대상을 생명의 가치도 없는 하찮은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3] 731부대의 전후처리

731부대와 관련된 많은 과학자가 나중에 정치, 학계, 사업, 의학 부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부는 소련의 하바로프스크 전범 재판에 회부되었고 극동 국제 군사 재판 때 일본의 생체실험이 문제되었으나

생체실험의 관련자들은 실험 자료들을 미국에 제공하고 러시아에 안 넘겨주는 대가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일본 내에서 소수 미국인에게 생체실험을 한 관련자들만 처벌하였지

731부대, 자국민 이외를 상대로 실험한 관련자는 전혀 처벌하지 않고 금전까지 지급하며 보호하였다.

실질적으로 미국이 처벌을 막았고 현재는 731부대의 잔인한 행위는 전쟁범죄로 공표되어 있는 상태이다.

 

 

731부대의 질서체계

 

[1] 731부대의 구성원

이름이 알려진 부대원은 이와 같다. 이시이 시로, 겐 유아사, 나이토 료이치

기타노 마사지, 시노즈카 요시오, 다케다노 미야, 와카마쓰 유지로, 후타키 히데오 

 

1. 장군: 부대장인 이시이 시로 장군 이외에 총합 5명 이내

2. 고등관: 좌관급 장교. 731부대에서 실험에 종사하는 의사는 중좌와 같은 대우

3. 판임관: 위관급 장교. 실험 외적인 분야에서 책임자이거나 의사조수에 해당

4. 고원: 부사관. 부사관 및 기타 잡다한 일의 작업반장으로서 일을 수행

5. 용인: 병사. 병사나 가장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며 수용소 간수도 포함

6. 그 외: 수용자를 일컫는 부대의 생체실험대상, 즉 마루타. 살아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함

 

[2] 731부대의 부서

1. 제1부: 여시니아증 감염, 콜레라, 장티푸스, 결핵에 대해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 

2. 제2부: 생물학 무기를 연구. 특히 병균과 기생충을 퍼뜨리는 장치의 생산에 중점

3. 제3부: 병균을 포함한 수류탄의 생산. 하얼빈 시에 위치

4. 제4부: 기타

5. 제5부: 요원 훈련

6. 제6~8부: 시설, 의학, 행정 부서

  

[3] 부대의 내규

1. 물의를 일으키거나 탈주시도한 마루타는 하루 안에 실험을 종료시킨다. 그래서 폭동이 일어나면 일정 없던 실험을 한다.

2. 부대의 모든 구성원은 구성원으로서 존재하는 기간에 사망하면 그는 마루타로서 생체실험으로 해부된다.

3. 어떠한 경우라 해도 마루타는 절대 석방시킬 수 없다.

4. 실험이 종료된 이후의 마루타는 무조건 소각한다. 만약 부대를 해체한다면 모든 마루타를 사살해야 한다.

5. 마루타의 탈주를 도와준 부대원은 직위해제는 물론, 중죄인으로 분류되어 사형 또는 이에 준한 형벌을 받는다.

6. 신병은 마루타 중 품질이 떨어지는 마루타를 때려 죽여야 한다. 이는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인식하기 위함이다.

7. 부대에 존재하는 내규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적용시킨다.

 

 

731부대가 실행한 실험활동의 종류

 
[1] 생체 해부 실험

1. 수용자는 마취 없이 산 상태서 생체 실험을 당하였다.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으며 임산부는 태아를 꺼낸 후에 대상이 되었다.

2. 과학자들은 다양한 질병에 걸린 수용자들을 침습 적 수술을 하였다. 질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장기를 제거하였다.

3. 출혈의 연구를 위해 수용자의 팔이나 다리를 절단하였다.

4. 절단된 팔이나 다리는 가끔 수용자의 반대편에 다시 붙여졌다.

5. 몇몇 수용자의 팔이나 다리는 얼려져 절단되었다. 가끔 얼린 뒤 녹여 치료받지 않은 괴저 및 부패의 영향을 연구했다.

6. 일부 수용자의 위는 외과적으로 절제되고 식도와 장을 연결하였다.

7. 일부 수용자에게서 뇌, 폐, 간의 일부가 제거되었다.

8. 피부 표본을 얻기 위해 실험 대상의 피부를 산채로 벗겨내었다. 의식은 살아 있는 마루타는 소각한다.

9.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절단하여 각각 상대방의 국부에 이식하는 성전환수술실험을 했다.

 

[2] 무기 성능 실험

1. 보병소총을 시험하기 위해 수용자를 3조로 나눠 일렬로 세우고 한조는 팬티, 한조는 평상복, 한조는 방한복 차림으로 실시한다.

2. 수류탄을 시험하기 위해 수용자 목표물을 다양한 거리의 다른 위치에 세워 실시한다.

3. 인간을 대상으로 화염방사기를 시험하였다.

4. 인간을 말뚝에 묶어 세균방출폭탄, 화학무기, 폭발성 폭탄을 시험한다.

 

[3] 세균전 공격 실험

1. 수용자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접종되어 그 효과를 연구했다. 예방접종이라고 위장하였다.

2. 치료받지 않은 성병의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남녀 수용자에게 일부러 매독, 임질을 강간에 의해 감염시키고 연구하였다.

3. 질병 전파 벼룩을 대량으로 얻기 위하여 수용자에게 벼룩을 감염시키고 세균전의 유용성을 연구하였다.

4. 전염병이 퍼지는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세균을 만두에 집어넣고 급식시켰다. 수용자의 급식은 만두였기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5. 전염성 벼룩, 감염된 물자가 폭탄 안에 포장되어 다양한 목표물에 투하했다. 보통 이시이가 직접 개발한 도자기 폭탄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폭발력을 약하게 해 안에 포장된 세균이 죽는 일을 줄였고 페스트, 콜레라, 탄저 등으로 약 40만 명의 중국인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4] 기타 여러 실험

1. 수용자는 숨 막혀 죽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알아보기 위하여 목 매달렸다.

2. 수용자는 색전이 생기는 시간을 결정하기 위하여 동맥(또는 심장)에 공기가 주입되었다.

3. 수용자는 신장에 말의 소변이 주입되었다.

4. 수용자는 죽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결정하기 위하여 물과 음식을 전혀 주지 않았다.

5. 수용자는 죽을 때까지 고압의 방에 놓였다.

6. 수용자를 동상이 걸리게 한다. 얼마나 살며 피부의 부패, 괴저의 효과를 알기 위함이고 여성에게 행했다.

7. 일부 실험은 온도와 화상, 인간 생존의 관계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

8. 수용자는 원심분리기에 넣어져 죽을 때까지 돌려졌다. 인체 수분 함량 비율을 알기 위해서였다.

9. 동물의 혈액이 수용자에게 주입되어 그 효과가 연구되었다.

10. 수용자를 가스실에 넣어 다양한 종류의 화학 무기를 시험했다.

11. 바닷물이 몇몇 수용자에게 주사되었다. 바닷물이 생리식염수를 대치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12. 수용자에게는 진공 실험을 실시했다. 진공상태에서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 하는 실험이었다.

 

[5] 그 외 살인 행각

1. 부대의 판임관과 고등관들은 실험이 끝나도 살아있거나 죽음을 앞둔 수용자를 원판에 묶어 돌린 뒤, 단검을 던지는 게임을 했다.

2. 이때 판임관들은 자신이 선택한 수용자의 명중부위를 걸어 단검이 명중되었을 경우 그 간부가 도박에 걸어놓은 돈을 전부 획득했다.

3. 부대의 군인들은 때때로 아직 실험하지 않은 여성 수용자들을 강간 치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4. 부대에서는 병사의 군기확립을 위해 가장 병약하거나 반항이 심한 수용자를 육모방망이로 때려 죽도록 강요했다.

 

 

731부대의 희생자들

 

[1] 희생자 범위

한국, 중국, 몽골, 러시아의 군, 시민, 여자, 어린이를 포함한 약 1만 명의 사람들이 생체실험대상으로 살해되었다.

그 중에는 일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럽인도 포함되었다. 부대에서 개발된 생화학 무기로 인해 약 40만 명의 중국인이 학살되었다.

 

[2] 한국인 희생자

2005년 8월 2일 하얼빈일보는 생체실험 대상자였던 1463명의 명단을 발굴 공개했다.

현재 밝혀진 한국인 희생자는 6명으로 대부분 항일운동 또는 반파쇼 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인물로 추정된다.

일설에 의하면 시인 윤동주도 대체수혈실험대상 마루타로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1. 고창률: 1899년생. 소련 공산당 첩보원으로 강원도 회양군 난곡면, 1941년 7월 25일 체포

2. 심득룡: 1911년생. 소련 공산당 첩보원으로 1943년 10월 1일 체포

3. 이기수: 1913년생. 함북 신흥군 동흥면, 941년 7월 20일 체포

4. 한성진: 1913년생. 함북 경성, 1943년 6월 25일 체포

5. 김성서: 함북 길주. 1943년 7월 31일 체포

6. 이청천: 독립운동가. 1944년 7월 체포

 

 

731부대의 부대원 중 겐 유아사의 경험담

 

그는 731부대의 부대원 중 하나였으며 일본 도쿄 의과대학 졸업 후 중국 산서성 육군병원 군의관으로 근무한 그는

훗날 자신이 부대원으로 일하였을 때 한국인과 중국인을 상대로 생체해부 실험을 한 사실을 고백하였다.

 

(겐 유아사 日)

나는 주사 바늘을 살균 소독하지 않고 요추 신경을 마취하려는 의사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는 그를 죽이려는 거야" 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곧 마취 장난을 멈추었고 수십 명의 중국인들은 발가벗겨진 채로 온몸에 물벼락을 맞은 채 추위의 저녁 속에 방치되었다.

아침까지 살아남은 중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은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동상 실험이었다.

그리고 부대원 중 의사들은 추위에 강한 사람들의 피부를 벗겨내 견본을 만들어 수집하였다.

그리고 이 부대엔 외과의사가 적어 안과의사와 소아과의사들도 실험에 임하기도 하였는데

마루타 중 일부는 그들이 자신을 치료해줄 것이란 생각에 서로 싸웠다.  
아니, 부대원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실험을 위하여 수평적 폭력을 교묘히 유발시키게 한 것이다. 

 

분명히 겐과 그의 동료 의사들은 자신들의 동포에게 그 실험을 행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소총을 다루는 의무병과 일본 적십자 간호원들이 일반 시민들의 수족을 절단하는 만행을 도왔다.

이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 전혀 충격을 받지 않았다. 무감각으로 일관한 것이었다.
어떤 의사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구덩이에 버리려고 할 때 잠시 생각에 잠긴 채

주사기로 그들의 심장에 공기를 주입하고 다른 의사들과 나는 그들을 목 졸라 죽이려 했다.

마침내 한 나이 든 하사관이 말했다. "존경하는 선생님, 그들에게 마취를 하면 죽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그들을 구덩이에 내던졌다.

 

그리고 마루타들이 공포를 느끼지 못하게 한 것은 731부대의 공포통치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끊임없는 비애만 있었을 뿐이다. 개별적인 살해에서 대량 학살에 이르기까지 부대는 다양한 실험을 했다.

역사가 자신들을 감싸줄 것이라는 생각에 그들은 효과적인 살인을 알기 위하여 감염된 쥐들을 고공폭탄처럼 방출했다.

42가구에서 43명의 사람이 죽었다. 나머지 생존자들은 각기 흩어져 필사적으로 이 전염병을 막으려했다.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은 "내 여동생의 죽음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여겨집니다. 동생은 혼자서
작은 오두막에 있었지요. 그 애를 돌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동생을 보러 갔지요. 목이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어요. 그리고 눈을 뜬 채 죽어 있었어요." 라고 그 날을 회상했다.

부대는 콜레라, 탄저병, 여러 병원균이 공급되는 식수와 음식에 넣어져 제공되었고

어떤 경우에는 콜레라 균이 묻어 있는 사탕을 한 지방 행사에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무서웠어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살해했지요. 그러나 더욱 섬뜩한 것은

그들이 했던 짓거리를 망각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끔찍한 것이지요."

 

 

 

 

 

추천수39
반대수1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