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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살아 계실 제

꽃님이 |2011.10.05 20:37
조회 6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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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힐 듯 가까운 갓바위
 

영산강 하구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갓바위는 자연이 빚어놓은 천혜의 조각품이라 할 만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바닷물이 바위에 부딪치면서 아랫부분이 깎여나가 마치 갓을 쓴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아버지바위로 불리는 큰 갓바위가 8미터 정도, 아들바위인 작은 갓바위의 키는 6미터 가량이다.

파도, 해류에 의한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형성된 이 자연조각은 예로부터 입암반조(笠岩返照)-저녁노을에 물든 갓바위 풍경-라 하여 목포8경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갓바위는 바닷가 돌출부에 위치해 있어 관람객들이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매우 불편한 게 사실이었다. 목포시는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갓바위 앞을 통과하는 해상차도를 구상하게 되었고, 지난 2008년 완공하기에 이르렀다.

그리 길지 않은 해안도로를 따라 200여 미터 가다보면 갓바위 위치를 알리는 이정표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 이정표를 따라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갓바위 해상보행교가 나온다.

총 연장이 298미터에 이르는 해상보행교는, 일반 교량과 달리 교각 없이도 물에 뜰 수 있는 원리를 적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교각이 없기 때문에 밀물과 썰물 그리고 물결의 출렁임에 따라 다리가 갓바위 쪽으로 밀려오기도 하고, 바다 쪽으로 떠내려가기도 한다.

해상보행교 위에 서면 갓바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  바람 따라 흔들리는 물결을 걷는 듯한 갓바위 해상보행교에 오르면,
                                전설 속의 부자바위에 가까워지기도 멀어지기도 하며  그 슬픈 전설에 귀 기울일 수 있다."                

 

바위에 스민 애틋한 전설
 

이 갓바위는 수심 깊은 바다처럼 어둡고 애절한 전설을 품고 있다. 어느 아버지와 아들을 주인공으로 한 비극적인 전설이 관광객들의 마음자락을 애절하게 잡아채곤 한다.

낙조에 물든 갓바위를 가까이서 바라보면 갓을 쓴 아버지와 아들바위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른다. 입암반조의 풍경은 너무도 아름답고, 두 바위에 얽힌 전설 또한 너무도 애절하여 차라리 아름답다.  

저녁노을 물든 갓바위에 올라 그 아름다움에 취해보자. 저녁노을처럼 스산한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전설에도 귀를 기울여보자.

 

목포는 1897년에 이르러서야 개항해 오늘날의 도시로 발전했다. 그 전까지는 영산강 하구에 조그만 나루터마을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 갯마을에서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병든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던 한 청년이 바로 이 얘기의 주인공이다.

청년의 직업은 소금장수였다. 그는 포구로 실려 온 소금을 받아 인접 마을로 돌아다니며 팔면서 가계를 꾸려갔다. 병든 아버지를 집안에 남겨둔 채 집을 나설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고, 발걸음도 무거웠다. 아버지의 병세가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살림 때문에 약 한 첩 제대로 써보지 못하는 처지가 한스러웠다.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렸다. 아버지는 육체의 병을 앓고 있었고, 아들은 그로 인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은 정성을 다해 아버지를 돌보며 얼른 병마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환은 날로 악화되어 갔다. 그에 따라 청년의 근심도 깊어갔다. 청년도 아버지만큼이나 고통스러웠다. 통증을 호소하는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청년의 가슴을 후비고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청년은 주먹 쥔 손으로 답답한 가슴을 두드려 댈 뿐이었다. 그런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잠시 신음을 멈추고 미안해하며 말했다.

“네가 이 아비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차라리 얼른 죽어버려야 할 텐데……. 참으로 모진  목숨이로구나.”

청년은 그저 안타까워하며 아버지를 달랬다.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제발, 그런 말씀 마세요. 얼른 일어나셔야죠. 저 혼자 두고 가시면 안 돼요. 꼭 일어나셔야 해요.”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너를 봐서라도, 이놈의 병을 이겨내야 할 텐데……. 어쩐지 자신이 없구나.”

아버지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청년은 차츰 감겨드는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며 다짐하듯 말했다.

“아니요. 아버진 꼭 이겨내실 거예요. 제가 반드시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드릴 겁니다.”

“고맙구나.”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놓고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아버지를 위해 떠난 무거운 발걸음
 

청년은 아버지의 병세가 날로 깊어지는 걸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다 정말 아버지를 잃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떻게든 방도를 찾아야 했다. 청년으로선 당장 약값을 구하는 게 문제였다. 약값만 있다면 명의를 찾아가 처방을 받고 치료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청년은 결심했다. 약값을 충분히 벌기 전에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마음을 다졌다.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병든 몸으로 집안을 지키고 있을 아버지가 염려스러웠지만, 큰맘 먹고 길을 떠나기로 작심했다.

청년은 다른 때에 비해 두세 배나 무거운 소금 짐을 꾸려 놓고, 아버지께 인사를 올렸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그래. 건강히 잘 다녀 오거라.”

“이번에는 좀 오래 걸릴 겁니다.”

“얼마나?” 아버지가 의아한 눈길로 물었다.

“이번 장삿길에서는 약값을 두둑이 벌어올 생각입니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버지는 길을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힘없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장사에 나선 청년은 이곳저곳으로 바삐 다니며 소금을 팔았다. 그러나 여건이 그리 좋지 않았다. 딱하게도 소금을 사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이러다간 약값은커녕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형편이었다. 그렇더라도 애초의 뜻을 접을 수는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약값을 벌어가야겠다고 청년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계속 소금을 팔러 다녔다간 아무런 소득도 얻을 수 없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청년은 그만 장사를 접고, 차라리 날품을 팔아 돈을 벌기로 했다. 그는 어느 부유해 보이는 집을 찾아 들어갔다. 다행히 그 집에서 일거리를 구할 수 있었다. 청년은 한 달 동안 머물며 품을 팔기로 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청년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 집 주인이 소문난 구두쇠에다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약속한 한 달이 지나자, 청년은 주인에게 품삯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집주인의 태도가 한 달 전과 너무도 달랐다. 주인은 눈을 내리깔고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품삯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한 달 뒤에 품삯을 주기로 하셨지 않습니까?” 청년이 따지듯 물었다.

“내가 언제 그런 소릴 했다고 그러나? 난 그런 말 한 적 없네.” 주인이 삿대질을 해가며 언성을 높였다.

“왜 이러세요, 어르신. 저 그 돈 꼭 받아가야 합니다. 아버지 약값으로 쓸 돈이란 말입니다.”

“그거야 자네 사정이고. 난 자네한테 줄 돈이 없다니까 그러네. 그동안 먹여준 밥값이 얼마인 줄 아나? 밥값도 못한 주제에 품삯은 무슨 놈의 품삯이란 말인가?”

주인은 급기야 청년을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 슬픈 전설을 뒤로 하고 오늘도 생업에 충실한 목포의 사람들.
                                      영산강 끝자락 목포의 항구에서는 오늘도 새로운 이야기를 낚은 만선이 가득하다."


너무 늦어버린 효심

 

청년은 길거리에 주저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입에서 절로 신세한탄이 흘러나왔다. 그때 우연히 마을을 지나던 도승이 청년을 보게 되었다.

“이보게 젊은이! 대체 무슨 걱정거리가 있기에 그리도 깊은 한숨을 쉬고 있나?” 도승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청년은 그동안 겪었던 자초지종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런데 얘기를 듣던 도승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청년이 말을 마치자, 도승이 꾸짖는 목소리로 말했다.

“험한 일을 겪었군. 하지만 자네는 그 생각부터 잘못되었네. 자네 효심이야 인정하네만, 안타깝게도 한 가지만 생각하느라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말았어.”

“그게 뭐죠?” 청년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가 약값을 마련하겠다고 이렇게 타향을 전전하고 있는 동안, 자네 아버님은 누가 돌볼 것인가? 그동안 돌아가시기라도 했다면 어쩔 텐가? 자네가 약값을 마련했다 한들, 이미 돌아가신 마당에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청년은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청년이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싸늘하게 식은 아버지의 시신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 망망대해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두 갓바위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나무 두 그루.

        갓바위에 얽힌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는 듯한 모습이다."                

 

 

 

망망대해에 솟은 갓바위의 전설
 

청년은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이 한없이 후회스러웠다. 그는 이승에서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저승에서라도 편히 쉬게 하는 것이 자식으로서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했다.

청년은 이제 소금 짐 대신 아버지 시신을 안치한 관을 메고 명당자리를 찾아 나섰다. 산을 헤매던 청년은 갓바위 근처에 이르렀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양지바른 곳이라 그곳에 아버지를 모시면 좋을 것 같았다.

청년은 관을 바닷가에 놓고, 묘혈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만 실수를 저질러 곁에 둔 관을 건드리고 말았다. 관은 데굴데굴 굴러내려 그대로 바다에 잠겨버렸다.

청년은 넋을 잃은 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행여 관이 떠오르지 않을까 헛된 기대를 품어도 봤지만, 한 번 빠진 관이 저절로 솟아나올 리 만무했다. 청년은 눈물 젖은 눈으로 원망하듯 바다를 노려보았다. 해안으로 밀려온 파도가 철썩거리며 청년의 가슴을 후려치고 있었다. 청년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빛이 눈부셨다.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청년은 다시 바다를 향해 섰다. 무심한 바다가 청년을 부르고 있었다. 청년은 급기야 바다로 뛰어들고 말았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죽음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 뒤로 이곳에 아버지바위와 아들바위가 솟아올랐다. 죄를 지은 몸이라 더 이상 하늘을 볼 수 없었던 아들은 삿갓을 쓰고 있었고, 아버지 또한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이것이 갓바위 한 쌍이 저마다 품고 있는 전설의 내용이다. 청년이 아버지의 시신을 모시기 위해 팠다는 바위 윗부분에는 풀이 자라지 않고 있다. 전설을 믿는 사람들은 청년이 그곳을 파헤쳐 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바위를 중바위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 전설 말고도, 아라한과 부처님이 영산강을 건너 이곳을 지날 때 쉬었던 자리에 쓰고 있던 삿갓을 놓고 간 것이 갓바위가 되었다는 설도 전해온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생생한 전설로 살아남은 것은 ‘아버지바위와 아들바위’ 얘기이다. 가난한 시대의 애환이 묻어나는 얘기가 신비로운 전설로 전해지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리라.

 


< 주변관광지 >

* 갓바위 061-270-8430
* 평화의 구름다리 061-270-8430
* 목포 자연사 박물관 061-276-6331
* 낙조대 061-272-2171
* 평화광장 061-270-8430
* 만남의 폭포  061-270-8430


                                                                                                             * 글, 사진제공 : 「강,이야기를 품다_영산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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