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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본주의 1%만의 경제에서 99%의 경제로

개마기사단 |2011.10.10 17:24
조회 39 |추천 0

[경향신문 2011-10-03]

 

2009년 12월29일, 정부는 삼성특검으로 구속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만을 위한 1인 특별사면을 했다. 명분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었던 이 회장은 앞서 그해 8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불법발행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발행, 조세포탈 등 배임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의 유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그야말로 판결문의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기업이 커지면 모두가 잘살게 될 것’이라는 이른바 낙수효과 이론은 1960년대 이후 정부 정책의 사상적 교시(敎示)가 되어왔다. 물이 넘치면 바닥을 적시는 것처럼 대기업이 돈을 벌면 중소기업·협력업체·소비자들도 따라서 부유해져 모두의 생활수준이 함께 높아질 것이란 논리였다.

정부는 1962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 이래 전략산업을 떠맡을 기업집단을 선정하고 독점적 이익을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대기업들은 잠재적 경쟁업체의 시장진입을 막는 장벽 아래서 이자율이 시중금리의 절반에 불과한 특혜성 정책자금을 쓸어담았다. 대기업 지원을 통한 경제성장이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 1990년대 이후로도 정부의 정책기조는 여전했다. 고환율(원화 약세) 정책이 대표적이다. 고환율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수출 대기업에 유리해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지만 원자재 수입가격과 물가가 올라 서민들과 내수 기업들에는 불리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월 31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최태원 SK그룹, 김승연 한화 회장 등 30대 대기업 총수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통관혜택을 주는 수출인증자(AEO) 제도, 기업이 신규 설비투자를 할 경우 투자액의 일정비율을 법인세나 사업소득세에서 공제해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가정집보다 가격이 낮은 산업용 전기 등 정부 지원책의 혜택은 대부분 대기업에 돌아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경제권력이 공고화하면서 대기업은 시장지배력을 무기로 점점 더 많은 혜택을 사회로부터 거둬들였다. 대기업은 이제 키우지 않아도 스스로 크고 정부도 시장도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 됐다.

대기업은 경제외적 혜택도 적지 않게 받았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대기업 인사들이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줄줄이 사면된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엔 형이 확정된 지 100일도 되지 않아 사면을 받은 여러명의 대기업 총수들이 끼어있다. 회계부정을 저지른 미국 석유재벌 제프리 스킬링 엔론 최고경영자는 24년형을 받았지만 한국에서 6년형 이상을 받은 기업인은 없다시피하다. 이건희 회장의 사면은 그 결정판이었다.

현재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현상은 역대 최고조에 이르렀다. 당연한 결과였다. 올해 발표된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 매출 가운데 대기업이 차지한 매출은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10대그룹 상장사 시가총액은 8월 현재 698조7389억원으로 우리나라 증시의 절반(52.2%)을 넘었다. 지난해 재계순위 1위 삼성그룹의 자산규모는 230조원,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자산규모는 126조원으로 이를 합치면 내년 우리나라의 예산규모(326조원)를 훌쩍 넘는다.

대기업들은 분명 커졌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모두가 더 잘살게 될 차례였다. 문제는 명제 자체가 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기업은 성장의 과실을 독차지하고 결코 밑으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한국은 이를 깨닫는 데 50년이 걸렸다.

대부분의 사회자원을 대기업에 ‘올인’한 결과는 비참했다. 올해 7월 통계청은 300명 이상 규모의 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근로자 수가 모두 195만3000명으로 2년 전에 비해 11만10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은 늘었지만 고용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공식 실업률은 지난 3년간 3~4%대였지만 구직단념자와 취업준비자, 쉬는 인구, 18시간 미만 취업자 등을 합친 ‘사실상 실업자’ 비율은 2003년 11.6%에서 2010년 15.7%로 치솟았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저임금 비정규직의 비율은 급격하게 늘었다. 현재 비정규직 규모는 577만명으로 1700만 임금근로자의 3분의 1에 이른다. 지난해 물가상승을 감안한 근로자 실질임금 상승률은 0.3%에 불과하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경쟁력 있는 기술을 빼앗는 등 신분상승을 막는 ‘사다리 걷어차기’는 일상적이다. 대기업으로의 기술유출을 경험한 중소기업이 전체의 15%를 넘고 3년간 그 피해액만 4조2156억원에 이른다. 대기업의 견제를 뚫고 매출 1조원 이상으로 큰 기업은 휴맥스와 NHN 등 서너곳에 불과하다. 하청업체를 상대로 한 일방적인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협박은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고발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원청업체에 ‘찍히면’ 다시는 사업을 못할 것이라는 중소기업의 두려움 때문이다. 시장지배력 차이로 이미 공정한 경쟁구도가 깨진 상황에서 정부의 각종 특혜가 더해지면서 대기업은 사실상 치외법권에 위치해 있다.

이 같은 대기업의 영향력과 특권적 지위를 방치하는 것은 도덕적 판단의 문제 혹은 정의의 문제만은 아니다. 시장과 사회를 왜곡하는 이런 대기업 중심 경제는 필시 사회적 모순을 심화시키고 언젠가는 이 사회를 폭발시켜 사회적 재앙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경제력 집중이 한계에 이르면서 이미 수많은 경제주체가 더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수 있다는 절박감을 시민 대다수도 깨닫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이제 대기업이 자기 힘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기업의 성장은 이 사회의 제한된 자원을 편중해 쏟아부은 결과이고 서민과 중소기업의 희생을 담보로 한 대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경제력 집중,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 시스템이다.

헌법에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회계약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힘의 논리로 대체되었다. 계약이 성실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계약 당사자인 시민들이 할 일이다. 경제에서 균형과 조화를 회복해야 한다. 허구로 밝혀진 낙수효과를 대체할 경제 생태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경향신문 백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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