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수영이 없는 고구려 수군의 무기력한 붕괴
661년 5월 당나라는 요동을 정벌한다는 소문을 내고 소사업(蕭嗣業)의 부여도행군(夫餘道行軍)과 정명진(程明眞)의 루방도행군(鏤方道行軍)을 파병했다. 도합 12만의 정병이 기세 좋게 탁군을 출발해서 요동으로 향했다.
연개소문은 병마원수 고문(高文), 내사부 군주 술탈(述脫), 대형 고죽리(高竹離), 대모달 뇌음신 등 군사참모들을 모아 놓고 대책회의를 열었다.
“당나라 놈들이 또 다시 요동을 공격하려 하니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소?”
술탈이 먼저 입을 떼었다.
“이번에는 적들이 쳐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선수를 쳐서 먼저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죽리가 못마땅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면 도성 인근의 군사들까지 차출해야 하지 않소? 만약 저들이 서해로 쳐들어온다면 평양이 위험해질 수도 있소.”
그때까지 묵묵히 듣고 있던 고문이 나섰다.
“지금 우리 땅으로 쳐들어오는 당군의 주력은 육군이 아닌 수군입니다. 육군은 요동으로 진격해가고 수군은 곧바로 바다를 건너 패수 하구로 항진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수군의 전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겁니다. 연수영 장군이 살아있을 때만 해도 아군은 제해권을 거의 장악하고 요동을 침공하는 적군의 보급로를 끊어 작전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지만 연정토 대인이 지휘하고 있는 우리 수군의 형편은 예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군선을 어떻게 수리하는지도 모르고 격군들조차 바다 위에서 함선을 움직여 진형을 짜는 일에도 매우 서툽니다. 그야말로 오합지졸이 따로 없습니다.”
뇌음신이 관자놀이에 핏줄을 세우며 끼어들었다.
“수군이 약하면 육군의 전력으로 당나라의 침략군을 격퇴하면 될 일입니다. 언제 우리 육군이 수군과 함께 적을 맞아 싸운 적이 있었습니까? 우리 고구려는 옛날부터 수성전에 능하고 기마병이 강했으니 성을 잘 지키고 적이 지칠 때까지 기다려 기마병의 기동력을 이용해 적진을 짓밟는다면 충분히 우리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연개소문은 뇌음신의 말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을사년(乙巳年:서기 645년)의 전란 때에 이세민이 직접 인솔하는 당군의 주력부대가 안시성에서 발목이 잡혀 시간을 지체하다가 결국 패퇴한 것도 연수영이 총지휘하는 고구려 수군의 연전연승(連戰連勝) 덕분이었다. 연개소문은 군사전략에 있어서 누구보다 밝았기에 수군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연수영이 죽고 연정토가 수군원수의 직책을 대신한 이래 고구려 수군의 약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절감하고 있었다.
연개소문은 문득 고문을 바라보며 물었다.
“고 원수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이제라도 수군을 증강해야 합니다. 연수영 장군이 원수로 계셨을 때 우리 수군은 매우 막강했습니다. 당나라의 오랑캐들이 감히 해로를 통해 평양을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평양의 방비를 굳건히 한 연후에야 도성 부근의 군사를 차출하여 요동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고문의 대답은 명쾌했다. 연개소문은 깊이 탄식했다.
“아…! 수영이를 그리 내치는 것이 아니었어. 우리 고구려에서 그래도 수군과 바다에 대해 가장 정확히 궤뚫고 있는 사람은 수영이 그 아이밖에 없었거늘……내가 정토의 모함하는 말만 믿고 수영이를 버렸으니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합하……”
고문은 연개소문이 누이동생인 연수영의 비극적인 최후에 대해 크게 후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 원수는 뇌음신과 고연무(高延武) 두 장수를 거느리고 검산성(劒山城)과 욕이성(欲利城)·박작성(泊灼城) 세곳에서 군사 3만을 차출하여 루방도행군을 격파하시오! 그리고 수군원수 연정토에게 전령을 보내 무슨 수를 쓰더라도 패강도행군과 평양도행군을 해상에서 저지하라는 명령을 전달하시오!”
“네, 합하!”
연개소문의 서릿발 같은 명령을 받은 고문은 곧바로 요동 지역으로 출발했다.
한편, 연개소문은 고죽리에게 한 통의 죽간(竹簡)을 주면서 직접 철륵(鐵勒)과 거란(契丹)의 수뇌부를 만나 당나라의 변경에서 무력도발을 일으키도록 설득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나라 땅 탁군에서 출발한 정명진의 루방도행군과 소사업의 부여도행군은 두 달의 행군 끝에 영주의 유성에 도착했다. 루방도행군은 유성에서 며칠 머문 후에 부여도행군에 앞서 통정진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보름 동안 장대비가 내리는 바람에 당군 병사들은 차츰 체력이 떨어지고 사기도 저하되었다. 유성을 출발해서 열흘이 지난 후에야 통정진에 도착했지만 이 곳은 유성과는 달리 인적을 찾을 수 없었다.
정명진은 통정진에서의 유숙을 포기하고 곧바로 고구려의 신성 쪽으로 방향을 잡아 행군했다. 그런데 이들이 요하의 서안(西岸)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고구려 철기병들의 기습을 받게 되었다. 고문과 뇌음신·고연무 세 장수가 거느린 3만의 고구려군이 당군의 진격로를 미리 예상하고 숲길에 매복하고 있다가 일제공격을 단행한 것이었다.
당군은 선두의 대열이 무너지자 제대로 항전하지 못하고 밀리기 시작했다. 이때 고구려군의 선봉장인 고연무가 군마(軍馬)를 몰아 당군의 중앙으로 짓쳐 들어가더니 기창(騎槍)을 비껴들고 정명진의 얼굴을 향해 내질렀다. 정명진은 재빨리 몸을 틀어 장검(長劍)으로 후려치며 고연무의 창촉(槍觸)을 비껴냈다. 두 장수의 결투가 10여합 정도 전개되었을 때, 갑자기 정명진이 탄 말이 진흙탕에 빠져 발을 헛디뎌서 쓰러지고 말았다. 낙마(落馬)한 정명진이 겨우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고연무가 겨눈 기창이 정명진의 배를 뚫고 등으로 빠져 나왔다. 무용(武勇)을 자랑하던 당장(唐將) 정명진은 전투 경험이 부족하고 나이도 젊은 고구려 장수의 손에 어이없게 목숨을 잃었다.
총사령관인 정명진이 허무하게 전사하자 당군 병사들은 공포에 떨며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고문은 부하 장수와 군졸들에게 추격을 명령하여 통정진까지 당군을 뒤쫓으며 끈질기게 맹공을 퍼부었다. 이때 죽은 당병이 무려 5만을 넘었으니 고구려군의 완승이었다. 때마침 통정진에 당도한 소사업은 정명진이 크게 패하고 전사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부하 장수들도 겁을 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앞날을 걱정하며 수군거렸다. 소사업은 이렇게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진 상태에서 진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부장들과 상의한 끝에 유성으로 퇴군한 다음 장안에 있는 고종에게 사람을 보내 진퇴 여부를 묻기로 했다.
한편 고구려의 병마원수 고문이 내지(內地)에서 군사 4만명을 차출해서 요동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장안에 있던 고종(高宗) 이치(李治)는 크게 기뻐하며 소정방·임아상·방효태 등 장수들을 불렀다.
“연개소문이 우리의 계책에 넘어갔소. 내지의 군사를 차출해서 요동으로 보냈다하니 지금 평양은 텅 비어 있을 것이오. 평양도행군과 패강도행군, 그리고 옥저도행군은 황해(黃海)를 건너 평양으로 직공하시오.”
이때 반열에 있던 요동도행군총관인 계필하력이 앞으로 나서며 고종에게 물었다.
“그러면 소신은 언제쯤 요동으로 떠날까요?”
고종은 잠시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요즘 들어서 철륵이 고구려와 빈번하게 왕래를 하고 있소. 철륵의 동향을 보아서 결정할 테니 출정 준비에 소흘함이 없도록 하시오.”
그동안 철륵은 여러 번 당나라에 병사와 군마를 지원하면서 협조해왔지만, 당은 철륵에 더 많은 세공을 바치라는 요구를 하고 노역에 부릴 인력까지 마음대로 빼내 감으로써 철륵 사람들의 원망을 사게 되었다. 철륵에서 반당(反唐)의 기류가 흐르는 것은 고구려원정을 진행하고 있던 고종에게 큰 걱정거리였다. 고구려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데 철륵이 당의 변경을 친다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종은 철륵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다가 여차하면 철륵 출신인 계필하력을 보내서 그들을 제압할 속셈을 품었다.
그해 7월, 소정방이 이끄는 10만의 평양도행군과 임아상이 이끄는 8만의 패강도행군은 산동반도 내주에서 군선 2천여척에 분승(分乘)하여 고구려의 패수구로 나아갔다. 방효태는 양자강 하류로 내려가 그곳에서 7만의 옥저도행군을 통솔하여 평양으로 출격했다.
소정방과 임아상의 당나라 수군은 묘도군도를 거쳐 요도반도 남단으로 우회하여 패수로 항진했다. 이때 비사성에 있던 연정토는 자신의 친구이자 심복인 말갈족 출신 생해에게 1만 5천의 병사와 2백여척의 군선을 주어 패수구로 파견해 당나라 수군을 막도록 했다. 그러나 연수영이 없는 고구려 수군은 이미 허수아비와 같은 존재였으므로 당군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소정방과 임아상은 서전에서 고구려 수군 8천여명을 수장시키고 3천여명을 부상시키거나 포로로 잡았으며, 고구려의 군선 170여척을 불태우거나 바다에 가라앉히는 전과를 올렸다. 이리하여 12만의 당군은 큰 피해 없이 패수 하구에 상륙할 수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보장태왕은 크게 놀라서 당장 어전회의를 열었다. 수십명의 대신들과 장수들이 한결같이 침통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자, 보장태왕이 나와 옥좌에 앉았다.
보장태왕이 말문을 열었다.
“저 흉악한 도적들이 패수구 앞바다에 나타났다 하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생긴 것이오?”
연개소문의 맏아들인 중리대형 남생(男生)이 숙부인 연정토를 비난했다.
“이것은 우리 수군이 바다에서 도적들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태대형 대감은 소신에게는 개인적으로 숙부가 되는 분이지만 수군의 총책임자로서 자신의 직분을 다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듣자하니 군비로 써야 할 조정의 지원물자를 마음대로 착복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군선을 제대로 수리하지 않고 궁수와 격군에 대한 훈련도 소흘히 했으니 어떻게 우리 수군이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하기를 바라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숙부를 수군원수에서 파면하십시오.”
그러자 다른 신하들도 하나 둘씩 연정토를 질책하는 언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때 중리대부 선도해가 나섰다.
“폐하, 옛일을 들추는 것이 당장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사옵니까? 지금은 향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하옵니다.”
보장태왕이 대막리지 연개소문을 바라보며 물었다.
“패수구에 당도한 당군의 병력은 어느 정도요?”
연개소문이 대답했다.
“소정방과 임아상이 거느린 군사가 18만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방효태가 7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강남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도합 25만입니다.”
“대막리지께서 생각하시는 대처 방안은 어떤 것이오?”
“적군이 요동으로 쳐들어온다고 해서 서안평에서 4만, 이곳 평양에서 3만, 국내성에서 3만, 도합 10만의 병사를 차출하여 예상 진격로로 내보냈사옵니다. 그래서 지금 이곳의 병사가 3만명 정도밖에 안 되지만 동부에서 4~5만 정도는 더 모을 수 있으니, 당분간 평양성을 지키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방에서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려 반격하면 되옵니다.”
보장태왕은 전황을 한눈에 궤뚫어 보고 있는 연개소문의 명석한 판단에 마음이 놓였다. 어전회의가 끝난 후 연개소문은 휘하의 장수들을 전부 자기 부중에 모이도록 하여 훈시(訓示)를 내렸다.
“도성 주변의 백성들을 성안으로 불러 들여라. 경작 중인 모든 곡물은 덜 익었더라도 서둘러 수확하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워 쌀 한 톨, 배추 한 잎도 남겨 놓지 마라. 그리고 동부에 사람을 보내 군사를 도성으로 보내라 전하라. 지금 평양성에는 충분한 양곡과 병장기가 저장되어 있으니 그리 걱정할 것 없다. 모든 장수들이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고 각자 맡은 임무만 수행한다면 당군이 아무리 대규모라 해도 문제될 것 없다.”
명을 받은 장수들은 도성 군민들을 독려하여 당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병사들은 병장기를 점검하고, 백성들은 바위와 통나무를 성벽 위로 나르거나 성벽이 허물어질 것에 대비해 목책을 충분히 만들어 두었다.
그즈음 요동의 신성에서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고문·뇌음신·고연무 세 장수가 요서 서안까지 진격하여 당군을 궤멸시켰다는 소식이었다. 이에 평양성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소와 돼지를 잡고 크게 잔치를 벌였다. 이제 고구려인들은 당군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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