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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한 나의 과거 찾기

이광우 |2011.10.17 00:58
조회 49 |추천 1

 

 누구나 자신의 과거, 특히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멍한 상태의 스스로의 모습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의 학창 시절 역시 수업시간이나 자율 학습 시간 공부에 집중을 하지 않은 채, 어떻게 보면 잡념이라 할 수 있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생각들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물론 어떤 이들은 그 생각들을 필요 없는 헛생각이라 치부 한 채 기억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이 그런 식으로 버려질 하찮은 것들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것들은 우리들의 과거 일상들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 그 일상들에 대한 당시 자신들만의 판단과 의견들이 담겨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헛소리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한 번 과거의 생각과 느낌들을 떠올려 보라.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이라든지 친구들과의 여러 추억들을. 그리고 그 당시 자신의 여러 생각들을. 혹시 ‘좋았다’라고 그 느낌이 끝나지는 않는가? 그 많은 추억들이 단 한 가지 느낌으로? 아마 자신이 쓴 일기를 펼쳐보며 회상하지 않는 한은 대부분 사람들이 단순히 좋은 느낌으로 그 끝을 마칠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여행을 가면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라는 말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당연하게 과거에 대한 더 많은 추억들을 되살려 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펜을 들고 ‘시’를 써라. 왜 일기를 쓰지 않느냐고? 물론 일기를 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시는 일기보다 훨씬 많은 감정들 짧게 자신만의 단어로 깊이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보게 될 경우 더 많은 느낌을 단번에 받을 수 있다. 더군다나 앞의 말들에 모두 동의한 사람들이라면 이미 일기 쓰는 것에 실패한 경험들이 있지 않는가…….

 

 

 앞서 말했듯이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과거 나의 생각들이 안타까워서이다. 현재 나의 것과 다른 과거 나의 것들이. 솔직히 나의 시 쓰기 경력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1년 전 나의 시들을 보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어리석어 하기도 하며, 현재의 나를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불과 1년 전 생각들에 대해서 말이다. 학창시절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왜 사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 이였는지 혹시 알고 있나? 우선 다음 시를 보자.

 

'欲'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

‘欲’은 네 삶의 과정이자 목표이자 이유이다.

예수의 사랑도

소크라테스의 정의도

더 크고 더 강한 ‘欲’에서 비롯된 것이며

무구한 인류의 역사도

‘欲’ 하는 것에 의해 진행되어왔다

‘欲 ’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이며

‘欲’ 하는 것의 네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위 시에서 알 수 있듯이 고3 시절 나의 답은 ‘욕심’이였다. 인간의 어떠한 것에 대한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의지와 이유를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는 볼 때마다 아무것도 하고자 하는 것이 없는 현재의 나를 부끄럽고 반성하게 만든다. 과거에 쓴 시가 말이다. 이렇게 시를 쓰는 것은 과거의 생각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시마을' 이란 사이트의 한 글을 보면 시를 쓰는 단계를 총 3단계로 나누었다. ‘1단계 주제 선정, 2단계 생각 성장, 3단계는 단어탐색’ 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시를 쓰는 사람들은 적절한 단어를 찾는 단어 탐색의 단계를 중요시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단어의 폭을 확장 시킬 수 있다. ‘아스라하다’ 라던가 ‘화화’ 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희미하다’나 ‘불꽃’의 단어를 쓰면 되기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찾아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를 쓰는 경우 뜻이 같더라도 억양이 다른 다양한 단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더 많이 찾게 되고 더 알아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알고 있지만 잊힌 단어들을 다시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 단어 지식을 탄탄히 할 수 있다.

 

 

 그리고 시를 쓰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기에 작문 실력도 향상되며 생각을 깊이 해야 하므로 사고의 폭도 넓어진다. 또한 자신의 생각들을 진솔히 담아내므로 타인에게 스스로의 여러 생각들을 더욱 마음에 와 닿게 전달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시 쓰는 것은 우리에게 여러 도움을 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시 쓰는 것을 멀리하려 한다. 그것에 대한 이유는 아마 시 자체가 전문성이 짙어 보여 일반인이 시도하는 것 자체를 생각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일단은 내가 시 쓰는 방식을 보여 시가 얼마나 나의 일상에 가까운지 알릴까 한다.

 

 일단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소재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 자리에 앉아 머리채를 움켜잡으며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전문가적인 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 드는 여러 생각 중에 좀 특이하거나 강렬한 느낌이 드는 무언가가 있으면 그것을 잡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쓴 시를 한 편 더 보도록 하자.

 

화사함에 가려졌던 고뇌의 순간들이

이제는 우리의 몸을 다색으로 물들이고

자비로운 대지의 부름을 받은 우리는

영구한 자유와 평안을 위한

찬란한 도약을 시작한다.

 

 나의 고3시절, 수업시간에 창문을 봤을 때 잎이 다 떨어진 나무의 모습을 보고 쓴 시이다. 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지는 낙엽을 떨어지는 것이 아닌 도약하는 모습으로 보고, 인간의 죽음을 고통 속에서 해방하는 낙엽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본 것이다. 이렇게 시는 일상에서 발견한 특이한 생각을 약간 꾸며가며 짓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각이 난 그 느낌을 그 자리에서, 대충으로라도 바로 적어야 하는 것이다. 괜히 나중에 한다며 미루다간 그 느낌들을 다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편한 장소가 있으면 적절한 단어를 골라가며 시를 완성 짓는 것이다. 두고두고 다시 보며 고쳐야 하는 부분이 있다 싶으면 고치기도 하면서.

 

 

 이처럼 나와 같은 일반인이 쓰는 시에 규율 따윈 없다. 마치 내가 쓴 일기에 다른 사람이 지적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보려고 한 시에 남이 지적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 말했다. ‘시는 전문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에 두루 지식을 갖춘 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쓰여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공적인 시인들의 경우,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고 여러 사람의 교감을 이끌어야 하는 시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의 경우 스스로가 만족하고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시라면 그것으로 그 시는 훌륭한 것이다. 비록 내가 쓴 시가 기교적 측면에선 비판 받을 수 있을지라도 나의 생각과 느낌들은 누구도 폄하할 수 없기에 나의 시를 쓴다는 마음으로 시를 써보기를 바란다. 전문성이 돋보이는 훌륭한 시가 아니더라도 나의 ‘과거’와 현재의 ‘나’가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시를 써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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