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카와 고지로의 공자와 논어
국내도서>인문
저자 : 요시카와고지로 / 조영렬역
출판 : 뿌리와이파리 2006.11.05
요즘 아침마다 공자와 논어를 읽고 있다.
작년 인문학 스터디 때 논어를 읽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정리 한 번 못하고 덮었는데
집안에 굴러다니는 공자와 논어를 보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마다, 책장을 넘길 때 마다 감탄사가 연발로 나온다.
지금같은 세상에 '공자 왈'이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공자만큼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 또 있을까.
공자는 출생부터가 남달랐다.
홀여안씨녀야합이생공자 (사마천, <사기>"공자세가")
아버지 숙량과 어머니 안씨 사이에 야합으로 태어난 아이가 공자이다.
설에 따르면 아버지는 70이 넘은 노인이었으며 어머니 안쟁재는 겨우 10대 였다고 한다. 공자 나이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마저 20대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 묘와 합장을 해야 하는데 아버지의 무덤도 제대로 알 수 없어 공자가 몹시 곤란했다고 한다.
게다가 공자가 살었던 시대는 살육과 음모가 소용돌이 치는 혼란의 시대였다. 자객이 매일 판을 치고, 죽은 자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채찍질을 하던, 권력과 재물 앞에 인간이 얼마나 극악무도해 질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때였다.
공자왈, 본래 사람의 성격은 곧은 것이다. <논어> "술이 제7"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어>가 인간이 선한 존재이며, 인간에 대한 애정과 평정을 유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공자왈,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벗이 있어 먼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랴. <논어> "학이 제1"
이 구절만 들으면 깊은 산 속에 신선놀음이나 하면서 세월 가는지 모르고 풍류를 즐기는 인자의 말처럼 들리지,
고국을 떠나 십 수년을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 다니며 수 많은 계략과 암투를 목도하고, 그 뜻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채
생애를 마감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산 인간의 말이 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자는 단순한 재야의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늘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누군가를 통해 인의 정치를 실천하고, 실현하고 싶어했다.
누구라도 좋다, 나를 써주는 이가 있다면, 1년으로도 충분하다. 3년이면 멋지게 성과를 보일 수 있다.
나는 따고 남은 박처럼, 멍하니 매달린 있을 수는 없다. <공자와 논어> 53p
공자는 본인의 생각을 단순히 추상적인 학문으로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직접 실천해 보고 싶은 정치 욕망이 강한 사람이었다. 혼란의 시대- 고통과 핍팍에서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는 방법을, 그는 갈구 했던 것이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논어> "안연 제12"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어버이는 어버이 답고 자식은 자식 다워야 한다.
공자는 이 단순한 진리를 실천할 나라’를 찾기 위해 여러 나라(위·진·채·노 등)를 주유(周遊)하지만, 그 어느 나라에서도 기용되지는 못했다 . 언젠가 제자 자공이 알쏭달쏭한 질문을 했다.
자공 왈, 아름도운 옥이 여기 있다면 상자에 넣어 감추시리이까? 좋은 상인을 찾아 파시리이까?
공자 왈, 팔것이다 팔것이다. 나는 볼 줄 아는 상인을 기다리는 자이다. <논어> "자한 제 9"
하지만 공자는 단순히 권력을 위해서 정치를 탐하지는 않았다.
양화 제17편을 보면, 그 무렵 점차 명성이 높아지던 실세 양화가 공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양화는 공자를 만나고 싶어앴는데, 공자가 그의 됨됨이를 꿰뚫어 보고는 만나기를 거절했다. 그가 삶은 돼지를 선물로 보내자 공자는 양화가 없는 틈을 타 답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공자는 외출했던 양화를 마주치게 되는데.
길에서 마주친 양화가 공자에게 말하였다.
그 보배를 품고서 나라를 곤란하게 하는 것을 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당신이 줄곧 말씀하시는 애정, 인간의 도리라 불러도 좋습니까? 또한 일하기를 좋아하며서 자주 때를 놓치는 것을 지혜롭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불가합니다. <공자와 논어> 208p
그러나 공자는 양화를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박원순 후보를 생각했다.


시민의 힘으로 시민의 후보에 올랐는데, 선거를 해야하니 조직이 필요하다.
상대편에서는 선거의 여왕까지 합세하는데.... 결과를 위해 그만 "정당"으로 들어가 내민 손을 잡아야 하나?
자공이 정치를 묻자
공자 왈, 식량을 넉넉하게 하고, 군을 넉넉하게 하며, 백성을 신뢰하게 함이라.
자공 왈, 어쩔 수 없이 꼭 버려야 한다면 이 세 가지 중에서 무엇을 먼저 버리리까?
공자 왈, 군이다.
자공 왈, 어쩔 수 없이 꼭 버려야 한다면 이 두 가지 중에서 무엇을 먼저 버리리까?
공자 왈, 식량을 버릴지니 예로부터 죽음은 모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서지 못한다. <논어>, 안연 제12
백성에게 신뢰를 잃으면 그것은 이미 정치가 아니다.
명성과는 달리, 쉰 살이 넘어서야 겨우 지방의 고을을 다스리는 자리에 올랐고 몇 년을 잘 나가는가 싶더니 나이 쉰 여섯에 권신들의 모함과 계략으로 고국을 떠나 13년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평균 수명을 고려한다면 지금 나이 70살 정도가 되어서야 인정받는 자리에 올랐고, 그마저도 몇 년 누리지 못하고 다시 방랑자가 된 공자.
그러나, 그때 공자가 양화를 따라 갔다면- 공산불뉴를 따라 갔다면 "지금의 공자"가 되었을까?
정치가 정치답지 않은 나라에서, 정치인이 정치인 답지 않는 나라에서
시민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나온 박원순 후보의 선택이 주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