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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 놀았다며 10대들에게 충고글 올리는 분들께. 피해자가 올리는 한 마디

끽끽 |2011.10.24 01:33
조회 288 |추천 4

저는 현재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중인 17 女입니다.

저는 노는 아이, 흔히 말하는 '일진'에게 당한 수많은 피해자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불과 일 년도 학교를 다니지 못한 자퇴생으로 남아있지요.

방금 막, 중고딩 때 놀았다던 분이 올린 충고글을 읽고 왔습니다.

그 글을 읽고 너무 화가 나고,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올라서 몇 글자 끄적여봅니다.

 

 

 

 

저는 중학교는 공학을, 고등학교는 여고를 다녔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중학교는 그 구 내에서도 참 얌전하기로 유명했어요.  

물론 노는 아이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개는 뭘 하든 자기들끼리 몰려다닐 뿐 다행스럽게도 주변에는 크게 민폐가 되지 않는 아이들이었어요.

화장을 하거나 렌즈를 끼는 것도 흔하지 않았고, 대부분 아이들이 치마나 머리 길이도 무난했던 것 같네요. 파마나 염색도 드물었어요. 심한 왕따나 싸움도 별로 없었습니다. 

다른 학교 아이들은 저희 학교를 찌질하다고 했지만, 저희끼리는 참 즐겁게 지냈던 것 같아요.

 

 

저는 빼어나게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성적으로 여고를 들어갔어요.

반에서 유일하게 입학식 때 장학금을 받아 학기 초에는 조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그 때 그 아이들을 만났어요. 속칭 '일진'이요.

 

 

한 달 가량을 선생님이 정해주신 대로 자리를 앉았었는 데, 하필이면 제 자리를 중심으로 일진들이 원 모양으로 앉았어요.

그러나 다들 서로 다른 학교 출신이 많아 좀 서먹한 편이었고, 학기 초라 그런지 다들 차림새가 심하게 요란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그 아이들이 그런 부류의 아이들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었어요.

자리가 다 근처인데다 마침 그 중 하나는 제가 아는 친구여서 저는 그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왜, 학교에서 여자들끼리 보면 같이 노는 '그룹'이란게 있잖아요?

어쩌다보니 저는 노는 아이들 그룹에 끼게 되었네요.

 

 

 

 

그러나 저는 정말 놀 줄도 모르고, 렌즈나 화장은 커녕 치마도 잘 줄이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네, 저는 흔히 말하는 찌질이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점점 그 아이들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치마가 허벅지 반 이상을 올라오고, 얼굴은 가부키 화장에, 노랑색 보라색의 렌즈들...

매일매일 하는 이야기는 연예인, 아이돌 이야기나 소개받은 남자아이 이야기, 혹은 다른 아이들의 뒷담화...

연예인 누가 누구랑 잤느니 몇 반에 누가 수건라느니.. MCM지갑을 샀느니, 구찌 지갑이 얼마니...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컬쳐쇼크네요. 

 

 

 

 

아무튼 그 아이들은 제 진상을 알자마자 은근히 절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농담조로 하는 말이었지만 "○○야 니 치마 조카 찌질이다." "BB도 없어? 너 촌에서 왔어?" "지갑 삼만원짜리 쓰면 들고다니기 안 쪽팔려?"등...

안 그런 척 하지만 은근한 비웃음이 보이더라구요.

 

걔네 눈엔 연예인에 관심없는 것도 이상해보였나봅니다. 다른 아이들이 뮤뱅 볼 때 미드 보거나 책 읽고 있는 것도 그 아이들이 보기엔 "찌질이"의 일종이겠지요. 

그런식으로 시비를 걸면 그냥 웃으며 같이 농담하며 넘어갔지만, 진짜 속으로는 너무 서러웠네요.

유행을 따르지 않는 제 옷차림이나 스타일들이 그 아이들에겐 "찌질이"로 보였나봅니다.

 

 

 

아무튼 제가 없을때면 절 찌질이라며 비웃던 아이들은 시험공부를 할 때'만' 제 자리로 와서 시시때때로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고, 수업시간에는 퍼질러 잔 주제에 제게 와서 이해가 안 된다며 한 단원 전체를 다시 설명해달래요.

그 덕에 저는 야자시간 두시간 내내 제 공부는 하나도 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 힘들어서 펑펑 울었던 게 기억나요. 그 때 만큼은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 너무너무 미웠어요.

진짜 독하게 마음 먹어야지 하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에 그렇게 하지 못했었네요. 

 

 

 

중간고사가 끝날 때 즘 저는 정말 화가 절정에 치닫았습니다.

전 운이 좋게도 중간고사 때 전교권에 들어 야자시간 때 정독실에 다녔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반 친구들이 이야기해주더라구요. 그 노는 아이들이 야자시간에 제 호박씨를 까며 저를 찌질이라고, 좃만이라고, 학교도 조카 찌질한 데 나오고 친구들도 다 찌질해보인다고...그렇게 말했다더라구요.

시험기간이나 짝 맞출때는 실컷 이용해먹고 찌질이라구요?

그냥 친구끼리 장난으로 놀릴 때 사용했던 '찌질이'란 말이, 이렇게 큰 상처로 다가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끝내 참지 못하고 폭발했지요. 저는 그 중 리더격이었던 아이와 석식시간에 대판 싸웠습니다. 그 싸움을 바로 끝내지 못하고 몇 일 질질 끌었어요. 결국 마지막 싸움에서 울음이 터지더라구요. 너무 서러운데도 그 애 앞에서 우는 걸 보이면 지는 것 같아서 눈을 부릅뜨고 화를 냈습니다. 그 애는 들은 척도 안 하더라구요. 

결국 저희만 노는 아이들에게 저는 속칭 공공의 적이 되었네요.

 

 

처음엔 저와 싸운 아이 주변으로만 퍼지던 소문은 점점 크게 퍼지고, 결국은 반 전체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제가 교실로 들어오면 교실 뒤에서 절 찌질이라고 부르며 수군수군거렸고,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도 그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조금씩 멀어졌어요. 강당 갈 때나, 급식실 갈 때, 이동수업 때... 매 시간시간이 고통이었네요. 어딜가든 혼자가 될 수 밖에 없었어요. 사람들의 시선도 너무 아팠구요.

저와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이 미안하다며 힘내라고 카톡을 보내줄 때마다 고마우면서도 힘들어서 밤마다 펑펑 울었던 게 기억납니다.

아침 되면 학교 가기 싫어서 아침밥도 안 넘어가고, 매일 아침마다 또 반 친구 하나를 잃을까봐 전전긍긍, 혹시 소문이 다른반까지 퍼지면 어쩌지 막 걱정하고...... 그냥 학업에만 신경쓰자 매일 밤 자기전 결심하면서도 아침이 되면 현실에 절망합니다. 매일매일 자퇴를 하는 상상을 해요. 그러다 현실을 생각하면 다시 울음이 나고... 새벽 4시까지 잠을 못자고 퀭한채로 학교 가서 밥은 계속 굶고... 한 달 사이에 그렇게 살이 6kg가 빠졌습니다. 결국 신경정신과에서 강박장애를 진단받았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결국 엄마아빠한테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제가 당했던 것, 제가 매일매일 하는 걱정, 자퇴하고 싶다는 생각..... 다 털어놨어요.

그 날, 아빠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생에 한 번 힘든 때가 찾아오는데, 넌 남들보다 그걸 조금 일찍 겪은 것 뿐이다"라고 위로해주시면서 술을 드시던 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현재 저는 자퇴생으로, 그리고 검정고시 준비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방금 전 소싯적 놀았다며 10분들께 충고하는 글을 올리신 언니께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그 언니와 그 무리가 괴롭히고, 삥을 뜯고, 비웃고 깔보고 무시하던 무리 중에는 저와 같은 케이스도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사과하세요. 꼭 사과하세요.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평생 미안하다는 마음을 갖고 사세요.

단순한 제 피해의식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사정에 놓인 수많은 피해자들이 당신의 글을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을 지 알고 계십니까?

그 분의 글 밑에 달린 댓글 중에 이러한 내용을 봤습니다. 그 놀았던 분이 정신차리고 공부해서 대학들어간 것은 결코 잘 한게 아니라고. 단지 제 앞가림을 한 것 뿐이라고.

 

 

 

저도 그 의견에 동감합니다.

물론 철 든 것, 참 기특한 일이지요. 하지만 당신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아픔과 눈물은 누가 보상해줍니까?

만약 저와 같은 케이스가 있다면, 그 분이 평생 달고가야할 '고등학교 중퇴자'라는 딱지는 누가 떼어줍니까? 평일 오전에 버스를 탈 때. '청소년입니다'라는 기계음에 닿는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에도 상처받는 것이 사람입니다. 우연히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 지나가면, 나도 저렇게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싶어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 아이들을 원망하는 게 사람입니다. 당신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피해자들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피해자들은 세월이 흐른 아직도 당신을 잊지 못하고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허세에 부푼 어설픈 충고글 따위 올리지 마세요.

일진에서 벗어나서 뿌듯하세요? 지방대 간게 자랑스러우세요?

당신이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 당신에게 당한 이들을 생각한다면 그딴 쓰레기글은 올리지도 마세요.

당신은 아직 철이 덜 들었습니다. 정신 차리세요.

 

 

본의 아니게 글이 많이 길어진 것 같네요.

혹여나 여기까지 글을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긴 글 읽느라 정말 수고하셨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나 제 이야기에 반론이나 태클을 걸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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