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2011-10-24]
퍼거슨의 맨시티 과소평가가 낳은 치욕
깜짝 놀랄 만한 결과다. 기록을 찾아보니 양팀간 6-1 스코어는 1925/1926시즌 이후 86년 만이다. 공교롭게도 그때도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가 이겼다. 돈으로 세상을 집어삼키려 한다는 비난도 잠시뿐 역시 승부의 세계에서 승자를 욕할 수 없다. 뮤지컬 ‘맘마미아’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Winner Takes it All’이라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패인은 단순했다. 실력에서 졌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정면대결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홈에서 너무 강했을 뿐 아니라 자존심이 걸린 더비 매치였기에 당연한 판단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전술도 없었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선발진과 4-4-2 전술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 안이한 대처는 기록적인 참패라는 결과를 낳았다. ‘시끄러운 이웃’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스코어, 슈팅 수, 볼 점유율 모두 뒤졌다. 전세계 축구 팬들 앞에서 힘 한번 자랑하고 싶었는데 대망신으로 끝나고 말았다.
불과 다섯 달 전에 퍼거슨 감독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다. 알다시피 맨유는 90분 동안 바르셀로나에 끌려 다닌 끝에 3-1 완패를 당했다. 실력차가 너무 커서 맨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리오넬 메시의 쫓는 박지성의 바쁜 두 다리만 안타까워 보일 뿐이었다. 이 때 퍼거슨 감독은 한 가지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 세상에는 맨유보다 훨씬 강한 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전과 이번 맨체스터 더비는 차이점과 공통점을 각각 하나씩 찾을 수 있다. 차이점 먼저 보자. 바르셀로나전 패인이 자기 실력의 과대평가였다면 맨시티 참패는 상대 실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더비 승리까지 합쳐 맨시티는 올 시즌 리그 9경기에서 8승1무를 기록했다. 지난 시즌 동일기간 5승2무2패의 성적과 비교하면 얼마나 좋아졌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유럽 무대에선 경험 미숙을 드러내지만 자국 리그에서는 압도적이다. 특히 다비드 실바, 사미르 나스리, 마리오 발로텔리로 이어지는 공격진의 화력은 이미 프리미어리그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스피드와 힘으로 골을 뽑아내는 맨유와 달리 맨시티의 득점 장면에는 높은 수준의 테크닉까지 보태져 있다.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터트린 세 번째 골이 바로 그랬다. 발로텔리의 힐패스, 제임스 밀너의 전진 패스, 미카 리처즈의 공간 돌파 그리고 아구에로의 쇄도와 결정력까지 내용과 결과 모두 ‘판타스틱’했다. 지난 시즌 믿기 힘든 루니의 발리킥만큼이나 어려운 득점을 맨시티가 맨유 원정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커뮤니티실드 승리를 잊고 퍼거슨 감독은 좀 더 냉철하게 맨시티를 평가해야 했다.
공통점은 맞대결의 배경 자체가 퍼거슨 감독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경기 모두 퍼거슨 감독으로선 소극적으로 나설 수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홈 그라운드나 마찬가지인 웸블리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맨유가 수비 전술을 편다면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맨체스터 더비도 마찬가지다. 맨시티가 아무리 천하무적이라고 해도 올드 트라포드에서라면 퍼거슨 감독은 당연히 정면승부를 선택해야 한다. 이날 퍼거슨 감독은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면서 관중석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노감독으로선 대단히 드문 제스처였다. 하지만, 그 몸짓이 맨체스터 더비의 컨텍스트를 잘 보여줬다. 객관적 전력에서 한 수 아래라고 해도 ‘미친 척하고’ 대들어야 하는 게 바로 더비 매치다. 같은 날 첼시를 상대한 퀸즈 파크 레인저스조차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
만약 퍼거슨 감독이 이번 맨체스터 더비를 냉철하게 바라봤다면 애슐리 영이 아니라 박지성을 선택했어야 한다. 맨시티의 공격 창조자 다비드 실바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올 시즌 들어 실바의 활약은 프리미어리그 MVP감이다. 서너 명의 수비수 사이를 헤집고 패스를 연결시키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상대의 필살기 봉쇄는 승리를 위해 지켜져야 할 필수조건 중 하나다. 물론 박지성이 적임자다. 영은 절대로 유럽 정상의 무대에서 통할 만한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다. 리버풀, 첼시 그리고 맨시티를 상대로 영은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준 적이 없다. 공격력은 강팀 수비진을 뚫어낼 만큼 대단하지 못하고 수비력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후반전 맨유는 영의 어이없는 수비 실수로 두 번째 실점을 헌납했다. 왼쪽 측면에서 영이 ‘얼음’ 상태로 있어준 덕분에 제임스 밀너는 자유롭게 페널티박스 안으로 파고들어 실바의 패스를 받아 완벽한 어시스트를 제공했다. 만약 박지성이 있었다면 패스를 내준 실바나 공간으로 파고든 밀너 둘 중 하나는 막아내지 않았을까? 아니 적어도 막으려는 시늉은 했을 것이다.
영은 애런 레넌(토트넘), 시오 월컷(아스널), 숀 라이트-필립스(QPR) 등을 연상시키는 측면 공격수다. 이런 선수들은 폭발적인 스피드와 함께 잉글랜드 국내에선 돋보이는 개인기를 보유했다는 공통점을 띈다. 그러나 잠재력만큼 성장하지 못한다는 점도 공유한다. 동선이 너무 직선적이어서 수비수가 다음 동작을 쉽게 예측할 수 있고 수비 가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극대화시키려는 잉글랜드 축구 문화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최정상에서 경쟁하려면 반드시 공격만큼이나 수비에서도 전술 수행이 중요하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MVP 개러스 베일이 좋은 예다. 풀백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지금 그는 윙어로 뛴다. 공격력 폭발이라기보다 수비력이 워낙 형편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의 플레이 패턴은 윙어의 돌파라기보다 풀백의 오버래핑에 가깝다. 세르히오 라모스와 베일의 공격 플레이를 자세히 보면 유사점이 많다. 그러나 수비력까지 갖춘 ‘팔방미인’ 라모스는 여전히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대표팀에서 풀백으로 뛴다.
맨시티에 대한 과소평가는 대니 웰벡의 선발 출전이란 패착을 불렀다. 웰벡을 탓하는 게 아니다. 만약 퍼거슨 감독이 맨시티를 객관적으로 평가했거나 또는 상대가 바르셀로나였다면 절대로 스트라이커를 두 명씩이나 기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15일 리버풀 원정에서 퍼거슨 감독은 4-5-1 전형으로 경기를 풀었다. 실바라는 예측하기 힘든 플레이메이커가 있는 팀을 상대한다면 더더욱 최전방 숫자를 줄이고 허리를 두텁게 했어야 한다. 웰벡은 맨시티의 화려한 공격을 힘겨워하는 선배들을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최전방에 루니가 있고 그 뒤에서 박지성이 실바에 대한 높은 위치에서의 압박을 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앞서 설명했듯이 그렇게 수비적으로 나서기엔 경기의 의미가 너무 컸다.
맨체스터 더비 참패의 결과는 장기적으로도 퍼거슨 감독을 골치 아프게 만든다. 올여름 이적시장에서 증명되었듯이 퍼거슨 감독은 향후 팀 빌딩의 중추를 잉글랜드 출신 선수들로 꾸미려고 한다. 크리스 스몰링을 비롯해 필 존스, 애슐리 영, 톰 클레벌리가 그 대상들이다. 2013년부터 적용될 유럽축구연맹(UEFA)의 파이낸셜 페어 플레이(FFP)의 대비책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번 맨체스터 더비는 잉글랜드 출신 선수들의 실력이 맨시티의 다국적 스타군단에 비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물론 어린 선수들인지라 잘 배우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성장할 때까지 프리미어리그의 치열한 경쟁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최근 퍼거슨 감독은 “바르셀로나에 근접했다”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유소년에서 올라온 선수들도 좋은 활약을 보이는데다 올 시즌 지금까지 승승장구했다. 스피드, 파워 그리고 그 위에 경험까지 얹힌 맨유는 정말 바르셀로나와 함께 ‘메가 클럽’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맨유가 바르셀로나를 따라잡기 전에 ‘시끄러운 이웃’ 맨시티부터 꺾어야, 아니 최소한 홈에서 6-1로 지지는 않아야 할 것 같다.
〔스포탈코리아 홍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