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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을 바탕으로한 개신교 보호

오택만 |2011.11.04 23:35
조회 24 |추천 0

내가 이렇게 안해도 개신교는 보호됩니다, 압니다. 그러나 글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무신론 = 신은 없다!

아닙니까? 제가 더 깊은 것들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무신론 = 신은 없다! 에 바탕을 두고서 개신교에 대하여서

보호하는 발언을 해보겠습니다.

1.하나님이 있다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유용한 가치.

인간에겐 많은 내재적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없습니다. 확실하게, 신은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끊임없이 계속 발전했고 앞으론 더욱 발전해갈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이 발달하면서 더 깊이 관심을 두는 한 분야가 있는데, 인간의 무의식입니다.

‘무의식’!

이 부분을 “가장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종교죠.

그리고,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닌, 한계가 있는 인간 자체 내부에서 답을 찾지 않고,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을 향하여서 부르짖고 기도하는 종교’인 개신교의 교리와 예배와 찬양과 설교와 전도행위들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추구하는 ‘정신’이 깨워줄 수 있는

‘무의식’의 힘을 사용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의식’이 인지하는 범위에서 설명할 수 없는

치료, 기적, 응답, 위로, 내적외적변화, 행동의 변화 등의 효과들을 보는 것이지요.

더 쉽게 말해서,

“인간 내부”에 없는 “절대적 존재의 능력”을 추구한다는 ‘믿음’이 의식에서 작용하고,

그 의식을 사용할 때, ‘무의식’ 안에서는, 사실은 ‘인간 내부’에 있는 ‘초월적 능력’을 끌어내는 효과가 생기며, 이는 종교의 힘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개신교가 추구하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과, “기도”를 포함한 여러 형태의 추구하는 바들은 그 ‘무의식’의 인간 힘을 끌어내 사용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2.구약성서의 야훼와 신약성서의 예수를 비교해 보고, 그 인품의 질을 살펴보면, 앞으로 일어날 새로운 ‘개신교’ 연장선의 종교가 가질 인품의 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개신교인들은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가르친 용서의 가치와 여러 가지 사랑의 교리들은,

구약 성서의 야훼를 섬긴 이들에게 가르침된 율법과 명령을 좇아 행하는 심판과 많이 다릅니다.

어떤 이들은 구약성서의 야훼가 그토록 잔혹하므로 신이라 인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신이라 인정하고 옳다고 볼수록 더 나은 인품과 관계가 있는 것은, 그 당신의 우상숭배를 하고 이교도의 습성을 좇던 자들은, 당대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들보다 훨씬 사악하고 행습이 악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절대적 존재인 신이라는 존재를 믿고 그것의 명령에 따라서 행한다고 하면서 살아오면서 추구한 어떤 가치가 예수라는 것에 이르러서 구약보다 훨씬 발전된 인품을 이뤄냈으므로, 앞으로도 개신교 연장선에 생겨날 어떤 새롭고 참된 인품의 부분의 좋은 면모들은 기대할만한 것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신론에 입각하여 볼 때도 개신교는 보호되고 칭송할만한 것이 됩니다.

3.‘하나님’이라는 존재를 향한 ‘경외감’의 ‘사람을 향한 연장’

말은 사람 자신에게 굉장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이러한 말들을 할 때에, 사실은 인간의 무의식 세계 속에서,

“자기의 부모, 혹은 부모만큼 돌보아주는 누군가”

혹은 “상위 개념의 사람들” “위대한 개념의 지도자들”을 향한 내적 존대심이 증가하게 된다고 봅니다. 즉, 자기 자신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능력있고 존대할만한 사람들에 대하여서,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갖는 자들의 무의식엔 ‘그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을 잘 가꾸어 주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자신을 보호해줄 만큼 훌륭한” 인간들을 향한 ‘배려’로 이어지고, 이는 인류 전체와 인류 각 개인의 발전에 훌륭한 효율을 주는 방향으로 애정이 집중되는 효과를 갖고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자녀를 교육시키기 위해서, ‘이거 머애여?’하고 물어보면,

‘예수님꺼!’ 라고 대답해주었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이거 머애여?’ ‘예수님꺼!’

‘이거 머애여?’ “예수님꺼!!” ‘이거 머애여?’ “예수님꺼!!!” 계속 그렇게 말하다 보니,

그 고백이 자신의 깊은 내면의 고백이 되고, 참으로 느끼는 바가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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