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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역할놀이 5

니르팡 |2011.11.12 22:07
조회 881 |추천 4

 

 

아마도 역할놀이는 6편으로 끝날거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짱

 

 

 

 

 

 

 

 

 

 

 

 

 

 

 

 

 

스피커가 꺼지고 주변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복도 중앙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봤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눈 움직임, 그 혼란스러운 시선들이 결국 피 묻은 의자를 쥐고 있는
   
머리 긴 남자에게서 멈추었다.

     
“재욱 씨, 당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지금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자, 잠깐! 위험한 놈이었다고, 사람들을 죽이려고 총을 들고, 방아쇠까지 당겼다고 다들 놈이 총 쏜 거 못 본거야? 하마터면 다른 사람이 죽을 뻔했어, 내가 모두를 구한 거라고 왜 날 그딴 식으로 보는 거야?”

   
호영씨의 질책에 재욱이라는 머리 긴 남자는 당황하며 대꾸했다.

   
“하지만 이미 총을 빼앗은 후였어. 당신도 봤잖아”

   
“모르는 거야, 녀석이 다시 난동을 피울지 누가 알겠어?”

   
“일단 그 의자부터 집어치우세요.”
   

은혜씨가 재욱씨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재욱씨의 손에는 아직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의자가
들려있었고, 그 의자를 틀어잡은 손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 3초간 재욱씨가 은혜씨를 노려봤다.
     
그러고는 의자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턱!!”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의자가 나가떨어졌다. 그 소리에 놀란 혜란 아줌마는 고개를 돌렸고,   은혜씨 역시 살기 가득한 재욱씨의 시선을 피했다.
     

“잠깐만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소리 질렀다. 뭔가 또 불길한 일이 터질 거 같아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순간 주변이 잠잠해졌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지금 이렇게 서로 싸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있습니까? 지금 재욱씨에게 죄를 추궁해도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재욱씨도 죽이실 겁니까? 재욱씨가 죽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잖아요. 모두 진정들 하세요.”
   

재욱씨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지만”
   

호영씨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살짝 신경 쓰였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말하려고
   
앞으로 나서는데 발에 뭔가 채였다. 밑을 보니 유태수의 다리가 있었다.
   

"진정하는 것도 좋은데 일단 여기 있는 시신부터 처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철이 아저씨가 죽은 유태수의 시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흠, 그게 순서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나와 철이 아저씨 그리고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시신을 수습했다. 우리는 시신을 들어 복도 끝으로 향했다. 나는 아무런 힘없이 축 늘어지는 시신의 팔뚝을 잡았는데 그 느낌은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
   
죽어있는 것의 촉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불쾌했다. 할아버지는 복도 끝에 둔 시신의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보게 했다.   마땅히 둘 곳이 없어 그냥 방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둔 거였는데 고개가

복도 중앙을 보고 있어서 왠지 꺼림칙하셔서 그러셨다고 했다.
   
혜란 아줌마와 은혜씨, 두 여자는 충격을 받았는지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방에서 가끔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울음소리가 들린 거 같았다. 재욱씨는 철문 앞에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다가가 말을 걸려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렸다. 혼자 놔두라고. 나와 철이 아저씨 그리고 호영씨

그리고 자신을 강현구라고 소개한 할아버지 이렇게 넷이서 복도 중앙의 탁자에 빙 둘러앉아서 시간을 때웠다.   침묵 그리고 침묵. 그 침묵이 답답했지만 딱히 이들과 나눌 이야기도 없었고, 수다를 떨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에는 애매했다. 어른도 계시니.

   
“잠깐 확인 할 게 좀 있어서”

   
순간 철이 아저씨가 의자에서 슬며시 일어났다. 그리고는 복도 중앙을 이리저리 혼자 살피며 돌아다녔다.
   
고개를 숙여 탁자 밑을 보다가, 벽을 따라 걷기도 하셨다. 뭔가를 찾는 듯한 모습에 물었다.
   

“뭐 찾으세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 그냥 둘러보는 거야”
   

약간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답한 철이 아저씨는 곧장 복도 끝에 있는 유태수의 시신 쪽으로 걸었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그 뒤를 따랐다. 아저씨가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뒤쫓던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는 표정을 짓고는 그대로 걸었다.  이윽고 시신 앞에 선 아저씨가 다짜고짜
유태수의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는 티를 걷어내었다.   그러자 유태수의 가슴팍에 부착된 폭탄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런 아저씨의 행동에 약간 놀람과 동시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죽은 사람이지만 저렇게 막 다루면.
   
시체매너.
   
이 상황에서 시체매너라는 단어가 떠오르다니, 농담이 나와? 나란 놈아.
   

“뭐하시는 겁니까?”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태수에게 부착된 폭탄을 살폈다. 손으로 눌러보기도 하고, 코를 가져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도 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시체와 폭탄을 저렇게 이리저리 만질 수
없을 텐데, 도대체 뭐하다 온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이 폭탄 진짜일까?”

   
“예?”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모르잖아”

   
아저씨가 턱을 매만졌다.

   
“그래서 확인해 보시려고요?”

   
“폭탄만 작동 안하면 우릴 가둬놓은 미친놈 말을 들을 필요가 없잖아, 그 역할놀인지 뭔지 할 필요가 없다니까, 폭탄이 가짜면”
   

철이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금 폭탄을 이리저리 살폈다.
   

“흠, 수제폭탄 같은데”
   

“폭탄에 대해 잘 아세요?”
   

“그냥 조금, 군대 안 갔다 왔나봐?”

   
“네, 아직 안 갔다 왔어요. 가기 싫었었는데 지금은 가고 싶네요.”
   

“허허, 이런 상황에서 농담도 하고 대단하네.”
   

“뭐, 그냥”
   

시체매너 농담을 할 걸 그랬다.

   
철이 아저씨가 천장을 바라봤다.
   

“어이, 이봐 이 유태수 학생 폭탄 좀 터뜨려봐”

   
우리를 가둔 녀석에게 말한 것이었지만 스피커는 조용했다.

   
“뭐야? 감시 안 하고 자리 비운 거야? 빨리 폭탄 터뜨려봐 진짜인지 확인해보게”
   

“에에헴, 마이크 테스트. 뭘 갑자기 불어내고 그래요?”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녀석은 우리를 24시간 감시하는 게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녀석은 혼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긴, 사람들을 납치하고 감금하고 폭탄을 달고 하려면 혼자로선 역부족일터.

   
“여기 죽은 학생 폭탄 작동시켜봐”
   

“제가 왜요?”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철이 아저씨 표정이 굳었다.

   
“이 폭탄이 가짜면 누구도 네 놈 말은 듣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확인시켜봐 네 놈이 우리목숨을 가지고 놀 수 있나 없나”
   

“하하하, 역시 의심 많으시네. 그거 직업병 아니에요? 그럼 좀 뒤로 나와 보세요.”

   
스피커가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뒤로 나오라고요”

   
나와 철이 아저씨는 얼떨결에 뒷걸음질 쳤다.
     

“펑!!!!”
   

순간 폭발음과 함께 폭탄이 터졌고, 터짐과 동시에 유태수의 피와 살점 따위가 나와 철이 아저씨에게 다 튀었다. 위력은 굉장했다.
   

“또 무슨 일이”
   

“이게 무슨 소립니까?”

   
소리를 듣고 놀란 호영씨와 할아버지가 달려왔다. 둘은 본의 아니게 피투성이가 된 우리 모습을 보고 꽤나 놀란 것 같았다.
   

“조심들 하세요. 폭탄 진짜네요.”
 

피투성이가 된 철이 아저씨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폭탄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려고 위에 놈한테 이 학생 폭탄 좀 터뜨려 보라고 했습니다."

 

 

 




철이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죽은 사람 몸뚱이를 가지고 이러면 쓰나!!”
   

할아버지가 노하셨다.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시며 터져버린 시체를 씁쓸히 내려다 보셨다. 그리고는 말없이 유태수 학생의 시신을 수습하셨다.    수습하시는 걸 도와드리려 다가갔지만 할아버지는
   
‘돌아가게’
   
라는 말을 하실 뿐이었다. 철이 아저씨 역시 멋쩍어하며 그 자리를 맴돌다가 이내 그곳을 피했다.
   




##9

   

꽤나 허름한 지하방. 그곳에서 재희와 상민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형사님을 만나기로 한 장소가 여깁니까?”
   

상민의 물음에 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생겼죠?”

   
“외모가 중요합니까?”

   
“아뇨, 그래도 알아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상민의 물음에 재희는 이번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게, 저도 사실 얼굴을 자세히는 몰라요, 하지만 젊은 형사입니다.”

   
“그나저나 이런 지하에서 왜 보자는 겁니까? 음산한 건 그때 이후로 질색인데 의심스럽네요.”

   
“형사님도 다른 누구에게 말하지 않고 오는 거라 조용히 만나야 한다고 하셔서, 형사님은 우리를 도우는 것도 있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납치 되서 역할놀이를 하고 있을 사람들을 구해내는 게 주목적입니다.   아직 우리를 신뢰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카페같은 곳에서 보고 싶습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 이 사건에 감을 잡은 형사 같은데, 한 번 믿어 봅시다.”
   

“감만 잡았지, 역할놀이가 뭔지도 모를 텐데요.”
   

“똑똑똑”

   
순간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10
     


방에 들어가 화장실에서 얼굴과 옷에 묻은 유태수의 피를 닦았다. 쉽게 닦이지 않아 빡빡 문질렀다.
   
세면대를 따라 흐르는 핏물을 보자 유태수에게 달려있던 폭탄이 터지는 끔찍한 장면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런 폭탄이 내 가슴에도 달려있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 현실에 몸이 굳어졌다.
   

“으으으”

   
나도 모르게 몸서리쳐졌다. 그래도 세수를 하고나니 정신이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꼬르륵”

   
이런 상황에서 배도 고플 수 있구나. 나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방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았다.
   
설마 며칠 동안 가둬놓으면서 굶기는 것은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방을 뒤졌는데 다행히 쉽게

빵과 물을 찾을 수 있었다.
   

‘아, 밥 먹고 싶다.’
   

대충 배를 채우고 방문을 조금 열어 복도를 살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했다. 문을 닫고 문을 잠갔다.
   
제대로 잠겨있나 2번 3번 확인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질 않았다. 분명히 스피커가 말했었다.
   

‘형사도 죽었으니 이제 악당들이 마음껏 날뛰겠네요. 하하하’

   
악당이 과연 누굴까? 어떤 악당들일까? 설마 내가 악당일까? 아직 내 역할도 모르는 나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내일 부터는 이 역할놀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마음먹고 잠을 청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이 떠졌다. 방음이 잘된다고 생각했는데 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무래도 방문 바로 앞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 했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누군가 다투는 소리, 불안감이 음습했다. 혹시나 하며 혼자 잔인한 상상을 하다가, 조용히 일어나 방문에 귀를 가져갔다.

   
“어서 주세요.”
   

혜란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됩니다.”

   
철이 아저씨도? 슬쩍 방문을 열었다. 바깥을 보니 철이 아저씨와 혜란 아줌마가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여자들이 총을 가지고 있어야 되요. 남자보다 약하니 무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총도 제대로 못 다루면서 무슨 총을 달래요? 예?”
   

“그럼 그쪽은 총을 무슨 전문가처럼 다루시나 봐요?”
     

“예, 전문가처럼 다룹니다. 됐죠?”
   

어제 유태수에게서 빼앗은 총이 문제였다. 상황을 보아하니 유태수에게 총을 빼앗은 철이 아저씨가
   
어제부터 계속해서 총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고, 혜란 아줌마는 그게 불만인 듯 했다.
     
둘이 말싸움하는 게 팽팽해 보였지만 서서히 균형의 추가 아저씨 쪽으로 옮겨졌다.
     

“아줌마 군대 안 갔다 왔죠? 남자들은 군대에서 사격술 다 배워요. 괜히 사용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사고 나요.  특히 아줌마 같은 사람.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이건 제 총입니다.”
   

철이 아저씨의 깔보는 말투에 혜란 아줌마가 발끈했다.
   

“그게 왜 아저씨 건데요? 주세요. 그리고 군대에서 권총 써요?”
   

“군대 안 갔다 왔죠? 전 갔다 왔습니다. 누가 더 군대에 대해서 잘 알까요?”

     
“아휴 정말!!”
     

아줌마는 답답했는지 혼자 소리쳤다.

   
“절대 못 줍니다.”

   
“두 분 그만들 하세요.”

   
어쩐지 내가 나서야 될 거 같아서 말렸다.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요, 아줌마 그만해요, 이제 그만 좀 합시다.”
   

내 말에 맞장구치며 아저씨가 말했다.

     
“그래요, 한 가지만! 딱 한 가지만. 아저씨가 총을 다룰 줄 안다고 쳐요. 알았어요. 군대에서 배웠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저씨가 가지고 있을 이유는 없잖아요? 다른 남자들도 있는데, 왜 꼭 아저씨가 가져야하죠?   아저씨가 위험한 역할일수도 있잖아요?”

     
혜란 아줌마의 반박이 거셌지만.
     

“위험한 역할? 그럼 벌써 아줌마 쐈겠죠?”
     

“뭐라 구요?!!”
     

왠지 이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저씨 아줌마 진정들 하시라니까요.”

   
“그냥 놔두세요. 아까부터 계속 저러고 있네요.”
     

은혜씨가 말리는 나를 말렸다.
     


소란스러움을 피해 중앙복도로 가니 재욱씨와 호영씨가 금고 주변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뭐하세요?”
     

“돈이 잘 있나 확인하는 거예요. 액수에 변함은 없겠죠? 누가 밤에 몰래 가져가거나 그러지는 않았겠죠?”
     

내가 처음 생각했던 호영씨의 이미지와는 조금 상반되는 모습에 조금 놀랐다. 호영씨가 이렇게 돈에 집착할 거라고는. 물론 호영씨 말고도 한 사람 더 있지만.

     
“물론 돈도 좋지만 굳이 지킬 필요까지야, 그리고 돈보다 안전이 우선인데”

     
“여기서 감금되어서 못 볼꼴도 보고, 사실 납치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보상은 받아야죠.”
     

“그건 그렇지만 놈이 돈을 준다고 약속은 했지만 믿을 사람을 믿어야죠.”
     

말끝을 흐렸다.
     

“그렇게 따지면 이곳에도 믿을 사람은 없습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호영씨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재욱씨를 힐끔 쳐다봤다. 역시나 아직도

재욱씨가 불편한 듯 했다. 나 역시 그렇지만.

     
“근데 지금 여기에 갇힌 사람이 8명에서 7명이 되었잖아요? 원래 8명이 8억을 1억씩 나눠 갖는 거였는데, 한 명이 죽어서 1억이 남잖아요. 그럼 모두가 균등하게 나누기 힘들어지는데 남은 1억을”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호영씨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사실, 유태수를 죽인 재욱씨 본인이 그런 말을 하는 게 나 역시 달갑지는

않았다. 어제 자신이 죽인 사람의 몫을 나눠 가지겠다는 심보 자체가 글러먹었다. 분위기가 싸늘해졌지만

  재욱씨는 그걸 모르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럼 그 1억을 나누지 말고 한 사람한테 몰아주는 건 어떨까요?”

     
나와 호영씨는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젊은이가 뭘 그렇게 돈에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구만”

     
묵묵히 앉아서 지켜보던 현구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니, 제가 빚이 좀 있어서”
     

재욱씨는 여전히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해했다. 이 사람은 눈치가 결여된 사람

같다. 뭔가 위험한 냄새가 나는 사람.
     

“젊은 나이에 돈에 욕심을 가지면 못 써”

     
“그럼 할아버지 몫을 제가 좀 가져도 될까요?”
     

웃으며 말하는 재욱씨였지만 그런 걸 용납할리 없는 할아버지였다. 그나저나 어제 사람 죽인 사람이 맞나?
 
할 정도로 태연한 모습의 재욱씨를 보니 소름이 돋았다.

이런 사람과 며칠 더 같은 공간 안에 있어야 하다니.
     

“자네 정말 미쳤나?”

     
“돈에 욕심내는 게 뭐가 미친 겁니까? 그럼 이 세상사람 모두 미쳤게요? 안 그래도 지금 참고 있는 겁니다. 이 돈 내가 다 가질 수도 있는데, 이거 가져가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저런 쯧!”

     
할아버지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를 못 느끼셨는지 혀를 내두르며 돌아앉으셨다.
     

“아 지루해. 악당들 뭐하는 겁니까? 왜 이렇게 평화로워요? 역할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텐데”

     
잠자코 있던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역할놀이가 끝나면 풀어주는 게 확실 한 거요?”
     

호영씨가 진지하게 물었다.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으면 풀어주죠. 뭐, 생존자 중에 제일 역할을 수행 못한 사람은 남아서 또 해야겠지만”

     
“생존자라는 말이 거슬리네요.”

     
반짝거리는 카메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람가지고 장난치는, 저 쓰레기보다 못한 놈의 장난감이 된

기분에 울컥했다.

     
“거슬리라고 말한 겁니다. 하하하. 뭐 오늘 밤이 지나면 슬슬 역할들을 수행하시겠지요? 저 기대하겠습니다.”
     

“꺼져!! 이 미친놈아!!”

     
천장을 향해 한 바탕 소리를 지르고 카메라 쪽을 보니

철이 아저씨가 가운데 손가락을 카메라에 날리고 있었다.

     




“저기, 우리 토론 좀 할까요?”

     
방에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은혜씨가 불렀다.

     
“에? 무슨 토론이요?”
     

“그냥 여기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들이요?”
     

“좀 더 자세히는 역할에 대해서요.”
     

어쩐지 은혜씨의 표정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서로의 역할에 대해 말하는 건 뭔가, 처음부터 서로를암묵적으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묻지 않았다.    마치 꼭 지켜야 하는 룰을 두고 게임을 하듯 말이다.

그런 걸로 봐서 지금 그녀의 행동이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말 토론이 하고 싶은 것인지,

뭔가 숨기고 있는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재간이 없었기에, 일단은 웃어넘겼다.

무엇보다 그녀가 내게 역할을 직접적으로 물어본다고 한들 나는 내 역할을 모르기에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가 없었다.
     

“에? 헤? 갑자기 역할은 왜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우리끼리만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을까요? 은혜씨 만약에 제가 나쁜 역할이면 어쩌시려고”
     

“여자의 직감이에요. 왠지 당신은 위험해보이지가 않아서”

     
그녀의 얼굴에 방금 전의 섬뜩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아- 나 넘어가는 건가.
     
그녀에게, 아니, 그녀의 설득에 넘어가버린 나는 그녀와 함께 방에서 토론을 시작했다.

     
“지금 당신 그리고 나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호영씨, 기분 나쁜 남자 이렇게 7명이 있습니다. 아직 서로의 역할은 모르고 있고. 일단 나와 당신은 위험하지 않다고 간주하고”
     

떨칠 수 없는 의문에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니, 저는 은혜씨의 직감으로 위험하지 않다고 치더라도, 은혜씨가 위험한지 위험하지 않은지는 모르는 일 아닙니까?”

     
“남자는 직감이 없나 봐요. 딱 느낌 안 와요? 그리고 위험하다 한들 저같이 연약한 여자가 위험해봤자 얼마나 위험하겠어요?”
     

“연약하더라도 어제 그 학생처럼 권총 같은 무기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은혜씨가 연약하진 않잖아요. 라는 말이 입에 맴돌았지만 그냥 참았다.

    어제 있었던 일이나 그녀의 말투나 행동은 웬만한 남자 못지않기에.
     

“그런 의심이 있는데 저랑 방에 단 둘이 왜 있어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 녀가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뭐든지 의심한 필요는 있기에 경계를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일단은 그렇게 해두죠. 그럼 누구부터 알아볼까요?”

     
“서로 위험해 보이는 사람부터 뽑을 까요?”
     

“무슨 근거로요? 직감이요?”
     

“대충 감도 좋고, 사람들 관찰했을 거 아니에요. 어떤 역할인지 나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하긴, 아직까지는 딱히 특별한 일이 없긴 하네요.”
     

“사람들의 역할을 추리해내기 전에 이 역할놀이에 어떤 역할이 있을지 먼저 생각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

     
“역할이요?”

     
“그래요 분명 8명에게 역할을 주어졌을 것이고, 그 역할들은 전부 이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일 거예요. 지금 유일하게 역할이 공개된 건 유태수 학생의 역할인데 그것에서부터 유추해보면 대충 어떤 역할들이 있을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오호, 되게 똑똑 하시네요. 계속 해봐요.”

     
“일단 유태수의 역할이 형사였잖아요. 형사라는 역할이 있다면 그에 상반되는 역할이 있겠죠? 우릴 가둬놓은 놈이 말한 소위 ‘악당’이라 불리는 자들. 그때 스피커에서 분명히 ‘악당들’이라고 했거든요.”
     

“적어도 2명이상이 악당이라는 소리네요”
     

“아직 악당의 역할은 모르지만 사람들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형사 역할에게 총을 줬을 정도면 그들에게도 분명 무언가가 있을 겁니다.”
     

“흠, 그렇다면 그들은 왜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하나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어떤 거요?”

     
“복도 중앙에 놓인 돈, 단순히 역할을 끝내고 받는 상금이라는 느낌보다는 왠지 돈을 걸고 하는 생존게임일 거라는 느낌이 드네요. 그 돈과 관련된 역할도 있을 것 같네요. 제가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하다보니 저 혼자만의 추리를 떠들고 있네요.”
     

“흠 2명이상의 악당역할과 돈과 관련된 역할이라 눈에 띄게 돈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긴 한데, 뭐 이곳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겠지만”
     

“재욱씨요?”
     

“원래 돈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역할 때문인지”
     

“그 사람은 원래 돈을 좋아하는 사람 같은데”
     

“차라리 그 사람이 악당역할이었으면 좋겠네요. 배신감 느끼지 않도록”
     

“하하, 전 불안한데? 근데 은혜씨는 뭐 역할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 거 없어요? 먼저 토론 하자고 하셨는데”
     

“호호, 딱히 없네요. 나중에 뭔가 감이 오면 말씀드릴게요. 직감은 정확한 편이니까,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럼 이만”
     

에? 은혜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왠지 그녀가 가장 수상해진 건 기분 탓일까?
     
아니면 이것이 직감이란 걸까?


     







“탕!!”

     
단발의 총성에 놀라 일어나다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고는 동태를 살폈다.
     
총성 이후에 계속 되는 정적 속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밖으로 나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총성이후

이어진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에 발이 바닥에 붙어버렸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공포는 확실했다. 무섭다.
     
총이라면 철이 아저씨가 가지고 있었을 텐데, 아니 어쩌면 다른 누군가 역시 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이 복도로 하나 둘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 역시 상황이 진정됨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바깥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문 앞에는 뭔가에 홀린 표정을 한 혜란 아줌마가 총을 들고 서있었다.
     

“뭐가 어떻게”
     

뒤의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복도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혜란 아줌마의 반대편에 서서 그녀를 조용히

응시했다. 5:1의 대치상황. 불리함을 깨달았는지 혜란 아줌마가 소리쳤다.
     

“이건 실수야 정말이야, 그 사람 잘못이라고!!”
     

혜란 아줌마는 호소했다. 확실히 그건 호소였다.

     
“아줌마, 그 총은 뭐예요? 도대체 무슨”

     
은혜씨가 말을 하다 눈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은 문이 열려있는 방이었다.
     
그곳은 바로 철이 아저씨의 방이었다.
     

“설마, 총을 빼앗으려고”
     

은혜씨가 재빠르게 철이 아저씨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도대체 왜일까? 그녀가 방에 들어가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혜란 아줌마 역시 묵묵히 그녀의 동태를 지켜볼 뿐이었다. 걱정이 된 나는 방

앞으로 가서 섰다. 방안에는 피로 얼룩진 채 쓰러져있는 철이 아저씨, 그리고 피 묻은 쪽지를 든

은혜씨가 서있었다. 뭔가 멍한 표정의 은혜씨였다.
     
놀람과 두려움 그리고 뭔가 의아해하는 표정이 뒤섞인 표정.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은혜씨가 중얼거렸다. 은혜씨는 쥐고 있던 쪽지를 내게 주었고, 그곳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당신의 역할은 탐정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추리하세요.

역할놀이가 끝나면 시험 볼 겁니다.

                  출처: 웃대 패랭이꽃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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