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 인생은 중학교때부터 시작된것 같다. 그 전의 기억은 별로 없다.나는 강동구 고덕동의 낡은 아파트에서 자랐다. 이사도 몇번 왔다갔다했는데 별 기억이 없다.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그에 자주 충돌하는 신경질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나보다 열살이나 어린 동생이 한명 있다.아버지는 동네에서 테니스치는걸 낙으로 여겼는데 소위 귀족스포츠라는 호칭이 어울리지않게그들은 그것보단 다같이 몰려다니며 술을마시고 룸싸롱을 다니는걸 좋아했다.그러다가 내가 중학교 2학년이였을때 아버지가 그곳 도우미와 바람이나서 집을 나갔다.가부장적이며 압박적인 가정에서 자라왔던 나는 그 존재가 사라지자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못잡았던것 같다.그래서 학교, 동네 양아치들과 삥도 뜯고 구치소도 왔다갔다 하며 살았다. 경찰이 내 집을 물을때면늘 집이 없다고 말했다. 내가 얼마나 꼴통이였냐면 그곳 순경아저씨도 내 이름을 외울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하던 공부가 좀 있어서 사립고등학교들 들어갔었는데그때 또 잠깐 공부바람이 들었던것 같다. 그래서 또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래도 여전히 몰래 담배피며 갖은 꼴통짓은 혼자 다 하고다녔다.내가 키가 좀 커서 그랬는지 거기서 친구들과 제법 잘 어울렸고 알던 선배와같이 학생회장선거에 출마해서학생 부회장이 되었다. 솔직히 나는 별로 하고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그 형이 나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려고했나보다.
그리고 고등학교 축제때 주변 여고에서 댄스부가 와서 강당에서 춤을추고 그랬는데 뒤풀이때 처음으로 섹스를했다.학교 독서실 별관 옥상에서 술을 마셨었는데 집에 가는길에 화장실에서했다. 많이 취해서 기억은 잘 안난다.그리고 몇달후 그 여자애가와서 임신소식을 알려줬다. 어머니는 얼마 남지않은 돈을 털어서 위자료로주고 낙태를 시켰다.그때 좀 우울했다. 어머니한테 처음으로 죄책감이라는걸 느꼈던것 같다. 맨날 신경질만내는 마녀같은년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 다 지나갈때쯤 내 동생 유치원 재롱잔치에 갔다.원래 안가려고했는데 어머니가 아버지가 없으니 내가 꼭와야한다고했다. 그래서 갔다.동생이 무대위에서 비닐을 오려붙여서 만든 옷을 입고 친구들과 율동하며 노래를 불렀다.주위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부르며 "ooo아! 여기좀봐봐! 옳지 잘한다!" 하며 소리를 쳤다.어머니하고 나는 카메라가 없었다. 그냥 지켜봤다.왜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무대 아래 서서 사진을찍고 그럴때 혼자 자리에 앉아있었다.아버지 대신 온게 창피했던것 같았다. 그래서 팔짱을 끼고 시무룩하게 동생을 지켜봤다.동생도 막 웃는다. 근데 어머니와 나를 보고 웃는게 아니라 친구들 부모님을 보면서 웃는다.그걸 가만히 지켜보는데 막 눈물이 났다. 내가 우니까 어머니도 울었다. 어머니가 그때 왜 울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그날을 기점으로 진짜 졸라게 공부했다. 집나간 아빠세끼 대신에 내가 좋은 아빠가 되주고싶었다.돈도 많이 벌어서 하고싶은거 다 해주고 카메라도 사서 사진도 찍어주고 싶었다. 그땐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돈 많이 벌어서 학원도 보내줄거고 하고싶은거 다 시켜주고 다른 가족이 아니라 우리 가족을 보며 웃게하고싶었다.
대학 등록금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국립대에 가야한다.국립대에 가려면 공부를 잘해야한다. 그 생각으로 공부를했다. 근데 내가 조카 공부를 잘하는 천재놈들과는 달라서늘 전교 20위권에만 겉돌고 10위권에 진입해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학생회장에 출마했다. 학교장추천, 리더쉽전형이 필요해서 그랬다.친구들이 나를 많이 도와준덕에 학생회장이되었다. 그리고도 계속 공부했고 어쩌다보니까 성적도 조금씩 올랐다.그때 내 1학년때 담임선생님이셨고 지리선생님이셨던 은사님이 나를 많이 도와주셨다.2학년 시절이 지나고 3학년이 되었다. 3학년때는 공부만해서 별 기억이 없다.어머니는 분식집을하셨는데 매일 팔고 남은 떡볶이를 들고오셨다.맨날 저녁마다 떡볶이 먹다보니까 질려서 물에 담궜다가 간장에도 찍어먹고 구워서 케쳡에도 찍어먹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그렇게 3학년 시절을 보내고 수능을봤다. 그리고 내가 원한것보다 더 높은 대학에 합격했다.
-계속-
위에 사진은 내 동생 재롱잔치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