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강남좌파(강준만)-결국은 인물중심주의 비판에 그치는 아쉬움.

산야신 |2011.12.08 03:49
조회 10 |추천 0
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결국은 인물중심주의 비판에 그치는 아쉬움

                                                -강준만 교수의 <강남좌파>를 읽고

 

읽는 내내 불편하더니, 결론 또한 불편했다.
상아탑의 틀 안에 갖혀 추상적 결론을 내려버린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강준만 교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인물중심주의라는 한국인적 성향을 버리고, 인물의 힘이 아닌 시스템의 힘으로 가자.
또한 참여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인물중심주의적 참여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권력 중심적 인정 투쟁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 또한 인물 중심주의의 소산이다.

 

그렇다.
이 책의 키워드는 '인물중심주의'이다.
강준만 교수는 한국인의 정치가 인물중심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최근의 '강남좌파'의 논쟁도 결국은 인물중심주의의 또다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강남좌파'라는 말은 언뜻 모순처럼 들린다.
'강남'이라는 보수적인 이미지와 '좌파'라는 진보 색깔은 어울리지 않는다.
강준만 교수는 시종일관 이 이야기를 겉돌뿐이다.
이 책의 시작은, '강남좌파'에 대한 본질적이고 총체적인 논의를 해 보겠다는 의욕으로 시작하는 듯 하다.
그러면서, 신문 스크랩자료 및 언론 인터뷰, 그리고 미국의 정치 상황까지 언급하며, '강남좌파'라는 용어의 의미를 설명하지만,
'강남좌파'라는 용어가 주는 인상에서 벗어난 더 큰 의미있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심지어, 의제로 삼은 '강남좌파'라는 용어를 기준으로, 인물 분석을 들어가는데,
그 인물들이 모두 강남좌파에 범주에 속하지도 않는다.
문국현이나 손학규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세훈이나 박근혜가 이 책의 분석대상으로 삼아지는 건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들의 좌파와 우파의 비교를 통한 '강남좌파'의 정의 내리기라는 구조적 틀 속에 놓여있는 것 같지도 않다.
이들 인물들은 각각 하나의 쳅터로 할당 되어 독립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것도 중간 중간 좌파라는 인물 들 사이 사이에.

 

'왜 그랬을까?'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의 결론에서 나온다.
다시 앞서 나온 키워드인 '인물중심주의'.

그러니까, 강준만 교수는 '강남좌파'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하고, 그들의 면면히 우리 사회에 미치는 가치나 의미, 그리고 앞으로의 기대나 전망에 초점이 맞춘게 아니다.
인물 중심주의라는 한국민 현상에 대해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비판의 칼은 '강남좌파'라는 말 속에 담긴 '부정성'의 부각을 통한 인물 중심주의에 대한 비관론이다.
그러니, 어느 정당의 인물도 안된다는 양비론적 결론에 도달하고, 현실성이라는 담론의 틀이 제거 되니 추상적 결론이 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강준만 교수는 그의 글에, 한국민의 성향, 한국인의 기질이라는 근본적 인식에서 출발하여, 작금의 상황을 분석하는 시도가 눈에 띤다.
내가 보기엔, <신한국론>(김영명)에서 영감을 받은 후가 아닌가 싶다.
(나또한 강준만 교수의 소개로 읽개 되어 혜안을 얻은 듯한 느낌을 받은 바 있다.)
그의 칼럼이나 글쓰기에서 자주 사용되는 한국인의 성향이나 기질, 그로부터 추론되는 현상 이해의 근거가 <신한국론>에서 나온 개념을 근간으로 하는 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일면, 타당한 부분이 많아서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모든 현상을 그것에 기준을 두고 분석하면 지나친 편향이라고 할 수 있다.

 

강준만 교수의 글쓰기의 힘은, 다양한 텍스트를 근거로 한 합리적 결론에 있다.
특히, 인물 비평에 있어서 텍스트를 기반으로한 대상 인물에 대한 심리 분석 및 논리 분석 그로부터 내려지는 대상 인물에 대한 이념 성향 및 가치관.
그리고 결론으로 내려지는 그에 대한 인물 평가. '그래서~괜찮다' '그래서~나쁘다' 혹은 '그럼에도~괜찮다'가 명확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텍스트를 분석 대상으로 한 글쓰기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힘이 없다.
아니, 앞서 말했듯이, '인물중심주의'에 대한 비관론에 가깝다.

나는 그가 말하는 인물중심주의의 문제점에 십분 공감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안을 인물중심주의로만 해석하고 인물중심주의의 문제점으로만 결론을 내린다면 뭐가 남겠는가?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집합체가 있고, 조직이 서면 리더가 있는 법이다.
때로는 인물이 부각되어 시스템이 돌아가기도 하고 또 때로는 중심 인물이 숨고 주변 인물이 부각되기도 한다.
사안에 따라서 인물을 중심으로 분석의 대상을 삼을 필요도 있고, 시스템이나 구조 자체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때도 있다.
어떤 일은 한 인물의 힘으로 굴러 가기도 하고, 어떤 일은 전체의 힘이 동기가 되어 일이 진행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물중심주의에 대한 잣대를 대야 할 때와 그렇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 문제의 원인이 인물이 아닌 다른 것에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다양성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지식인이지 않을까?
강준만 교수는 어느샌가 그런 지식인으로서의 본질적 의무를 잃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책을 읽고 가장 불편했던건, '강남좌파'라는 용어에 대한 부정적 결론이다.
난, '강남좌파'라는 용어를 '부유하지만 좌의식을 가진 지식인'이라고 정의한다면, 그것만으로 의미있다고 본다.
그의 부의 축적이 부정을 통해서 이뤄진게 아니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형성이 잘못일 순 없다.
그러하므로 '좌파'는 돈을 벌면 안된다는 논리 또한 이 사회구조 속에서는 말이 안된다.
마찬가지로, '좌파'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갖는다면 또한 나쁜 것이 아닌 것이다.
적어도 불법이나 탈법이 아닌,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강남좌파'가 많으면 많을 수록 이 사회는 더 좋아질 것이다.

 

물론, '강남'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갖는 한계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좌파'라는 긍정적인 사회 발전 동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극좌적 교조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좌파가 지향하는게, 우리 모두 평등한 부(잘먹고 잘사는 것)의 형성에 있지 않은가?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