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호/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28일 장례식이 끝나면 북한 김정일의 연대기(年代記)에 마침표가 찍힌다. 그는 생전에 유일사상 체계 확립과 ‘우리식 사회주의’ 공고화로 분단체제를 심화시켰고, ‘고난의 행군’을 진두지휘하면서 개혁·개방을 끝내 거부했다. 선군(先軍)정치에 매달려 300만명에 이르는 아사자(餓死者)를 발생시켰고, 2400만 북한 주민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데 실패했다. 그런 반면 핵무기 개발과 ‘벼랑끝 외교’에 모든 것을 걸었고, 버마 아웅산테러, KAL 858기 폭파,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무력도발을 서슴지 않았다. 한마디로 ‘김정일 시대’는 피와 눈물로 얼룩진 시대, 반(反)인권과 평화 파괴로 표징(表徵)되는 시대였던 것이다.
이제 그의 3남 정은이 정치적 후계자로 공식화하고 있다. 장례를 주관할 장의위원 명단에 첫번째로 거명되고, 당 중앙군사위원회 명의의 대장 명령 제1호를 하달한 것이나, 당 기관지 ‘로동신문’이 김정은을 ‘혁명위업의 계승자’ ‘인민의 영도자’로 명시한 것 등이 단적인 증거들이다. 앞으로 김정은은 인민군 최고사령관과 당 중앙군사위원장에 등극하는 방식으로 권력승계를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고 경륜이 부족하며 정치적 리더십이 충분치 못한 그가 과연 북한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우려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김정은 시대에는 북한 주민의 인권이 개선되고 삶의 질이 이전보다 나아질까? 하지만 이런 기대가 충족될 가능성은 아직까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가령 22일자 ‘로동신문’ 1면 사설에는 주체의 혁명위업, 선군정치, 유훈(遺訓)통치, 단결 등의 단어들이 눈에 띈다. 북한은 권력 공백의 불안정한 과도기에 김정일의 유산인 ‘선군정치’와 ‘유훈통치’에 기대어 주민을 통제함으로써 체제 안정을 이룩하겠다는 뜻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선군은 북한 헌법의 인권 언급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있어 인권과 양립하기 어렵다. 선군정치는 자원을 과도한 군사비와 체제 선전비에 우선적으로 투입하고 ‘선군 지도자’의 안녕과 보위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 비해, 정치범수용소, 공개처형, 언론·표현 및 사상의 자유 등 각종 인권침해에 대한 주민 불만을 무마하는 기제(機制)로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정일 사망 직후부터 ‘김정은 후계체제’가 내놓은 몇 가지 조치도 인권 친화적이지 못하다. 예컨대 농민시장 외 시장활동 억제, 탈북자 적극 색출, 불법 휴대전화 사용 금지, 반북 활동 통제를 밝힌 것은 주민을 옥죄는 공포정치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김정은 시대의 북한 주민은 다시금 ‘자유’와 ‘억압’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국제사회는 이런 전환기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북한 인권 개선의 호기(好機)로 삼아야 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김정은 체제를 ‘사실상’ 인정하는 한편, 향후 유연한 대북정책을 펼 것임을 시사했다. 이 같은 언급은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입장으로 읽힌다. 그렇다고 해서 보편적 가치의 문제인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등한시해선 안 된다.
세계인권선언은 회원국들이 유엔과 협력해 기본적 인권의 보편적 존중·준수를 이룩할 것을 서약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 북한은 1981년에 2개의 국제인권규약에 가입했다. 북한 스스로 국제사회와 행한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북한을 고의로 자극하는 게 아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정부는 북한의 새 지도부로 하여금 인권 감수성(感受性)을 높이고 김정은에게 ‘인권 리더십’을 갖추도록 하는 정교한 대북 인권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와 관련, 신속·정확한 북한 인권 정보의 수집 및 공유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