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외로운 직장인, 김대리의 하루

이영배 |2011.12.31 12:08
조회 96 |추천 0
P {MARGIN-TOP: 2px; MARGIN-BOTTOM: 2px} 06:30 AM 
때르르르르르릉~~~~!!! 
제발 울리지 않길 바랐던 알람시계가 울린다. 달콤한 주말은 가고, 다시 월요일 아침이다.
겨울 새벽의 찬 공기가 코끝에 스친다. 온몸은 따뜻한 이불 속에서 나가기 싫다고 비명을 질러대지만,
어느 새 부스스한 머리와 졸린 눈을 하고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앗, 차거” 


이놈의 월세방 보일러는 전원을 올리고 10분이 지나도 물이 데워질 줄을 모른다. 이 겨울을 어떻게 버티나 잠시 생각을 하다가 옷을 챙겨 입고 그대로 집을 나선다. 배는 고프지만, 챙겨먹기는 귀찮다. 




7:30 AM 
출근 지하철은 늘 터져나갈 듯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놀라우리만치 조용하다. 한 공간 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전혀 없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눈을 감고 있거나,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정기적으로 울리는 지하철 안내방송만이 외롭게 허공에서 떠돌다 사라진다. 






 


8:20 AM 
아직 정식 업무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사무실이 부산하다. 마케팅 B팀이 월요일 오전에 보고하기로 한 프로젝트가 진행 건이 있다고 한다. 파티션 건너편에서 입사동기 이대리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린다. 




이대리님의 말: 
* 김대리, 바쁘냐? 


김대리님의 말: 
* 아니, 왜? 


이대리님의 말: 
* 박팀장 왜 그러는 거냐, 대체? 프로젝트 진행 보고 시간을 월요일 오전으로 잡은 건 그렇다 쳐. 근데 왜 안된다는 걸 된다고
우겨가지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는 거냐구.




쉴 새 없이 메신저를 통해 떠드는 것을 보니, 박팀장이 프로젝트 진행을 무리하게 했나 보다. 전부터 이런 불평은 수 백 번도 더 들어왔던 터라, 단순히 ‘응’, ‘그래?’를 남발하며 내 업무를 시작했다. 지금은 저래도 점심시간이 되면 웃는 낯으로 뒤를 졸졸 쫓아나갈 것이 분명하다. 






 


11:50 AM 
“김 대리님, 오늘은 식사 뭐 할까요?” 


팀 후배가 묻는다. 오늘은 어쩐지 같이 밥을 먹는 것 조차 귀찮다. 


“나 오늘 일이 많아서 좀…” 


“김대리 일 안 많은 거 알아, 같이 가자.” 


갑자기 팀장이 끼어든다. 성격이 괄괄한 것으로 유명한 성팀장이 정한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귀찮음을 뒤로 하고 터덜터덜 따라 나선다. 




12:00 PM 
“서부장 얘기 들었어? 애인 생겼다며?” 


성팀장이 이야기를 꺼낸다. 


“아, 그거 저도 들었어요. B팀 제 동기가 봤다던데요?” 


후배가 맞장구를 친다. 서부장이 어디선가 예쁘고 늘씬한 아가씨와 함께 차에 타는 것을 누군가가 봤나 보다.
평소에도 여자 밝히기로 유명한 서부장이니, 이런 소문이 날 만도 하다. 하지만 솔직히, 지겹다.
누군가가 애인이 생겼으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떤가. 왜들 이런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다.
맞장구 치기도, 대답하기도 싫어 그냥 묵묵히 밥만 먹었다. 




3:00PM 
"김대리네 팀에서 처음 이야기가 나왔다던데?"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내가 왜 소문의 진원지가 되어야 하는건가.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고 점심시간에 했던 이야기가 금새 퍼져버렸다. 서부장이 자기 애인 이야기를 눈치채기까지 몇시간 걸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소문의 진원지로 내가 지목되고 있다는 것. 평소 집요하기로 소문난 서부장이니 왠지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 같다. 처음 말꺼낸건 내가 아닌데,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난 억울해!" 


나는 정말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성팀장과 후배는 그저 모르는 척하기 바쁘다. 








5:00PM 
“김대리, 잠깐 이리 와보지?” 


또 시작이다. 시시콜콜한 일로 불러 혼내기. 아까도 한번 불려갔는데, 계속 이런 식이다. 서부장은 직접 화가 난 일을 이야기하지 않고, 돌려서 다른 일로 계속 사람을 괴롭힌다. 차라리 대놓고 따지면 해명이라도 하겠는데… 급한 일들이 밀려있는데, 정작 오후에는 업무에 손도 대지 못했다. 오늘은 꼼짝없이 야근이다. 


"이런 젠장"


 
며칠전 들었던 모 인디밴드의 ‘멱살 한번 잡히십시다’라는 노래가 이렇게 공감될 줄이야.  






08:30 PM 
옛날 어떤 노래 가사처럼, 집에 가는 길이 너무 길다.
괜히 어머니 생각이 나서 핸드폰을 꺼내 다이얼을 누르다가 그냥 종료버튼을 눌러버렸다.
맞은 편 좌석에 앉은 커플은 살짝 취기가 오른 듯, 다소 큰소리로 깔깔대며 이야기 중이다.
여러 생각들로 머리는 복잡한데, 막상 이걸 누구에게 어디서부터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들을 쭈욱 살펴보다 그냥 다시 종료버튼을 눌렀다. 


배경화면에 띄워놓은 한 아이돌 그룹의 설X양만이 날 보며 웃어줄 뿐이다.
오늘은 이렇게 가고, 내일도 오늘 같은 하루가 반복되겠지.
쳇바퀴같은 일상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한 명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문득 인간적으로 너무 외롭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