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티비속에 입대하는 풍경이 나오면
2년전 그때의 우리 모습이 생각나네.
그 차디찬 겨울바람 함께 맞으며 너와 함께 향한 102보충대 .
나는 씩씩한 '척', 너는 아무렇지 않게 담담한 '척'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었지. 서로가 괜찮지 않다는 걸 말이야 .
고무신이 군화를 보낼 때 울면 못 기다린다는 속설때문에
눈에서 터져나올듯한 울음을 애써 참고 있던 너의 모습이 생각나.
감히 내 목숨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너를 뒤로 하고 웃으면서 떠나야했던 그때의 내 심정을 넌 알고 있을까.
입대한 그날 말로만 듣던 불침번을 서던 도중
내일 소포로 옷을 붙힌다는 말이 생각나서 그 그리운 마음
너한테 전하고 싶어서 모두 잠든 고요한 그 시간에
금방이라도 쥐떼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 낡은 건물에서,
문에 다 대고 집에서 가져온 편지지에 손으로
지렁이처럼 적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눈물이 앞을 가려서 무슨 말을 적고 있는지도 모른채로,
내 마음 너한테 전해보겠다고 한자한자 꾹꾹 눌러썼던 내 모습이 기억나네.
보충대를 거쳐 훈련소에 있을 때.
조교가 편지를 나눠주는 시간이 왜 그리도 떨리던지 .
그리고 조교가 내 이름을 호명하고 너의 손길이 묻어있는 손편지를
손에 쥐게 되는 날엔 그 순간만큼은 그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았었지.
훈련소에서 불침번을 서던 어느 날.
생활관을 고요히 밝히는 미등의 모습이
너와 내가 만났던 2009년 어느 봄날 연극을 보기위해
찾은 대학로 한 소극장의 조명과 비슷해서 ..
너무 행복했던 그 날이 떠올라서 잘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 졌었지.
그 뒤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너와의 아름다운 기억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자대를 배치받았고
언제나 밝은 목소리로 있었던 일들을 나에게
전해주며 늘 내게 활력소를 불어 넣어준 너.
전화를 끊고 나면
행복하면서도, 감사하면서도, 미안했던 나.
그리고 늘 끊고 나면 물밀듯이 밀려오는 너에 대한 그리움과 간절함.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만큼 우리에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전화한통으로, 말한마디로 함께 울고 웃으면서 힘들 수 밖에 없는
그 시간들을 잘 이겨내었고 어느덧 나는 전역을 코앞에 둔 병장이 되었지.
말년휴가를 한 달 남기고
이제 마지막 면회라며 한 껏 치장한 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약간 높은 검은색 구두에, 나 면회오는 것 때문에 일부러 샀다는 보라색 원피스.
면회온 그 곳에 고무신은 많이 보이는데
나처럼 병장 고무신은 없는 것 같다며 으쓱해하던 너의 모습 눈에 선해.
입대전이나 후나 변함없이 따뜻한 눈으로 너를 바라보며
정말 몇일 후면 우리가 그만큼 힘들어했던 것 다 보상받을 수 있다고..
다시는 너를 외롭게 하지 않겠다고 .. 무슨 일이 있어도 이젠 니 곁을 떠나지 않게다고 ..
너에게 맹세했던 나.
그리고 따뜻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던 너의 모습.
나오면 최대한 빨리 결혼하자던 너의 그 말. 아직도 귀에 맴돌아 .
순간 먼 미래였지만 너와 날 꼭 닮은 아가와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행복한 상상을 해보았던 그때의 나.
그렇게 행복했던 어느 가을날의 면회가 끝나고
' 그래.. 이제 정말 다 했어.. 조금만.. 정말 조금만 참자..' 하며
두 주먹 불끈 쥐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위병소 앞 낙엽을 밟으며 복귀했던 나.
그게 서로의 얼굴을 보는 마지막인지도 모르고 ..
복귀 후 몇일 후부터 이상할 정도로 기운이 없고
말수도 적어지고 전화받기를 불편해하는 듯했던 너.
평소와 전화를 받는 태도가 너무 달라진 듯한 너.
'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대체 왜 그럴까 ?'
무언가 이상해진 너때문에 온통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던 나날들.
나의 추궁하는 추궁에 말문을 연 너.
' 하 ..... 나 사실.. 남자 생겼어 ..'
그 뒤에 이어지는 너의 준비된 듯한 말들 .
그 상황에서 난 너한테
'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
' 정말 할말이 없다..' '기가 막혀서 말조차 안나온다 .. '
'그래 헤어지자 너 같은 여자를 믿고 사랑한 내가 미친놈이다. '
따위의 말들로 너를 쏘아붙일 수도, 화를 낼 수도 없었어.
왜냐하면.
난 너를 외롭게 두고 떠나버린 사람이었으니까.
나로 인해 2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너를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니가 보고싶어도 너에게 달려갈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니가 지치고 힘들 때 니 곁에서 힘이 될 수 없었으니까.
니가 몸이 아파도 얼른 뛰어가서 약이나 죽을 챙겨주기는 커녕
전화로 '자기야 괜찮아? 어떡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무능한 군인이었으니까.
니 생일날, 우리 기념일날 난 그 안에서 함께하지 못한 그 미안함에
늘 가슴아파하고 미안해하는 것만이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그저 그 긴 군생활중에 몇 일있지도 않은 휴가기간동안 오직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 이외에는 난 정말 늘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거든.
넌 내게 말했지.
그 사람 1년간 너를 변함없이 좋아했다고.
이젠 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너의 마음이 이젠 그 사람에게 많이 기울었다고.
그 사람의 눈물섞인 고백에서 진심이 느껴졌다고 .
그리고 ..
곁에 있어주는게.. 중요..하다고 ..
순간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더라.
너가 다른 사람에게로 떠나갔다는 그 사실보다
군인의 신분을 극복하고자 너에게서 잊혀지지 않으려는
그 동안의 내 숱한 노력들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말야.
내가 그렇게 눈물겨운 노력을 해도 그 마음이
이 사람에게 전달되기엔 부족했던 거구나.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했고, 너라는 사람은 내 진심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그렇게 내 영혼을 바쳐서 사랑했는데. 너를.
너를 만나면서 네게서 들었던 말 중에 나에겐 가장 비수가 되었던 그 말.
난 니 곁에 있고 싶지 않아서 그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데.
너의 고백뒤에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뛰쳐나갈 수도 없는 그 곳에서 누군가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르는 내 눈물과 순간 세상에서 가장 초라해진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죄인마냥 전화기 움켜지고 웅크리고선
너에게 나를 떠나지말라는 처절한 호소와 간청뿐.
' 다시 생각해줘, 이제 나 곧 전역이야, 내가 다 이해할게'
' 정말 나 잘할테니까 나한테 기회를 줘 제발.. 응 ? 제발...'
' 우리 순수했던 예전처럼 다시 돌아가자 응? 내가 많이 노력할게..'
그리고 돌아오는 너의 차가운 대답.
' 그때처럼 순수하게 자기를 만날 자신이 없어..'
벌써 4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네.
내 머리카락도 어느덧 많이 자라서 이젠 제법 민간인 티가 나는 것 같아.
얼마전에 일이 있어서 대학로를 갔었는데 우리가 그렇게 자주 드나들던
투썸플레이스 없어졌더라. 너와 난 이미 끝났는데 왜 서운한 맘이 들던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만큼 사랑했던 너라서,
그렇게 전화로 우리의 마지막을 매듭짓고 싶지 않아서,
그때 너한테 마지막으로 얼굴보면서 웃으면서 헤어지고 싶었는데
그 이후 나의 모든 연락을 거부하던 너. 아직도 아쉬워.
너를 잡을 생각도 없었고,
너에게 화를 낼 생각 역시 추호도 없었고,
단지 그 동안 나때문에 고생많았다고 행복하라고 웃으면서
보내주려고 했었는데 더 이상의 만남은 무의미하다고 여긴 너였던건지.
근데 나 정말 널 사랑했던 마음에 비해서 덜 아파했던 것 같아.
왜냐하면 난 정말 지금 생각하면 미쳤다 싶을정도로 너에게 최선을 다했거든.
다시하라고 하면 절대 그렇게 못할만큼 말이야.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떠날 여자였다면 결국 우린 그때 헤어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인연이었겠구나. 하는 생각 .
다 추억이 되었어 .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너의 목소리로 웃음짓던 내 모습도.
웃을 일이 없다는 너를 웃겨보려 선후임들한테 들었던 재밌는 얘기 잊어버릴까봐
종이에 적어서 어두운 공중전화기 안에 LED불빛 비춰가며 너에게 이야기해주었던 내 모습도.
1분1초라도 니 모습 더 보려 선임들 욕먹어가며 너에게 맞추려 꾸역꾸역 짜맞춘 휴가,
큰 훈련도 피해갈 수 있었지만 난 너와의 함께 보내는 한 시간이 더 중요했기에.
이벤트 해주겠다고 휴가때 너와 함께 찍은 사진들로 모아 한번도 다뤄보지
않은 동영상 프로그램 끙끙 거려가며 밤새 만든 너만을 위한 비디오.
직장다니기 시작하고 한창 적응할 무렵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는 너의 말에
평소 기상시간보다 1시간 빨리 일어나 너 깨워 주겠다고 모닝콜했었던 나.
휴가때 지나가는 여자의 어떤 백이 갖고 싶었다는 너의 말을 기억하며
먹고 싶은거 사고 싶은 거 아껴가며 모은 쥐꼬리만한 군인 월급으로
다음 휴가때 너에게 그 백을 선물했던 나.
함께하고픈 마음 달래려고, 늘 니 곁에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
손에 꼽을 정도를 제외하고 매일같이 너에게 전화했던 나.
늘 너와 함께 해주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내 자신을 위함이 아닌 줄 알면서도
휴가의 모든 시간을 너와의 시간으로 가득채우려했던 나.
내가 입대를 한 순간부터 정말 단 1초도 빼놓지 않고
너의 생각들로 가득찼었던 나날들.
순수한 우리의 사랑이 내겐 그 무엇보다도 자랑거리였던 시간.
정말 고마웠어.
너로 인해 훈련소에 있을 때 동기들의 부러움 한 몸에 받았고,
그래서 다른 동기들보다 더 따뜻한 맘으로 군생활 적응할 수 있었어.
그리고 전입했을 때 선임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보내 주었던 내 몸만한 과자택배.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세번이나 달려와주었던 너와의 행복했던 면회.
마지막 순간을 제외한 그 어떤 대화에 있어서도
밝게 받아 주고 걱정해주고 귀엽게 애교도 부리고 나를 웃음짓게 했던 너.
내 생일날 전화로 노래 불러주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던 그 날
너의 집주소가 적힌 커다란 택배와 사랑가득한 편지.
나 대신 우리엄마 생일 챙겨주겠다고
손수 만든 수제과자 엄마 생일 맞춰서 보내준 너.
그 외의 수많은 너의 마음씀 ..
그랬던 너를..
다른 사람에게 갔다고 하여
내가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니.
2년의 시간이 생각보다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라서
그 사이에 내게 말못할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을거라 생각해.
네 성격에 내가 있는 상황에서 그 남자를
그렇게 선뜻 받아들이지도 않았을테고
내가 하나하나 전하지 못할 많은 이유들이 있을거라 생각해.
그런 것까지 내가 하나하나 다 알 필요도 없고, 그리 궁금하지도 않아.
그냥..
하늘이 정해준 너와 나의 인연은 그까지였다는 거겠지.
이 이야기들을 끝으로.
너에 대한 기억은 이제 접으려고 해.
너에게 주었던 사랑처럼 또 다시 다른 좋은 사람과
다시 후회없이 사랑해보려구.
너가 선택한 그 남자.
정말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이길 바래.
1년의 기다림끝에 얻은 너의 마음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착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너와 헤어진 후 너를 많이 원망도 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구.
멀리서나마 마음으로 너를 축복해주는 것이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서.
입대전에 걸어두었던 남산의 그 자물쇠는 잘 있겠지?
그때 나 전역하면 같이 보자고 편지도 같이 적었는데 뭐라고 적었니?
지키지도 못할 약속 우린 왜 그때 바보처럼 슬프도록 적은걸까.
너를 만났던 3년전의 봄이 다시 찾아올텐데,
그때 행복했던 우리의 모습이 생각나서 다시 슬퍼지면 난 그때 어떡하지.
그치만,
그때의 나와 너는 이제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거겠지.
절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너의 목소리로 가슴 따뜻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나의 아련한 군생활이 오늘따라 너무도 생각난다.
그리워 .
한시라도 떨어지기 싫어서 늘 함께였던 우리가.
봄꽃 흐드러지게 핀 삼청동 고요한 밤거리 두 손 꼭잡고 거닐었던 우리가.
나 전역하면 예전처럼 좋아해주지 않을까봐 걱정된다며 눈시울 붉혔던 니가.
전화기 붙잡고 보고싶어 미칠거같다며 목놓아 울던 너의 간절한 목소리가.
정말 치열하게 사랑했던 우리의 그 날들이.
보고싶어.
지금 어디에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