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실제로 한국에대해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사람이 대다수라고 하네요.
그런데 정부가 대표로 사과를 하지않죠..
정부가 그나라의 대표인데 왜그러는 걸까요.
이분은 위안부 할머니 사건을안뒤 야스쿠니 신사에서
시위를하다가 경찰에게 쫓겨난 일본인 입니다.
예전에는 일본우익을 믿다가 위안부 할머니 사건을
알아버리자 거리에서 위안부할머니들이 겪은 일을 알렸다고 하네요.
정말착하신분이네요...
혹시 알아요 저 경찰들 사이에 하기싫지만 국가에서 내린 명령이라
어쩔수 없이 하는 사람이 있을지
실제로 일본에는 독도를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하네요.
대다수 학생들도 모르는 상황인데. 나라에서 교과서를 허위된사실로
과장해만들어버리는게 잘못된게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몇몇의 일본 지리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알려준다네요.
이 위에 있는 글이나 만화는 일본인이 쓴걸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위안부 소녀상에 무릎 꿇은 일본인 목사… 사죄의 플루트 연주까지...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입력시간 : 2012.02.14 02:36:34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가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를 형상화한 평화비 앞에서 일본의 위안부 동원을 사죄하는 의미로 플루트를 연주하고 있다. 김주영기자 wi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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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요. 마지막 사죄라고 생각하고 왔습니다."13일 오전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앞에 무릎을 꿇은 백발의 일본인은 끝내 눈물을 떨궜다.
"일본의 한국 침략 역사가 부끄럽다"며 1970~80년대 청계천과 경기도 화성에 빈민자활공동체 탁아소를 세우고 사재를 털어 빈민가 철거민들의 이주를 도왔던 노무라 모토유키(81) 목사였다. 당시 함께 빈민 구제 활동을 했던 고 제정구 전 국회의원 13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0일 생애 60번째로 방한한 노무라 목사는 이날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일본대사관을 찾아온 길이었다.
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는 소녀상 앞에서 노무라 목사는 평생 지고 온 마음의 짐을 내리듯 자신의 몸집만한 배낭을 풀었다. 그가 꺼낸 것은 붉은 장미 한 송이와 성경과 악보, 그리고 플루트였다.
'봉선화' 악보를 펼치고 연주를 시작한 노무라 목사의 플루트에서 서투나마 진심 어린 선율이 흘러 나왔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는 한국어 가사 밑에 일본어 가사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연주를 끝낸 노무라 목사는 감정이 북받쳤는지 잠시 흐느끼다가 "일제 시대 한국인의 애환을 담은 이 노래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며 "일본 침략이 없었다면 탄생하지도 않았을 노래"라고 말했다.
"나는 무비스타가 아니다. 이건 쇼가 아니다. 진심을 알아달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 노무라 목사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뜻을 담아 '진혼가'와 '우리의 소원'을 연달아 연주했다. 그의 악보집 속에서는 '아리랑', '선구자', '아침이슬', '비목' 등의 곡목이 눈에 띄었다.
"다섯 살 때부터 '조센징'들이 차별 받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일본인으로서, 예수님의 뜻을 전하는 목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죄의 의식을 마친 노무라 목사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항의한 탓에 나는 일본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을지도 모르지만 두렵지 않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이처럼 일본에는 한국에게 미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정부가 가만히 있는게 문제인것같아요.
오죽하면 자신이 일본에 살고있는게 부끄럽다고 말하겠어요..
음..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글 퍼뜨려도 좋아요. 사람들이 이걸 보고 일본에대한 편견이
조금이나마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이예요.
이졔까지 역사적인감정으로 서로 욕하는거 별로 보기 않좋았어요 .
우리나라하고 일본 멀지만 가까운나라..
서로 배울건 많아요.
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해준다면 두나라는 쫌더 가까워지지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