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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호주 워킹녀

Am7시30분 |2012.02.28 03:27
조회 4,111 |추천 3

오늘따라 새벽에 잠도 안오고 이렇게 글을 끄적여봅니다.

 

판을 매일 보진 않지만 가끔 사람 사는 재미를 보고 싶을때 들리는 정도입니다.^^

 

그냥 넋두리라 글이 길어질것 같네요.

 

어쩌다 폰으로 어느 26살 여자분의 글을 보고 꽂혀서 넷북 다시 켜서 글을 씁니다.

새벽이라 센치해졌나봐요 ㅋㅋ

 

호주온지는 이제 5개월째접어들고 있네요. 제가 호주에 오게 된 이유를 적을려고 합니다.

그냥 저한테 화이팅 좀 해주세요^^

 

작년 10월 10일 10년지기 친구의 권유로 호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작년 6월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아주 갑자기.

 

 

아, 전 초짜헤어디자이너였어요 막3개월차였던^^ 많이 배우는만큼 많이 힘들었어요.

그럴때마다 아빠를 보고 "살아야겠다. ", "열심히해야겠다. " 생각했어요.

왜냐면 저희집은 사남매에 지금은 할아버지가 안계시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셋째 아들이신 저희 아버지가 모시고 사셨던 대가족이였거든요.

그래서 전 아빠가 이 세상에서 이만한 남자 없다고 정말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야겠다.

아빠같은 남자랑 결혼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술버릇빼고^^)

 

 

그런 아빠가 갑자기 뇌지주막하출혈이라는 뇌출혈로 인해 10일동안 기계에 의지하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혹, 지금 보고 계신 분의 아버지, 어머니가 50대이신 분들! 두통이 있으시다고 하시면 가볍게 넘기지 마시고 곧장 모셔가 병원가주세요. 그 연대에 두통은 가볍게 넘길 두통이 아니더라구요..)

 

 

그렇게 장례식을 치르는데 제가 일했던 샾의 직장동료들이 장례식장에 왔을때 전 웃었어요.

왠지 모르겠지만 .. 지금 생각하건데 습관이 아니였나싶어요.

그냥 가식적인 표정

 

 

제 10년 지기 친구들이 계속 저를 지켜보더니 왜 웃냐고 웃고있냐고그러더라구요.

전 모르겠다고 괜찮다고 했어요.

 

 

그렇게 상을 치르고 다시 일을 하는데 일을 못하겠더라구요. 답답하고 의지도 없어지고, 모든게 하기 싫어졌어요. 다만 알게된건 아빠가 병상에 있던 10일.. 아,쓰러지신 당일날만 빼고 저희 사남매 모두 출근했어요. 남동생은 등교구요. 여동생은 간호사라 몇일 출근하다 그냥 아빠 옆에 계속 있기로 했어요. 엄마도 너무 힘들어하니깐..

 

 

그 10일동안 일하면서 아빠 면회시간이되면 아빠를 보러 가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가게를 벗어났다는 자유. 아마 스텝기간동안 너무 스트레스였기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아빠를 보러 가는 건 싫었어요.. 진짜 정말 아빠 얼굴을 마주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런 약해지시는 모습 처음이여서 10일동안 면회보는 것도 너무 힘들더라구요...그냥 그 사실이 현실이라는게 보기 싫었던 걸 수도 있어요...

 

 

근데 상을 치르고 다시 제 자리로 갔을때 "중학생때부터 생각했던 내 적성이라, 내 천직이라 믿었던 직업, 그렇게바라고 바랬던 디자이너가 됐는데 왜 난 여길 벗어나고 싶어하고 가게가 아닌 곳일때 왜 이렇게 맘이 편한걸까?" 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그렇게 갑자기 여름 휴가를 냈고 휴가 동안에 생각하면서 호주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하고 급으로 호주행을 택했습니다. 가족들도 흔쾌히 승낙해서 별무리 없이 호주를 오게되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엄마가 승낙한 이유가 저희 가족의 신년운수를 엄마가 매년 점을 보러 가는데 점쟁이가 말하길 제가 해외수가 있다고 하더랍니다. 무조건 보내라고 했다네요. 그래서 엄마가 승낙했다고 저희 큰언니가 말해주더라구요..ㅎㅎ

 

 

 

저를 알아야겠단 생각과 좀더 넓은 곳을 보고 내가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과 난 우물안 개구리라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해 2년 넘게 일만 했어요. 호주 와서 알게 된거지만 타지역 사람들과 술 한잔하며 한국에서 살았던 얘기들을 하면 전 그닥 한국에서 해본 게별로 없더라구요.

 

 

그렇게 해서 이 호주라는 곳에 와서 거의 3개월,

아니면 그 전부터 제정신이 아니였던것같네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점과, 해외라 그런지 저나 다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한다거나

남의 말보단 자신의 말에 집중하게 되고.. 제대로 된 친구도 한 명 못 사겼었어요.

 

저 또한 호주에 와서 3개월은 계속 저에게 물음표만 던지고 자학했습니다.

단골고객이 생기고 있던중이였고 내가 제정신이라면 미용을 계속 하는 것이맞는 것이고,

지금 곧돌아가도 다시 미용은 할 수 있지만 다시 미용은 하기 싫은 ..

정말 제 속은 복잡하고 미묘하고 꼬일대로 꼬여있었어요. 그 실마리를 찾긴 정말 어려웠어요.

계속 생각해보니 호주엔 정말 아무 목적없이 온거였어요.

돈도 영어도 아니였어요. 지금 생각해도 3개월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아니 그전에도 제가 뭘 했던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진짜 제정신이 아니였다고는 말할 수 있어요.

 

 

 

그랬던 제가 2월이 되면서 다시 제 마인드를 찾았고 하고 싶은것, 원했던 것, 목표를 알게 되었어요.

 

한국에 따뜻한 바람이 불고 꽃이 피면 돌아갈겁니다.

무엇을 할지도 정했구요.

호주 오기 전에 아프니깐 청춘이다 라는 책을 읽고 왔는데 제정신이 아니였던 순간 제일 잘한 행동같네요.

 

그냥 25살 일을 충동적으론 그만둔건 아니라는 것과

내 안의 큰 기둥이 없다고 무너질만큼 작은 내 포부가 작지않다는 것

다시 시작해도 절대로 늦지 않았다는것!!!

그리고 아직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것들이 아주 많은 나이라는 것.

이렇게 깨우치고 호주 생활 마무리 해가고 있습니다.

내선택에 후회하지않고

다시 제정신으로 한국으로 돌아가 제대로 25살의 청춘의 장미꽃을 피워야겠습니다.

 

한국시각 새벽 3:36분

잠못이룬 워킹녀, 말 너무 많죠?

타지에서 모두 툭!! 털어놓을 상대가 없네요. 넋두리 읽어주셔서 감사해용~^^

 

 

 PS. 아빠, 감사했어요. 정말정말 사랑합니다. 아직도!!! 쭉!! 사랑해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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