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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존재한다면, 로마를 편애했음에 틀림없다

민병문 |2012.03.19 11:18
조회 158 |추천 0



로마에 있는 내내 화창한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2월, 한국 혹은 네덜란드라면, 동장군이 한창 기승을 부릴 무렵이었음

에도 불구하고 햇살이 너무 따뜻해서 지금이 겨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어요. 문득 신이 존재한다면, 로마를 편애

했음에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래서 타당한, 몇가지 이유로 인하여 신이 존재한다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믿지 않지만 말이죠. 뭐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존재 하든 말든 나는 관심 없다, 가 가장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생활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니까, 화는 내지 말아주세요. 저는 모든 종교를 존중합

니다. 진지하게요.



추위를 피해 네덜란드에서 도망간 게 맞지만, 그래도 이렇게 따뜻할 줄이야! 상상이 가시나요, 2월 중순인데 낮에는 셔
츠 한 장만 입고 다녔습니다. 가져갔던 코트도, 혹시 모를 엄청난 추위를 대비하기 위해 가져갔던 내복(...)도 모두 민망
해져 버렸습니다. 화창한, 아니 화창하다고 말 하기엔 너무 파란 하늘과 적당하게 흩뿌려진 구름마저 너무 완벽했던, 마
치 봄나들이 나온 어느 소녀의 하늘하늘거리는, 파랗고 하얀 원피스 치마폭처럼, 아름다웠던 하늘이었어요.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이건 반칙이야, 사기야, 를 중얼거렸습니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어도 이걸 그대로 옮겨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베네치아 광장에 드러누워버렸어요. 많은 관광객들이 저처럼 햇살을 즐기고 있어서 민망하지도 챙피하지도 않았습
니다. 그냥 이런게 여행이지 싶었어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모든 길이 통하는 로마 안에서도, 또 모든 길은 베네치아 광
장으로 통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광장은 사람들이 앉아서 수다를 떨고 약속을 잡을 수 있는 광장이라기 보다는, 자동차

도로가 너무 넓고, 광장을 중심으로 둥글게 펼쳐져 있어서 교통의 요지 같은 느낌이에요. 로마를 돌아다니는 버스는 여기

로 다 모이는건가 싶을 정도로 버스가 많이 다녀요. 물론 테르미니 역 주변에도 버스가 많긴 하죠. 거긴 진짜, 교통의 요

지니까요. 하지만 관광지로 가는 버스는 테르미니 역 보다는 베네치아 광장에 더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버스를 자주 안

타서 확인해보지는 못 했지만 말이죠.



사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버스를 안 타는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들 합니다. 다들 공짜로 타거든요. 사실 엄밀히 말 하
자면 공짜는 아니에요, 무임승차를 하는거죠. 버스표를 팔고있고, 지하철 표와 환승이 되는 것 뿐이고, 검표를 거의 안 하
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다들 그냥 타고, 내려요. 우리나라 같은 교통카드 시스템이 이탈리아에는 없는 것 같아 보이더라구
요. 현지인들은 카드 같은 것도 안 찍습니다. 버스기사에게 표도 안 보여줘요. 그래서 그런지 이탈리아 여행 팁을 보면,
버스는 돈을 내고 타는 짓은 바보같은 짓이다,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듣곤하죠. 그런데 저는 간이 콩알만해서 버스를 안 탔
어요. 테르미니 역에서 한 번 무임승차를 시도하려고 하다가, 검표원같이 생긴 사람들이 우르르 타는거에요!? 검표원인
지 아닌지 잘 몰랐지만 심장이 쪼그라들어서 후다닥 내리고, 다시는 무임승차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웃음)














모르던 사실이었는데, 피노키오가 이탈리아 사람(?)이었더군요. 로마의 어느곳에서나 피노키오 관련 기념품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어요. 저도 좀 거짓말을 잘 하는 스타일이라, 물론 선의의 거짓말 입니다(웃음), 괜스레 정감이 가던 친구였
는데, 이런데서 만나게 되니까 굉장히 반갑더라구요. 하지만 머리에 줄이 달려있는 채로, 어딘가 가판대에 대롱대롱 매달
려있는, 혹은 어떤 나무상자 안에 정리도 되지 않은 채 구겨져 있는 친구의 모습에 살짝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린시절 친
하게 지낸 친구가, 정말 의외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 처럼요. 관광이라는 돈벌이에 이용된 것 같은 동심의 상징이 가여워
서, 가장 밝게 웃고있는 친구 하나를 데려왔습니다. 매달려 있던데 괜찮니? 아프진 않아? 라고 물으면, 어 괜찮아, 라고
대답하고 코가 쑥쑥 자랄 것 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을 하고있는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제 책상 서랍 위에 앉아서 이 포스
팅을 쓰는걸 쳐다보고 있어요. 보여주고, 어때? 잘 쓴 것 같아? 라고 물어보면, 응! 재밌어, 라고 대답하고 코가 쑥쑥 자라
겠죠. 나쁜 녀석. (웃음)













베네치아 광장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가면 뜨레비 분수가 있어요. 사실, 뜨레비 분수를 보고는 뭔가 이상하다, 라는 생
각을 했어요. 뭔가 예상으론 넓은 광장이 있고 그 중앙에 뜨레비 분수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런데 이상합니다. 이정표가 이끄는 방향은, 뭔가 좁은 골목길로 굽이굽이 들어가는 길이더라구요. 그리고 그런 골목을 들
어가다 보니, 멀리서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소리가 들리다가,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
하더니, 이내 콧속이 시원해지는 물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직감하죠, 뜨레비 분수가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뜨레비 분수를 한국말로 해석하면 촌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삼거리 분수, 정말 촌스럽죠? 골목에 있는 어느 건물의 뒷
면을 이용해서 만든 분수고, 분수가 있는 곳이 3개의 길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해서 삼거리 분수라고 이름을 지었대요. 아
무래도 뜨레비 분수라고 이름을 불러주는게 더 잘 어울리죠? 뜨레비 분수에서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 너머로 동전을 던져
넣으면 로마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전설이 있대요. 그리고 두번째 오게 되었을 때, 다시 같은 방법으로 동전을 던져 넣
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죠. 일단 첫번째 동전은 넣었으니, 로마는 다시 갈 수 있을거고, 두번째 동전이 남았네요. 로
마에 다시 가야할 이유가 생긴 것 같지 않나요?
















로마에서는 굳이 가이드 북과 지도가 필요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뭐 가이드북에 있는 설명을 보면서 어떤 의
미를 갖는 곳이고, 왜 유명한지를 보는 의도에서라면 추천하는 바이지만, 뭐가 어디에 있고, 어딜 가야하나를 고민하기
위한 가이드 북이라면 필요없어요. 워낙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서, 하나를 보고나서 고개를 돌리면 이쪽으로 가면 뭐가
있고, 저쪽으로 가면 뭐가 있다는 이정표가 툭툭 튀어나오니까요. 뜨레비 분수에서 조금 걸어가다보니 스페인 광장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나왔습니다. 발길 가는대로 걷습니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곳으로 유
명한 곳이죠. 나의 오드리햅번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걷습니다.



이탈리아, 그것도 로마에 왜 스페인 광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름이 분명 스페인 광장입니다. 딱히 스페인 스러운 분
위기도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왜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의 무엇인가를 찾아야하는가, 에 대한 불만이 솟구칩니다. 하지
만 햇살을 받은 스페인 광장의 분위기를 보고, 마음에 들어서 난간위에 걸터 앉았어요. 햇빛이 너무 좋아서, 로마 젊은이
들이 약속장소로 가장 애용하는 곳이라는 이 곳에서 느껴지는 젊음의 분위기가 좋았어요. 여름엔 이 스페인 광장의 계단
에 사람이 바글바글하게 앉아있대요. 제가 갔을 때는 의외로 한산했습니다. 관광객들 보다는 진짜로 약속 장소에서 친구
를 만나는 이탈리아 현지인들이 많아 보였죠.
















사실 로마에 온 첫 날은 로마가 아닌 바티칸 시국을 갔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박물관 가이드 투어를 받았었는데, 판테
온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인상이 깊었었어요. 그 시대가 낳았던 천재 미켈란젤로 조차 그 설계의 비밀을 밝혀내지 못 하
고, 이것은 신이 설계한 것이다, 라고 말 했다고 하는 완벽한 반구 형태의 돔 천장이 유명한 곳이지요. 기둥 하나 없이 완
벽한 구 형태로 만들어진 석조 돔, 그리고 자연채광을 위해 가운데 만들어진 구멍, 그리고 그 구멍으로는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설계 되었다고 하죠. 사실 모르고 보면, 별거 아니어 보이는 고대 신전 중 하나이지만, 알고보면 정말 대단한 곳입
니다.



또한 라파엘로의 무덤으로도 유명한 곳이죠. 초기, 중기, 후기 작품이 뚜렷하게 구별되고, 평생을 자신의 화법 스타일을
찾아 실험을 거듭했던 노력파 화가였으며, 인생 마지막에 이르러서 자신만의 화법을 탄생시키지만, 그리스도의 변용, 마
지막 작품마저 채 완성시키지 못 하고 세상을 떠나야했던 비운의 화가. 사실 비운이라고 말을 붙이기엔 너무나도 유명
하고, 그 시대에도 성공스런 삶을 살았던 라파엘로였지만, 작품적인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그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합니
다. 10년만, 아니 딱 1년만이라도 라파엘로가 더 살았다면, 그렇게 완성시킨 그의 화법으로 더 많은 걸작을 그려냈을텐
데요.














천혜의 자연환경과 찬란한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장식해주는 수많은 천재 예술가들,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와 바로크를 관통하는 이탈리아의 천운을 보며,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로마를 편애했음에 틀
림없다구요. 요 근래 이탈리아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지금은 다른 누군가를 편애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말이죠. (웃
음) 하지만 여전히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로마 사람들과,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을 토대로한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
만큼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기에 조금은, 어울리지 않지만 말이죠. 그래서 요즘 이탈리아
나라 꼴이 이모양인지도 모르죠. 국력은 예전만하지 못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요.



자꾸 길어지는 로마편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다보니, 오래 걸려서 쓴 글인데도 왠지 감상보다는 사진 나열과, 사진 설명
이 주를 이룬 것 같아 부끄러워지는 포스팅이네요. 맛있는 네덜란드 맥주 한 캔에 칩 한 봉지면 알딸딸한 기운에 술술 글
이 써지곤 했는데, 이번 포스팅은 며칠 동안 지웠다 썼다를 반복한지 모르겠어요. 바티칸 시국과 피렌체, 피사편도 써야
하는데, 자꾸 글이 마음처럼 안 써져서 큰 일입니다. 코 끝부터 따뜻해져 오던 로마의 태양이 문득 그리워지는 순간이네
요. 어서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어요. (웃음)   출처: 영삼성 [원문] [사진찍는 이은상의 감성 유럽] Rome (3) , 신이 존재한다면, 로마를 편애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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