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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끄적여봅니다.

야생초 |2012.03.20 21:54
조회 293 |추천 0

살다보니 이렇게 기력을 잃을때가 있구나..싶어 끄적여봅니다..

 

딱히 인터넷을 많이 하지는 않는편이라 가끔 둘러보는 네이트에 아이디도 있는겸 글쓸곳도 있는겸

 

겸사겸사..

 

 

내나이 27. 뒤를 돌아봅니다.

 

 

11살 강원도 시골에 살고있을적 어머니 신내림 왔지만 거부해서 점점 실성.. 결국 이혼 집 나가셨고

아버지는 타짜. 모든걸 잃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서울가시고 난 친척집에 머물렀다.

매일매일이 눈칫밥..

 

세월이 흘러 흘러 중1때 어머니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아버지는 계속 방랑생활. 더불어

나도 방랑생활..

 

16살 인천에 머물무렵 아버지도 급성뇌출혈로 인해 돌아가시고.

 

뭐가 어찌됐든 내가 장손이기에 아버지의 대를 이어 상속절차를 밟았다.

 

19살. 내귀에 들려오는 아버지의 빚. 시작되었다. 돈에 미쳐사는 내 모습이.

 

 

학교갔다 알바 주말알바. 공고라 2학기에 취업나가고 저녁에 또 알바.

 

스무살되어선 아침엔 편의점 단시간 파트알바, 점심무렵부턴 식당알바. 잠시 눈붙이고 저녁엔

룸웨이터.

 

스무살되고도 두달만에 그동안 학창시절 꾸준히 모아왔던 돈 다 합쳐 아버지 빚 2천 4백여가량 해결.

 

당시엔 룸팁이 꽤 나오던 시기라 운이 좋았다. 

 

친구들은 아무도 몰랐다. 빚이며, 내가 무슨맘으로 사는지.

 

21살 12월 군입대전까지 딱 9천만 가량 모았다. 잠은 정말 잠깐 휴식이었고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텨가며 모은돈. 당시 룸에서의 수입이 굉장했기에 모을수 있었던 돈. 운이 트이나 싶었다.

 

아쉬운건 군입대만 아니었다면 조금더 트일수 있었을텐데. 부양권이 성립이 안되어 입대할 수밖에

없었다.

 

주제에 여자는 또 좋아해서 항상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그것도 누나로만. 또래나 애들 사귀면

정신연령이 안맞는 느낌이었고 또 금전적 출혈이 있을것이라고 판단해 대화가 통하고 내 상황과

내 환경과 내가 꿈꾸는 미래에 대해 동감해주는 누나들이 좋았다.

 

 

23살 12월 제대.

 

입대전 모아두었던 9천을 대충 아무펀드에 넣어뒀는데 다행히 어느정도 수익금이 발생해

1억 1천 7백가량으로 불어있었다.

 

이미 말년휴가 나와서 호프집 매니저를 시작했고 중간에 사회에서 만나게 된  아는분 통해 구미쪽 LG디스플레이에 입사했다.

 

고등학교때 딴 자격증과 2학기 취업중에 쌓은 경력이 인정되어 비교적 탈없이 입사해서 엔지니어를

했고 수입은 달에 230정도.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저녁엔 호프집 알바를 했다.

 

그렇게 지내며 24살 5월. 회사생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차라리 호프집에서 알바하는게 훨씬

재밌었다. 느꼈다. 난 자영업을 해야한다고. 서비스직이 천성에 맞다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빠르게 퇴사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어차피 컴퓨터도 뭣도 옷 몇벌빼곤 짐도 없었기에 (생각해보면 진짜 거지같이 살았군..)

일단 고시원 잡았다. 그리고 집을 알아보던 중 구로구쪽이 집값이 좀 괜찮은것 같았고

동시에 나도 내집이 있었다면.. 이라는 생각에 집을 사버렸다.

 

빌라단지 1층 실평 14평 매매가 1억 2천.

 

남은돈 6백정도.

 

또다시 일을 구했다. 어차피 자영업으로 뜻을 잡은이상 많은것을 경험하자는 생각에 종류는

가리지 않았다.

 

밥집, 고기집, 호프집, 커피.

 

25살 11월. 통장에 3600 정도 모였다.

 

슬슬 내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해졌다. 그리고 하던일을 그만뒀다.

 

가게 몫을 보는 안목도 없고 그냥 아무것도 없이 부딪힌것이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다짜고짜 창업회사에 전화를 했고 여기저기 둘러보던중 논현에 꽂혔다.

 

집을 팔고 (매매한지 2년이 되지 않아 다시 매매를 하니 세금을 많이 냈다..) 통장에 있는돈

 

1억 5천가량.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커피숍을 그대로 인수하는 것이었고 보증금 3천에 권리 8천이라는

미친금액으로 들어가버렸다. 내부실평 4평, 외부 테라스5평정도인 자리에..

 

관악에 원룸 전세잡고 가게를 운영했다. 나름 잘 되었다. 많은 단골 확보에 성공했고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나름 재미있는 일상으로 하루하루 보냈다.

 

 

26살 11월

근데 문제가 터졌다. 건물주 회사는 부도를 맞고 건물주는 근저당권 및 채무가 이미 건물시세를

훌쩍 넘어갔고 건물(빌딩)은 경매에 들어갔다.

 

이런저런일이 일어나고 건달들이 건물에 유입되었고 난 그냥 쫒겨났다. 유치권 행사를 위해.

 

권리금은 공중분해 되었고 보증금3천중에 천이백을 받았다. 나머진 경매 잘 풀리면 준다고 했는데

 

과연..

 

 

세상이 무너졌다. 백원 천원 만원 십만원 백만원 천만원 모았던 내 돈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흩어져버렸다. 내가 할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분통이 터졌다..

 

몇일 지나고 다시 맘을 다 잡았다. 다시 해보자고. 난 젊으니까.

 

커피숍 운영하면서 알게된 사업자와 힘을 합치기로 하였고 난 없는 돈 싸그리 모아 천오백만

(그 시점엔 거의 내 전재산..원룸 전세금 빼곤..) 을 보태주어 도와주었다.

 

27살 3월... (2012 03)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사기를 당한건 아니고 그냥 안풀렸다.

 

 

핸드폰, 금융상품, 집 관리비, 각종 세금 등등..

 

두달치 밀렸다.

 

 

참 사람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단순히 열심히만 산다고 되는건 아니란건 알았다.

신이 있다면 도대체 뭘더 바라는걸까.

 

남한테 피해주지 말자는것이 내 신조중에 하나다.

 

되도록이면 깔끔하게 인생 살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그냥 이렇게 당하고만 살거 같은 느낌이 든다.

 

위에 했던 얘기중에 내가 꿈꾸는 미래는 100억이었다. 단순히. 될거라 믿었고 착착 진행중이기도 했다.

주변사람들에게 내 꿈을 얘기하면 다들 난 될거 같다고 말들도 많이 해주었다. 물론 그 과정은 굉장히 험난하고 치열할 것이라고는 이미 짐작했다. 하지만 너무 쉽게 7년치가 날아가버렸다.

 

주변에선 그런다. 인생 수업료라고.. 물론 좀 비싸긴 하지만ㅎ

 

담배가 늘었다. 하루에 두갑 가까이 핀다. 무기력해진다.

 

사귄지 2년된 내 여자친구는 그래도 날 믿고 따라준다. 고맙다,,

 

 

다행인점은 포기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름 책도 조금씩 읽는편인데 내가봤던 자서전이나

위인전 중에 위기, 실패가 없었던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나도 그 중에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가 정말로 막막할 뿐이다..

 

나름 추진력이 강한편이지만, 갈피를 못잡고 있는 실정이니 그저 멍하니 있다.

 

그래서, 심심해서, 할것도 없어서 인생을 다시한번 되짚어볼겸 짧막하게 글을 끄적였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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