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성공을 겁내는 세력들
'FTA 즉각 폐기' 요구 세력 "폐기해도 무역보복 없다"… 그렇다면 왜 두려워하나
對美 무역의존 걱정하지만 中의존이 美보다 두배 높아… FTA 효과 보고 기회 살려야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20년 만에 한미 FTA가 발효돼 미국이 한국을 침범한 꼴이 됐다. 임진왜란이 아닌 임진미란(壬辰美亂)이다." "한미 FTA로 인해 우리 경제주권을 통째로 미국에 넘겨주게 됐다." "한미 FTA는 한일 강제병합과 다를 바 없는 강제적 경제합방이다."
지난 15일 한미 FTA 발효를 전후해 야권(野圈)과 일부 시민단체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이다. 이들은 4월 총선에서 한미 FTA를 핵심 이슈로 삼아 정권과 여당을 심판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선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이 무너지고, 맹장 수술비는 900만원이 될 것"이라는 등 황당한 괴담이 끝없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한미 FTA 즉각 폐기다. 협정문 조항의 적법 절차에 따라 FTA를 폐기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에 무역보복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다. 협정문에는 "이 협정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협정 종료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한 날로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고 돼 있다. 협정을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데는 큰 부담이 따르겠지만 못할 것도 없다. 헌법 개정처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정치적 결단만 내리면 된다. 정책 연대로 기세를 올리고 있는 야권이 정권을 잡으면 눈 딱 감고 해치울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미 FTA를 겁내고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언제든지 폐기할 수 있는 협정이라면 그게 무슨 강제합방이고, 주권 상실인가. 나라가 곧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법석을 떠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쫄지 마"를 입버릇처럼 외쳐대는 사람들이 한미 FTA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쫄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한국 경제의 대미(對美) 의존이 심화되는 사태를 걱정하는 것도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한국의 대미 무역의존도는 1991년 24.4%에서 작년에 9.7%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는 2.9%에서 20.5%로 높아졌다. 미국보다 중국이 우리 경제에 훨씬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을 걱정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한미 FTA 협상 타결 직후 "선진국은 그냥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며 "도전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나는 우리 국민의 역량을 믿는다"고도 했다.
도전에는 위험이 따른다. 한미 FTA 역시 우리 경제에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 있다. 한미 FTA의 실제 효과를 지켜보면서 기회는 더 살리고, 위기는 줄이는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도저히 득실(得失) 계산이 맞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폐기를 논의하고 결정해도 된다. 협정이 발효되자마자 없던 일로 하자고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는 그게 더 합리적이고, 대외적으로 내세울 명분도 있다.
한국 경제는 끊임없는 개방과 도전을 통해 선진 경제권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 세계적인 모범 사례다. 1994년 가전(家電)시장 개방을 비롯해 일본 대중문화 수입, 영화 스크린쿼터 폐지, 유통시장 개방 등 대외개방 때마다 국내에서 기를 쓰고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지만 결과는 항상 정반대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한미 FTA 반대 세력들은 이런 사실에는 눈을 감은 채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고 있다. 그래서 그 속셈이 더 의심스럽다. 이번에도 한미 FTA를 통한 개방과 도전이 성공하고, 외골수 좌파들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일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한미 FTA 폐기에 그토록 목을 매고 조바심을 칠 이유가 없다.
김기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