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산골 가난한 노부부의 8남매중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났다.
5살 되던해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성한 엄마의 언니 오빠들은 도시로 떠나갔다.
7살 되던해에 외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셨고,
고사리만한 손으로 바가지를 들고 산을 넘어 남의 집에서 밥을 동냥해와
아버지와 끼니를 해결했다고한다.
그런 외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엄마는 남의집 수양딸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입양이라는 명목으로 자기 자식마냥 정말 소중하게 키워주는 양부모님이 많지만,
엄마는 그냥 8살짜리 남의집 식모였다고 한다.
24살 되던해에 8살이 많은 아빠를 만나게되었고..내가 태어났다.
임신했을때 요즘 흔하디 흔해 돈 천원이면 먹을수 있는 월동추가 너무 먹고 싶었지만,
찢어지는 가난함때문에 먹을수 없었다고 한다.
매일같이 술과 노름에 빠져있던 아빠 때문에 우리는 빚을 지게 되었고,
내가 6살 되던해 우리는 남의눈을 피해 야반도주를 했다.
국민학교때 같은 반 친구가
'나는 우리가족을 너무 사랑해서 다음생에 다시 태어나도 우리가족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라고 발표를 하는데..어린 나이에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어버렸다.
다들 나처럼 사는줄 알았는데..그게 아니라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고등학교때 성적이 상위권정도 였고, 나도 대학이란걸 가고 싶었다.
막무가내로 쌩떼를 썼다.
대학가야겠다.난 아빠처럼 엄마처럼 살고싶지 않다.난 배워야겠다.
원하던 대학은 아니였지만 내가 원하던 국문과에 입학을 했다.
그마저 1학년 마치자마자 그만뒀다. 이번에도 아빠때문이다.
남들에겐 휴학이라고 둘러댔다. 자존심이였다.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집안 곳곳이 빨간딱지다.
물을 마시고 싶어도 냉장고를 열면 안된단다. 컴컴해도 불을 켜면 안된다.
그 사람들이 엄마랑 내가 집에 있다는걸 알면 안되니까..
아빠는 집에 없다. 남동생도 사고를 치고 어디로 가버렸다.
아빠를 원망하고 내 가난을 원망할 새도 없이 내나이 31살이 되었다.
남들은 시집가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고 남편하고 깨소금 볶으면서 산다는데,
난 반지하방에서 혼자 산다.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퀴퀴한 곰팡이냄새에 캄캄한 어둠뿐이다.
아빠는 오늘도 아프단다.
아직 원망으로 가득찬 악다구니 한번 써보지 못했는데,벌써 환갑이 넘으셨다.
국민학교때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삶은 계란 한바구니가 방 한구석에 놓여있었다.
동생과 나는 부모님이 돌아오실때까지 삶은 계란 까먹으며 배고픔을 달래야했다.
그마저도 동생과 나는 서로 많이 먹으려고 혈투를 벌이곤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계란은 안먹는다.
팀장님이 오늘 점심은 김치찌개에 계란말이로 하자신다.
점심을 먹으며 이번달 인센티브지급은 보류란다.
이번달 인센티브로 엄마 청소기 사주기로 했는데..
엄마한테 전화를건다.
청소기는 다음달에 사줘야될거 같다고 했더니 안사줘도 괜찮다고 한다.
괜시리 코끝이 찡해진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술 한잔이 절로 생각난다.
막상 친구들을 만나려고 하니 전화번호부엔 이름만 빼곡할뿐, 쉽사리 통화버튼을 누를수 있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아차! 엄마가 지난번에 보내준 김치가 쉬어 꼬부라질라 하던데..김치찌개 끓여서 소주나 한잔 하고 자야겠다.
TV에선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하하호호 연실 신나서 웃느라 시간 가는줄 모른다.
전화 진동이 울린다.
동생이다.
이번에 새로 들어간 가게에서 메인주방장이 되었단다. 월급도 꾀 쳐준다고 한 모양이다.
밥을 안먹어도 배부르단 기분이 이런건가..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도 알게 되었다.
다시 태어나도 내 가족으로 태어나고 싶다는말..내 가족을 세상 무엇보다 사랑한다는말..
바보같이 희생밖에 모르는 울엄마.
평생을 원망하고 싶었지만 원망할 수 없었던 울아빠.
서울에서 어지간하다는 전세집값 정도를 합의금으로 날려 먹었지만 말그대로 개과천선해서 착실하게 살고 있는 내동생.
그들이 내 곁에 아주 오래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
TV채널을 돌린다.
이미자의 여자의일생 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언젠가 '내 부모랑도 10년을 채 못살아 봤는데, 당신이랑 산지 벌써 30년이 넘어가네요'
하고 빙그레웃던 주름진 엄마얼굴이 떠오른다.
나에게있어 아킬레스건이란..내 가족이다.
나의 취약점이자 동시에 내 두다리를 지탱할 수 있게 버텨주는힘.
보증금 500에 월35만원 짜리 내 반지하방이 오늘따라 포근하게 느껴진다.
이 모든것들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