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TV에서 간간히 혹은 자주 볼 수 있던 윤일상,
저의노래방 18번을 만들어준 그가 궁금해져서 보다가 공유하고자 이렇게 가져와봅니다
하루아침에 대한민국대표작곡가 라는 타이틀이 생기는 게 아니군요
역시 뭔가가 있었어 ㅎㅎㅎ
한국 대중가요로 처음 빌보드에 진입한 김범수의 ‘하루’,
노래방 선호곡 부동의 1위인 이은미의 ‘애인있어요’ 등
지난 20년 한국 대중가요를 이끌어 왔던 작곡가가 있다.
최근 모 방송사 오디션 프로에서는 멘토로서 날카로운 조언과 정이 느껴지는 한마디로
따뜻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이 시대 또 하나의 멘토상을 그려내었다.
(윤일상 영상으로보세요ㅋ재미짐-> 요기요기)
19살에 작곡가로 데뷔해 큰 성공을 거둔 이래, 지속적으로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작곡가 윤일상.
그는 지금까지의 성과에 만족하며 안주하지 않고 항상 스무 살의 열정으로 살아가겠다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한다.
‘얼마나 오래 해 왔느냐는 연륜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과거를 회상하며 지금을 게을리 한다면 난 그저 과거의 한 사람밖에 되지 않을 것이니까.
가장 좋았을 때의 나. 그를 뛰어넘자!’
그가 두드리는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열정의 선율에 귀 기울여본다.
위대한 멘토
실력?노력? 노력도 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실력이라는 것이 본인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갖고 지속적으로 표현해 낼
끈기가 있음을 뜻할 수도 있죠. 제가 처음에 멘토링을 시작했을 때 약속한 게 있어요.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말자.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친구들이 결국에는 각자 포지션에서 최고가 될 수 있게 도와줄 거에요.
우리가 가늠하던 것 보다 한 단계 더 깊은 마음으로 그는 멘토링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초가 있을 때 가까이 다가가면 손을 다치잖아요?
전 알고 있는데 그들은 아직 초에 다가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몰라요. 경험이 없는 거죠.
미리 알려주고 최대한 다치지 않게 가이드 해주는 거 그게 멘토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멘토링을 통해서 얻은 게 있다면 그들을 통해 배우는 것이었어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습관, 품성, 음악에 대한 신선한 아이디어는 저한테 자극이 됐었죠.
그리고 저는 그 배움을 다시 멘티들에게 돌려줄 거에요.
제가 출사표를 던질 때에도 10년 가는 가수를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아마 10년 뒤에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첫 번째 스무 살!(계기)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어요.
그리고 3학년 때 동생 탄생에 흥분해서 처음으로 가사가 있는 곡을 썼죠.
그때는 이것이 작곡인지 아닌지 생각하지 않은 채 막 갖다 옮기고, 연주하고~
그랬던 것들 것 즐거웠어요.
피아노를 사랑하던 꼬마는 어느 덧 또 다른 꼬마들의 꿈을 키워주고 있습니다.
19살에 데뷔를 하는데 부모님 두 분이 반대를 했어요.
음악가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못 하게 했었죠.
어머니도 피아노를 하셨는데 워낙 레슨을 많이 하니까
자식의 피아노 소리마저 듣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머니 몰래 피아노 치고, 피아노 옆에서 잠자고 그랬었죠. 너무 좋아했어요.
지금도 너무 사랑하는, 저한테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그렇게 19살에 데뷔를 하고 작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정말 음악에 매달린 시간들이었죠.
잠 잘 시간도 없었어요. 씻지 않아 머리는 장발이 되었고, 먹지 않아 허리가 26인치였던 적도 있었죠.
음악은 진정성으로..
좋으니까요! 다른 이유가 없죠~
음악에 대한 목표는 지금도 있고 그 때도 있었습니다. 정말로 ‘내 음악이 히트해야지~
대박 나서 돈을 많이 벌어야지’라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 노래는 내가 히트곡을 많이 냈기 때문에, 히트가 될 거야’라고 했던 곡은
한번도 히트된 적이 없어요. 대중들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죠.
작곡가가 모라고 히트를 좌지우지 합니까?
내가 음악을 만들 때는 진정성을 가지고서 해야 그 곡이 오래 간다고 생각해요.
시대흐름에 맞춰서 만들면 잠깐 동안의 인기는 있을 수 있겠죠.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 마음 속에 기억되는 음악을 하려면, 아직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슬픈 음악을 만들려면 내 스스로의 마음이 슬퍼야 되고, 기쁜 음악을 만들 때는
내 스스로의 마음이 기쁘고 막 흥분에 못 이겨서 해야지
그 감정이 10%는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랬던 것들에 대한 경험치가 20년 동안 있기 때문에, ‘내가 이정도 음악을 만들었으니까
내가 대중들의 히트모드를 알고 있어’라고 생각했던 어렸을 때의 오류를 범하지 않죠.
초심으로 돌아가자(Mr. Children)
Mr. Children의 ‘쿠루미’라는 노래가 있어요. 감동적인 뮤직비디오에요. 회사원이 우연히 동전을 떨어뜨리고 기타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추억이 떠올라 친구들을 다시 모아 밴드를 결성하게 되고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때 느끼는 행복을 표현하죠.
그런 가슴 속 무언가는 직장인들한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거에요.
잊고 있었던 추억 그리고 꿈들. 저도 시작했을 때 마음이 있죠.
하지만 일상에 빠져들어 삶이 익숙해지면 초심을 지속해서 갖고 가기는 쉽지 않아요.
수 많은 슬럼프를 통해 그 극복의 해답을 찾았다는 윤일상 작곡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처음으로 돌아가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처음에 어떤 회사에 입사했을 때! 얼마나 즐거웠겠어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곧 익숙해지니까 고인 물이 된 거죠. 스스로 말이에요.
주제넘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저도 슬럼프가 있었죠.
내가 표현하는 음악이 너무 싫고 지겨운 때가 있습니다.
결국 해답은 이거였어요. 왜 음악을 시작했었나. 얼마나 절박했었나.
늘 스무 살이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참신하고 감각적일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나이가 들어가고 음악을 해오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감각이 생겨난다고 생각해요.
영원히 20대 초반, 10대때 감각을 다시 가지려고 한다?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러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20년에 맞는 새로운 감각을 아주 순수한 모습으로 내가 보여주고
나태해지지 않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거죠.
음악 할 때 자주 하는 얘기가 있어요. ‘해왔던 대로 하지 말자!’ 해왔던 대로하면 빠르고 익숙하죠.
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상징적으로 무엇이든지 도전할 수 있는 나이,
조금 변덕스러워도, 조금 파격적이어도 이해가 되는 나이가 아닐까 싶어요.
60살, 70살이 되어도 그런 노력을 하고 싶다는 거죠.
항상 새로운 변태
그랬던 적이 있어요. 실제로 시간이 너무 급하기도 했지만,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많지는 않았죠. 예전 스튜디오 이름이 BT사운드였어요. ‘변태’사운드의 약자인데요.
매 사운드 마다 변태적인 사운드를 하나 집어넣자. 일반적이지 않은.
남들이 듣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허물을 벗는 변태(?) 작곡가 윤일상.
예전에 국악악기도 여러 번 사용했었는데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그게 저한텐 목표였거든요.
국악악기를 사용했다고 해서 드러났더라면 제대로 스며들었다고 볼 수가 없잖아요.
곡에 따라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나만의 독특한 것을 어떻게 집어넣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죠.
원래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서 변태라는 표현을 즐겨 썼죠.
요즘도 그때의 그런 다짐이라 해야 하나요.
항상 달라야 한다는 걸 가슴에 안고 살죠.
곡의 위대한 탄생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죠. 자식을 낳아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요. 그렇게도 설명이 안되네요.
여러 가지 감정이 들죠. 기쁘다? 슬프다? 이런 식의 어떤 단어로 표현되기 힘든 그런 느낌이죠.
가장 속상할 때가 음악을 뚝딱! 만들어 내는 공장 같다 하실 때,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것들이 진정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이 그렇게 나올 수는 없거든요.
근데 그런 표현을 듣거나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 안타깝죠.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만들어 봤으면 저런 얘기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지가 많이 나아지긴 했습니다만 아직 아쉬운 수준인 거죠.
음악에 국한된 건 아니고, 여러 가지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다음 스무 살 인생?(꿈)
영상이 주가 된 작품을 하게 되면 보고 나서 멜로디 하나가 남고 그 멜로디로 인해
다시 영상이 떠올랐으면 하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은 바램이 있죠..
뮤지컬뿐만이 아니라 영화음악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음악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습니다.
결국에는 똑 같은 음악인 거죠. 제가 할 수 있는 분야라면 할 거에요!
그래도 안되면~ 뭐~ 되게 해야죠~ 열심히 해서!
스무 살의 도전 정신을 항상 지니고 싶다는 그의 미래를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음악은 죽기 전까지 할거에요. 제가 건반을 두드릴 힘이 없어 프로듀싱에 참여를 못하더라도 곡은 쓸 거에요. 누워서 악보에 옮겨 적을 수 있는 순간까지도 할겁니다.
위대한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매일 크게 변하지 않는 일상 속에서 작곡가 윤일상은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반복의 열정이 위대한 곡을 낳습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는 피카소도 죽기 직전까지 작품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고 갔다고 하잖아요.
피카소에게 그런 열정이 없었더라면 명작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가장 열심히 일하는 자기자신이 경쟁자라고 말하며,
늘 해오던 버릇이 혹시 회피가 아닐까 경계하는 그는 본질을 지키면서 원칙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자고 말합니다.
우리네 인생에서 진정한 멘토는 바로 노력하는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요?
죽는 날까지 음악 하겠다던 그의 다음 스무 살 다짐은 우리네 인생에서
잔잔한 일상에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윤일상뒷일화 촬영 영상으로보세요-> 요기요기
윤일상씨 언제나 화이팅이십니다!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