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지방이고 직장이 대전이라 주말에 집에 내려갔다가 월요일이 되면 새벽일찍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한 남성입니다. 여느때처럼 대전행 버스를 탔는데, 창가 좌석에 20대 초중반쯤 되어보이는 뿔테안경을 낀 귀여운 아가씨가 타고 계시더라구요. 옆으로 힐끗 쳐다보았더니 반팔을 입고있었는데 아침 날씨가 추웠던지 온통 닭살이 돋았더군요. 그래서인지 저랑 팔이 밀착되어도 그다지 싫은 기색을 하지 않더군요 :)
전 제 자리에서 벨트를 매고 도착지 까지 잠좀 자면서 가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 아가씨도 아이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피곤한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러더니 머리가 이리 휘청이다가 저리휘청이다가 "어쩌지" 하고 고민도 하기 전에 저 어깨에 얼굴을 기대는 겁니다. 어깨 빌려주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다 싶었는데 이 아가씨가 뿔테를 해서 그런지 안경이 어깨에 눌려서 좀 아픈거예요 ㅠ
그래서 깨워야 하나? 라고 생각하는데, 신기하게도 아가씨가 자세를 바로잡더니 안경을 벗어 손에 쥐고 다시 잠드는겁니다. 처음에는 창쪽으로 고개를 돌려 자다가 목이 꺾이니까 귀찮은지 제 쪽으로 다시 기대오다가 아예 어깨에 자리를 잡고 자기 시작합니다.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얼굴에, 풋풋한 샴푸냄새까지 겹치니까 두근거려서 잠이 안오더라구요 :)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저도 그 머리에 살짝 기대봤습니다. 아무런 반응없이 잘 자더라구요. 결국 그녀는 제 어깨를 베고 저는 그녀 머리를 베고 사이좋게 잠이 든거죠. (거의 선잠이긴 했지만요)
자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중에 깬 뒤에 눈이라도 마주쳤음 웃으면서 커피라도 한 잔 하자고 하고 싶었는데(늑대의 욕심 ㅎㅎ) 도착하기 직전까지 잠들었다가 도착하자마자 깨어나더니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는데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가씨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요즘처럼 걸핏하면 성추행 문제가 되는 각박한 세상에 초면이던 사람 둘이서 서로에게 의지하여 사이좋게 머리를 기대고 왔다는 사실, 그리고 제 왼쪽 어깨에 아직도 남아있는 그녀의 채취가 제 출근길을 기분좋게 하더라구요~
다시 보고 싶지만 한 때의 인연이라 생각하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새벽6시 시외버스타신 당신. 좋은 추억 만들어주셔서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