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미친 아저씨가 정말!”
당구대 뒤에서 몸을 숙이고 있던 동생이 남자에게 뛰어갔다. 무수히 많이 쌓인 괴물들의 시체 뒤로 또 다른 녀석들의 포효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리는 것 같다. 위험하다. 남자는 몰라도 동생이 다쳐서는 안된다. 발이 저절로 움직인다.
“위험해!”
준우 아저씨의 목소리.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남자에게로 뛰어가는 동생의 모습이 슬로우 화면처럼 보인다.
“크아아아!”
바로 앞. 소리가 가깝다. 동료들의 시체를 무너트리고 괴물들이 모습을 내민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남자와 동생을 보고는 광분하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제길! 소총을 든다. 최대한 녀석들의 머리 쪽으로 겨눈다.
“크아아아!”
잔뜩 흥분한 여러 마리가 동시에 남자와 동생에게 뛰어든다. 내 사격 실력으로 저 많은 놈들을 죽일 수가 없다. 힐끗 뒤를 돌아보자 아저씨와 준우 아저씨도 출입구 쪽으로 소총을 겨눈다.
텁. 텁. 텁.
순식간에 여러 개의 손이 창틀 사이를 꽈악 쥐고 올라오려는 녀석들의 얼굴이 보인다. 부득. 진퇴양난이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 최소한의 행동으로 최적의 성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제길! 어쩔 수 없다. 동생 쪽은 아저씨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창가 쪽으로 총구를 겨눈다. 방아쇠를 당긴다.
두두두두.
소총이 울리며 빠른 총알들을 토해낸다. 그대로 머리에 총알들이 박힌채 나가떨어지는 괴물들. 그 사격을 시작으로 아저씨들의 사격도 시작되었다. 녀석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린다. 대충 고비를 넘기고 동생과 남자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차마 공격을 성공하지 못한 3~4마리의 녀석들과 운 좋게 남자에게 접근한 2마리의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드러내며 남자의 살점을 금방이라도 뜯을 기세로 달려드는 녀석들. 어쩔 수 없다. 총을 들어 남자의 몸을 겨눈다. 이런 식의 공격이라면 총알이 남자의 몸을 뚫어 뒤에 녀석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도 사람이긴 하지만 먼저 죽음을 자초한 것은 저 남자다.
퍼억. 퍼억.
착각일까. 남자를 덮치려던 두 마리의 괴물이 좌우로 멀리 나가떨어진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크아아아!”
기다렸다는 듯 동료들이 뚫어 놓은 구멍으로 꾸역꾸역 괴물들이 물밀듯이 새어나온다. 남자는 머뭇거림 없이 뛰쳐 나오는 괴물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퍼부어댔다.
퍽. 퍽. 퍽. 퍽.
한 방 한 방에 머리통이 깨지고 뇌수를 뿜어대며 쓰러지는 녀석들. 몸 여기저기가 깊게 파여 그대로 피를 토하다가 죽어 버리는 녀석들. 믿을 수가 없다. 저 평범한 남자의 힘이 이정도란 말인가? 우리 모두는 약속이라도 한듯 무차별 학살을 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퍽. 퍽. 퍽.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다. 인간의 모습 그대로.. 괴물들을 장난감 다루듯이 없애 치우고 있다.
“크아아아!”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 상념이 퍼뜩 깨졌다. 나와 아저씨 준우 아저씨는 그대로 창가 쪽으로 다가가 올라오려고 꾸물대는 녀석들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어 주었다.
두다다다.
괴성을 지르며 나가 떨어지는 녀석들. 픽픽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자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다. 아까처럼의 원을 그리듯이 건물을 포위하기만 할 뿐 우리를 보는 눈빛은 굶주린 야수의 그것과 같았다. 빌어먹을 녀석들. 대체 수가 줄어들 기색이 없다. 물론 아까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저 정도의 수라면 가망이 없다.
다시 잠잠해지는 녀석들. 입구 쪽을 돌아본다.
“....”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의 괴물들의 사체가 널려 있다. 하나같이 몸 어딘가가 쪼개져 있다. 쓰레기처리장을 연상케 하는 더럽고 추악한 공간으로 되어 버렸다. 온 몸에 피칠갑을 한 남자가 서서히 뒤를 돌아본다. 붉은 눈이다. 하지만 괴물의 모습은 아니다. 어떻게 된거지?
“아저씨..”
내 말에 아저씨도 남자를 보고 있었는지 아무 말이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해 아저씨도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것 같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은혜를 잠시 바라보고는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걸을 때마다 녀석들의 피가 발바닥에 찍히는 것이 선명하게 눈에 보인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남자의 발자취를 알리는 듯한 피들. 우리는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창문에서 서서히 물러났다. 창문 앞에 도착한 남자는 밖에서 우글거리는 녀석들을 보며 입을 크게 벌렸다.
“크오오오!”
인간의 성대에서 나올 수 없는 소리다. 엄청난 성량과 괴물 특유의 목소리. 귀가 벙벙하다.
“저기 봐!”
누가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창문 밖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괴물들이 건물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붉은 파도들이 넘실거리며 썰물처럼 주욱 빠진다. ‘살았다.’ 그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털썩.
그리고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우린 재빨리 남자를 부축할 생각도 하지 않은채 점점 멀어지는 붉은 빛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소위가 입술을 바르르 떨며 말했다.
“시.. 신발..”
안도감에 내뱉은 말이었을까. 김 대위를 잃은 슬픔에 내뱉은 말이었을까.
“어서 여길 떠야겠어. 준비하지..”
힘 없는 아저씨의 목소리에 우리들은 그제서야 천천히 움직였다. 사방이 온통 괴물들의 피와 살덩이들로 뒤덮여 있다. 역한 화약 냄새와 비릿한 피냄새가 속을 울렁거리게 한다. 아무말 없이 우리들은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 무수히 쌓여 있는 괴물들의 시체를 치워내기 시작했다. 1층으로 내려가려면 어쩔 수 없다.
“우욱.”
헛구역질이 나온다. 아직 온기가 따스한 시체들을 치워내며 역한 냄새를 맡으니 몸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간신히 찾아온 기회다. 이것을 놓치면 다시 녀석들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차례차례 시체들을 치워내자 대강 이동할 만한 공간이 생겼다.
“은혜야. 가자.”
멍하니 이쪽을 보며 서있는 은혜에게 손짓을 한다.
“....”
반응없이 서있는 은혜. 얼른 은혜에게 뛰어가 손을 잡고 출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힘없이 딸려오는 은혜를 보며 모두 당구장에서 나왔다. 후우. 아직도 심장이 떨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뭔가 잊은게 없나? 아, 그 남자!
“아저씨 안에 그 남자가 있잖아요.”
내 말에 아저씨는 들은척도 안하고 계단으로 내려가버린다. 나는 동생에게 은혜의 손을 쥐어주고 당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괴물이건 뭐건 우리에게 적의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를 구해준 남자다. 버리고 갈 수 없다. 다시 역한 냄새들을 참으며 창가 앞에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간다. 푸른 새벽의 달빛을 받으며 눈을 감고 있는 남자의 표정이 편안해보인다.
“도와줄게.”
어느새 다가온 준우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남자를 일으켜 올렸다. 추욱 늘어진 남자의 몸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나와 준우 아저씨는 늘어진 남자의 왼쪽과 오른쪽을 부축하며 빠르게 당구장을 빠져 나와 밖으로 나왔다. 거기에는 아저씨와 동생이 동그랗게 퍼진 괴물들의 시체더미를 대충 치워내고 있다.
“후우. 후우..”
숨이 차오른다. 금방이라도 몸이 쓰러질 것 같다. 5분 정도가 지나자 밴이 지나갈만한 통로를 만든 후 아저씨를 시작으로 우리 모두 밴에 올라탔다. 나와 준우 아저씨는 트렁크 쪽에 남자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거에 대해 아저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부우웅.
시동이 걸린다.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밴.
덜컹. 덜컹.
아직 치우지 못한 괴물들의 시체를 밟으며 낡은 건물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아직 어두운 시각에 운행은 상당히 위험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다시 녀석들이 오는 것에 비하면 이편이 안전할지도 모른다. 밴 앞쪽 전자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우리들은 말없이 총을 꽈악 쥐고 창문 밖을 주시했다. 아직 밤이다. 안전하다고 판단하기엔 일렀다.
부아앙.
점차 속도를 내며 빠르게 이동하는 밴. 그동안 머물렀던 건물과도 이별이다. 그런데 자꾸 뭔가가 허전하다. 좌석을 주욱 훑어보니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들과 함께 했었던 김 대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진지한 모습과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겼었던 김 대위의 표정이 떠오른다.
마지막 괴물의 습격을 받으며 공포에 젖은 표정으로 버둥거리며 괴물의 입을 피하려던 김 대위의 살이 뜯겨져 나가는 모습. 그대로 축 늘어져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모습. 걸신들린 듯 입에 닥치는 대로 살덩이들을 처넣는 괴물의모습.
“큭..”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며 총을 꽉 쥔다. 이 소위는 아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총도 쥐지 않은채로 가만히 앉아 있다. 동생과 준우 아저씨도 우울한 표정이다.
부아앙.
밴의 속도가 점차 높아져만 간다.
휘이잉.
거센 바람들이 얼굴을 때려댄다. 아프지 않았다. 이상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