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방 모처에서 살고 있는 28살의 아줌마입니다.
계약직으로 일하고는 있지만 사무실의 잉여킹이지요.
게다가 지금 둘째 임신중이다보니 사무보조인 저에게 일을 잘 안 시키셔서
더더욱 잉여가 돋고 있습니다;
(월급주시는 사장님께 감사.ㅠㅠ)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저희는 내 집이 음스므로 음슴체로;;
===============================================
사건은 지난 금요일 오전에 벌어졌음.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연유로 봉투(축의금, 찬조금 등등)가 나갈 때는
잉여 돋는 내가 봉투를 인쇄해서 드림.
근데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3분도 안 됐음) 급히 봉투가 필요하셨던지
팀장님이 내 책상에 봉투를 하나 놓고 봉투인쇄용 파일을 찾고 계셨음.
마침 내가 돌아와서 얼른 능숙(?)하게 파일을 찾고 인쇄를 했음.
근데....프린터 잉크가 부족했음;; 봉투에 글씨가 반만 찍힌거임..
응급조치로 프린터를 열어 잉크통을 한 번 흔들어 주고(레이저 프린터 쓰시는 분들은 알거임)
다시 새봉투로 찍으니 아주 선명하고 예쁘게 잘 나와서 흡족한 마음으로
봉투를 드리고 내 책상위에 잘못 인쇄됐던 봉투는 고대로~ 파쇄기에 넣었음....
(봉투에 대표님 이름이 있다보니 악용을 막기 위해 가는 게 생활화 됐음)
하지만 뭐가 문제였을까.....
내가 화장실에 간 것??
봉투인쇄용 파일이 숨겨져 있던 것??
프린터 잉크가 없던 것??
봉투를 확인 안 하고 파쇄기에 넣은 것???ㅠㅠ
그랬음.....봉투 안에는 곱디고운 신사임당 두 분이 계셨던 거임.....
(원래는 빈봉투가 내 책상에 있어서 내가 인쇄해서 드리면 돈을 그 때 넣으시는데..)
모두들 나에게 괜찮다고 포기하라고 잊으라고 말해주셨음.
특히 팀장님은 신경쓰지 말라고 해주셨음.(돈은 사무실 돈)
하지만....트리플 A형이면서 사무실에 잉여돋는 나는 내 일당보다 큰 돈을
갈아버린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음.
파쇄기를 열었음. 다행히 그 후로 아무것도 안 갈아서 갈린 봉투와 돈이 고대로 위에 있었음.
살짝 떠서 모았음.
이 상태임.... 저기 드문드문 예쁘고 구린 노랑색이 보임??
참 곱게도 잘 갈렸음.
올해 새로 구입한 파쇄기가 있는데 그 녀석 안 쓰고 예전 녀석에 갈았는데
예전 파쇄기가 더 곱고 예쁘게 갈아줌.ㅠㅠ
눈물을 머금고 일단 하나하나 돈 조각을 분리해냈음.
봉투랑 같이 갈다보니 봉투 사이에 두 장이 낑겨있는 게 많아서 두장씩 분리해내고
따로 떨어진 것들은 주워서 한쪽에 뭉쳐놨음.
생각보다 조각모음은 어렵지 않았음.
사진이 좀 커보이는데 실제 크기는 길이 약 1.5cm,
넓이는 2mm 정도 됨.
차분히 조각을 다 모으는데 1시간이 걸렸음.
그 와중에도 다들 괜찮다 포기하라 그러고, 팀장님은 무리하면 안 된다고
그거 맞추기 시작해서 못 맞추면 2배로 물어내라고 할 거라고
협박 아닌 협박도 하셨음.
그래도 난 꿋꿋이 해 나갔음.
일단 5만원짜리 하나를 더 빌려서(내 지갑엔 그런거 없음.ㅠㅠ)
책상위에 붙이고, 그 위에 손코팅지를 잘라서 올렸음.
그리고...그 때부터 내 길고 지루한 싸움은 시작된거임.
일단 그나마 좀 쉬운 신사임당님 얼굴부터 시작했음.
근데...이게 한장도 아닌 두장이다 보니 섞여서 헷갈림.ㅠㅠ
이쪽에 붙였다 저쪽에 붙였다를 반복하며 금요일 오후 내내 이만큼을 맞췄음.
이만큼만 보고도 사무실 사람들은 대단하다, 어떻게 하냐,
몸 괜찮냐, 무리하지 마라 날 걱정해주셨음.ㅠㅠ(우리 사무실 사람들 정말 훈훈 돋음)
주말에 집에 가져가서 맞춰보려고 했으나 집에는 미운 세살이라는
파괴본능이 살아있는 아드님이 계셔서 패스...
월요일 출근 후 다시 일을 시작했음.
중간중간 내 일도 해야하다보니 조금 더디긴 했으나
내가 괜히 사무실의 잉여킹이 아님.
한 조각 한 조각 정성을 다해 맞추다보니
어느새 나는 득도라도 할 것 같았음.
새삼 우리나라 돈이 참 오묘하고 대단하다는 걸 느낌.
그냥 막 만든 것 같은데 배경에도 묘한 무늬들이 이어지는 것이 한 조각도 놓칠 수 없음.
신사임당 머릿결 본적 있음?? 완전 비달*순 돋음. 한올한올 살아있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왼쪽의 홀로그램임.
홀로그램 안에 온갖 삼라만상(?)이 살아있는 것 같ㄱ...는 개뿔.
그림이 이래저래 얼비쳐서 눈 빠질 것 같음.
진짜 홀로그램에서 포기하고 싶었음.
하지만 나는 견뎌냈음.ㅠㅠ
그리고....파쇄기 통을 세번을 뒤지고, 조각모음한 것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으나
찾지 못한 부분들과,
내가 아무리 잉여킹이라도 극복할 수 없었던 하얀부분...(신사임당님이 숨은 그림으로 계시는 부분)
완성본임.
지폐는 3/4 이상만 있으면 전액 교환이 가능하다함.
(그 이하는 반액임)
눈물을 머금고 완성본을 가져가는 나에게 회사분들은 대단하다 해주셨음.
그리고....다시 빳빳한 모습이 되어 돌아온 신사임당 두 분을
총무 계장님께 드리자 계장님은 말을 잇지 못하셨음...
포기했던 돈이라고..ㅠㅠ 잊으려고 하셨다함.
맞추면 너에게 주겠다고 하셨던 팀장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심....
그냥...대단하다는 말 밖에;;
총무 계장님은 이 돈으로 맛난 것을 사주겠다 약속하셨음.
난 사무실 돈을 축내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할 뿐임.
뱃속에 우리 둘째 머리가 쑥쑥 좋아지는 것이 느껴짐.
제대로 태교했음.
마지막으로 이 못나고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저에게
무한한 이해와 배려를 해주시는 사무실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한국은행 님들....
정말 존경하고 죄송합니다.
다시는 돈 안 갈을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