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눈을 떴을 때, 남자의 눈앞에는 온통 공허한 어둠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았는지, 애꿎은 눈만 괜히 슴벅거렸다. 꼭 이 상황이 꿈이나 되는 것인 양. 하지만 이 상황은 꿈이 아니었으므로, 눈을 슴벅거린다고 이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멍하니 누워있던 남자는 곧 이 사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라는 들을 사람 없는 무의미한 중얼거림을 시작으로, 남자는 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확인하는게 우선이었다.
평상시 일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일단은 팔로 땅을 짚은 후, 상체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일어나는 것의 반은 성공했지만, 남자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머지 반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하체를 일으키려 할 때, 사지가 자신의 명령을 거부한다는,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놀라 자빠져야-비록 누워있으니 자빠질 수는 없더라도-마찬가지인 일이었지만, 남자는 일반 사람들이 그 상황-하반신마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담담한 반응을 보여줬다. 남자는 짜증을 냈다.
남자가 하반신마비라는 상황에서 짜증을 낸 데에는 일반 사람들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명료한 이유가 있었다. 남자는 당황하거나 심한 충격을 받으면 하반신마비가 온다는 전례 없는 희귀한 증후군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됐건 남자는 자신의 증후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곳에는 어떠한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을듯한 짙고 농밀한 어둠만이 존재했다. 남자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아직 암순응이 되지 않아서 이렇다고 쳐도 무언가가 이상했다. 분명히 이 어둠은 기이했다. 불빛 한 점 없는 방안에 들어와 있다 해도 자연적인 빛 때문에라도 최소한 자신의 몸 정도는 볼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이질적인 심연의 어둠은 그것조차도 거부했다. 생각해볼수록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에 남자는 온몸에 오한이 끼쳐왔다. 마비가 다 풀릴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으나, 이제 그 시간조차 아까웠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급격히 고동쳤다.
어쩌면 요행이 출구를 빨리 찾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단은 1M라도 더 전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판단한 남자는 두 팔을 이용해서 어두운 방 안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의 두 팔은 점점 굳어가고 덜덜 떨려왔다. 온몸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쉬고싶다...
그때 거의 굳어버린 남자의 손이 무언가에 닿았다. 예상치 못한 것에 화들짝 놀란 남자는 천천히 그 물체를 만져보았다. 사람의 발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까무러칠 듯한 충격이 전신을 마비시켰다. 하지만 일단은 손에 잡힌 물건을 치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남자는 반사적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 시체를 무심코 밀었다. 그러지 그 즉시 그 물체가 홱 하니 밀쳐졌다. 사람의 시체라고 치기엔 너무나도 가벼운 무게에 남자는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에 떠밀린 듯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사람의 시체가 아니었다. 그저 발뿐이었다.
한참 동안 비명을 지르고 나자 속에서부터 토기가 치밀어 올라왔다. 한참동안 속을 게워내던 남자는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억지로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토사물이 자신의 몸에 묻는 것을 느꼈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각이라도 빨리 이 끔찍한 지옥을 벗어나야 했다. 일단 한 방향으로 계속 가다보면 방이 무한이 아닌 이상에야 벽이 나올 것 이었다. 그리고 벽을 따라서 한 방향으로 계속 돌다보면 역시 문이 나올 거다. 그러면 그냥 그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간단한 일이었다. 문이 잠겨있을지도 모르지만 남자는 그 가능성을 아예 배제해버렸다. 방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가능성은 꿈에서라도 생각하기 싫었다.
벽까지 도달하는 여정은 끔찍한 고통에 헌정된 것이었다. 옷은 식은땀과 노동으로 인한 땀으로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몸에 묻은 토사물이 거치적거릴 테지만 남자는 닦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사실, 남자는 자신의 몸에 토사물이 묻은 지도 모르고 있었다. 더 이상 가지 못한다, 어쩌면 벽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골백번 되풀이했지만, 결국은 벽에 도착했다. 이미 체력의 한계를 초과해버린 몸은 처량하게 떨려왔다. 아직도 마비는 풀리지 않았다. 숨 막힐 듯한 고통과 두려움이 섞인 비통한 울음이 흉부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태평하게 울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도 이곳에서 토막 난 채 비참하게 죽을지 몰랐다. 이 방을 탈출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눈물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남자는 눈물로 자신을 위로하며 벽을 따라 방을 빙 돌기 시작했다.
이윽고 손에 무엇인가 이질적인 것이 만져졌다.
지금까지 손에 닿던 것과는 촉감이 달랐다. 약간 까슬까슬하고도 단단한 물체가 만져졌다. 거의 의식을 잃어가던 정신이 한순간 돌아왔다. 남자는 허둥지둥 서두르며 떨리는 손으로 그 약간 위를 만져봤다. 얇은 금속성의 물체가 만져졌다. 문이었다. 한참동안 두 팔로만 기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민활하게 몸을 일으킨 남자는 문고리를 잡았다. 아니,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발은 야속하게도 미끄덩하니 미끄러졌다. 남자는 자신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하반신에 욕설을 퍼부으려고 했으나, 다리 끝에서부터 온 몸을 잠식해나가는 짜릿한 통증 덕에 무산되었다. 보통은 더 심한 말을 무의미하게 내뱉겠지만, 남자는 이것이 마비가 풀려오는 신호라 생각했다. 남자의 만면에 화색이 감돌았다. 이제 곧 있으면 이 방을 탈출한다. 오직 이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이어 행복함은 사그라졌다. 그리고 그 덕에 감정의 격류에 파묻혀있던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미끄러지다가 나는 분명히 스위치를 만졌다.
그 생각을 떠올린 남자는 허둥거리며 스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문고리보다 스위치가 더 낮은 곳에 있던 까닭에 남자는 상체를 치키는 것으로 간단하게 스위치를 누를 수 있었다. 이제 마비가 풀릴 때까지 심연의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된다. 이제 되었다. 이제 나가는 것만 남았다. 기다리는 시간도 두렵지 않다 이제 됐다.
스위치를 누른 뒤 곧이어 불이 깜빡깜빡 명멸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심장은 명멸하는 불빛에 맞춰 두근두근 불안하게 뛰었다. 불빛이 명멸하는 것도 잠시, 이윽고 온통 밝은 빛이 남자의 동공에 왁살스럽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남자는 눈앞을 새하얗게 가리는 빛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보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남자는 초월적인 두려움과 아연함에 졸도했다. 그 무언가는...
못쓰지만 용기 내서 올려봐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