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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위해 뛰어라6~10

왕보리 |2012.06.02 13:15
조회 1,065 |추천 1

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과메기의 꿈 님 >

 

6화-The Runner


"우.. 우아아아아악!"


내 살면서 이렇게까지 겁먹은 적은 정말 없었다.

공포영화를 보다가 머리 위에 물에 젖은 수건이 떨어져 목을 타고 흘러내려도 이것보단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아니 이건 겁먹네 뭐네 하는 차원이 아닌가.. 무엇보다 이건 실제상황이니까!


여유를 부리던 우리들은 칼 루이스처럼 뛰어오는 두 마리의 좀비들을 보고 정말 혼이 빠진듯

비명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제일 빨리 달리기 시작했던 나는 몇 걸음도 달리지 않아 욕설을 뱉으며 가방과 짐을 빠르게 내려놓고

무기를 집어들었다. 나를 지나쳐 달려가던 윤호가 멈춰서서 말했다.


"뭐해 또라이야! 죽을라고 환장했어?"


"미친놈아 잘 봐! 저새끼들 달려오는 속도를!"


"우.. 우와!"


좀비들과의 거리는 10미터도 채 안됐다.

저기서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았다.

양팔을 힘껏 흔들면서 새하얗게 까뒤집은 눈으로 온 얼굴에 방금까지 씹어먹던

시체의 살점을 붙인 채 달려오고 있는 놈들의 형상은 정말이지 끔찍하고 공포스러웠다.

좀비를 벌써 다섯마리 넘게 죽여보았지만 이건 정말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는 아까 만든 식칼창을 오른손에, 방금 얻은 손도끼를 왼손에 들고 이쪽 길가의

가드레일 안쪽에서 대기했다. 이제 5초도 안 남았다.


윤호가 마구 소리를 지르며 태완이를 붙잡았다.

두 녀석이 내 바로 옆에서 짐을 마구 풀러내리면서 무기를 챙기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녀석들에게 신경쓸 겨를 없이 신나게 달려오고 있는 좀비들을 주시하며 놈들을 처리할 준비를 했다.


"께에에에아아악!!"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를 훑고 지나가는 듯한 소름끼치는 좀비의 괴성이 들려왔다.

좀비가 바로 근처까지 오자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꾹 눌러 참으며 오른손에 들고 있던

식칼창을 힘껏 던지고 왼손에 들고 있던 손도끼를 오른손으로 고쳐잡았다.

물론 창 던지기 같은 건 20년 살면서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나의 손에서 날아간

잡동사니 창은 조금 더 가까이 있던 좀비의 가슴에 맞고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조금 주춤한 그 좀비의 뒤에서 다른 좀비가 확 튀어나오자 나는 죽기살기로 놈의 머리에

손도끼를 꽂아넣을 준비를 했다.


"신발! 와라!"


"께에아아아악!!"


와당탕탕 쨍그랑


100미터를 8초 안에 주파하고도 남을 것만 같은 속도로 약 20미터쯤을 달려온 좀비는,

내가 차마 도끼를 휘두르기도 전에 내 앞에 있던 가드레일에 아랫배를 박고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면서 내 뒤에 있던 편의점의 유리창을 뚫고 들어가 온몸에 유리파편을 박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


"..미친새끼."


완전이 넋이 나간 우리 셋은 그 좀비를 쳐다보고 있다가,

뒤에서 남은 한 놈의 소리가 들려 황급히 뒤를 쳐다보았다.

그 놈 역시 아까 내 창을 가슴에 맞고 잠깐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는 순간

가드레일에 부딪혀 균형을 잃고 힘차게 보드블럭과 키스를 했다.

코가 깨지고 입술이 터지는 격렬한 키스를.


나는 다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놈의 뒤통수에 손도끼를 꽂아넣었다.

개박살이 난 편의점 대문 쪽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리자 윤호가 달려가 그 좀비가 일어나지

못하게 쇠파이프로 복날 개 패듯 두드리는 걸 보고 태완이가 말했다.


"지.. 진짜 죽는 줄만 알았어, 이번엔.."


"아아.. 나도 간 떨어진 뻔했다 진짜."


나는 좀비의 머리에 꽂아넣은 손도끼를 회수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쇠파이프에 피칠을 하고 숨을 돌리고 있는 윤호를 바라보며 내가 외쳤다.


"이 미친놈아. 너 한번만 더 쓸데없는 짓 하면 내가 죽여버릴거야! 가드레일 없었으면 우린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썅!"


"미안해. 나도 진짜 놀랐단 말야."


나는 아직까지도 가슴판을 뚫고 나와서 펌프질을 하고 싶어하는 심장을 억누르면서 내가

방금 처리한 좀비를 바라보았다.

정장을 입고 있는 것이 어딘가의 회사원인 듯 했다.

아니면 회사일이 끝나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찰나 변했다던가..


"으.. 가슴이 아파진다."


좀비들이 인간일 때를 상상하면서 자꾸 생각하면 쓸데없이 감상적이 되어 비정해지지 못한다.

괴물이 된 사람에게 쓸데없이 동정을 베풀다 죽는 건 공포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죽음의 방정식.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좀비의 머리에 발을 갖다대고 손도끼를 뽑았다.

뿌직 하는 소리가 내 귀를 타고들어가 등골을 오싹하게 하며 손아귀의 힘을 빼버리는 바람에

나는 금방 뽑아낸 손도끼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잔인하게 쪼개진 좀비의 뒤통수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아닌 무언가를 살짝 보고 만

나는 구역질을 참으면서 녀석의 머리를 발로 밀어 차도 쪽으로 떨어뜨렸다.

윤호가 숨을 몰아쉬면서 짐을 다시 챙기자 태완이도 같이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피묻은 손도끼가 식량에 묻는 걸 피하기 위해 손도끼를 한 손에 들고 나머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가방을 뒤에 메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좀비들은 원래 달릴 수 있던 건가?"


태완이가 뽑았던 검을 칼집에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아닐걸.. 아까 실험을 그렇게 했는데 달리는 놈은 하나도 없었어. 그리고 우리가 처음 싸웠을 때도 놈들이

달릴 수 있었다면 분명 달렸을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지.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변종이 있다는 건가."


내가 태완이의 말을 잇듯이 말했다.

이건 정말 개같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안 좋은 건, 그 변종들을 가려낼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저쪽에 좀비들이 수십마리 몰려있고 그 곳을 안전히 지나가야 하는데 그 틈에 달리는 놈들이 있을지 없을지,

아니면 죄다 달려올지(이건 좀 무섭다) 모른다는 건 생존에 있어서 상당한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그럼 뭐야. 다른 변종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 아냐?"


윤호가 말하자 나는 도끼를 가드레일에 캉캉 부딫혀 피를 털어내면서 말했다.


"아마도. 제기랄 상황 진짜 엿같이 돌아간다. 안 그래서 무서워 죽겠고 힘든 판에 달리는 좀비라니.. 만약에

막 네 다리로 뛰어다니면서 펄쩍펄쩍 뛰는 놈들이 나오면 어쩌지?"


"..죽는거지 뭐."


태완이의 말이 내 가슴을 후벼팠다.


우리는 진작의 목적었던 바깥상황을 살펴보는 일은 까맣게 잊은 채,

지치고도 지친 발걸음을 끌며 집으로 돌아갔다.

걸어서 왕복 20분거리인 짧은 도로에서 생긴 일들은 몇 주일치의 피곤이 되어 우리의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희망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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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보를 일단 종합해보자구. 집에서 돌아가는건 뭐뭐야?"


"냉장고, 전자렌지 다 돌아가. 가스도 안 끊어졌고. 아마 발전소는 무사한가봐. 전기공급이 되고 있는 것 같아.

다만 전화가 먹통이야."


집에 돌아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사정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대충 좀비들의 힘과 생존전략을 깨우치기

시작한 터라 조금 더 계산적이 되어 우리의 일차 방공호인 집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집의 상태를 체크한 뒤 알아낸 사실 중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전기가 아직 공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우리처럼 집 안에서 농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냉장고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굶어죽기 십상이었다.

거기에 인터넷도 되니 상황을 살피기도 쉽다.

다만 방송국 같은 미디어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는지 TV는 KBS 하나만 나오고 있었고

전화 역시 국선은 막혀버렸다. 되는 것은 휴대폰 뿐. 그나마 그것도 언제 막힐려는지..


"다른 전화할 놈들은 없어?"


"있지 그거야. 근데 방금까지만 해도 우리 코가 석자였는데 뭐.. 제기랄, 우리 말고 모임에 간 놈들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


집에 돌아온 뒤 우리는 한 명씩 샤워를 하기로 했고,

일단 샤워실에 들어간 태완이를 뒤로하고 윤호는 친지들 외에 우리집 근방에 올 확률이 있거나

살거나 하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녀석들은 '단 한 명도' 받질 않았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다.. 가버린.. 걸까."


"글쎄."


우리는 어느 쪽으로도 확답을 하지 않았다.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몸에 튀겨 말라버린 피딱지를 떼어내던 나는 손을 탁탁 털고 TV를 틀었다.

KBS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건 방금 확인한 일이지만, 그 KBS마저도 '준비중입니다' 라는 대사를

띄워놓은 채 아무 응답이 없었다.

나는 혀를 차며 우리가 가져온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기를 종류별로 구별해놓고 있는데 윤호가 스로잉 나이프를 꺼내며 말했다.


"뭐야 이거? 검? 너무 작잖아."


"그거 던지는 단도야."


"뭐? 니가 닌자냐? 이딴 걸 뭐에 쓰게?"


"뭐에라도 쓰겠지, 가지고 있으면."


개인적으로 나이프 스로잉에는 일가견이 있는 몸이다.

5미터 밖에서 튼튼한 나무에 단도를 던져 깊숙히 꽂을 수 있을 정도로,

가능하다면 이력서를 쓸 때 특기로 쓰고 싶을 정도다(무슨 직업이냐 그게).

글쎄, 좀비 마빡에 대고 던지면 죽을지 몰라도 뒤통수에 꽂아넣으면 충분히 죽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장거리 무기 이야기가 나온 김에 태완이가 철물점에서 챙긴 타정총을 집어들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윤호가 그걸 보더니 아는척을 했다.


"우오! 타정총이네? 그거 어디서 났어?"


"태완이가 챙겼어."


"나 그거 써본 적 있는데. 근데 그거 앞부분에 안전장치.."


"알어. 이건 비교적 간단한 구조라 내가 누르지 않고도 쏠수 있게 개량해놨어."


내게서 타정총을 빼앗아 잠깐 그걸 살펴보던 녀석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다시

총을 건네주었다.

윤호는 내가 타정총의 장전방법을 알아내느라 부시럭거리고 있는 걸 가만히 보고 있더니 말했다.


"그거 화약식이지? 들고온 거 보면. 콤프레셔 같은 원리라면 들고다닐 수도 없을 테니까."


"웬일로 머리가 있는 놈처럼 말을 하냐?"


"이 쉬키가.."


우리가 킬킬대고 웃는동안 태완이가 목욕탕에서 나왔다.

뭐 이쯤에서 여자애 한 명쯤이 샤워를 하러 들어간다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자가 없어서 말이지..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농을 던지는 내가 한심해 코로 한숨을 내뿜고 있자니

어제 우리집 앞을 스쳐지나갔던 누나가 기억났다.

달리기 힘든 옷에 하이힐까지 신고 있었는데,

아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겠지만 살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투퍽


"우악! 뭐야뭐야?"


"아하하, 쏘리 쏘리. 타정총 실험발사좀 해보느라."


멍하니 혼자만의 정신세계로 날아가있는데 갑자기 뭔가가 퍽 하고 꽂히는 소리가 터지자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윤호놈이 그새 타정총을 가져가 내 근처 벽에 쏘아 본 것이다. 나는 윤호에게서 타정총을 신경질적으로

뺏은 뒤 기왕 실험발사를 해본 김에 못이 박힌 벽 쪽으로 걸어가 타정총의 위력을 가늠해보았다.


윤호가 있던 곳으로부터 벽까지는 대략 3미터 하고 반.

근데 못은 반 이상 들어가있었다.

그것도 아주 곧게. 이 정도라면 약 6~7미터 까지라도 꽤 위력적인 사격이 가능할 것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은데 내가 뭘 아나. 직접 해봐야 알겠지 뭐.

이게 친구들끼리의 장난이라면 잘난척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실제상황.

'이렇겠지 뭐' 했다가 저렇게 되면 그 자리에서 끝이다. 말 그대로 죽는 것이다.


내가 다시 장전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살펴보고 있는데

안방에서 태완이가 머리에 수건을 쓰고 나오며 말했다.


"어~ 뭔 소리야? 퍽 하는 소리가 났어!"


"김윤호새끼가 우리집 벽에다가 타정총을 쐈어. 실험사격 해봤대."


내가 타정총으로 윤호를 쏘는 시늉을 하며 말하자 태완이고 윤호한테 수건을 확 던지면서 나무랐다.


"야아! 그거 진환이가 멋대로 개조한거라 이상한데로 튈 수도 있다구! 혹시 누가 다치거나 컴퓨터같은 소중한
물건이 고장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아이고 알았습니다. 두 분 고정하시죠.. 안 그래도 나도 뛰는 좀비들 사건 때문에 반성중이었어."


"아 그러고보니 까먹고 있었잖아 이 자식! 너 그거 어떻게 책임질거야!"


"책임이라.. 헤헤, 나중에 우리가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지면 내가 희생하는 걸로 하지 뭐."


윤호가 실실 웃으면서 말하자 나는 가만히 있다가 정색하며 말했다.


"새꺄. 그딴 말 하지 마."


"어..? 왜 화를 내고 그래 야?"


윤호가 놀라서 내게 묻자 나는 녀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똑똑하게 말했다.


"몰라서 묻냐? 그딴 말 다신 하지 말라고. 우린 살아남는거야. 그렇게 정해져 있고. 너희 부모님도, 태완이네

누나도, 다른 친구들도. 그러니까 절대 그딴 말 다시 꺼내지 마. 다음에 그딴 소리 하면 가만 안 둘줄 알아."


"어.. 알았어."


윤호는 내 태도에 맞대고 화를 내려다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건 정신력. 그리고 파트너가 있다면 더욱이 중요한 건 결속력.

뭐 솔직히 말해 평범한 스무살인 우리들이 이렇게까지 헤쳐나왔으니 아직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해도 되겠지. 태완이는 마치 선생님처럼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더니 주저앉아 장갑을 끼면서 짐을 뒤적거렸다.


"어쨌든 지금 기회에 빨리 무기 정리부터 해 두자구."


"그게 좋겠다. 무기도 많으니까 각자 전용무기 골라놓고.. 지금 세 번째로 말하는 거지만, 무슨 게임같다."


"야 김진환 나 그 손도끼 주라."


"싫거든?"


우리는 도장과 철물점에서 가져온 무기를 좍 늘어놓고 서로 상담을 하면서 무기를 골랐다.

일단 선택방침은 이렇다. 농성용 무기, 휴대용 무기.

이렇게까지 할 것도 없다고 할 녀석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각자가 챙겨야 할 물건들이 정리되어 있고 안 되어있고는

무지막지하게 큰 차이로 다가온다.


약 5분간 웅성거리던 우리들은 드디어 무기의 정리를 끝냈다. 일단 내가 들고 다닐 무기는 이렇다.

아까 얻은 손도끼, 우리의 슈퍼 식칼창, 비도(飛刀) 3자루와 서바이벌 나이프.

식칼창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위로 다시 올라가 쌓여있는 파이프들 중 상대적으로 견고하고 가벼운

재질의 녀석을 골라와 다시 만들었다.

식칼창과 손도끼 중 뭘 손에 들고다닐까 하다가 식칼창이 견제하거나 밀어낼 수도 있고 등에

지고다니거나 하기엔 너무 위험해서 들고다니기로 정했다.

손도끼는 내가 우리 아버지 벨트를 이용해 만든 자그마한 가죽홀더를 이용해 바지춤에 달고다닐 수 있게 했다.
홀더와 바지를 고정시킨 방법은 스테이플러. 비도는 자켓 안주머니에 넣고 서바이벌 나이프는 위급시

바로 뺄 수 있도록 기존에 같이 딸려오는 칼집을 자켓의 왼쪽 어깨부분에 거꾸로 붙여버렸다.


태완이의 무장은 물론 진검, 타정총, 그리고 위급시를 위한 서바이벌 나이프.

내가 사격장 경험이 있어 타정총을 들겠다고 했더니 너는 비도로 만족하랜다.

쳇. 타정총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 이 물건은 10연발로 사격이 가능하고 발사하는 못의 길이는

가운뎃손가락 하나 정도. 위력은 인간에게라면 치명적이겠지만 좀비에게는 글쎄.. 쏴보아야 알 일이다.

검에 대해서는 내가 머리를 부수기 위해선 목도가 낫지 않겠냐 했더니 그런 일은 너희 일이라고 한다.

뭐 비꼬는 게 아니고 사실 목도가 일차적으론 쓸모가 많겠지만 진검의 위력이 절실해질

상황이 있을수도 있으니 나는 군말없이 녀석 마음대로 하게 두었다. 총도 있으니 뭐..


윤호의 무장은 혼자 운좋게 챙긴 알루미늄 배트와 장도리, 그리고 역시 위급시를 위한 서바이벌 나이프.

뭐 딴 말이 필요하랴. 무력화시킨 좀비를 완전히 잠재우는 역할이다.

윤호는 앞으로 나갈 일이 더 있으면 일단 배트를 써 보고 목도를 쓸지 배트를 쓸지

정하기로 했다고 내게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내가 견제하고 태완이나 윤호가 처리하는 이지선다의 전략이

우리의 주 전투방식인 것으로 결정이 났다.

뭐 나도 손도끼라는 물건이 있으니 결정타를 먹일 수도 있고..

아무려면 어떠랴. 어쨌거나 밖에 나갈 일이 생겼을 시 살아남는 것이 관건이다.

포메이션따위 정해봤자 탁상공론일 뿐이다.


간만에 여흥 아닌 여흥을 즐긴 우리는 나머지 수확품들을 정리하느라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순간 내 바로 옆에서 도어벨이 울렸다.


띵동


"어?"


우리는 한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도어벨을 울리는 스피커를 쳐다보았다. 내가 다른 두 녀석에게 말했다.


"생존자다! 미친,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우리집에 올 줄이야! 골목에 좀비들이 없어졌나?"


"가만 있어봐. 좀비가 걸어다니다가 운좋게 누른 걸수도 있어."


이런 상황에서 우리집 도어벨이 카메라까지 딸린 고급형이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아까 착용하고 있던 무장을 풀지 않은 채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 정찰스팟으로 올라갔다.

다행이도 그 사람은 생존자였다.

넷이나 되는 사람들이 우리 집 앞에서 지친듯 숨을 몰아쉬며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를 확인한 뒤 좀비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자 우리는 조용하게 말했다.


"생존자인가요?"


그들은 대문만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들의 왼쪽 벽의 위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깜짝 놀라며

우리들 쪽을 쳐다보았다. 우리들은 수그리고 있던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지금 문 열어드릴게요."


우리는 아래로 내려가 대문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안으로 들어왔고,

우리의 안내에 따라 집 안으로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마루에 엎어진 그들을 살펴보니 여자가 셋, 남자가 하나였다.

우리집 바로 앞 홍대의 학생들인지 옷차림들이 꽤 화려했다.

무기 하나 들고있지 않은 그들을 보며 내가 말했다.


"어쨌든 반가워요. 좀 설명해주실래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아아.. 정말 고마워요. 정말로. 정말 당신들 덕분에 살았어요."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는 불안해하고 있는 여자들을 쳐다보곤 말했다.


"일단 통성명부터 하죠. 제 이름은 이수정. 홍대생입니다. 그쪽은?"


"난 김진환이예요. 이집 주인. 스무살이니까 말 놓으세요. 이런 상황에.."


"김윤호예요."


"김태완입니다."


우리가 차례차례 소개를 하며 무기를 내려놓자 한 여자가 찔끔하며 수정형의 뒤로 돌아갔다.

꼴을 보아하니 방금 전에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운좋게 도망쳐온 모양인데..

바로 앞이 대학로라고는 해도 홍대에서 여기까지 20분은 걸린다.

그 거리를 무사히 헤쳐오다니 정말 무슨 수가 있었던 건지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건지.


내가 여자들을 뜯어보고 있는데 수정형이 말했다.


"그럼 일단 편히 말할게. 나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었어.. 홍대가 저 위에 있는건 알지? 편의점은 홍대거리

언덕에서도 후미진 곳에 있는데, 옥상도 있고 하여튼 그런 곳이야. 내가 어젠가 옥상에 올라가서 짐정리를

하고 있는데 그.. 그것들이.."


"좀비요?"


내가 말하자 수정형은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어두운 웃음을 머금으면서 말했다.


"그래, 너도 좀비라고 하는구나.."


형은 웃음을 거두고 우리의 옷차림과 사방에 흩어져있는 무기들을 보면서 말했다.


"뭐 너희들 복장을 보면 알겠어. 이미 놈들과 싸워본 거야?"


"예 뭐 조금은. 죽을뻔했지만 대충 이렇게 살아났어요."


"대단하구나."


방금은 산책도 하고 왔답니다.. 라는 말은 안 해도 되겠지.


수정형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편의점 옥상에서 좀비사태를 지켜보게 된 것 같았다.
다행히 평소에도 인적이 적은 곳이라 계속 정찰만을 하며 하루를 보낸 형은 더이상

 고립된 것을 참지 못하고 그곳을 목숨걸고 빠져나온 듯 했다.

같이 온 여성 셋은 달려오던 길에 만난 사이로, 아직 이름도 모른다고 했다.

참 나, 그럼 아까 왜 우리가 무기 내려놓을 때 수정형 뒤로 돌아간거야?

그새 만났다고 친한척 하는 거야 뭐야..


어쨌거나 무쟈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나저나 그렇게 정신없이 아래쪽 마을까지 내려왔는데 도중에 만난 사람이 셋이나 된다면

아직 이 근처엔 사람들이 엄청 많이 살아있다는 뜻이 된다.

나는 아까 밖에 나갔을 때 조금 더 사람들의 기척을 살피지 않을 걸 후회하며 말했다.


"그럼 이제 거기 누나들 얘기좀 들어보죠. 니 이야기도."


다시 보니 여자들 중 한 명은 교복을 입고 있길래 내가 말을 살짝 바꾸었다.

뭐 보나마나 미대입시생이겠지. 한여름에 고생 많구나 너도.


"저기 저는.."


그 아이가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갑자기 윤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황급히 폰을 꺼내든 윤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녀석이 외쳤다.


"이재복이야! 와 이새끼 살아있었어! 푸하핫! 복어새끼!"


녀석은 순수하게 기쁨으로 가득찬 목소리로 외치며 전화기의 폴더를 열었다.


"야 이재복! 너 어디야 임마? 좀비 봤냐?"


-윤호야.. 도와줘.


"어? 야 얘들아 이새끼 이상해!"


재복이는 나와 태완이랑도 친한 사이다. 우리는 다같이 휴대폰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야 이재복 무슨일이야!"


-지금 망원역 옆에 서점인데.. 여친이랑 데이트중에 고립됐어. 그 무슨 미친자식들이 도로에 가득해서..

아 신발! 어떻게 해 나..


"진정해 이재복. 망원역이라고 했지? 좀비들한테 데이트중에 둘러쌓였구나. 운좋은 새끼."


내가 말하자 재복이가 대답했다.


-어. 틀림없어. 망원역 옆에 고래서점.


"알았어. 구하러 갈게."


-뭐.. 뭐라고? 진짜? 어떻게?


"우리 지금 셋이 모여있는데, 무기도 있고 대충 어떻게 싸워야 할 지도 알아. 지금 당장 갈테니까 기다려."


-알았어. 정말 고맙다. 그럼 기다릴게.. 자꾸 소리를 내면 녀석들에게 들켜.


"좋아. 죽어도 살아있어라."



전화를 끊은 윤호는 허겁지겁 무기를 챙겼다.

막 이야기를 꺼내려던 여자애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우리를 멍하니 쳐다보자 수정형이 우리에게 외쳤다.


"너희들 미쳤어? 지금 밖은 밤이라고! 그리고 밖은 그.. 그 좀비들로 넘쳐나는데 어딜 가겠다는 거야!

망원역이라면 나도 알아! 여기서 걸어서 20분 거리잖아! 거길 어떻게 가서, 또 올 땐 어떻게 오려고 그래!"


"형. 나 지금 형이랑 누나들을 받아들인 걸 후회하게 되려고 하네?"


"뭐?"


나는 식칼창을 수정형에게 겨누면서 말했다.


"댁들 거두어준 건 '아직까지는' 식량이 있고, 이런 상황에서 거들 손이 늘어날 수 있으니까 거둔거였어.

무기라면 충분히 있으니까 집어들고 같이 갈 준비 해요."


"무.. 무슨! 안 가 나는! 절대로!"


"그러면 이 집에서 나갈 준비 하던가!"


내가 식칼을 휘두르며 위협을 하자 태완이가 나를 막으며 말했다.


"진정해 진환아. 이 분들은 지금 막 왔는데 뭘 어쩌겠어. 많이 지쳐있을 거야."


"그.. 그래요!"


"우린 안 갈 거예요! 어허어엉.. 그 놈들은 이제 정말 보기도 싫단 말예요!"


"내.. 내 눈 앞에서 남친이 뜯어먹혔.. 흐흑.. 뜯어먹혔어요.. 난 정말 안 나갈거야.."


나는 미간에서 힘을 풀면서 말했다.


"미친.. 그딴식으로 울고 있어봤자 지금 도움되는거 하나도 없거든요? 당신들 그러면서 식량 축내고 있을거면

진짜 조만간에 쫓아낼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해요. 아 그리고 만약 우리가 돌아왔을 때 배신을 때린다던가 하면.."


나는 식칼창을 마루에 꽂고 장갑을 끼면서 말했다.

덜덜 떨면서 울고있는 여자들 옆에, 꼭 밤새워서 밀린 숙제를 데드라인에 맞춰 겨우 해왔는데

알고보니 딱 한 가지 숙제가 더 있어서 점수가 깎이게 될 상황에 처한 학생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수정형에게 윤호가 다가가서 말했다.


"형. 지금 우린 정말 중요한 친구를 구하러 가는 길이예요. 좀비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지 않아요.

뭐 좀 변종도 있지만.. 하여간에 여기서 있어봤자 어차피 언젠가는 식량을 구한다던가 하러 나가야 할 텐데

지금 경험해두는게 어때요? 우린 정말 급해요. 형이 빗자루만 들고 같이 나서줘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으으.. 미안해, 하지만 난 정말.."


수정형이 덜덜 떨면서 웅크려앉자 태완이가 말했다.


"괜찮아요. 우린 지금 한시가 급하니까 나가볼게요. 근데 다들 이거 알아두세요. 정말로 겁에 질려서

우리 배신때린다던가 하면 안돼요. 정말이예요. 일단 여기에 우리가 이틀동안 얻은 정보를 써놓은 공책이

있으니까 이걸 보면서 조용히 기다려주세요. 식량은 많이 있으니까 배불리 드시고 푹 쉬세요."


"야 넌 언제 그런걸.."


우리의 행동은 정말이지 아무 보험도 없는 폭락중인 주식에 전재산을 거는 것보다 무모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생존자들은 이미 우리 집에 들어왔지, 친구는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한시가 급한 상황이지..

이게 바로 사면초가라는 건가.


"하여튼 다녀올게요."


"저.. 저기.."


누나들 중 한 명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안 나가면 안돼 정말로? 나 너무 불안해서.. 너희들은 제대로 어떻게 하면 살아야 할 지 알 것 같으니까 그래서

.."


"안됐지만 지금은 안돼요 누님. 뭣보다 급한 상황이라."


우리들은 더이상의 대화를 피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이미 문명의 힘을 잃은 도시의 칠흙같은 어둠 속에, 피묻은 무기들을 쥐고..


아무 보험도 없이, 그저, 앞으로.

 

7화-재복이 구출작전

 

"진환아 좀 심하지 않았어?"


내가 식칼창을 어깨에 걸치고 터벅터벅 앞장서 걷고 있는데 태완이가 내게 말했다.

나는 대답을 안 하려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심하긴 뭘 심해. 그런 상황에선 겁을 좀 줘놔야 배신때릴 생각을 안 하지.. 그 인간들 꼴좀 보라고. 벌써

벌벌 떨면서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는거. 안그래도 그런 겁쟁이들인데 어떻게 뒤통수를 칠지 알아?"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는 거지."


윤호가 나를 거들듯이 말했다. 우리의 협공을 받은 태완이는 아무 반박도 못하고 칼자루를 만지작거렸다.


우리 집에서 망원역까지 가려면 대략 걸어서 20분. 수정형이 말했던 대로다.

가는길에 건너야 할 차도가 둘, 골목은 수도 없이 많다. 자 그럼 어떤 루트를 선택할까.


변수는 그 뛰는 좀비들이다.

그 때야 정말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가드레일이 우리 앞을 막아주지 않고 있었다면

필시 우리는 누군가가 죽었거나, 운이 좋았어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

운이 없었다면.. 전멸했을 것이고.

나는 그 뛰는 좀비들이 달려올때의 박력을 생각하자 소름이 좌악 돋으며 식은땀이 나는 걸 그꼈다.


다행인 점은, 그 좀비놈들은 대가리가 그나 그나라서 트랩에 쉽게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내 생각엔 그 놈들이 마구 뛰어올때 나도 앞으로 튀어나가 그놈들 앞에 쭈그리고 앉아버리면

제풀에 걸려 넘어질 것 같은데.. 실전에선 언제나 이론과 다른 상황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는 수많은 변수들을 생각하면서 식칼창을 꽉 쥐었다.


"밖에 나오니까 역시 무섭네.. 그 뛰는 좀비 때문에."


아직 가로등이 살아있는 저 편의 골목에 서성거리는 몇마리 좀비들을 보며 태완이가 중얼거렸다.

윤호와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저 가로등 밑에서부터 놈들이 뛰어오기라도 하면 어떨까 하면서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을 뿐이었다.


"야 김진환."


"어?"


"앞에 있다."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은 얽히고 섥힌 골목길들 가운데서도 꽤 큰 길목.

차 두 대가 너끈히 지나갈 정도의 폭이 있는 길이다.

우리의 오른쪽엔 한 블럭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담으로 둘러싸인 부잣집이 있었고,

그 앞에 차가 대어져 있었는데 그 차의 앞쪽에 좀비가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어쩔까?"


"일단 근처로 조용히 지나가고.. 들키면 그냥 뛰자. 뭐 앞쪽에 좀비들은 더 안 보이고 저놈들도 느리니까."


"으음.."


윤호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신음을 내뱉었다.

놈이 뛰는 좀비일지 아닐지 확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무기를 쥐고 조심스럽게, 좀비에게서 멀리 떨어져 빙 돌아 지나갔다.

다행이 우리는 들키지 않고 녀석 옆을 지나갈 수 있었다.

녀석을 계속 우리 시야 앞에 두느라고 타원을 그린 우리는

다시 뒤로 돌아 살짝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나저나 재복이놈 무사할까 모르겠네.."


"쉿! 말소리 줄여."


나는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뒤를 돌아보았다.

윤호는 내가 주시하고 있는 좀비를 슬쩍 보더니 픽 웃으면서 내 등을 쳤다.


"쫄지 말어 마. 이 정도 왔으니까 괜찮아. 설사 점마가 뛰는 좀비라도."


"아 그건 진짜 싫다.."


태완이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나는 미심쩍은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어쨌거나 안전하게 제칠 수 있었기에 상관하지 않기로 하고

앞을 쳐다보았다.

윤호 말대로 이 정도 거리에 있다면 안전할 뿐더러, 설사 뛰는 좀비라 한들 우리가 이 곳에서 살아가려

하는 이상 언젠가는 정말로 맞딱트릴텐데 그 때에 대비해 혼자 있는 저 놈을 상대하는 게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금은 그딴 것 보다 친구의 생명이 우선이다.


10분쯤 걸었을까, 꽤 굽이굽이 돌아온 우리는 차도를 앞에 두고 망설이고 있었다.

이 길을 건너서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큰길을 따라 직진하면 바로 망원역이다.

근데 차도 건너편을 살펴보니 좀비들이 상당수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걸 따돌리고 빠른 길을 택하느냐, 아니면 우회해 안전하게 가느냐..


"어쩔까?"


윤호가 물었다.

우리는 저 좀비무리들을 앞에 둔 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필시 각자의 가슴속에서 똑같은 질문을 했었을 것이다.

윤호는 그걸 알고 나와 태완이에게 물었을 테지.


나는 식칼창을 쥐고 말했다.


"나는 이대로 직진에 한표."


태완이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칼을 꺼내면서 말했다.


"나도 찬성. 이대로 우회한다 해도 그 쪽에 좀비들이 있을지 없을지 보장하지 못하니까. 시간이 걸리는 길로

돌아갔다가 좀비무리를 만나기라도 하면 시간낭비, 체력낭비야."


태완이가 한 말은 내 생각과 완전히 같았다. 그러자 윤호는 배트를 꽉 쥐면서 말했다.


"그럼 이대로 가자."


윤호는 알루미늄 배트를, 나는 식칼창을, 태완이는 검을 드리우고 좀비들 무리로 접근했다.

놈들의 수는 대략 열둘. 이 거리에서 들킨다면 도망가면 그만이지만 만약 놈들 틈을 지나가다 걸린다면..


끝이다.


"후우.."


서서히 거리를 좁혀가다 보니 놈들 무리의 왼쪽에 빈틈이 보였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빈틈을 향해 조심조심 걸어갔다.

이윽고 놈들 근처로 간 우리는 삼각형을 그리던 진형을 일자로 바꿔 놈들 사이로 조용히 지나갔다.

천천히 지나가고 있자니 놈들의 몰골이 그대로 눈앞에 드러났다.

밤중이라 바깥쪽 시야는 어두운데 가로등이 놈들만을 마치 무대에 선 배우들처럼 비추고 있어

더욱 괴상망측한 느낌을 자아냈다.


"...."


나는 손을 조용히 들어 뒤따라오던 둘을 멈추게 했다.

내 앞에 있던 좀비가 천천히 움직여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웁.."


혹시라도 이 쪽으로 올까봐 식칼창을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드리우던 나는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좀비는 한여름이라 그런지 벌써 상당히 썩어버려 엄청난 악취를 풍겼고,

듬성듬성 난 머리털과 찢어진 옷의 틈새로 보이는 뼈가 놈의 더러움을 한층 배가시켜주고 있었다.

그런데 클라이맥스는 놈의 눈.

한쪽 눈이 비어져나와 시신경을 타고 턱 아래까지 드리워져 덜렁거리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괴기스러움 그 자체였다.

놈들의 시각능력이 제로라는 것을 완전하게 파악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이런 빌어먹게 생긴 괴물이

눈을 허옇게 뜨고 지근거리에서 나와 마주보고 있으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다행히도 놈은 몸을 돌렸을 뿐이지 우리를 알아챈 건 아닌 듯 했다.

나는 식칼창을 돌려 자루 부분으로 놈의 어깨를 살며시 밀면서 옆으로 돌아 지나갔다.

놈들은 통각도 전혀 없어 기척없이 다가가 길다란 물건으로 꾹 밀면 힘없이 밀려난다.

아까 낮에 밖의 동향을 살피러 나갔을때 익힌 테크닉이었다.


좀비 무리 사이를 무사히 빠져나온 우리는 조용하지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로등 아래 비춰진 우리 셋의 이마는 너나 할 것 없이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이대로 쭉 가면 금방 망원역이야. 빨리 가자."


태완이가 땀을 닦으면서 앞으로 나가자 내가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나 중3 중간고사때 전과목 컨닝하는 것 보다 더 큰 모험이었어."


몇 걸음도 채 옮기지 않아 우리들 앞에 망원역에서 뿜어져나오는 빛에 물들은 큰 차도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 수많은 인영이 또한 비춰졌다.

다만 그 인영들의 주인공은 걸어다니는 시체.

저 중에 등교길에 자주 만나 눈에 익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몹시 불쾌해졌다.

나는 이를 꽉 물면서 다시 한번 재복이의 말을 상기했다.

녀석은 망원역 바로 옆에 있는 고래서점에서 농성중이라고 했으니, 그 말은 이미 좀비들에게 들켰다는 소리다.
전투는 불가피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걸음을 옮기고 있는 다른 두 녀석에게 말했다.


"야. 재복이 좀비한테 쫓겨서 숨은 거라며. 앞에서 좀비들이 대기타고 있을지 모르니까 싸울 준비 해."


"아 그것도 그렇네.."


"미치겠다 진짜. 그냥 그 새끼 죽으라고 둘 걸 그랬나?"


둘이 투덜거리면서 무기를 쥐는데, 검을 뽑던 태완이의 손을 막으면서 내가 말했다.


"내 생각엔 꽤 많을 것 같으니까 타정총 준비하자구. 멀리서 저격한 다음에 들어가면 쉬울지도 몰라."


"그것도 그렇네."


태완이는 반쯤 뽑은 검을 도로 집어넣고 타정총을 준비했다.

망원역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두 곳. 한 곳은 우리가 있는 블럭에 있고,

한 곳은 우리가 있는 곳의 정면을 가로지르는 차도 건너편에 있다.

차도에는 물론 많은 수의 좀비들이 비척비척 걸어다니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서점은 우리가 있는 쪽의 입구 옆에 붙어있었다. 이윽고 역 바로 아래에 위치한 편의점까지

도착하자 우리는 살금살금 걸어 모퉁이까지 이동, 고개를 내밀어서 서점의 앞을 살펴보았다.


"앗!"


"..Ah funing shit."


태완이가 작게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내 입에서 욕이 터져나왔다.

서점은 망원역 옆 2층 빌딩의 반지하에 위치해있는데, 그 서점의 입구에 좀비들이 하나 둘 셋..

어림잡아도 스물은 넘게 몰려있었다.

서점의 입구쪽에 바리케이트가 쳐져있는지 좀비들은 빌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중 몇몇 놈은 서로를 뜯어먹는 엽기적인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윤호는 눈을 홱홱 돌리면서 머릿수를 가늠해보는 듯 하더니 입을 가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건 도저히.."


"아 미치겠네."


나와 윤호가 궁시렁거리자 태완이가 핸드폰을 꺼내들고 번호를 누르며 말했다.


"오히려 다행이야. 좀비들이 앞에서 몰려있는 걸 보니 아직 녀석들은 바리케이트를 뚫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되지. 지금 재복이한테 전화해 볼게."


잠시 뒤 재복이가 전화를 받았다. 태완이는 재복이에게 안쪽 상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물었다.

근처에 좀비들이 있는 탓에 큰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태완이는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조용히 전화를 받았고,

 덕분에 윤호와 나는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내가 불안과 무료함이 섞인 기묘한 감정을 느끼며 식칼창을 어깨에 톡 톡 두드리고 있는데

윤호가 내 어깨를 잡아 내 시야를 억지로 돌리며 말했다.


"저거 봐봐."


녀석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편의점이 있었다.

내가 못 알아먹었다는 뜻으로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자 녀석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다시 손가락을 가리켰다.

다시 쳐다보니 아하, 녀석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자전거 정거장이었다.

나는 알았지만 그래서 뭐가 어쨌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윤호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자전거는 사람보다 빠르게 안 빠르게?"


"빠르지 병신아. 말이라고 하냐?"


"...."


윤호가 야구배트를 쳐들자 나는 몸을 숙이며 양 손을 들어 머리 위에서 흔들었다.

윤호가 조금 성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좀비는 사람보다 빠르게 안 빠르게?"


"..아하. 우리 윤호 머리가 위급상황이 되니 좀 돌아가는군."


나는 그제서야 윤호의 말을 이해했다.

내가 태완이에게 우리의 계획을 말하려는데 태완이가 전화를 끊으면서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점 안에 재복이랑 재복이 여친이랑 사람 몇 명이 더 있대. 무기로 쓸 건 좀 있는데 사람들이 완전 겁에

질렸다고.. 무엇보다 우리가 그 사람들을 어떻게 구해?"


"태완아. 이럴 땐 머리를 쓰는거야."


"어?"


윤호가 말하면서 내게 눈짓을 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빠르게 자전거 정거장 쪽으로 향했다.

좀비사태가 나면서 사람들이 타고 간 건지 평소에 가득 찬 상태이던 자전거 정거장엔 초라한

마운틴 바이크 하나와 낡은 자전거 몇 대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마운틴 바이크를 묶고 있던 사슬을 손도끼로 내리쳐 끊었다.

까앙 하는 소리가 나자 우리와 같은 블럭에 있던 좀비 몇마리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완전히 알아채지는 못했는지 놈들은 우리쪽으로 아주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완이가 무슨 짓이냐고 외치는 듯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우리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미끼작전이지. 자전거 타고 놈들을 끌어모으자."


"뭐? 저기 달리는 좀비가 있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럼 운 없는거지 뭐. 그래도 자전거보다 빠르진 않을거야."


"하지만!"


"그럼 다른 방법 있어?"


내가 묻자 태완이는 뭐라고 말하려다 입술을 꽉 깨물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손을 머리 위로 들면서 말했다.


"자 그럼 가위바위보로 정한다."


"하하.. 20년 인생에 가위바위보를 수백 번도 넘게 했지만 이게 최고로 무서운 가위바위보다. 젠장."


"너희란 놈들은 진짜.."


각자 한 마디씩을 하며 우리들은 손을 세 번 크게 흔들고 팔을 내렸다.

몇 초 뒤 윤호가 눈물이 나오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신발."


태완이와 나는 보, 윤호 혼자 주먹이었다. 윤호가 주먹을 흔들면서 말했다.


"새끼들아 남자는 주먹이지 주먹!"


"어. 긍까 남자답게 죽어라."


"나쁜새끼."


"야 진환아 뒤에!"


태완이의 외침이 들리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앞으로 몸을 던져 한바퀴 구르며 일어났다.

내 바로 뒤, 한 발짝도 안 되는 곳에 좀비가 양 손을 뻗고 다가오고 있었다.

올려다보니 그 놈의 뒤에도 한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내 바로 옆자리에 있던 윤호는 주저없이 숨을 한번 꾹 참으며 온 힘을 다해 그놈에게 야구배트를 휘둘렀다.


"흐읍!"


퍼까아아앙


엄청난 소리가 나며 좀비는 머리에서 피를 쏟으며 붕 떠서 옆으로 4미터쯤 날아가 맨홀에 머리를 박았다.

나는 언제나같이 달려나가 마무리를 하려 했으나 다가가보니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놈의 머리는 반쯤 으깨져 터져있었고 무엇보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고개를 돌려 친구들을 바라보니 윤호가 멋진 폼으로 다른 한 마리를 처리하고 있었다.

저만치 날아가 촤자아아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온 몸으로 미끄러지는 좀비를 바라보며 윤호가 말했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썅."


"미친.. 니가 내 입장이 되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나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꾹 누르면서 말했다.

태완이는 나보고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한 뒤 우리가 가까이 모이자 말했다.


"잘 들어. 어쨌건 한 번 너희들 작전대로 해 보자. 윤호가 자전거를 타고 앞에 놈들의 주의를 끌어. 놈들은

분명 떼거지로 네 기척을 쫓을거야. 그리고 서점 앞에 몇 안 남은 좀비들을 나랑 진환이가 처리, 사람들을

구출한다. 오케이?"


"오케이."


"옛썰 오를썰 디락킨 듀이 썰!"


"..뭐야 그게."


"시즈탱크 따라하기."


"...."


윤호는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나한테 야구배트를 맡겼다.

야구배트를 든 채로 자전거를 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윤호가 자전거에 올라타려고 하는데 내가 녀석을 잡으며 말했다.


"야."


윤호가 나를 쳐다보자 나는 녀석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죽지 마라. 재복이랑 같이 돌아가서 사골국에 밥 말아먹자구. 알았지?"


"걱정 마."


윤호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 치고 자전거를 슬슬 출발시켰다.

우리와 템포를 맞춰 차도 근처까지 나간 윤호는 잠깐 멈추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와 태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은 앞으로 나가 입에 두 손을 모으며 소리쳤다.


"빠라바라바라밤! 개 성기명신 호로 썅창년들아! 윤호언니가 항문 뚫어주러 왔어요~! 우후!!"


좀비들이 일시에 녀석을 확 바라보았다. 그리고 윤호는 기어를 올리면서 전속력으로 출발했다.


"께아아아아아아악!!"


순간, 예상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윤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서점 앞의 좀비 무리들 중 한 놈이 미친듯이 윤호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아악 신발!"


윤호는 아직 제대로 된 속력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윤호가 브레이크를 잡고 뛰어내리려는 찰나 투학 하는 소리가 나면서

달려오던 좀비의 어깨가 확 돌아가더니 땅에 쓰러졌다.

놈이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려는데 투학 하는 소리가 또 나면서 이번엔 머리가 확 제껴지더니

놈은 이상한 포즈로 땅에 누워버렸다.

앞을 보니 어느샌가 앞으로 달려나간 태완이가 손에 타정총을 들고 있었다.


"달려 김윤호! 죽지마라!"


태완이가 소리를 치자 정신을 차린 윤호는 좀비 무리들 옆으로 자전거를 몰고 지나갔다.

금새 전속력에 도달한 윤호가 가로등 빛을 받으면서 저 편에서 유턴을 하는 걸 보며 태완이와 나는

무기를 들고 뛰쳐나갔다.

우리의 예상대로 좀비들은 무리를 지어 윤호의 뒤를 쫓았다.

무리를 지어 서성거리던 놈들이 한 번에 이동하기 시작하니 몇몇 놈들이 서로 걸려 엎어지기 시작했고,

그놈들이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놈들은 우수수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서점 앞까지 도달했을 때, 방향을 바꾼 윤호가 차도 저편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태완이가 빌딩 입구 앞에 서서 칼을 내려놓고 타정총을 들어 못 탄창을 바꾸면서 말했다.


"여긴 내가 맡을께, 니가 사람들을 불러!"


"알았스!"


나는 빌딩의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몸을 확 던졌다.

두 세 칸씩 내려간 나는 코너를 도는 순간 무언가에 퍽 부딫히며 잠깐 주춤했다. 좀비였다!


"우아악!"


갑자기 몸을 부딫혀 우어어거리면서 몸을 못 가누는 좀비의 옆구리에 내 식칼창이 박혔다.

머리에는 맞추지 못했지만 일단 놈을 밀어내야 했기에 나는 그대로 창을 누르며 놈을 벽에 딱 밀어붙혔다.

놈이 벽에 몸이 밀착된 채 버둥거리는 걸 보며 나는 창을 쥔 손에 온 힘을 다한 채 다른 손으로

천천히 손도끼를 꺼내며 말했다.


"니는 밥만 챙기면 되니까 졸라 맘 편하겠다.. 그지?"


"어어-"


좀비는 목을 돌려 내 쪽을 향하려 했으나 내가 놈을 완전히 벽에 밀착시켜놓고 있었기에 놈은 당연히

그걸 할 수 없었다. 나는 손도끼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든 뒤, 온 힘을 다해 놈의 정수리에 손도끼를 꽂아넣었다

.


뻐걱


"으읍!"


놈의 머리가 터지는 순간 뒤통수에서 뿜어져나온 파편과 썩은 피에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입을 다물면서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놈이 완전히 죽은 걸 확인한 나는 식칼창을 뽑아 한번 털어낸 뒤 서점 입구쪽을 보았다.

입구는 단순한 빌라 사무실의 문처럼 사람 한 명이 드나들만 한 철 현관문이었다.

나는 문을 발로 쾅쾅 차면서 말했다.


"이재복! 이재복-! 구하러 왔어! 문 열어!"


나는 안쪽의 사람들이 문을 열 여유를 주기 위해 잠시 발길질을 멈추고 뒤로 빠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문으로 다가가 이번엔 손으로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이봐요! 안에! 구하러 왔으니까 문 열어요!"


나는 대답을 듣기 위해 잠깐 멈추었으나 이번에도 안쪽은 묵묵부답.

바깥에 친구 둘이 얼마나 급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고 있는 나는 열이 뻗쳐서 발로 문을 차며 외쳤다.


"미친새끼들아! 구하러 왔으나 문 쳐 열으라고! 문열어! 야 이재복!! 문열어-!!"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 없음. 나는 불안감에 휩싸이며 뒤로 살짝 물러섰다.


나는 덜덜 떨리는 몸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생각했다.

이 서점에는 이 문 말고 다른 문이 없다.

사람들이 이미 안으로 피했다면 다른 쪽에서 좀비가 유입될 리는 없었다.

그럼 답은 하나, 내 말소리가 안쪽까지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것이다.


"바리케이트 때문에 안 들리는 건가.. 제길! 또 핸드폰을 때려야 해?"


안쪽 사람들은 아마도 패닉에 빠져있을 것이다.

안그래도 바리케이트로 꽉꽉 막고 있는데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니 좀비들이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얼른 빌딩 입구 쪽으로 뛰어올라갔다.

때마침 태완이는 바로 앞에 좀비가 와 있는데 타정총의 탄창을 차마 갈지 못해 욕설을 내뱉으면서

칼을 집어들고 있었다.

나는 태완이에게 달려가 녀석을 안쪽으로 당기면서 손도끼를 가로로 휘둘렀다.

퍼걱 하는 소리가 나며 손도끼는 앞에 있던 좀비의 관자놀이부터 미간까지를 뚫고들어갔고,

놈은 그대로 축 늘어졌다.

내가 놈을 발로 걷어차자 놈의 몸이 뒤로 픽 쓰러지며 뒤에 오던 놈에게 부딫혔다.

태완이가 타정총의 장전을 마쳤는지 내 옆으로 총을 든 채 다가와 어딘가를 조준해 팍 쏘면서 말했다.


"뭐 하는거야! 사람들 안 구하고!"


"안쪽 놈들이 반응을 안 해! 안 들리나봐! 내가 여기 맡을테니까 니가 핸드폰으로 불러!"


"아냐! 니가 가!"


"하지만.."


"빨리 해! 궁시렁거릴 시간 없어! 자켓 오른쪽 주머니!"


태완이는 다시 어딘가를 향해 총을 쏴갈겼다.

나는 혀를 한 번 차면서 녀석의 자켓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나는 한 손에 식칼창을 들어 태완이 옆을 보호하면서 통화 버튼을 두 번 눌렀다.

금방 전까지 통화 한 사람은 재복이밖에 없기 때문이다.


"푸핫핫핫! 우하하! 병신 호랑말코들아! 내 궁뎅이가 그렇게 맛있어 보이냐? 와서 먹어봐!"


첫 수신음이 들리는 순간 윤호가 마구 웃으면서 차도 저편에서 좀비 무리를 이끌고

자전거를 달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급한 와중에도 실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 얼굴에 웃음이 머물러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재복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신발!"


"왜 그래?"


"대답할 여유 없어!"


나는 통화 버튼을 다시 두 번 누르면서 식칼창을 앞으로 밀어 다가오는 좀비를 밀어냈다.


왜 안 받는거냐고! 병신아!

 

8화-구출

 


좀비가 나오는 게임이나 영화를 보면 정말 좀비들이 끝없이 쏟아진다.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도망가고 도망가고 도망가도, 고개를 한 번만 돌리면 좀비들은 항상 바글바글.

아주 끓어 넘친다.


글쎄, 보통 인구가 우리나라보다 배는 많은 서양에서 좀비물이 소재가 되서 그렇게 묘사를 하는건지는 몰라도,

지금 우리가 있는 거리에 있는 좀비들은 끽해야 50마리가 넘을까 말까..

물론 당장 시야에 보이는 놈만 치면 말이다.


"후하하하! 헉! 헉! 따라올테면 따라와 봐! 헉! 헉.."


..아아, 저 놈이 끌고다니는 놈들도 까먹으면 안 되지.


전화를 다섯 번은 걸었을까?

나는 입 속으로 세상에 해 본적도 없는 쌍욕을 수백번 수천번 씹어가며 정말 참담한 기분으로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그동안 태완이가 죽인 좀비만 6마리, 내가 죽인 좀비가 4마리.

우리 둘이 이렇게 저렇게 해서 행동불능으로 만든 놈은 자그마치 열한 마리. 그런데도 놈들은 아직도

꼬물꼬물 우리에게 압박을 해 오고 있었다.

그나마 저 뒤부터 무리를 지어 오는 놈들을 윤호가 잘 유인해주고 있어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우린 진작에 무기를 버리고 꽁무니를 뺐을 것이다.


"태완아!"


"어?"


내가 식칼창을 휘두르며 급히 말하자 태완이는 그새 많이 익숙해졌는지 앞에서 기어오고 있는

좀비의 마빡 한가운데에 정확히 못을 박아넣으며 대답했다.


"이게 일곱번째 전환데, 안 받으면 돌아간다! 이대론 절대 못 버텨! 우리가 무슨 샷건같은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태완이는 잠시 주춤하더니 아까 이마에 못을 박아넣은 놈이 다시 일어나려 하자

얼른 달려가 얼굴을 걷어찬 뒤 다시 못을 박아넣으면서 씁쓸하게 말했다.


"..알았어."


"결정난 거다!"


나는 태완이의 대답을 듣자마자 핸드폰을 내려놓고,

아까부터 식칼창으로 계속 밀어냈는데도 끈질기게 내 앞에서 비척대는 한 좀비를 식칼창 자루로

콱 밀어낸 뒤 손도끼로 머리를 박살내 버렸다.

나는 얼굴에 튄 피인지 뭔지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마지막의 마지막이 될

전화를 걸었다.


뚜- 뚜-


"제발 받아라 미친 복어새꺄.."


나는 다리를 동동 구르면서 태완이 쪽을 쳐다보았다.

우리 근처에 쓰러진 수많은 좀비들이 바리케이트 아닌 바리케이트 역할을 해 주고 있어서

태완이는 손쉽게 타정총으로 놈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좀비놈들은 발 근처에 아주 작은 홈이나 돌만 있어도 걸리기만 하면 그냥 쓰러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누워있는 놈들 중 어떤놈은 자기 근처에 다른 좀비가 자빠지면 그 놈의 위에 올라타 뜯어먹는

초 일급 함정의 일을 손수 해 주고 있었다.


찰칵


-여보세요?


드디어 받았다! 나는 기쁨과 분노가 반씩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재복아! 이 미친놈아 왜 안 받고 사람을 열불 터지게 만들어? 우리 지금 니 구하러 왔다가 타이밍 안 맞아서

도로 돌아가려고 했단 말야! 너네 안에 바리케이트 쳐놨지? 거기 문 앞에 좀비들은 내가 치워놨으니까 얼른

열어 병신아! 힘들어 죽겠어!"


-정말이냐? 너네 진짜 대단하다. 아깐 사정이 있어서..


"잡소리 말고 얼른 열으라고! 태완이도 나도 윤호도 죽을 맛, 아니, 죽기 직전이니까! 여러가지 의미에서!"


-알았어. 지금 열게.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태완이에게 외쳤다.


"재복이가 받았어! 금방 사람들 이끌고 올테니까 잘 버텨!"


태완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못을 장전하는 데에 열중했다.

녀석이 내 말을 들었든 안 들었든 한시라도 빨리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게 모두에게 이로울 터.

나는 무기를 든 채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문은 닫혀있었지만 안쪽에서 덜컹덜컹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뒤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들어가서 안을 휘 둘러보니 서점 안은 대단히 깨끗했다.

아마 좀비들이 침입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내 옆에는 바리케이트를 치우는데 손을 거든 듯한 남자가 한 명 있었다.

내가 그에게 괜찮냐고 묻는데 오랜만에 보는 재복이가 달려와 내 어깨를 탁 쳤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정말 우릴 구하러 온 거야 너?"


"너가 아니라 너네지. 밖에 태완이랑 윤호가 지랄 똥 싸고 있으니까 0.5초내로 준비하고 튀어나와. 그리고

당신들도 빨리 준비해요. 나갑시다."


나는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서점의 안에는 재복이와 모르는 남자가 둘, 여자가 둘 있었다.

한 명은 물론 재복이의 여자친구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사람들은 각자 무언가를 무기로 들고 있는데다 내 말을 들었는데도

당장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열받아서 외쳤다.


"이 인간들이 진짜! 빨리 준비하고 튀어나오라고! 당신들 때문에 내 친구들이 죽으면 책임질꺼야!"


내가 어깨에 지고 있던 식칼창을 고쳐잡으며 사람들을 재촉하려고 안쪽으로 한 걸음 뛰어들어가는데

내 발치에 미처 보지 못한 사람 한 명이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둘. 한 남자가 어딘가를 다친 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누워있었고

다른 한명은 그의 애인인지 그에게 무릎베게를 해 주고 있었다.

나는 찡그렸던 인상을 펴며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디 다쳤어요?"


"그 사람들 때문에 당장 움직일 수가 없는거야. 그 남자분이 크게 다쳤어. 아까 전화 못 한 것도 이 사람

치료하느라 다들 난리여서.."


내가 식칼창을 내려놓으며 누워있는 남자를 살피려는데 재복이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나는 무릎베게를 해주고 있는 여자에게 눈짓을 한 뒤 남자를 잘 살펴보았다.


"..나 이런 빌어먹을!"


그를 살피다가 내 입에서 욕이 터져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일 예상하고 싶지 않던 상황.

남자의 상처는 목과 어깨 사이 부근에 나 있었고, 물론 그것은 좀비에게 물린 자국이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서 살짝 떨어져 식칼창을 잡으며 말했다.


"물린거야? 이 사람.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떤 술취한 아저씨한테 물린 상처라면 좋겠는데 말이지."


"무.. 무슨 소리야?"


재복이가 묻는데 상처남의 애인이 내게 말했다.


"이 사람, 우리가 들어오기 직전에 나를 구해주려다가 밖의 저것들에게 물렸어요! 피가 너무 많이 나와서..

그래서.."


"신발!"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봐요! 당신 의식 있어요? 있으면 대답해봐요!"


이미 상처에서의 피는 멈춘 상황.

저렇게 큰 상처가 났는데 피가 나오지 않는다면 답은 하나. 이미 피가 나올대로 나왔다는 소리다.

그렇게까지 출혈을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 남자의 상처부근을 둘러싸고 있는 붕대는 하얀 부분을 찾아볼 수 없을만큼

젖어 있었고, 그를 간호하고 있는 여자의 옆엔 피에 물든 휴지와 붕대가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는 '아직' 죽지 않았는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이를 꽉 물고 한숨을 쉰 뒤 그에게 말했다.


"잘 들어요 아저씨. 밖에 저 놈들에게 물린 시점에서 당신은 감염됐어요. 그리고 이제 당신이 죽으면.."


"아냐! 동철씨는 안 죽엇! 절대로!"


내 말을 끊으며 그의 애인이 절규했다.

나는 잠깐 말을 멈추었지만 눈을 꽉 감고 그녀를 무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죽으면 당신은 그 즉시 밖의 저 놈들처럼 변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당신에게 묻겠어요. 내가 당신을

죽여주기를 원합니까?"


"뭐.. 무슨! 당신 갑자기 쳐들어와서 무슨 헛소리야! 동철씨를 죽이면 내가 널 죽일거야!"


미치기 일보직전이던 그의 애인이 소리를 꽥꽥 지르며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밖의 지옥을 어느정도 경험했기에 지금 해야 할 일의 제 1순위를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 사람을 죽인 적은 없지만 사람과 똑같이 생긴 움직이는 시체들의 머리를 몇수십이나

부숴온 터라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상처남의 떨리는 눈길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재복이가 말했다.


"야 김진환, 갑자기 무슨.. 니가 무슨 영화 주인공이냐? 뭔 소리야 임마?"


"닥치고 넌 빨리 위로 올라가 임마! 태완이랑 윤호가 죽게 생겼다고!"


"그래도.."


"..죽여 줘, 그래.."


내가 재복이를 바라보며 외치고 있는데 뒤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고개를 확 돌려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내게 말했다.


"..이대로.. 저런 꼴이 될 거면.. 죽여줘.. 그게.. 낫겠지.."


"무슨 소리야 동철씨! 말도 안 돼는 소리마! 동철씨가 죽을거면 나도 죽을거야!"


"바보.. 같은.. 소리.. 마.. 수영씨.."


"싫어! 싫어! 싫다고! 으아아아앙..!"


수영이라는 이름의 누나는 상처남 동철형의 얼굴을 붇잡고 절규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후회 안하죠?"


"지금 상황에.. 무슨.. 후회야.. 하하.."


그는 쿨럭거리며 마지막이 될 숨을 들이쉰 뒤 힘겹게 말했다.


"네.. 이름을.. 들려줄래? 죽기전 선물로.."


"..김진환임다."


내가 말하자 그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진.. 환아.. 수영씨를.. 좀.. 지켜줄.. 수 있겠어..? 내가.. 죽고.. 나서.."


"무슨 소리야 동철씨! 나는 아무데도 안 가!!"


수영 누나의 절규를 들으며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 해 볼게요."


"다행이다.. 이제.. 편해질.. 수 있을.. 크헉!"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동철형의 입에서 가느다란 피 몇줄기가 팍 뿜어져나왔다.

그에겐 이미 시간이 없다. 나는 각오를 굳히고 재복이를 밀어내면서 말했다.


"재복아 비켜. 여긴 나한테 맡기고 빨리 나가."


"야 김진환! 너 진짜.."


"빨리 가라고! 동철형 갑니다."


난 재복이를 향해 소리를 친 뒤 식칼창을 꽉 줘고 동철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수영 누나가 동철형의 위에 엎드려 누우며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안 돼애애애!! 동철씨를 죽이려면 나도 죽여!!"


"이 언니가 진짜.. 빨리 나와요!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거 아니예요!"


"싫어! 싫어어!! 나도 죽여! 나도.. 앗! 꺄아아아아악!!"


"우아앗!"


그녀가 동철형의 몸 위에서 고개를 마구 흔들며 몸부림치고 있는데 갑자기 사색이 되어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자 나 역시 그녀의 팔을 쳐다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동철형.. 아니, 이젠 좀비가 된 남자가 그녀의 팔을 깨물고 있었다.

나는 식칼창을 내려놓고 도끼를 잡으며 외쳤다.


"미친 아줌마야! 그러게 내가 나오랬잖아! 어깨 치워요 한방에 끝내게!"


"아.. 안돼! 동철씨는.. 카학!"


"안돼! 씨바알!!"


수영 누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팔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좀비를 끌어안다가 결국 목을 물리고 말았다.

나는 욕을 내뱉으면서 놈을 죽이기 위해 옆으로 돌아갔다. 목을 저렇게 물렸으면 방법이 없다.

이 좀비를 처리한 뒤 곧바로 수영누나의 목을 쳐야겠지, 빌어먹을!


수영 누나가 목을 물리는 순간 한순간에 근처 책과 진열장에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나오자 재복이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고, 근처에 있던 여자 한 명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책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보지는 못했지만 재복이의 여친이었는지 재복이가 소리를 지르며 그 여자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녀석을 따라 다른 사람들도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깨물고 있던 입술을 놓으며 소리쳤다.


"나무아미타불!"


퍼걱


이미 익숙해진 뒤통수의 소뇌 부근, 좀비의 약점에 내 손도끼가 꽃혔다.

한차례 크게 진동한 뒤 벌벌 떨던 몸을 멈춘 좀비의 뒤통수에서 도끼를 뽑아내면서

나는 다시 수영 누나의 머리를 칠 준비를 했다. 순간 내 눈에 그녀의 얼굴이 비춰졌다.

누나는 엄청난 고통에 이미 눈이 돌아가 침을 흘리며 온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바로 사랑하던 그녀의 애인에게 목이 물어뜯겨서.


나는 휘두르려던 팔을 멈췄다. 정말로 팔이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날아가려는 이성을 억누르고 있자니 깨물고 있는 내 입술에서 피가 배어져나왔다.

정말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인데, 숨이 끊어진 듯 한 수영 누나의 몸이 내 앞에서 한순간 움찔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도끼를 휘둘렀다.


"큭!"


콰직


나도 모르게 나가 힘 조절이 안 된 스윙은 수영 누나의 관자놀이를 뚫고들어가 머리통의 한 부분을

뜯어내 날려버리며 두 사람의 시체를 같은 자리에 넘어지게 했다.


"하악! 하악.. 하악.."


순간적으로 어딘가로 날아갔다가 돌아온 듯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갑자기 턱에 찬 숨을 몰아쉬었다.


이곳은 지옥이다.


나는 손도끼를 휘두른 동작 그대로 멈춰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내가 방금 처리한

두 사람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사이좋은 예전의 상태로 돌아온 듯 서로 팔을 포개고 누워있었다.

나는 손도끼를 바닥에 집어던진 후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주저앉아 소리쳤다.


"젠장.. 젠장! 젠장!"


사람을 죽인건지, 좀비를 죽인건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방금 전까지 내 눈앞에서 울고 있던 사람의 머리를, 내가 이 손으로, 손도끼로, 부숴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나와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가빠졌던 숨이 어느정도 진정되자, 내팽겨쳤던 도끼를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상은 나중이다. 일단은 위에 있는 친구들이 걱정이다.

일어난 채 내가 방금 죽인 그들을 바라보니 그들의 상태가 더욱 눈에 잘 들어왔다.

나는 목례를 하듯 둘의 시체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입구쪽으로 내달았다.


"..뭐지 이건."


서점에서 나가려는 순간 내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흰색의 가방이었다.

퍼뜩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어 잘 생각해보니 이건 재복이의 가방이었다.

나는 우울한 얼굴로 가방을 짊어매고 다시 달려나갔다.

금새 빌딩 밖으로 나온 내 눈에 펼쳐진 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아 김진환! 뭐하느라 이제 와! 빨리 가자!"


태완이가 나를 향해 달려오며 말했다. 태완이의 뒤를 따라 재복이와 녀석의 여친이 달려왔다.

나는 녀석들과 함께 서점에 있었던 남녀를 생각하며 물었다.


"뒤따라 나간 여자랑 남자는 어딨어?"


"그 사람들, 겁먹어서 막 소리치더니 도망갔어. 여자는 모르겠는데, 남자는.."


태완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찻길 반대편의 망원역 입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을 바라본 나는 얼른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남자는 쓰러진 채, 수많은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온몸을 뜯어먹히고 있었다.

내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말하려는데 윤호가 금방 넘어갈 것만 같이 숨을 몰아쉬며

내 옆으로 와 자전거에서 구르듯 내려왔다.


"헉.. 헉.. 더는 못 해.. 헉.. 헉.. 니가 해라 지랄.. 헉.. 헉.."


고딩때 내 별명은 지랄이었다(진환을 빠르게 부르면 지랄).

이제야 멤버가 다 모이자 나는 우리가 왔던 편의점이 있는 길목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빨리 가자. 더 이상은 정말 힘들어."


"그래!"


"헉 헉.. 좀만.. 쉬었다 가면 안돼냐 씨댕들아.. 헉.."


성급히 발걸음을 옮기며 윤호가 달려온 곳을 보자 좀비 십수 마리가 비척비척

빠른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막 잰걸음을 하고 있는데 재복이가 내게 말했다.


"야 너네 정말 이 동네를 뚫고 우리한테까지 온거야? 징하다."


"뭐 징해? 이 강아지가 구해주니까 가볍게 막말을 하네? 새꺄 고맙다고 만세삼창을 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

그게 뭐야?"


"진환아, 말이 심하잖아. 왜 그래?"


내가 발끈해서 소리치자 태완이가 나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재복이와 녀석의 여친이 놀라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걸 보며 나는 혀를 한번 차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녀석들은 서점 안에서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한다. 이 녀석들도 커플, 내가 죽인 두 사람도 커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씩씩거리며 걷는 내게 윤호가 비틀비틀 다가와 말했다.


"야.. 헉.. 헉.. 고맙다는 말은 나한테 해야지, 김지랄."


"어 그래. 고마웠어. 진짜 생각보다 잘해줬다."


내가 윤호를 보면서 말하는데 갑자기 눈 앞에 밝은 빛이 쏟아졌다.

 얼굴 앞을 팔로 가리면서 쳐다보니 봉고차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우와아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그 차가 우리 앞에서 속력을 줄이고 옆으로 틀면서 멈추었다.

그리고 운전석이 열리더니 사람이 한 명 나왔다.

집에서 안 나오겠다고 했던 수정 형이었다!


"아아, 너희들 정말로 해냈구나!"


"수정형? 여긴 어떻게.."


태완이가 얼이 빠져 말하는데 수정형이 우리 뒤를 쳐다보더니 얼굴을 찡그리면서 뒤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기다란 병에 심지같은 게 꽂혀있는 기묘한 물건이었다.


"처먹어, 좀비새끼들!"


그가 욕설을 외치며 우리 뒤를 향해 그걸 던지자 우리는 깜짝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우리 뒤엔 윤호가 끌고 온 좀비무리들이 있었다.

그 병이 빙글빙글 돌아 놈들 앞에 떨어지자 푸화악 하는 소리가 나더니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 물건은 다름아닌 화염병이었다!


"자, 이틈에 빨리! 설명은 나중에 하고!"


"수정형, 형 진짜.."


"꺄아아아악! 얘들아 저기!"


우리가 막 차 문을 열려는데 수정형이 온 길 쪽에서 무언가가 마구 뛰어오는 게 보였다. 좀비들이었다.

필시 수정형이 몰고 온 차의 기척에 끌려 따라온 것이겠지.

어디를 어떻게 해서 왔는지 뛰는 좀비가 다섯마리나 붙어있었다.

수정형은 화염병을 하나 더 꺼내면서 말했다.


"자, 빨리 타! 빨리 가자구! 빨리빨리!"


"으아아, 저새끼들 끄떡도 안해!"


재복이가 내 뒤를 가리키며 외치자 나는 뒤를 쳐다보았다.

아까 수정형이 던진 화염병 때문에 온 몸에 불이 붙었는데도 불구하고,

윤호가 끌고왔던 그 한 무리의 좀비는 한 덩어리의 불인형이 되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신발, 이러나저러나 대가리를 깨빡쳐야 뒈진다고 저 새끼들은!"


말투가 거칠어진 나는 마구 욕을 내뱉으면서 차에 올라탔다.

차에 하나 둘 친구들이 올라타고 이윽고 재복이가 마지막으로 올라타며 뒷문을 닫자,

운전석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정형은 화염병의 심지에 불을 붙힌 후 달려오는

좀비들에게 그걸 던지며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에는 시동이 걸려 있었기에 수정형은 별 무리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끼기기기기긱


심하게 엑셀을 밟으며 출발한 차는 타이어에서 엄청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출발했다.

수정형은 핸들을 마구 돌려 몸에 불이 붙은 채 그새 여기까지 달려온 좀비들을 빙 돌아 지나갔다.

창가쪽에 앉아있던 나는 창가에서 고개를 빼 뒤를 쳐다보았다.

달리는 좀비들은 주저없이 방향을 돌려 우리 쪽으로 마구 달려왔고,

아까 윤호가 달리던 구역에서 조금 떨어지자 어딘가의 골목에서 멀쩡한 뛰는 좀비 한놈이 따라붙었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수정형 저새끼들 막 쫒아와요!"


"제길, 나도 몰라! 어떻게 좀 해봐!"


나는 차 안에 앉아있는 친구놈들을 쳐다보았다.

재복이와 여친은 모르겠다는 식으로 고개를 저으며 나를 쳐다보았고,

윤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상태.

태완이는 나를 마주보더니 빙긋 웃으며 타정총을 꺼내들었다. 그래, 저게 있었지.


태완이에게만 저격을 맡길 수는 없다.

장거리 무기가 뭐 없나 하고 살피던 나는 내가 집에서 무장할 때 가져왔던 비도를 기억해냈다.

나는 품속을 뒤져 비도를 하나 꺼내며 말했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볼까."

 


9화-한밤중의 레이스, 그리고...

 

누구든 어렸을적엔 의례 '술래잡기'라는, 인류 탄생시절부터 존재하는 원시적인 놀이를 해 보았으리라 믿는다.

근데 아무리 단순한 술래잡기 놀이라도 쫓기는 사람 입장은 의외로 무섭다. 어떤 이유가 붙었건간에..


그런데 그 쫓아오는 놈들이, 나를 진심으로 뜯어먹기 위해 전력으로 뛰어오고 있다면 그거야 말할 것도 없지.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술래잡기라는 놀이를 참 싫어하게 될 것 같다. 그것고 한밤중에 말이다.


"쿠허! 쿠허! 께아아아아아악!"


우리가 타고 있는 봉고차는 절대 양철판으로 만들어진 마리오카트같은 부실한 차가 아니다.

그런데도 저 괴물들의 소름끼치는 괴성은 차의 외벽을 뚫고 우리의 귓속까지 파고들어왔다.

수정형이 놈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더니 외쳤다.


"아 미치겠어 저놈의 비명소리! 어떻게좀 해봐 진환아! 나 운전대 놓을 것 같아!"


"절대 안돼요! 귀막고 정신차려요 수정형!"


나는 오른쪽 상반신을 차 밖으로 내놓고 뒤를 쳐다보았다.

다행이도 놈들은 그렇게까지 빠르지는 않았는데(차 뒤를 바짝 붙어올 정도라면 윤호는 벌써 죽었다),

무서운 건 저 놈들은 체력게이지라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놈들은 자전거를 힘차게 몰아야 낼 수 있을정도의

속도를 끝없이 유지하며 우리 차를 쫓아오고 있었다.

게다가 한 놈 빼고는 아까 수정형이 던진 화염병에 맞아 온 몸이 불타오르고 있는 상태..

그야말로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한밤중에 도로를 달리고 있는 불타는 시체라!

내 이 동네에서 20년을 살았지만 불타는 시체와 술래잡기를 하고 놀 줄 누가 알았을까?


쿠당탕


내가 어떻게 칼을 던질까 손을 휘적거리며 거리를 가늠하고 있는데,

갑자기 제일 앞에서 달리고 있던 놈의 한쪽 다리가 두동강이 나면서 자빠져 데굴데굴 구르며

빠르게 내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놈의 몸뚱아리는 제일 뒤에서 두번째로 달려오고 있던 놈에게 명중해,

결과적으로 우리는 좀비 두 마리를 처리한 꼴이 되었다.

아마도 썩은 몸에 불까지 붙은 채 몇분을 달리고 있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다른 놈들은 아직 쌩쌩해 보였다.


언젠가 말했듯이, 칼 던지기는 내 특기 중 하나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나이 스물에 나만큼 칼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달리는 차 뒤를 따라오고 있는 달리는 괴물에게 칼을 맞추라니..

관성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웃겠다.


내가 체육관에서 가져온 비도는.. 몇 자루였더라?

하여간에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비도는 다섯자루.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좀비들은, 아까 나가떨어진 두 놈과 방금전에 따라붙은 놈들을 빼고 더해 여덟마리.

참으로 장관이었다.


"진환아, 간다!"


달리고 있는 차에서 머리를 빼고 있는 내 반대편에서 태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투슉 하는 소리가 났지만 뒤에 있는 좀비들 중에 쓰러진 놈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혹시 잘못 들었나 하고 있는데 태완이의 외침이 다시 들려왔다.


"빗나갔어!"


"말 안 해도 돼! 그냥 쏴갈겨!"


태완이가 행동을 개시했는데 나라고 가만있을 순 없지.

나는 한쪽 눈을 감고 혀를 빼물고 칼을 세 번 까딱거린 뒤 팍 소리가 나게 팔을 털었다.


투팍


뭉쳐서 달려오고 있는 놈들의 특성상 한 놈이 자빠지면 뒤엣놈도 넘어진다.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며 날아간 칼은 선두에 있는 좀비의 어깨에 박혔고,

그놈의 어깨가 팍 제껴지며 놈의 몸이 붕 뜨는 사이 뒤에 달려오고 있던 좀비 둘이 차례대로

놈을 포옹하며 셋은 사이좋게 아스팔트에 누웠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낄낄거리며 외쳤다.


"잭팟!"


"꿰에엑!"


내 외침에 대답이라도 하듯 태완이의 못총에 맞은 좀비 하나가 나가떨어졌다.

자 남은 건 넷. 어떻게 처리할까? 내가 입맛을 다시면서 다시 칼을 꺼내려는데 태완이가 외쳤다.


"진환아! 저놈들은 나로도 충분하니까 칼 아껴!"


"진짜?"


"괜찮아!"


태완이가 나에게 대답함과 동시에 다시 투슉 소리가 나며 좀비 한 놈이 굴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칼을 다시 품에 집어넣은 후 차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이런 상황에서 칼던지기를 성공시키다니, 나 서커스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뭐 잘됐네, 어차피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게 태산같으니까."


나는 창문을 닫으며 옷매무새를 다가듬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수정형에게 말했다.


"형은 어떻게 된 거예요? 화염병은 도대체.."


"아하하, 화염병은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배운거야. 학생때 데모를 자주 하셨던 분인데, 재미로 배운 게

이렇게 쓰이게 될 줄은 몰랐네. 내가 혼자서 편의점에서 죽치고 있을 때 만들어놨던 거야. 너네 집에 처음

들어갈 때도 몇 개 들고 있었는데 못 봤나 봐?"


"그랬어요?"


그러고보니 수정형이 옆에 걸치는 가방을 하나 메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 땐 나오는게 우선이라서 충분히 살피지를 못했었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던 걸까?


수정형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하더니 백미러로 나를 보며 말했다.


"너네가 가고 나서, 나는 완전히 지친데다 너한테 찐빠먹고 난 뒤라 앉아서 멍때리고 있었어. 그러다가

태완이가 남기고 간 노트가 발에 걸려서 그걸 살펴보았지. 그걸 가만히 보고 있자니 눈이 번쩍 뜨이더라구.

내가 직접 본 대학로의 지옥이 기억나면서 너희들이 지금 어떤 상황을 겪고 있을지 상상이 가더라. 그래서

당장 밖으로 뛰쳐나와 너네 앞집에 있던 봉고차를 몰고 나온거야. 나 점화플러그 선 쇼트시켜서 차 시동걸

줄 알거든."


"희한한 걸 알고 있네요 형은. 그래도 덕분에 살았어요. 그리고 그, 협박했던 건 미안했어요. 그땐 내가 정신이

없어서."


"뭘.. 내가 잘못한거지. 그나저나 정말 너희들 아무도 죽.. 그 뭐냐, 실패하지 않고 정말 친구를 구해냈구나.

진짜 대단해 너희들은. 북한이랑 전쟁나도 살아남을 것 같아."


"그냥 운이 좋았죠 뭘."


윤호가 옆에서 거들었다. 때마침 태완이가 정리를 끝냈는지 차 안으로 몸을 집어넣으면서 숨을 돌렸다.


"다 없앴어?"


내가 묻자 태완이는 못 탄창을 빼내 탄창수를 점검하면서 말했다.


"두 마리 남았는데 우리가 방금 골목 돌면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어. 아마 더는 못 따라올거야."


태완이는 남은 탄창을 빼버리고 새로운 탄창으로 갈아낀 다음 수정형에게 물었다.


"형, 남은 여자분 셋은 어떻게 됐어요? 설마 진환이네 집이 위험해진건.."


"아냐. 내가 막 열내는 거 보고 그 사람들도 정신차려서, 지금 너희들이 늘어놓은 짐 정리하고 식사

준비해놓는다고 했어."


"식사를 준비한다라.."


나는 피식 웃으면서 몸을 의자에 쭉 펴 기대며 중얼거렸다.

무슨 소풍나온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렇다고 핀잔을 줄 수 있는 행동도 아니고.

나 참. 그러고보니 그 사람들 이야기는 하나도 못 들어봤는데 집에 가서 천천히 들어봐야겠다.


사실 망원역에서 우리집까지 차를 타고 곧장 달리면 5분이 채 걸릴까 말까다.

하지만 달리는 좀비를 뒤에 달고 집까지 갈 수는 없었기에 꽤 구비구비 돌아온

우리는 10분정도 걸린 난리법석 끝에 가까스로 집 가까이에 올 수 있었다.

집 바로 근처 길목을 빠져나오는데, 찻길 저편에 내가 오늘 아침인가 망원경으로 살폈던

빌딩이 우리가 타고 있는 차의 라이트에 비춰졌다.

순간 뭔가 나쁜 느낌이 들어 빌딩의 입구쪽을 보는 순간 아니나다를까,

유리로 된 빌딩의 입구쪽엔 좀비들이 그야말로 바글바글했다!

나는 깜짝 놀라며 수정형 어깨를 확 잡아챘다.


"형, 라이트랑 시동 꺼요!"


"엥? 왜, 왜?"


"아 제발 빨리! 죽고싶어요?"


내가 형을 마구 재촉하는데 갑자기 차의 시동이 꺼졌다.

푸드득 하면서 시동이 꺼지는 소리가 들린 뒤 잠시간의 정적.


"뭐.. 뭐예요? 형이 껐어요?"


"아니. 이건 차키로 시동건 차가 아닌 거 알잖아. 내 맘대로 껏다켯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구. 이건 그냥

꺼져버린거야. 이 차는 이제 죽었어."


이제 이 차는 못 쓴다는 건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무엇보다 지금은 타이밍 좋게 시동이 꺼진 것에 대해 감사해야겠군.


나 말고는 아무도 사정을 몰랐기에 내 호들갑에 잠깐 침묵을 고수하던 녀석들이 조바심을 내며 내게 말했다.


"그나저나 왜 그래? 왜 차 시동을 끄라고 했어?"


"저쪽 빌딩 보이냐?"


내가 빌딩 입구 쪽을 가리키자 차 안에 있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달빛과 가로등 빛을 받고 울렁울렁 움직이고 있는 좀비들의 무리가 춤을 추고 있었다.

재복이의 여친이 히익 하는 소리를 내려는데 재복이가 가까스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는 친구들과 일일히 눈맞춤을 하면서 말했다.


"오늘 아침에, 저 빌딩 안에서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걸 내 두 눈으로 봤지. 지금 보지 못했다면 아마 큰일이

일어났을 거야. 만약 저 놈들이 단체로 우리가 있는 곳을 알아챈다면 그야말로.."


나는 말끝을 흐리면서 빌딩을 쳐다보았다.

빌딩 입구에서 우리집까지는 차도를 하나 사이에 두고있지만 성인의 걸음으로 십 분도 채 안 걸린다.

더군다가 녀석들이 우리들을 발견했건 말건 이제부터 저 안에서 좀비들이 쏟아져나올 것이다.

나는 가슴 한켠이 시큰거리는 걸 느끼며 동시에 엄청난 불안함을 느꼈다.

다음 날 아침에 이 동네는 이제 좀비천지가 되겠지.


"그.. 그럼 어떻게 해야돼? 저놈들이 퍼져나오기 시작하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지트를 옮길 때가 된 것 같네. 그것도 오늘 밤 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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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그렇게 됐어요."


집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긴 건 남아있던 세 명의 여자 생존자들.

그녀들은 우리가 챙겨왔던 무기들을 정리하고 내가 당장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놓았던 음식들을 찾았는지

그것들을 뎁혀놓은 채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인사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 이야기를 지긋이 듣고 있던 세 여자들 중 제일 나이가 어려 보이는, 학생복을 입고 있던 애가 말했다.


"그.. 그럼, 지금 모두 가야 해요?"


"그렇지 뭐. 안 그러면 늘어지게 자고 내일 아침 우리집 앞에서 개미떼처럼 바글바글 몰려있을 좀비들과

아침체조를 해야 할 텐데. 좋아?"


"조.. 좋다니, 그런.."


나와 그 애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재복이와 함께 저편에 앉아있던

재복이의 여친 서영이가(우리랑 동갑이다) 말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디로 갈 건데? 다음번 아지트."


"끄응.. 그게 문제란 말이지."


나는 미간을 지푸리고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낑낑거리다가 태완이를 보며 물었다.


"난 우리 전교1등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뭐야 그게. 나도 몰라."


태완이는 김치를 한입 뜯어먹은 뒤(이 녀석은 작은 김치조각이라도 꼭 뜯어먹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젓가락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일단 놈들의 특성을 살펴서 우리가 있을 곳을 골라야겠지. 일반 좀비들뿐이라면 거의 어디라도 상관없지만,

그 뛰는 좀비들의 기동성도 고려해봐야 하고, 또 다른 변종이 혹시 있을까 생각해봐야 해."


"나는 돌벽이 있는 곳에 일단 한표."


윤호가 말했다.


"돌벽이 둘러싸고 있고, 출입구가 한 곳에만 나 있는 곳. 그리고 정찰스팟이 있고 식량조달과 무기조달이

가능한한 쉽게 되는 곳. 되도록이면 넓은 곳."


"무슨 맵 에디트 하냐?"


윤호가 주절주절 조건을 늘어놓자 내가 핀잔을 주었다.

내가 명확한 답이 나오질 않아 불안해서 오만상을 찌푸린 채 물을 마시는데

재복이가 저쪽에서 기어오며 말했다.


"아예, 우리도 어디 사람들이 많이 살아있는 곳을 찾아보는게 어때? 예를들어 육삼빌딩 같은 곳이나, 고위급

 인사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면 생존자들이랑 군 병력이 있을지도.."


"너무 멀어. 연료만빵에 변수 생각없이 달릴 수 있을 장갑차라도 있으면 좋겠다만.."


내가 수정형을 바라보자 수정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 우리의 이동수단이었던 봉고차는 이제 죽은 상태. 또 다른 차를 찾아 이동하면야 좋겠지만 말이야 쉽지.


"제길, 우리집이 국회의사당 옆에 붙어있었으면 좋았겠구만."


"썩은냄새 나는 집이겠군, 그럼."


나랑 윤호가 영양가 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데,

수정형이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밥을 쩝쩝 씹고 있다가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있을지도 몰라. 윤호가 말했던 이상적인 대피소."


"에?"


"진짜요?"


우리들이 깜짝 놀라 형을 쳐다보자 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늦게 말해서 미안해. 거기까지 갈 수 있을 확률이 너무 적어서 말을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야.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너희들과 함께라면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어.. 어딘데요, 거기가."


수정형은 모두를 쳐다보며서 말했다.


"여기서 걸어서 30분, 내가 다니던 패밀리마트의 지점이 하나 있어. 그 곳은 윤호가 말했던대로 돌벽으로

둘러쌓여있고, 출입구도 하나야.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가 밖을 내려다볼 수 있고 골목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단점은 출입구가 유리라는 거야. 어때, 괜찮겠어?"


"거기 식량은요?"


태완이가 물었다. 그러자 수정형은 어깨를 으쓱 하더니 말했다.


"거기까진 모르겠어. 하지만 편의점이니까 괜찮을 거야. 게다가 그 근처엔 유난히 편의점이 많아. 다 그

근방이니까 괜찮을 거야."


이 곳에서 십년을 넘게 구른 몸이다.

나는 형의 묘사를 머리에 그리면서 눈을 굴리다 보니 대충 그 곳이 어디인지 알 것도 같았다.

나는 손바닥을 탁 치면서 말했다.


"나 거기 어딘지 알 것 같아요! 저기 서쪽에 큰 은행앞에 주유소 돌아서?"


"어, 거기야. 문제는 거기까지 갈 방법이 도보밖에 없다는 거야."


"상관없어요. 이래도 저래도 죽을거, 당장 가자구요."


"어?"


"당장?"


다른 사람들은 놀라서 내게 되묻는 반면,

태완이와 윤호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와 동시에 일어났다.

좀비사태가 일어나고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빠른 행동엔 이골이 난 우리다.

나는 멍하게 날 쳐다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우리는 우리가 챙길 짐이 있어요. 모두들 짐 챙기시고, 언니들도 짐 챙기고. 너도. 아 이재복, 너 그 서점에서

니 가방 내가 가져왔다."


"아 고마워."


내가 현관문 쪽에 놓아둔 가방을 가리키자 재복이가 가방을 가지러 걸어갔다.

갑자기 집안이 분주해졌는데 예의 그 학생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저기.."


"김진환이다. 이름으로 불러."


"아, 진환오빠. 저기, 피곤하지 않으세요? 다른분들도 조금 쉬었다가 가시는게.."


"피곤하니까 지금 가는거야."


"네?"


나는 하품을 하며 시계를 보았다. 벌써 새벽 두시 반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윤호도 나도 태완이도, 오늘아침 일어난 이후로 계속 사건이 터져서 녹초가 된 상태야. 사실 난 당장이라도

뻗어버리고 싶어. 하지만 그러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내일 죽겠지. 지금은 빨리 움직여서 안전을

확보해야 돼."


"나는 너네 사정도 궁금하다 야."


윤호가 옆에서 끼어들자 그 애가 살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수정형과 같이 온 저 세 사람들은 아직 이름도 모르고 사정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극한상황에서 이름을 모른다는 건 꽤 크다.

만약 어떤 사람의 뒤에서 좀비가 달려오고 있는데 내가 그걸 발견하고도 '

저.. 저기! 아 누구더라? 뒤에 좀비가..' 하다보면 그 사람은 1초 뒤 좀비와 같이 뒹굴것이다.

당장 출발하면서 이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봐야겠군. 졸린데 잘 됐다.


"너는 이름이 뭐냐?"


"네? 아름이예요. 김아름."


"다 김씨네."


윤호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나도 태완이도 윤호도 김씨. 거기다 얘도 김씨다. 다른 두 누님은 성씨가 어떠려나?


슬슬 짐을 다 싸가는 것 같은 분위기가 되자 나는 박수를 치면서 윤호와 태완이 곁에 서서 말했다.


"자 그럼 잠깐만 모두 들어요. 지금부터 밖에 나가면 나랑 수정형이 앞장서서 그 편의점까지 갈 겁니다.

모두들 무기를 하나씩 들고 가도록 하고, 제일 중요한 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난리치면서 비명지르지 말 것!

그럼 좀비를 더 불러모을 뿐이예요! 그리고 길을 가다가 뭔가가 어둠속에 보이면 혼자 눈쌀 찌푸리고 살피지

말고, 당장 누군가에게 말할 것. 알았죠?"


"무슨 소풍가냐 시꺄?"


"니는 닥치세요 좀. 김윤호 너는 태완이랑 같이 뒤를 맡아. 그리고 이재복이랑 수정형. 형들도 남자니까 각자

우리 일행의 옆구리를 맡아요. 그리고 여자분들은 가급적 긴 무기를 쓰세요. 꼭 칼 같은게 안 달려있어도 돼요.

빗자루같은 걸 사용해서 밀어내기만.."


쿠과과과과광


퍼어엉


"꺄아아아악!!"


"우와악! 뭐야!"


내가 열심히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갑자기 땅이 흔들리면서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집의 전등이 번쩍거리면서 집 전체가 흔들렸다.


꽈아아아앙


"우와아악! 귀아파!"


또 한 번의 굉음.

이번엔 정말 근거리에서 울린 소리인지 한순간에 귀가 터져버리는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지며

나는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눈앞이 번쩍거리는데 갑자기 내 어깨를 누군가가 잡아챘다.

태완이었다.

태완이도 얼굴을 찡그리고 귀를 막고 있었는데, 손을 흔드는 걸 보니 밖으로 나가자는 소리 같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등을 밀면서 외쳤다.


"모두! 밖으로 나가요 밖으로!"


꽈아아아앙


쿠과과광


"꺄아악!"


"밖으로! 빨리!"


사람들이 각자 들고 있던 짐을 챙겨서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간 내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건 어디선가 피어올라오는 거대한 구름기둥이었다.

그리고 밤하늘을 비추는 땅에서부터의 붉은 빛! 이것은 언젠가 스크린 속에서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다음순간 우리의 위로 무언가 큰 물체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그리고 또 굉음.


꽈과광 퍼엉


"우와아아악!!"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폭발이 일어난 건 바로 우리가 우려하고 있었던 빌딩 부근이었기 때문이다.

온 땅이 뒤흔들리는 걸 느끼면서 내가 소리쳤다.


"폭격이다! 비행기로 폭탄을 떨구기 시작한거야 이 미친놈들이!"


"야 이 강아지들아! 아직 생존자들이 있다고!!"


쿠구구궁


어디선가 또 폭격이 시작되었는지 멀리서 붉은 빛이 나며 무거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지트를 옮기려고 하는 순간 시작된 폭격.


좀비에게서 살아남으려던 우리는, 같은 목적을 위해 떨어뜨리는 폭탄에게 목숨을 잃을 상황에 처해버렸다.

 

10화-생존자

 


"..으음."


나는 간신히 눈을 뜨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니 잠을 잔건지 기절한건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기억하기로 내 의식은 폭탄이 마구 떨어지는 와중

친구들과 함께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마당 구석에서 웅크리고 소리를 지르던 즈음에서 끊겼다.

아마 머리를 싸잡고 공포에 떨고 있다가 지쳐 잠들었겠지.


나는 몸을 일으켜 어디 상처가 없는지를 체크했다.

다행이도 나는 작은 타박상 하나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

리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하나 눈에 익은 얼굴들이 사방에 엎어져 잠들어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체크해야 할 것은 우리 집.

나는 몸을 돌려 마당 한가운데로 나와서 우리 집을 살펴보았다.

기적적으로, 지금 딱 내 눈에 들어오는 곳엔 아무런 폭격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의식했다. 우리는 살아남았다는 걸.


"하하.. 미친, 백화점에서 사람들 발 사이로 지나다니다가 겨우 살아난 개미의 심정이 대충 이럴까."


나는 다시 마당에 엎어져있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뭐 팔이 없어졌다거나 몸 반쪽이 저편에 있다던가 하는 상태의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애들을 깨우기에 앞서 이층 바깥복도로 올라갔다. 골목 밖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몇 걸음만에 이층으로 뛰어올라와 밖을 쳐다본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우.. 우와. 신발. 뭐가 떨어졌길래 저렇게 됐지?"


나는 내 눈을 믿지 못하고 욕을 쏟아냈다.

우리가 제일 걱정했던 집앞 빌딩의 위쪽 4분의 1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 큰 빌딩도 아니지만(10층짜리다), 저런 식으로 건물이 빠개진건 만화책 속에서나 봤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내 눈에 들어온 건 그 빌딩과 우리집이 있는 골목 사이에 나 있는 큰 2차선 차도.

그곳엔 마치 운석비가 내리기라도 한 듯 온동 구멍투성이었다.

저 폭격이 조금만 아래쪽으로 떨어졌더라면 우린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 망원경."


나는 어제 아침에 빌딩을 살폈었던 망원경을 기억해내고 이층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내 체중이 아래로 쏠리며 시야가 바닥으로 향했다.

뭔가 이상한데.. 가 아니라 저기 보이는건 1층 마루?


"우와와!"


밑으로 떨어지려던 몸을 가까스로 수습하고 문칸에 매달린 채 나는 잠깐 숨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이층의 현관 안쪽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입을 벌리며 완전히 굳어버렸다.


집의 뒤가 없어?


그러고 약 10초간 있다가, 쩍 벌리고 있는 내 입에서 침이 직 흘러나오는 순간에야 정신을 차린 나는

추르릅 하며 침을 빨아들인 뒤 말했다.


"이.. 이게.. 무슨.."


내가 마당에서 보았던 우리집의 온전한 앞모습은 그저 폐허의 단편일 뿐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집이 커다란 케이크라고 한다면,

그 뒷부분을 거대한 입이 한 입 베어물기라도 한 듯 집의 뒷부분엔 엄청난 구멍이 뻥 뚫려있었다.

2층 바닥이 그 충격으로 죄다 날아갔는지 이곳에서 보니 1층이 다 보였고,

내가 아까 떨어질번한 1층 마루의 조금 뒷부분은 폭격으로 흙구덩이가 되어 있었다.


"으아아, 우리집이, 우리집이.. 10억이 넘는 우리집이!"


나는 문칸에 서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부르짖었다.

부모님이 돌아오시면 뭐라고 하냐!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가?


내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들이 겹쳐 흘러갔다.

그중 제일 큰 것은 물론, 빌딩에 있는 좀비들은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만 집이 이렇게 된 이상

아지트를 옮겨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는 것.

우리의 이사는 그저 하루 늦춰졌을 뿐이다.

열받게도. 게다가 지금 부엌이 있던 부분이 홀랑 증발되어버렸으니 이제 우리의 전재산은

어젯밤 폭격이 시작되면서 허겁지겁 들고나온 짐들 뿐.


나는 닫아봤자 의미도 없는 문을 닫고는 바깥복도의 난간에 팔을 걸치고 밖을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도 안된다.

좀비사태가 일어난지 겨우 사흘.. 그런데 사전 예고도 없이 한 나라의 수도에서 전체폭격이 이루어지다니?

생존자들은 어쩌라고?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사전예고를 했을수도 있겠다.

근데 우리가 워낙 정신이 없어서 라디오고 티비고 인터넷이고 쳐다볼 겨를이 없었으니..

우리같은 생존자들을 모두 잃을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미 한국은 끝난 걸지도.


순간 내 머리에 지금까지 알던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나는 몸서리를 쳤다.

아닐거야, 아마도. 아마 특정 지역에만 좀비들이 들끓어서 살짝 폭탄을 떨군 거겠지..

그래, 바로 우리 동네 근처만 말야. 아마 지나가던 군대가 우발적으로 한 두발 떨어뜨린 것일 뿐이겠지.

내 친구들이랑 할아버지 할머니는 다 무사할거야.. 그래..


내가 정신병자처럼 생각하고 중얼거리고를 반복하고 있는데 눈 앞에 뭔가 커다란 물체가 하늘하늘거리며

하늘에서 내려왔다.

내가 그 물체를 차마 확인하기 전 그것은 마당까지 내려와 윤호의 얼굴에 떨어졌다.


풀썩


"쿨럭! 우웁 우우웁?"


그 물체는 낙하산이 달린 담긴 작은 박스였다.

낙하산에 상반신이 완전히 싸여진 윤호는 숨이 막혔는지 자다말고 몸을 벌떡 일으키고 온몸을

비틀며 초등학생들이 즐기는 유령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본의는 아닐 테지만. 윤호의 소란에 옆에 넘어져있던 태완이가 눈을 떴다.

사람들이 서서히 일어나자 나는 박수를 치며 아래로 내려갔다.


"자~ 일어나셔! 우린 살았다구. 이사 마저 하자구요."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래로 내려오면서 쳐다본 우리 동네의 하늘엔, 윤호에게 떨어진 것과 같은 물체가 수십 수백개

낙하산과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뭘까? 폭탄은 아닐테고.


마당에 내려오니 태완이가 윤호를 도와 낙하산을 벗기고 있었다.

나는 낙하산은 아랑곳않고 일단 거기에 달려있던 작은 상자에 주목했다.

상자를 열려던 나는 거기에 매달린 줄이 바둥거리고 있는 윤호와 함께 춤추며 내 얼굴을 탁탁 치자

짜증을 내면서 내가 누워있던 자리로 가 식칼창을 들고와 그 줄을 끊어버렸다.

다시 상자에 매달린 나는 봉인을 풀기에 좋은 상태로 상자를 돌리는 순간 상자 옆에 붙어있는

작은 편지를 볼 수 있었다. 컴퓨터로 쓰여졌을 것이 분명한 인쇄체의 글자로 쓰여진 편지였다.


"뭐지 그게?"


어느샌가 일어난 수정형이 내 옆으로 와서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요.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왔어요."


"하늘에서?"


"저게 떨어뜨린 건가 봐."


"뭐?"


윤호에게서 낙하산 떼어내기를 포기한 태완이가 버둥거리는 윤호를 옆으로 밀어내면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태완이의 손가락을 따라가보니 그곳엔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가 하나 보였다.

그리고 녀석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행기에서 무언가가 확 뿌려져 땅으로 살랑살랑

내려가는것이 똑똑히 보였다. 이렇게 멀리서 보니 꼭 민들레씨 같군.


나는 고개를 내리고 다시 상자를 쳐다보았다. 상자 옆에 붙은 편지엔 이렇게 써져있었다.


++++++++++++++++++++++++++++++++++++++++++++++++++++++++++++++++++++++++++++++++++++++++++


(K-바이러스 사태에 관한 안내문)


친애하는 서울시 주민 여러분.

여러가지 사실을 전하기에 앞서,

일단 K-바이러스 사태에 소중한 친인척들을 잃으신 분들께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이 사태를 미리 막지 못한 저희 국가 지도부의 책임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K-바이러스 사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 약 이틀 후,

이미 온 대한민국은 '좀비'라 불리우는 괴물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저희 대한민국의 국방부는 더이상의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약 24시간에 걸친

경보발령 후, 좀비들을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공군을 투입,

사태의 최고 밀집지역에 폭격을 실시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서울시민 여러분들은 경보를 채 듣거나 알지 못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그러나 좀비들을 육군만으로 신속히 처리하기엔 역부족이었고,

그에 따라 가장 확실하게 경보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을 저희들은 실시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모든 대형 미디어매체가 통신불능이 됨에 따라 저희들은 군의 전파방송으로

그 사실을 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때아닌 폭격을 겪게 되어 많은 신체적 혹은 정신적 피해를

입으셨을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생존자로 분류되며,

휴전선의 군시설까지 올라오실 경우 특수 구호조치를 취해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상자 안에는 여러분들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장비가 들어있으며, 여러분들의 신분을 증명할

팔찌가 네 개 들어있을 것입니다.

한 달 뒤,

대한민국 군부대는 미국과 일본, 중국 등 10개국과의 연합군을 달성해 K-바이러스 사태 진압을 위해

남진을 시작할 것입니다.

혹시라도 대피도중 군부대를 만나신다면 생존자 팔찌를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생존을 위한 물자보급을 해 줄 것입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안전한 장소에 있는데도 휴전선으로 떠날 준비를 하신다면 그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연합군은 절대 어제와 같은 무단폭격을 실시하지 않을 것이며 팔찌가 없는 생존자들을 만나더라도

절대 져버리지 않고 안전을 보장해드릴 것임을 보장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살아남아 주십시오.

그럼 하루라도 빨리 여러분들을 휴전선에서 볼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


"강아지들이! 사람 머리 위에다가 융단폭격을 해놓고, 뭐? 살아남아 주십시오? 병주고 약주냐?"


"진정해. 살았으니까 됐지 뭐. 그나저나 연합군이라니? 코딱지만한 땅덩어리에 무슨.."


"정보수집용이지, 당연."


내가 궁금해서 중얼거리는데 태완이가 옆에서 말했다.


"이런 사태는 인류역사 이래로 처음일 거 아냐. 세계 유력국가들이 정보수집을 위해 군을 보냈을거야. 그런

점에서 보면 보낸 군인들은 대부분 엘리트들일테니 우리야 좋지 뭐."


내가 편지를 다시 보기 위해 그것을 상자에서 떼어내자 윤호가 내게서 상자를 받아들어 그것을 뜯기 시작했다.

나는 편지의 내용을 빠르게 다시 한 번 훑은 뒤 편지를 뒤집어보았다.

아니나다를까 그곳엔 보급물자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식수 1.5L 들이 두 병

건빵 10인분

생존자 팔찌 4개

서울시-인천-휴전선을 아우르는 지도

연합군 남진계획도(날짜에 따른 진군예상도 등)

신호탄 1통


"푸짐하구만."


수정형이 내 어깨너머로 글을 보더니 한 마디를 했다.

나는 편지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박스를 들고 덜걱거리는 윤호에게 다가갔다.

과연 편지에 써져있는 물자 그대로였다.

일반 장바구니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박스 안에는 물통 두 병과 건빵 5봉지

(1봉지에 2인분인듯 싶었지만 꽤 작았다),

지도 두 장과 그것을 심지처럼 가운데에 끼고 있는 초록색 팔찌 네 개,

마지막으로 건빵봉지 밑에 파뭍혀있는 작은 다이너마이트 같은 것이 보였다.


"이게 신호탄인가봐?"


내가 그걸 집어들면서 말했다. 그러자 윤호가 말했다.


"한달있다 온다니깐 그 사이엔 쓸모없겠네, 뭐."


"그렇지도 않지. 생존자들 사이에서도 쓰일 수 있을테니까."


태완이가 대답하는데 수정형이 팔찌를 하나 빼들며 말했다.


"근데 이거, 이게 있어야지 도움을 재깍 받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우린 지금 아홉 명이나 된다구."


"뭐 어때요. 가다가 또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고, 당장 중요한건 그게 아니니까. 단단히 뭉쳐서 휴전선까지

올라가는게 우선이잖아요."


"그런가.."


"아아앗! 언니! 언니!"


우리가 상자를 살피고 있는데 뒤에서 아름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우리들은 깜짝 놀라 아름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무슨 일이야?"


"언니가.. 지혜 언니가 없어요!"


"지혜.. 언니? 그게 누구야?"


내가 묻는데 수정형이 나를 보며 말했다.


"나랑 같이 왔던 여자분들 중에 제일 키 큰 사람 있었지? 그 사람이야."


"아~ 알겠다. 근데 뭐? 없다니 뭔 소리야?"


아름이가 훌쩍거리면서 말했다.


"저.. 방금 일어났는데요, 어제 폭격때, 언니가 막 소리지르더니 밖으로 뛰쳐나가는 걸 봤는데.. 오늘

일어나고 다들 떠들썩한 거 보고 혹시나 하고 있었는데, 진짜 없어요.."


"뭐?"


"아 돌아버리겠네.."


난감한 상황이었다.

나는 폭격도 내렸었겠다 여유를 가지고 아침도 차려먹고 천천히 출발할까 했었는데

한 명이 밖으로 나갔었다니..

폭격이 있었다고 해서 무조건 밖이 안전할 리는 없는 게 당연하고,

무엇보다 우리집의 코앞에 폭격이 내렸었는데 그 때 밖으로 나갔더라면..


나는 애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쩔래? 난 일단 준비를 하고 나가자고 하고 싶어. 이런 말 하긴 싫지만, 아까 이층에서 본 결과로 지금 이

담벼락 밖은 전멸상태야. 아마 못 살아남았을 거라고 생각해."


"네? 정말이예요?"


아름이 말고 다른 여자분이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우린 어젯밤에 불편하게 잠을 잤어요. 그리고 갑작스럽겠지만, 집 뒤쪽이 폭탄때문에 뚫려있기

때문에 좀비들이 언제 그리로 쏟아질지 몰라요. 체력보충하고 수습하려면 지금밖엔 없어요."


"진짜네."


어느샌가 아래층 문을 열고 들어간 윤호가 모두에게 보라는 듯 현관문을 활짝 열고 손짓을 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집 안쪽을 보니 우리집의 뒷골목까지 훤히 다 보였다.

이건 살아있는게 기적이다 진짜.


모두들 어찌할바를 몰라서 주저하고 있는데 윤호가 현관문을 닫으며 마당으로 다시 오자 수정형이 말했다.


"어쨌건 진환이가 가지고 있는 편지에 의하면 군이 남하를 시작하기까지는 한 달이 걸린다고 했어. 그동안

우리는 살아남던가, 휴전선으로 올라가던가 해야 해. 낭비할 시간은 없어."


"일단 밥을 먹고 빌딩쪽을 살피죠. 아직은 그래도 우리집 마당이 안전하니까, 여길 거점으로 주변을 살핀 뒤에

조를 짜서 편의점까지 가 보고, 그곳이 온전하다면 이동. 아니면 다른 곳을 찾던가 하죠. 좀비들이 거의

없어졌다면 계속 여기에 있도록 하고.."


"뒤가 뚫렸는데 뭐가 안전해?"


윤호가 외치자 내가 말했다.


"구덩이도 벽이 될 수 있어. 저놈들 지능으로 봐서는 저렇게 큰 구덩이가 있으면 충분히 방어벽 역할을 할 수

있을거야. 뭐 그렇다곤 해도 최대한 빨리 진행해야겠지."


"그.. 그럼 지혜언니는요?"


아름이가 덜덜 떨면서 말하자 태완이가 말했다.


"걱정 마. 포기는 하지 않아. 다만 일단은 우리가 우선이야. 여기서 최대한 빨리 식사를 하고, 조를 짜서 누나를

찾으러 나가보자."


"정말요?"


"그래. 약속할께. 앞으로 우리는 하나야. 절대 누군가를 져버리지는 않을 거야.. 적어도 죽기 전까지는 말야."


그렇게 말하면서 태완이는 재복이를 본 뒤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최후의 생존까지, 앞으로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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