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에는 27명의 왕들이 있었습니다. 27명의 왕이 있듯이 조선왕조에는 너무나도 훌륭한 업적을 남긴 왕부터 시작해서 수탈과 죽임을 일삼았던 왕, 그리고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는 왕들까지 다양한 인생을 산 왕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조선 제 6대 왕(재위 1452~1455) 단종을 알고 계십니까? 조선 제 5대 왕 문종의 아들로써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에서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너무나도 안타까운 왕입니다. 저는 조선의 조선의 27대 왕들 중 17년 짧은 인생동안 너무나도 힘들게 산 단종이 더욱더 정감이 갑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꽃도 피지 못한채 죽음을 맞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종의 숨결을 느끼다" 라는 주제를 가지고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의 청령포와 그의 무덤인 장릉을 찾아갔습니다. 그 곳에서 저는 일반적인 여행이 아닌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를 관찰하고 더 깊이 생각하며, 단종의 마음으로 이 장소들을 느껴보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여행지로써가 아닌 역사 문화유적지로써 이 곳들을 캠리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 청령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약 2000원의 왕복 승선료를 내야 한다. ⓒ2012.6 청령포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유배지 청령포
청령포는 조선왕조 제 6대 임금인 단종이 1457년(세조3)에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처음으로 유배가 되었던 곳입니다.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막혀있어서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유배지로 적합한 곳이기도 합니다. 역시 단종이 유배되었던 영월의 쳥령포는 "육지속의 섬"이라는 이름을 지어도 될 정도로 거의 동서남북으로 강줄기가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마음먹지 않는 한 도저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는 이곳을 그 옛날에도 분명히 배를 타고 들어갔을 것입니다. 단종은 이 강물을 건너면서 너무나도 비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 오래된 노송들이 청령포를 감싸고 있었다 ⓒ 2012.6 청령포
▲ 백성이 출입을 금하기 위해 영조가 세운 '금표비' ⓒ 2012.6 청령포
"아무도 이곳에 들어오지 말라"
금표비는 단종이 유배되어 있던 이곳을 일반 백성들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영조2년(1726)에 세운 비석입니다. 뒷면에 「동서 삼백척 남북 사백구십척 차후 니생역재당금숭정구십구년」이라고 음각되어 있습니다. 즉 이곳 청령포에 발을 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단종은 세조에 의하여 직위도 없어지고 죽임을 당했지만 후세에 다시금 명예를 되찾음으로써 이런 비석이 생기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종은 어떤 마음이였을까요?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이 절실했을 듯 싶습니다. 자기 자신도 굉장히 한탄하고 있었을 터인데 후손이 인정해 준다는 것 만큼으로도 마음의 안식을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정성이 들어간 한글자 한글자가 너무나도 인상깊게 느껴졌습니다.
▲ 어린 단종의 슬픔을 알았던 것이였을까. 많은 소나무들은 한양을 향하고 있었다고 한다.ⓒ 2012.6 청령포
▲ 어린 단종의 모습을 보고 흐느꼈을 600년 노송 '관음송' .ⓒ 2012.6 청령포
어린 단종이 쉬고 놀았다는 관음송
약 30m 높이의 600년 노송인 관음송은 단종이 유배되었을 당시에 이 나무에 갈라진 곳에서 앉아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나무는 600년동안 한 자리에서 단종의 슬픔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비참한 생각에 잠겨있었을 단종. 이 나무에서 안식을 취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 때 당시에는 이정도로 크지 않았을 이 나무에서 말이죠. 또한 나무도 세상이 변해가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면서 단종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언젠간 분명히 단종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 청령포 안의 또다른 담장. 이 안에서 단종은 또 갇히다. ⓒ 2012.6 청령포
▲ 어린 단종은 항상 이렇게 지냈을까. 현재의 나보다 훨씬 어렸을텐데. ⓒ 2012.6 청령포

▲ 시조 촉루가. 이 시조의 지은이는 어린 단종을 생각하며 애간장을 태웠을 것이다 ⓒ 2012.6 청령포
어린 단종을 걱정하며 따르던 사람들.
'방안에 켜져있는 저 촛불은 누구와 이별하였기에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속이 타들어가는줄 모르느냐, 그것은 꼭 속이 타서 눈물짓는 나의 신세와 같구나' 사육신 이개가 쓴 시조를 해석한 것입니다. 그만큼 단종을 위하고 걱정하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나도 진실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456년 박팽년,성삼문 등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 사건을 알고 있으십니까? 단종복귀운동을 하다가 죽음을 당한 성삼문 등의 6명을 사육신(死六臣)이라고 합니다. 이 사육신들은 비록 들키기는 하였으나 문종의 유언, 그리고 단종을 위하여 죽음이 앞선 가운데 절개를 지켰다고 합니다. 단종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까웠을 마음이였을 것 같습니다. 청령포 안에 복원되어 있는 유배처소를 바라본 저는 근심가득하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단종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 멀지 않지만 너무나도 멀게 느껴지던 강 건너편. 단종의 마음과 같았을까. ⓒ 2012.6 청령포

▲ 단종을 애타게 생각하던 왕방연의 시조. ⓒ 2012.6 청령포
다시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된 단종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임을 이별하고 내 마음을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아 있으니 저 물도 내 마음과 같아서 울면서 밤길을 흘러가는구나' 위의 시조를 해석한 것입니다. 이시를 쓴 왕방연은 단종이 유배를 갈때 호송을 맡았던 신하입니다. 그 만큼 단종이 유배되는 상황을 너무나도 애석하게 생각했다는 것이였습니다. 청령포로 향하는 강을 건너기는 쉬웠으나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너무나도 애석해 하는 것이 시조에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후.. 명령으로써 단종은 사약을 마시고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애석하지요. 이 좁은 공간에서 어린나이에 죽음을 맞이 하다니..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까운 장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잠시 들렀던 청령포 이지만 조금이나마 그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 어린 단종의 죽음. 그리고 장릉이 되다. ⓒ 2012.6 청령포
▲ 슬픈 과거가 담긴 장릉에서 단종을 새로이 느끼다 ⓒ 2012.6 청령포
단종의 능. 장릉에서 단종의 숨결을 다시 느끼다.
강원도 첩첩산중에 위치한 단종의 능. 조선왕조의 많은 왕들이 주로 한양 근처에 있다면 외롭고 쓸쓸히 영월 산중턱에서 외롭게 위치해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슬픈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단종의 죽음은 두가지 설이있었는데 첫번째는 조정에서 내려온 사약을 마셔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설. 두번째로는 통인의 활에 의해 교살되었다는 설이였습니다. 그런 지금은 후자가 맞다고 합니다. 영월지역 호장 엄흥도는 교살당하여 강물에 떠내려 가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이 장소에 평토장으로 매장하였다고 합니다.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용기있게 다가가지 못하였지만 엄흥도라고 하는 호장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너무나도 떳떳하였으며 엄벌을 받아도 달게 받겠다고 할 정도로 절개가 넘치는 사람이였습니다. 이렇듯 단종은 죽어서도 험난하였지만 충신들에 의해서 고이고이 영월의 한 땅에 묻혀 있게 된 것입니다. 슬픈 과거가 다 담겨있는 장릉에서 단종의 숨결을 느끼며 다시 한번 아픈 역사를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단종의 숨결을 직접 느껴보고 다시한번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드시지 않나요?
강원도 영월에서 청령포와 장릉은 꼭 한번 들러보십시요!! 꼭 느끼고 가십시오!!
출처: 영삼성
[원문] [대전2조/이지훈] 비운의 왕 단종. 그의 숨결을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