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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만 살면 좋겠다...

라쿨 |2003.12.21 12:04
조회 1,493 |추천 0

며칠 전, 거의 다 먹어서 잘 안나오는 케찹통을 양파링 조각으로 후비고  있는 저를 보고 신랑이 한 소립니다.

신랑은 편하게 침대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고 저는 그 발치에 앉아 침대에 과자부스러기를 흩날리며

마치 뭔가에 열중한 침팬치 마냥 양파링과 케찹에 폭~! 빠져 있던 중이었죠.

저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신랑을 쳐다봤습니다. 아니 지금 우리 단둘이 살고 있는데 왜 저런말을 하나..하고요.

 

라쿨 : (멀뚱멀뚱)

신랑 : 우리 애기 왜 이렇게 귀엽냐?

라쿨 :   (케찹이 성공적으로 묻은 양파링을 오물오물..)

신랑 : 그냥 앞으로도 이렇게 애기랑 오빠랑 둘이만 살면 안될까?

          (참고로 제가 생일이 자기보다 보름이나 빠른데도 굳이 자기를 오빠라 칭하고 저를 애기라

           칭하죠.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건 제 의지가 전혀 아닙니다. 어서 닭살들 터시지요.)

라쿨 : 그럼 우리 두비는? (두비는 제 뱃속 아가의 애칭입니다. 지금 9개월째죠.)

신랑 : (씁쓸한 얼굴로) 애기가 너무 빨리 생겼어.

          우리끼리 주말에 영화도 보고 놀이공원도 가고 술도 마시러 다니고 그래야  하는데 말이야...

          난 그냥 우리 둘만 이렇게 계속 살아도 좋을거 같은데...

라쿨 :  .. ..

신랑 : .....

라쿨 : 자기야 그럼.. 나 애기 낳지 말구 그냥 이렇게 뱃속에만 넣구 다닐까?

         이제 와서 그런말 하면 어떻게 해? 애기 들으라구..정말 나쁜 아빠야.

         그리고 우리 애기 낳으면 대전 어머니댁에서 봐주실텐데 그때 그러고 다니면  되잖아..

신랑 : 시무룩..

 

솔직히 길거리 지나가는 평균정도의 아기들만 봐도 가던 길을 멈추고 몸까지 돌려가며 '너무 이쁘다'

'저 애기 좀 봐. 쪼매내서 너무 귀여워' ' 헤엑~! 얼굴 하얗고 속눈썹이.. ' 라며

 어쩔줄 몰라하던 사람이기 때문에 결혼하기 전부터 친정에서건 시댁에서건 제가 아기만 낳으면 신랑이 가장 좋아할거라고 했거든요.

아니 그런데 이게 왠 청천벽력입니까?

 

라쿨 : 자기..혹시 우리가 애기 갖구 엄마아빠되구..책임이 생기구.. 주말에는 대전에 애기보러 

          가야해서  우리생활없이 애기한테 매이게 되는게 싫은거야?

신랑 : 응..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나중에라도 우리끼리 이렇게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이렇게 살아도

         좋을거 같은데..

라쿨 : 그건 지금 생각이지..애기 낳으면 자기도 좋아할거야..

신랑 : (티비시청)

 

신랑은 제가 테스터기로 임신인걸 확인했을때도 저를 안아주며 그랬었습니다

'미안..티비보니까 이럴 때 남편들 부인도 업어주고 눈물도 흘리고 야호~도 하고 그러던데

나는 솔직히 어떤 기분인지도 모르겠어..거짓말이라도 그렇게 못해서 미안해' 라고 했었죠.

저도 물론 그 때 어떤 느낌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신랑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기에게 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대화도 나누라고 해도 어쩔줄 몰라하며

'솔직히 똥그란 배에 대고 뭐라그래? 애기가 앞에 앉아있는것도 아니고' 라며 구박받을 짓을 했죠.

제 가슴으로 손이 올때 '안돼! 우리 두비줄거야!' 라고 몸을 돌리면 심술맞게도 배에 대고 그럽니다

'너! 니가 태어나도 엄마는 내꺼야! 엄마를 더 사랑할거야!!' 

신랑은 아직 아빠가 되는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거 같아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 물론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다들 처음겪어보는 일이라서 어쩔 줄 모르다가

막상 아기가 태어나면 그제서야 부모로서 자격을 갖춘다고 생각합니다.

님들은 어떠셨어요? 저는 혹시라도 신랑이 아기 낳고도 아기에게 사랑을 조금만 줄까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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