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를 보았다.
간간히 스마트폰에서 꺼내보던 영화를 오늘에야 마저 보았다.
이 영화..할 말이 많아져버렸다.
보는 내내 답답했지만, 끝까지 본 이윤 결말의 궁금증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 결말은 궁금했지만 참으로 답답한 영화였다.
아니, 답답이 아니라 짜증이 맞겠다.
이유는 '은교' 때문이다.
은교의 캐릭터는 무엇을 위해서 존재했나?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두 남자의 치정을 위한 도구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마디로 은교는 살아있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 마초를 표방한 남성주의 영화인가?
아니, 딱히 그래보이지도 않는다.
영화를 보며 김기덕을 생각했다.
김기덕은 인간의 탐욕과 본능을 영화적으로 성찰하는 사람이다.(순전히 내 주관임)
그 탐욕과 본능의 일종으로 마초를 다루기도 한다.
그리고 그럴 땐 미리 관객들에게 말을 건넨다.
이 영화 마초적이니깐, 그걸 전제로 하고 영화를 보라.
그게 싫으면 보지 마라. 이렇게.
그런데, 이 영화는 최소한 김기덕스런 친절조차도 베풀지 않는다.
오려 늙은 할아버지와 어린 여고생의 사랑이라는 로맨스로 승화시키려한다.
그렇다면 그럴만한 개연성이 충분히 설명되어야 하는데, 그런 친철도 없다.
아니, 나름 그런 친절을 베풀려 하지만 그게 억지스럽고 은교의 캐릭터에겐 폭력적이다.
<은교>라는 제목의 감투에 어울리지 않게 은교는 수단화 도구화되어 있다.
은교의 삶을 둘러싼 남자는 오직 이적요(늙은 남자)와 서지우(젊은 남자)밖에 없다.
은교의 삶의 공간은 이적요의 집밖에 없다.
은교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 두 남자와 이적요의 집뿐이다.
무슨, <짝>의 애정촌도 아니고 심해도 너무 심했다.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 있다.
17세의 여고생이 늙은 남자, 할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로맨스를 만들어야 하니,
그런식의 연출이라도 필요했겠다 싶다.
그래도 그렇지,
17세 여고생의 삶이 오직,
두 남자와 특정지어진 한 공간으로 정리되어버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결국,
이 영화는 <은교>라는 매력적인 제목에,
은교라는 17세 소녀 캐릭터를 수단화하고 도구화하여,
늙은 남자와 젊은 남자의 치정극이라는 아주 진부한 이야기를,
19금과 헤어노출이라는 야릇한 연출로 포장한
사실은, 마초영화다.
그나마, 화면은 아름다워 연출은 맘에 들었다.
그래서, 이 감독, 도대체 각본 보는 능력이 있는 거야? 하고 각본을 보려고 찾아봤더니..헐~..
각본,감독 정지우.
그것도 <해피 엔드>를 만들었다.
그러고보니 생각났다. <해피엔드>의 정지우.
그렇다면, 이건 뭔가?
<해피엔드>의 각본도 정지우다.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뭔가?
아마도, 감독은 자기과신을 한 듯 하다.
혼자서 생각했을 터이다. 이 그림에 이 내용이면 된다..고.
헐~...이다.
내가 제일 의아한 건,
왜 하필..은교는 17세의 교복 입은 소녀여야 했을까? 이다.
영화는 굳이 꼭, 은교가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은교는 대학생이어도 상관이 없었고,
하이킥의 신세경이어도 상관이 없었고,
출판사 여직원이어도 상관이 없었다.
문학을 꿈꾸는 국문학도 출신의 기자여도 상관이 없었다.
아니, 늙은 문학 지성에게 매력을 느낀 술집 여자여도 상관이 없었다.
그냥 '젊은 여자'면 충분했을 은교가 왜 굳이 17세의 여고생이어야 했을까?
난,
다시,
여기서,
마초를 읽는다.
탐욕의 남성의로서의 욕망을 포장하는데, 적절한 장치인 거다.
제길...그렇다고...꼭,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
이렇게 쓰고 보니..
이 영화 등급외 상영관에 걸릴 영화정도에 불과하다..
<은교>는, 꼭, 그 정도로 평가하면 족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