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보고 싶어. 우리 딸, 천국에 가서 만나자"
옥수수를 비닐봉투에 담아 건네는 김 할머니(72,여)의 시선이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기에 꽂혀있다. 아기 어머니로부터 옥수수 가격 2,500원을 건네 받은 김 할머니는 도무지 아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우리 딸 태어났을 때도 아까워서 바닥에 놓지도 않고 키웠는데…저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김 할머니의 딸은 지난 해 4월 3일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김 할머니는 딸의 죽음을 두고 상습적으로 가정 폭력을 휘두른 사위에게 맞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너는 엄마처럼 되면 안 된다"…그 끝은 딸의 죽음
김 할머니는 딸이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닐 때쯤, 갑자기 찾아든 생활고 등으로 남편과 이혼을 하게됐다. 딸의 양육은 전 남편이 맡게 됐다. 집에서 나온 김 할머니는 식당에서 밤새 설거지를 하기도 하고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20년 전부터는 노점상을 하며 여름에는 옥수수를 팔고 겨울에는 군고구마를 팔아 생활했다. 얼마 되지 않은 수입이었지만 수입의 반은 딸 양육비로 보탰다. 김 할머니가 돈을 버는 유일한 낙이기도 했다.
18년 전 고등학교를 마친 딸 A씨(당시 19세)는 돈을 벌기 위해 서빙일을 시작했고 B씨(당시 23세)와 만나 임신까지 하게됐다. A씨는 엄마에게 남편 B씨가 임신한 배를 발로 차기도 한다면서 같이 살 수 없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김 할머니는 자신의 전철을 밟게 하기 싫어 조금만 참으라고 딸을 설득했지만 사위의 폭력은 갈수록 심해졌다.
딸의 얼굴에 멍이 없는 날이 적을 정도였고 18년 동안 가정 폭력을 견뎌온 딸은 우울증 등을 겪었다.
지난해 4월 2일, A씨는 친구 자녀의 돌잔치에 참석했다. A씨는 친구에게 "도저히 무서워서 집에 못 들어가겠다"라며 하소연을 했다. 친구는 A씨를 집까지 데려다줬지만 사위인 B씨는 친구들 보는 앞에서 A씨의 뺨을 때리는 등 폭력을 가했고 도리어 남의 부부일에 상관 말라고 큰 소리를 쳤다.
걱정이 됐던 친구는 다음 날 3일 A씨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자, 불안한 마음에 집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이미 A씨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B씨가 죽은 지 10여 시간이 지나도록 경찰에 신고도 되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검안 결과 사망 원인은 머리와 복부의 치명적 손상으로 인한 다량의 출혈 때문인 것으로 나왔다. 국과수는 사망하기 전 폭행 등의 상황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견도 덧붙였다.
검찰은 B씨를 지난해 11월 상해와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B씨에 대해 징역 9년을 구형했지만 1심 법원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상해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상해를 가한 부분 중 일부만 유죄로 인정돼 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검사가 이렇다 저렇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며 "다만 국과수 결과가 (진실을) 다 얘기해 주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B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이글 보고 딸 잃은 할머니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네요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요?
다음 아고라 청원 올리는법 아세요?
어떻게든 도움이 돼고 싶네요~도움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