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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 끼 Part 2

김경훈 |2012.09.20 20:41
조회 725 |추천 1

 

 

 

 

 

그렇게 그녀와 복덩이가 떠나갔다. 허무하게 떠나간 그녀와 복덩이를 잊지 못하고 지냈다.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몇 시간, 며칠, 몇 달을 그렇게 그들을 보내지 못하고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후우우”

 

긴 한숨과 함께 창문 너머로 새하얀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그 바람에 실린 나의 방구석. 바람을 타고 한 장의 종이가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타닥 탁’

떨어진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종이를 주워 흐리멍텅한 눈을 종이로 향했다. 그 새끼가 남긴 편지였다. 지워지지 않는 그날의 악몽... 순간 불현 듯 뭔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 새끼가 남긴 편지대로 그녀는 천동대신을 거부한 채 나와 사랑하고, 또 복덩이를 임신해서 죽음을 당했을지 모른다. 문득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 때 포도 농장 아저씨의 죽음에 보여진 클로버 3, 그녀의 죽음 앞에 보여 진 하트 2. 두 장의 카드는 뭘까?’

질문에 대한 의문이 계속 풀리질 않았다. 그러려니 하기엔 뭔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새끼가 뭔가 들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잠시, 날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그 새끼가 놔뒀으리라곤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한참을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었지만 결국 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그녀와 복덩이에 대한 그리움에 다시 조여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띠리리리리링”

-발신번호 제한-

 

누굴까. 지금 내 전화번홀 아는 사람은 기껏해야 대여섯뿐. 몇 달만에 울린 전화기는 쉴 틈없이 울려댔다. 의식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녀와 같은 벨소리가 계속 귀에 거슬렸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조금은 연륜이 묻어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고객님, 저희 싱싱한 텔레콤에서 신규서비스를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

“...”

“박근형 고객님 맞으십니까?”

“...필요 없습니다”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하시겠습니까, 고객님?”

 

어이없는 여자의 태도에 한참을 멍하니 있다 종료버튼을 눌러버렸다. 꼴도 보기 싫은 핸드폰을 침댓가로 던져버리려 손을 뻗으려는 순간 다시 쉴 틈없이 울려댔다.

 

“여보세요”

“박근형 고객님 한번만 더 허락없이 끊으시면 서비스 제공을 하지 않겠습니다”

“...필요없다는 사람한테 왜 자꾸 전화합니까!”

 

나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그 여자는 계속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계속 전화를 끊어버리자 조금 후 문자 메시지가 한통 왔다.

 

----------------------

고객님께서 신규서비스 이용을

거절하신 것으로 간주하여 ♧3과

♡2 서비스를 취소하겠습니다

문의 사항은 아래 번호로 전화

주시기 바랍니다

-싱싱텔레콤

070-XXX-XXXX

----------------------

 

클로버 3과 하트 2.... 기억이 날 듯 말듯하다.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고, 계속 그게 뭔지 생각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 시발”

 

포도 농장 아저씨의 죽음에 보여진 클로버 3, 그녀의 죽음 앞에 보여 진 하트 2. 두 장의 카드는 내가 풀지 못했던 숙제였다. 미친 듯이 핸드폰을 집어 들고, 전화를 걸었다.

 

“늦었네요, 박근형씨”

“너, 너 누구야. 어떻게 내 이름과 전화번홀 알고 있는거야”

“호호 그런게 중요한 걸까요?”

“어떻게 니가 그 카드에 대해서 알고 있는거야, 시발 도대체 뭐야 이건”

“차근차근 천천히 진도나가도 충분히 시간은 많답니다, 고객님”

“얼어죽을 고객님은 무슨, 빨리 묻는 말에 대답이나 쳐해”

“입이 거칠으시네요, 일단 숨 좀 돌리세요”

 

여자는 당황한 기색하나 없이 무덤덤하게 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곤 충격적인 내용과 함께 내게 진실을 이야기 해주었다. 클로버 3과 하트 2, 두 장의 카드 모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을 의미한단 것을 시작으로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박근형님께서 생각하시는 것과는 다르게 세상은 그렇게 순수하지 않답니다. 먼저 포도 농장 주인이었던 최성웅씨와 함께 발견된 클로버 3이란 카드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알 리가 있습니까? 주인아저씨가 소중한 사람은 맞지만 클로버 3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겁니까?”

“자 그럼 천천히 제 말을 잘 들어보세요. 도중 말을 끊으면 마지막 기회마저 본인의 손으로 차버리시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알겠으니 어서 시작하시죠”

 

시작된 이야기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였다. 포도 농장 주인아저씨와 함께 발견된 클로버 3이란 카드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 총 세 가지를 가져간다는 의미였다. 처음으로 느껴본 아버지란 감정, 어렴풋한 아버지란 관계, 그리고 나와 그녀와 우리 아이가 살아갈 수 있는 직장까지 한 번에 세 가지를 가져간단 의미였다. 도대체 클로버가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묻자, 클로버는 상징적인 의미로써 포도를 의미한단 뜻이었다. 억지로 끼워맞춘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궁금했던 이야기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자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혹시 박근형씨, 하트 2의 의미는 감이 오시나요?”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전 그저 텔레마케터일 뿐입니다”

“클로버 3 카드의 의미는 끼워맞춘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냥 사람 마음가지고 장난치지 마세요, 제발요”

“아, 고객님. 물론 그렇게 들으실 수는 있으십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시면 제가 제공해드린 서비스를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일단 하트 2 카드의 의미부터 말씀해주시죠”

“호호, 급하실 것 없으세요. 하트 2 카드의 의미는 클로버 3 카드와 마찬가지로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 총 두 가지를 가져간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것인지는 추측이 되시겠죠?”

“설마.....................”

“네 고객님. 맞습니다”

“아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미친 듯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사랑했던 그녀와 나의 아이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것이 모두 다 계획된 일이었단 것에 미칠 듯이 가슴이 죄여오고,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속으론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그것도 잠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서서히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박근형씨, 아직 이야기 끝이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더 남아있습니까... 찢어지고 미어지는 가슴에 더 큰 못을 박을 일이 있단 말입니까...”

“하, 궁금하지 않으세요?”

“.....”

“도대체 누가 당신에게 이러한 일들을 벌였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 그게 누군데요”

“이미 당신은 알고 있을텐데, 고객님은 눈치가 영 없으시군요”

“........!”

 

‘이런 시발, 그 새끼인가. 아니 그 새끼일 리가 없는데, 무슨 상상을 하는 거냐. 정신차려 박근형’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립니까? 내가 어떻게 그 누군가를 안다는 겁니까”

“모른 척하셔도 별수 없습니다, 고객님. 아니 정태원의 친구 박근형씨”

“무슨 소릴 하는거야, 태원이가 그랬단거야? 시발 장난해?”

“이미 알고 있으면서 뭘 묻는거냐, 병신들이 잘도 논다 잘도 놀아”

 

갑자기 말투가 바뀐 여자는 내게 쉴 틈 없이 욕을 퍼부었다. 뭐라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미친 듯이 욕을 퍼붓던 여자는 갑자기 목소리를 내리깔며 찢어져라 미친 듯이 웃어댔다.

 

“하하, 어이 박근형이, 내가 네까짓 녀석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해야하느냐”

“이제 욕 다 한거면 자초지정이나 이야기 하시죠”

 

욕도 먹고 이상한 이야기도 들었는데, 순간 전화로 들려오는 여자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하리만큼 차분해졌다. 여자의 물음에 다소곳하게 대답을 하니, 그 여자는 슬슬 이야기를 시작했다.

 

“박근형이, 넌 내가 누군지 아느냐?”

“모르죠”

“그래 그런 것까진 알 필요는 없겠지. 나는 지동대신님 부탁으로 너한테 전할 말이 있어서 전화했다”

“지동대신이라뇨? 혹시 우리 지민이가 모셔야 된다는 그 신을 말하는 건가요”

“그래, 벌써 한참 지났는데 잘 기억하고 있구만”

“후우”

“왜 벌써 한숨인가? 잘 들어보게나. 왜 내가 너에게 욕을 하고, 네게 이러한 이야길 하는지 말야”

“.....네”

 

그 여자의 말인 즉슨, 지동대신은 지민이의 계속된 거부로 인해 처음에는 계속 해코지를 하려했었다. 하지만 나와 만난 후, 처음으로 지민이의 웃는 모습을 본 지동대신은 매 생마다 자신을 모셨던 그녀를 이번 생에서는 웃고 행복하고 그리고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다음 생까지 그녀에게 자유를 주려했었다. 가끔 그녀를 바라보며 행복한 웃음을 잃지 않게 도와주려 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 나를 지극히도 싫어하게 된 그 새끼가 본래 어머니가 모시던 천동대신을 흡수하여 버렸다. 본래 어머니를 이어 천동대신을 담을 그릇이었으나, 무당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 나와 함께 그 새낀 서울로 도망을 갔었던 것이었다. 서울에서 나와 같이 생활하고, 시간에 쫓기듯 미친 듯이 일을 했던 이유가 천동대신의 부름을 잊기 위해서란 것을 들었다. 하지만 사랑했던 지민이가 어느 순간 나와 같이 있는 것을 보자, 심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했던 그 새끼는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었다. 나와 지민이가 도망친 뒤 본래 모셔야 할 천동대신이 찾아왔을 때 본인의 그릇으로 천동대신을 모시는 대신, 그릇 속에 담아 흡수를 해버렸다. 그러곤 우리를 찾아서 부산으로 내려온 뒤, 사기를 당하게 만들고 집안에 붉은 글씨로 죽여버린단 말을 남겼었다. 순간적으로 그 새끼를 피해 도망친 우리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본인을 숨긴 채, 조용 조용 나의 주변을 정리했다. 클로버 3이란 카드는 포도송이(♧)모양을 한 포도 농장을 거점삼아, 처음으로 느껴본 아버지란 감정, 어렴풋한 아버지란 관계, 그리고 나와 그녀와 우리 아이가 살아갈 수 있는 직장까지 한 번에 세 가지를 가져간단 의미로 아저씨 옆에 놓아 둔 것이었다. 그리고 하트 2이란 카드는 내가 사랑하는 지민이와 우리 복덩이를 의미한 것이었다. 결국 그 새끼는 나를 도와준 척한 것일 뿐, 그 새끼가 원하는 대로 모든 복수를 이루었다.

 

“자 이제 이해가 되느냐?”

“............그럼 태원이는 지금 어디있나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행동을 했으니 몸을 추스르고 있겠지”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다뇨?”

“네 계집이 죽을 때, 번개가 떨어져서 죽지 않았느냐?”

“.....네 번개가 그녀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그래, 천동대신님은 본래 천둥을 지배하는 분이시지. 그런 그 분의 능력을 이용하여 번개를 만들어 쏘았으니 손가락이 멀쩡할 리가 없지”

“그 때 번개가 지민이를 죽인 게 태원이가 한 짓이란 건가요. 어떻게 인간이 그런 능력을...”

“이런 멍청한 녀석아! 그러니까 내가 이야기 하지 않았느냐. 그 분의 능력을 이용했다고”

 

천동대신의 능력으로 지민이와 복덩이에게 번개를 쏘아 죽게 만들었단 허무맹랑한 말을 들었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되었다. 모든 걸 꿰뚫고 있는 그 여자는 필시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저기, 평범한 사람은 아니신 것 같은데...”

“그래 고놈, 그런건 잘 알아보는구만”

“존함이라두 알 수 있을까요”

“나말이여? 이 계집말이여?”

“지금 말씀나누고 계시는 분요”

“어허 내가 이름이 따로 있는가? 아, 그래. 사람들이 나를 구눙대신이라 부르더구만”

“아 구능대신님...........”

 

어렴 풋 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현실이 되었다. 그 새끼가 다 벌인 일이었다. 그 새끼의 행방을 물어보자 여자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이야기만 주절댔다.

 

‘삐리링’

아무런 소리 없이 전화가 끊겼다. 그 새끼 행방도 묻지 못했는데, 그 여자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물을 것이 태산같이 많았는데. 끊어진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맞다 편지!’

그 새끼가 남긴 편지를 찾아 적힌 전화번호로 전활 걸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이미 결번이란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며칠을 고민하며 창밖을 바라본지 모르겠다.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하려 하지만, 항상 나오는 결론은 그 새끼를 찾아내서 죽여야 한단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 새낀 진짜 어디 있는 걸까? 실마리를 잡기 위해 예전에 다녔던 중학교를 찾아갔지만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정보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무성의하게 대답하는 선생의 모습에 실망하여 다 물어보지도 못한 채, 교정을 빠져나와버렸다.

 

‘후우’

집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들어가니 깊은 한숨과 자괴감 밖에 남지 않았다. 세상이 나를 버린 듯 눈물만 나고, 지민이와 복덩이를 죽인 그 새끼를 찾아서 죽이겠단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똑똑똑’

“택뱁니다, 집에 계세요?”

 

내가 사는 곳을 아는 사람은 현재 아무도 없다. 문을 열고 싸인을 하고 작은 종이상자를 건네받았다. 상자 위에는 정확하게 지금 내가 사는 주소와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발신인불명의 상자를 뜯자, 까만색 스페이드 1 (♠) 카드가 들어있었다. 카드를 집어 들자 카드 밑에 작은 편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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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박근혀이, 마무리는 지아야지.

여쪼 봉래산 밑에 어라연계곡잉게 언넝 티오니라

친구 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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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발 새끼”

 

‘그 새끼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그 새끼다’

미친 듯이 신발도 신을 겨를도 없이 집을 빠져나와 타에 올라탔다. 주륵 주륵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네비게이션을 켤 필요도 없는 집근처 봉래산 자락에 있었단 사실에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이 새끼를 죽여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그 단시간에 주방에 있던 칼을 용케도 챙겨서 왔다.

 

‘부우웅 끼익’

봉래산 아래 도착했다. 미친 듯이 어라연계곡을 향해 뛰어올라갔다. 몇 달 만에 뜀박질이었기에 숨이 미친 듯이 차오르고 정신이 혼미해져갔지만 그 새끼를 죽이겠단 일념이 나의 흐트러진 정신을 다잡게 해주었다. 어라연계곡에 거의 도착할 때쯤 흐린 날씨 속에도 멀리 인영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 새끼다. 한쪽 팔에 붕대를 감고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 새끼다.

 

“정태원, 이 강아지야!!!”

“어이 이제 오면 으야노, 당일 택배로 보냈는디”

“개소리 집어치워, 니가 어떻게 어떻게 이런 성기같은 짓을 한 거야”

“인과응보다. 병신새끼야”

“성기까, 미친 새끼”

 

그 새끼에게 미친 듯이 달려가서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그 새낀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받아쳤다. 계속되는 실랑이 속에 나는 품 안에 있던 칼을 꺼내 들었다.

 

“이 강아지야, 오늘 너 죽이고 나도 지민이 만나러 간다!”

“그까이 칼로 내를 죽인다꼬?”

“그래 니 까짓거 이정도면 충분해”

“그으래애?”

 

비꼬는 그 새끼를 향해 칼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하지만 그 새낀 슬쩍 슬쩍 칼을 피해냈다. 분명 내가 아는 그 새낀 운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 오늘따라 더럽게 잘 피했다.

 

“도망만 치지말고 덤비라고, 이 새끼야”

“도망? 도망이라니 크크, 놀아주는데도 한계가 있는걸 모르는갑네”

 

한참을 칼을 휘둘렀지만 한번도 제대로 맞추질 못했다.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려는 찰라, 그 새끼가 붕대 감은 손을 슬쩍 나를 향해 겨누었다.

 

‘파지지직’

“아악!”

 

그 새끼의 손이 희멀건 빛으로 감싸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 새끼가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멍하니 서서 그 새끼를 바라보다 순간 정신을 차리고 그 새끼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얼굴이 구겨질대로 구져진 채로도 내가 휘두르는 칼을 피해냈다.

 

“하, 박근혀이. 진짜 내 쥐길라꼬 그카나?”

“시발, 내가 여기 동창회 하러왔냐?”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그 말도 맞네. 그라믄 잘 쫌 하그라”

“닥쳐!”

 

계속되는 싸움. 찌르려는 자와 오히려 비웃는 자. 흡사 칼춤과 같이 그 새끼와 나는 계속된 실갱이를 벌이고 있었다. 갑자기 그 새끼가 손을 번쩍 들었다. 손이 희멀건 빛으로 서서히 감싸지더니 끝부분에 빛이 응집되었다.

 

‘슈우욱’

그 새끼가 날 향한 손을 살짝 흔들자 손끝에 응집되어있던 빛들이 내게로 향해 날아왔다. 그리고 찌릿한 느낌과 함께 내 몸이 뒤로 고꾸라졌다.

 

“으윽....”

“아따 손 끝이 쩌릿하구만”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니까짓게 알 필욘 읍지, 그냥 입 닥치고 얼른 디져버려”

 

아까 받은 충격 때문에 몸을 일으켜 세우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는 동안 그 새끼는 계속 손 끝으로 빛을 응집시키려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빛이 모이다가 사라지고 모이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는 모습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드러누워 쳐다만 보고 있었다. 시야가 닿는 곳 근처에 떨어진 칼이 보였다.

 

‘몰래 칼만 잡는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 같은데..’

손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순간 순간 그 새끼를 바라봤지만, 마치 오래된 형광등이 깜빡이듯 손끝이 ‘하얗다 검다’를 반복하였다. 움직이기 위해 검지 끝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니 조금씩 떨림이 보였다. 서서히 검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른손이 거의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새끼를 바라봤다. 그 새끼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이야 박근혀이, 정신력 쥐기는구만”

“....크윽”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죽일 맛이 더 나지”

“...”

“니 혹시 내가 보낸 카드 의미를 알고 있나?”

“...”

“그래, 대답하기 힘들겠지. 손하나 움직이는데 십분이 넘게 걸렸응께, 주디를 움직일라면 한 삼십분은 걸리겠지. 친절한 형이 니한티만 갈쳐줄게. 크로바는...”

“다..닥...ㅊ..어..”

“오호 빠른데? 그래 빨리 이야기하고 죽이주께. 뭐 니가 이미 구눙대신을 만났단건 알고 있제 나도. 그거도 얼른 내가 품어야되는디 와이래 안티나오는지 모르겠구먼”

“니.. 니가 어..떠..떻..게..”

“근데 웃긴게 뭔지 아냐? 구눙대신도 잘 모르는게 있으. 김지민이 고년을 내가 데려간 이유를 말야”

“우...우리 지민이는.. 니가 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잔냐, 시..발. 노..마”

“아니아니, 물론 첨이야 그랬었지. 근디 천동대신만으론 내 그릇이 다 안차는기라. 그래서 지동대신도 내가 품을라꼬 햇제. 그래띠마 고 지동대신이 지 그릇을 버리고 토까버린거지. 지동대신만 있었으먼 천지를 내가 다스리는건디 크크. 아, 무슨 말인지 모르것지? 아무튼 깝깝한 새끼여 니는”

 

본래 그 새끼는 천동대신을 담아야하는 그릇이었으나, 천동대신을 담는 대신 흡수해버려 더욱 그릇이 늘어나 버렸다. 그 부족한 량을 채우기 위해 본래 지민이가 모셔야 할 지동대신을 억지로 지민이에게 강림시켜 흡수하려 했었지만, 지동대신이 이를 거부하자 지민이를 그냥 죽여버린 것이었다. 지동대신의 부탁으로 내게 사실을 전하려 했던 구눙대신 역시, 이 모든 일을 알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그 새끼는 개같은 새끼란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 강아지야!!! 어떻게 지민이를...”

“사는게 다 그런기라. 고년 죽일라고 큿다가 애꿎은 내 손모가지만 이 꼴이자나. 그때 갑자기 배신자 새끼가 생각이 나는기라. 그래서 생각난 김에 니를 죽일라꼬 형이 몸소 행차하신기다”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내게 보였다. 아니 이미 반쯤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 새끼의 손에 희멀건 빛이 점점 영롱하게 바뀌고 있었다.

 

“자 이제 다 되간다. 니가 사랑하든 기집한테 갈 시간이. 기쁘제?”

 

‘어차피 죽을 꺼 내 스스로 죽는게 낫겠지’

“정태원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하자”

“크크크, 새낀 끝까지 지랄이네”

“니가 들어줄 꺼라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일단 한번 들어나 보지 크크”

 

그 새끼는 여유가 생겼는지 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부탁할 건 딱히 없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서, 그 새끼가 죽이기 전에 나 스스로 계곡으로 뛰어들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걸 알 턱이 없는 그 새끼는 그저 내가 죽기 전에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이 얕은 꾀를 부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이 정태워이, 서론이 너무 길구먼. 얼른 결론을 이야기 하그라”

 

‘지민아, 복덩아. 기다려 곧 갈게’

“잠시, 일어서서 이야기 하지”

 

처음 디딤발을 내밀고 일어서기가 힘들었지만, 금새 일어서고 나니 서서히 다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새끼가 나를 비웃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것을 보고, 미친 듯이 계곡 쪽으로 뛰었다.

 

‘풍덩’

‘다행이다, 지민아 금방갈게’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이다.

 

 

 

 

 

 

 

“처사님, 처사님. 정신차리시지요”

“...”

“처사님 얼른 눈을 뜨시죠”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감겼던 눈을 서서히 떴다. 흐리멍텅하던 시야가 서서히 밝아오면서 눈앞에 젊은 스님이 한분 계셨다. 목이 잠겨 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스님께서 물을 먹여주셔서 서서히 목이 풀리기 시작했다.

 

“처사님 이제 정신이 드시는지요”

“아.. 스님 감사합니다”

“허허 다행입니다 참 다행입니다”

“지금 여기는 천국인가요? 지옥인가요? 스님이 계시는걸 보니 천국이겠죠?”

“아닙니다. 지금 처사님은 광덕사에 계십니다”

 

스님에게서 아주 놀라운 말씀을 해주셨다. 그 새끼와 내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동안, 광덕사 주지스님께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셔 젊은 스님과 함께 속히 어라연계곡으로 가셨다고 했다. 어라연계곡에 도착하자 인간의 탈을 쓴 파순의 모습을 보셨다고 한다.

 

“어찌 인간의 모습에서 너같은 것의 기운이 나온단 말이냐”

“크크, 꼴에 높은 경지까지 올라간다고 힘들었겠구만”

“어찌 이런 일이...”

 

주지스님께서는 용맹정진 끝에 대오각성을 이루신 분이셨다. 그 새끼 뒤로 수천 번의 전생이 나타났고, 이윽고 주지스님께서는 그 새끼에게 파순의 모습이 나옴을 이해하게 되셨다. 그 새끼는 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곤 씨익 웃으며 주지스님과 젊은 스님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리곤 유유히 사라졌다고 했다. 그 새끼가 사라진 뒤, 주지스님께서는 젊은 스님에게 아직 내가 생의 끝자락을 잡고 있으니 얼른 구해오라고 하셨다고 했다.

 

“후우..”

“처사님 어찌 한숨을 쉬십니까, 이제 다 끝났습니다. 마음 편히 쉬십시오”

“네, 스님. 언제 주지스님을 한번 뵐 수 있을까요”

“조만간 주지스님께서 처사님을 찾아뵈실 것 같습니다”

“네, 스님 알겠습니다”

 

며칠 후, 주지스님께서 점심을 함께 하자는 젊은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주지스님을 뵐 수 있었다. 정갈스러운 식탁 앞에 주지스님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였다. 주지스님께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식사를 모두 마친 후 조용히 내게 말씀을 건네셨다.

 

“처사님”

“예, 주지스님”

“앞으론 대나무처럼 사십시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나무가 가늘고 길면서도 모진 바람에 꺾이지 않는 이유를 아십니까?”

“그야 속이 비었고 마디가 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마디는 사람이 겪는 좌절과 갈등, 실수, 절망, 병고, 이별 등을 의미한답니다”

“아...”

 

 

주지스님께 큰 절을 올리고, 다른 스님들께도 인사를 드렸다. 절 밖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곤 절간 밖으로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직 그 새끼는 살아있다.............’

 

 

 

 

 

 

 

 

 

 

持戒淸淨

和合愛敬

利益衆生

계율을 지키되 맑고 깨끗하게 하며

서로 화목하게 어울리고 공경하고 사랑하며

부처님께 가르침대로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라 -성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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