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어느날의 아침,
자고 일어나서 가게 창문을 보았다.
창문 너머로ㅡ 평소와도 같이 출근하는 학생들, 직장인들이 분주히 걷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무언가가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가게 유리창이..
쫘악 깨져 있다.
와장창 깨져나간 것은 아니지만, 그 모습은 마치 거미줄처럼, 커다란 창문 전체를 덮어있었다.
-뭐야..이거...
멍- 해졌다가 할머니를 깨웠다.
커다랗게 펼쳐진 거미줄무늬..
할머니는 조용히 한숨을 쉬더니,
-어떤 술채기가 또 밤새 이랬나봅지 뭐..
라고 말하시더니 들어간다.
-에? 할머니, 저거 유리창 새로 갈아끼려면 안 비싸요?
-비싸지 물론. 에구 한 백오십 파운드 하려나 모르겠다.
-잉, 그럼 신고한다던지, 그래야 하는거 아닌가?
-이거 못 잡어, 이거 아무도 관심 안 가진답디..
할머니말로는, cctv도 없거니와, 경찰을 불러봤자
이런 일에는 관심도 안 가져서, 대충 몇마디 말로 마무리하고 가버린다는 것이었다.
영국 태생도 아닌 동양인 가게 유리창이 깨진 것 뿐인걸.. 그들에게는 그저 소시민의 귀찮은 헤프닝.
금이 너무 심하게 가 있으므로, 완전 무너져내릴것을 막기 위해,
테이프를 이곳저곳에 꼼꼼히 붙여가면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걸까..
생각했다.
이나라의 법도 잘 모르고,
말도 잘 못하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똑똑한 것도 아니면
그런 사람들은
정말 그저 해코지 당하면 당하는대로,
억울하면 억울한대로 살아가야 하는 건가--
핸드폰으로 문자 보내는 법도 모르는 우리 할머니는
영국에서 약삭바르게 능청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은 물론이거니와
평범한 시민으로써의 권리를 챙기며 살아가는 거도 잘 모른다.
몇년 전에는 차를 통째로 잃어버렸었고,
가게는 사기를 당해서 날릴 뻔도 햇고,
요즘도.
슬쩍슬쩍 컵라면등을 훔치는 좀도둑들이 있어도
할머니는
-에구 오늘도 또 훔쳐간갑디.
하고 말아버리시는 거다.
떡하니 좀도둑 가방에 컵라면이 들어있어도
다른 곳에서 산 거라고 능청떨고 나가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힘없는 늙은 우리 할머니가 뛰쳐나가서 붙들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저 때때로 범행 순간에 목격해서
내려놓으라고 말하는게 전부.
몇몇 얄미운 좀도둑들은 그렇게 들켜놓고도
다음에 뻔뻔하게 가게를 들어온다고 한다.
그만큼이나 얕보이는 걸까.
깨질것만 같은 유리창에 테이프 한 통을 다 붙였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서글프다.
힘들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투정부릴 곳이 없는,
그러니까 꼭, 엄마가 없는 것만 같은 느낌인 거 같다.
괜히 자기 나라를 '모국' 이라 부르는 게 아니구나..
금간 유리가 꼭 거미줄 같다.
거대한 거미줄이
할머니의 삶을 옳아메고 있는 거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씩 쳐다보고 가는데
깨진 유리창과 그 안의 할머니가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
좋은 생각!
거미줄같이 금간 유리창에
거미를 그려넣었다.
-now i'm healing! ^_^ -
때때로 유쾌함은,
예술은,
재치는,
긍정이란 것은...
초라함을 뛰어넘어
모두에게 미소를 던지는 마법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저녁이 되고
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여기 영국사람들이 참 친절하긴 친절혀,
지나가던 사람들도 다 유리 깨진거보더니
들어와선 미안하다고 안부를 묻더라구.
여기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한게 아니더라도
안된 일이 생기면 미안하다고 막 그러거던.
아마, 의례 영어로 하는 유감의 표시인
-i'm so sorry to hear that----~~
을 이야기하는거 같다.
왠지 할머니만의 영어해석이 독특해서 미소지으면서 물어봤다.
-그랬구나, 오늘은 또 별다른 일 없었어요 할머니?
할머니는 한인신문을 읽으면서 시큰둥하게-
-뭐-또 좀도둑 놈이 들어와서 그냥 내쫒고 그랬지 뭐.
라고.
이내 나는 저녁으로
오늘 사온 영국 베이컨을 넣은 김치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쌀쌀해져가는 9월, 해는 점점 짧아져서
7시 쯔음 되니까 벌써 어둑어둑하다.
영국에서의 또 하루,
상점 뒤켠 창고에서 뜨끈한 김치찌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영국이야기1화 링크걸어놓을게용
http://pann.nate.com/talk/316558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