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범 31년째의 한국 프로야구에 황금기가 도래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200만명대에 그쳤던 관중이 700만명까지 늘었다. 외연도 커져 내년에는 제9구단 NC 다이노스가 1군에 합류하고, 제10구단 출범이 추진되고 있다. 프로야구는 다른 모든 프로스포츠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지금이 오히려 가장 두려운 순간일 수도 있다. 너무 밝은 곳만 쳐다보고 있다가는 잠시만 어두워져도 눈뜬 장님이 되기 십상이다. 가장 잘 나갈 때 현실을 둘러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성의가 필요하다. 스포츠조선이 프로야구의 '길고 긴 황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메스를 집어들었다. 말그대로 '맞아 죽을 각오'로 쓴다. 그동안 따가워서, 껄끄러워서, 뜨거워서 누구도 쉽게 손대지 못했던 프로야구의 민감한 이슈만 찾아 그 속살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프로야구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 따위의 모호하고 추상적인 담론은 식상하다. 구체적인 것을 넘어, 지엽적이고 심지어 사소해 보일지라도 실제로 팬들이 고개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주제들로 이어가고자 한다.<편집자주>
벌써 10번째 실패다.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LG의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가 지난 24일 경기 후 '공식' 확정됐다. 1~4위 팀들이 전패하고 LG가 전승을 거둔다 해도 승률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이른바 '확률 제로'가 공식 선언된 날이었다. 이미 8번 실패 때 단일팀 최장기간 포스트시즌 실패의 신기록을 세웠던 LG가 기어이 '두자릿수 실패'로까지 굴욕의 역사를 늘리고 말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그런데 LG는 왜,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뒤로 무려 10번이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을까.

▶놀지도 못하고 야구도 못하는 LG
올시즌 팀내 최고참 최동수는 후배들에게 "너무 여리다. 성적에 대한 자책 때문인지 기가 죽은 모습이 자주 보인다"며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나고 안쓰럽다. 운동장에선 '싸가지 없게' 굴어도 된다"고 쓴소리를 내뱉은 바 있다.
LG의 마지막 우승이었던 94년 입단한 최동수는 90년대 '신바람 야구'로 돌풍을 일으킨 LG를 기억하는 몇 안되는 선수다. 90년대 LG는 화려했다.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했고, 선수들은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야구장 밖에서의 행동으로 구설에 오르는 일도 많았지만, 이 역시 스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시 LG 선수들은 '놀 땐 잘 놀고, 야구도 잘 하는' 그런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가을잔치에 초대된 2002년 이후, LG는 양쪽 모두를 잃었다. 이젠 야구에서 밀리고, 그렇다고 놀기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이 생활화되면서 밖에서 개인 시간을 즐기다가 팬들의 뭇매를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야구장만 나가면 열성적인 팬들의 눈길을 피하기 바쁘다. 그런데 야구장에서도 기가 죽을대로 죽어있다. 상대팀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고리' DTD', 팀 체질을 망치다

시즌 초반 잘 나가다 중반 이후 급격한 추락을 하는 LG를 두고, '기초체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한다. 시즌을 치르면서 조금씩 밑천이 드러나는 LG를 상대로 다른 구단은 조금씩 '오늘도 해볼 만 한데?'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착시효과가 사라지면, 추락은 순식간이다. 팬들은 언젠가부터 이를 두고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뜻의 DTD(Down Team is Down)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어느새 LG의 추락은 당연한 듯한 조롱거리가 됐다.
악순환이었다. 전임 감독들은 시즌 포기의 수단으로 '리빌딩'을 꺼내놨다. 4강 진출이 힘들어진 뒤론 주축 선수들의 기용 시간을 줄이고, 가능성 있는 젊은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줬다.
이 과정에서 선수단엔 한 경기, 또는 시즌을 쉽게 포기하는 '현실 안주'라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 선수들에겐 투지와 근성 대신 '또 이렇게 한 시즌이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매년 같은 패턴이 반복 되면서도 경쟁은 없었다. 리빌딩이란 미명 하에 기용됐던 선수들은 이듬해 벤치에 앉거나 2군에 머물렀다. 또다시 이름값 대로 자리가 결정됐다.
흔히 팬들이 언급하는 '스탯 쌓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시즌 중에 '4강은 힘들다'는 인식이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선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개인 성적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입쥐 효과와 탈쥐 효과. 가장 아픈 건 '캐넌히터' 김재현

언젠가부터 야구팬들 사이에선 '입쥐 효과'와 '탈쥐 효과'라는 말이 나돌았다. LG를 벗어난 선수들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펄펄 날고, 반대로 LG로 이적해온 선수들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례가 쏟아졌다. 이에 팬들이 구단명의 뒷 글자를 '쥐'라고 표현하면서 만든 은어가 '입쥐(LG에 들어온) 효과'와 '탈쥐(LG에서 나간) 효과'다.
그 실상을 뜯어보면 LG 구단의 선수단 개편 방식이 허술했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탈쥐 효과'로 최근까지 언급되는 이들은 현재 KIA에서 뛰고 있는 이용규 김상현, 넥센의 박병호 서건창 등이다. 서건창은 신고선수였던데다 부상으로 방출된 뒤 군입대했으니 논외로 치자. 이용규는 2년차 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드됐다. 첫 시즌이 실망스러웠고 비슷한 외야자원이 넘쳤기에 그 또한 사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2군 거포'였던 김상현과 박병호다. 둘 모두 1군에서 기회가 주어져도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이번엔 꼭 무언가 보여줘야만 돼'라는 부담감에 발목을 잡혔다. 주목해야 할 것은 트레이드 시기다.김상현과 박병호는 나란히 트레이드 후 상대팀에서 주전기회를 보장받았다. LG에선 '잉여 자원'이란 생각에 둘을 트레이드카드로 썼고, 상대팀은 필요한 선수라는 생각에 이 카드를 받아들였다. 김상현은 당시 같은 3루수였던 FA(자유계약선수) 정성훈이 입단한 뒤 팀을 떠났다. 박병호는 외야 BIG5(이병규 박용택 이진영 이택근 이대형)가 1루수와 지명타자 자리까지 꿰차자 기회가 박탈됐고, 결국 상대의 군침을 돌게 만드는 카드로 전락했다.
사실 이보다 앞서 가장 치명적인 '탈쥐 효과' 사례는 은퇴한 캐넌히터 김재현이다. 김재현은 94년 LG의 우승을 이끈 꽃미남 신인 3인방 중 한 명. 하지만 구단에선 고질적인 고관절 부상을 이유로 계약시 굴욕적인 조건을 요구했고, 실망한 김재현은 2005년 FA로 LG을 떠났다.
SK에서 김재현은 '클럽하우스 리더' 역할을 충실히 했다. 김성근 감독 부임 후 출전시간이 급감했음에도 묵묵히 뛰었다. 둘은 서로의 의중을 잘 알고 있었다. 김재현이 고참으로서 경험이 부족한 팀의 구심점 역할을 제대로 해줬기에 세 차례 우승도 가능했다. 만약 김재현이 LG에서 리더 역할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없다'는 LG의 오래된 약점을 한참 전에 벗어던졌을 것이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대타로 나와 2타점 적시타를 날린 김재현. 당시 그는 고관절 부상에도 투혼을 발휘하며 LG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포츠조선DB▶'사서 쓰지 뭐…' 그룹과 프런트의 조급증도 화를 불렀다
선수단 구성은 먼 미래까지 내다봐야 한다. 신인부터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고참급 선수까지, 철저한 설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LG의 선수단 구성은 너무나 근시안적이었다. 구멍이 나면 키워 쓰기 보다는 사서 썼다. 수차례 FA 잔혹사에 시달린 뒤에야 내부 육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2009년 나란히 영입한 이진영 정성훈이 준수한 활약으로 FA 잔혹사를 어느정도 깼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극에 달한 그룹 및 프런트의 조급증은 단시간에 회복시키기 힘든 전력 불균형을 낳았다. 이 사이 감독들은 부임 초기 든든한 지원을 받다가도, 성적이 곤두박질치면 목을 내놓아야만 했다. 다른 색을 가진 감독들이 릴레이로 지휘봉을 잡으면서 LG의 팀컬러는 정체모를 색깔로 변해갔다.
리빌딩을 외치며 5년 계약을 했던 박종훈 감독을 성적 부진이라는 사유로 2년 만에 자르는 상식 밖의 촌극까지 빚었다. 언제나 제대로 된 솔루션은 없었다. 현장과 멀리 떨어진 고위층에게 제대로 목소리를 전달한 이는 없었다. 결국 최종 결정권자인 모기업 윗선에서도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 그저 안 되면 자르고, 또다시 돈으로 해결하려는 단순한 생각이 전부였다.
그동안 속은 곪을대로 곪았다. 현재 LG 타선의 중심은 30대 이상 중고참 선수들이다. 라인업에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20대 선수는 4년차 오지환 뿐이다. 그렇다고 단숨에 기량 미달의 선수들을 주전으로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 리빌딩을 외쳐봐야 쉽게 치유되지 않을 정도로 노쇠화가 심각히 진행됐다.

반면 '투수FA 저주'의 대표적인 사례가 된 진필중과 박명환 이후 투수 쪽은 '키워 쓰자'는 생각이 강했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LG의 순위는 6-6-6-8-5-8-7-6-6. 하위권을 맴돈 탓에 매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상위 순번을 차지할 수 있었다. 서울을 연고로 하기에 1차 지명(2009년까지 시행)에서도 비교적 선택의 폭이 넓었다.
하지만 최근 LG의 선택은 모두 투수였다. 2009년 지금의 주전 유격수인 오지환을 1차 지명한 뒤로 상위라운드에서 야수 지명은 보이지 않았다. 전면드래프트가 시행된 2010년엔 1~4라운드를 모두 투수로 채웠다. 2011년도 마찬가지. 연고지에서 오지환을 찍은 2009 드래프트 때도 2차 1~4라운드는 모두 투수였다.
이같은 투수 육성 위주의 신인지명 결과는 실패했다. 최근 지명한 신인투수 중 1군에서 잠시나마 존재감을 보인 선수는 한 희(2009년 2차 1라운드) 신정락(2010년 1라운드) 임찬규(2011년 1라운드) 최성훈(2012년 2라운드) 정도. 그나마 한 희와 신정락은 올시즌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냈고, 임찬규는 시즌 막판에야 1군에 올라왔다.
흔히 구단은 즉시전력과, 미래의 가능성으로 선수를 전략적으로 나눠 지명한다. 현재 팀 사정이 반영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멀리 내다보지 못했을 땐, LG처럼 극단적인 전력 불균형을 부를 수 있다. 가까이는 2~3년 뒤에서 멀리는 5년에서 10년 이후까지 내다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서 LG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포스트 조인성'에 대한 생각을 뒤늦게 하면서 지난해 1라운드에서 포수 조윤준을 지명했고, 올해는 고졸 내야수 강승호의 이름을 불렀다. 2~3년 안에 주전으로 키울 선수들이다. LG는 올시즌을 치르면서 그간 쓸 만한 포수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 데 대해 크게 반성을 했다. 향후 지명 계획도 대폭 수정됐다. 이젠 젊은 야수가 필요하다.
LG 김기태 감독은 시즌 전부터 팀 체질 개선에 팔을 걷어붙였다. 잃어버린 근성을 되찾기 위해 선수들에게 '포기'라는 단어를 먼저 입에 올리지 못하게도 했다. 체질 개선 작업은 올 겨울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정말 바뀔 수 있을까. 매번 '올해는 다르다'고 하다가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난 10년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LG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