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아동성폭행' 의혹 쏟아지자
시사 프로그램서 상세히 취재했지만
간부들이 "자료 불충분" 보도 막아
결국 다른 방송사 보도로 '공론화'
영국하원, 현 사장에 출석 명령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가 이미 고인이 된 스타 방송인 지미 새빌(사진)의 아동 성폭행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새빌 사건을 덮은 간판 시사프로그램 '뉴스나이트'의 책임자 피터 리펀이 22일(현지시각) 해임됐지만, 공영방송의 윤리를 저버린 <비비시>에 대한 비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새빌의 소아애호증과 아동 성폭행 의혹은 오랜 시간 풍문처럼 떠돌았다. 그러나 2007년 서리주 수사당국은 1970년대 벌어진 새빌의 아동 성폭행 사건을 조사하고서도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2008년에도 서식스 경찰이 1970년 성범죄 사건을 수사했지만, 피해자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수사당국의 무능함이 생전에 새빌에게 면죄부를 주기는 했지만, '성(Saint) 새빌'의 '데빌'(악마) 같은 두 얼굴을 덮어준 일등공신은 <비비시>다. 실제로 <비비시>의 '뉴스나이트' 팀은 지난해 10월 말 새빌이 숨진 이후 아동 성폭행 사건을 취재했다. 그러나 책임자인 리펀은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며 더이상의 취재와 보도를 막았다. 취재 기자가 "자료는 충분하며, 방송하지 않으면 <비비시>의 명성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항변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대신 <비비시>는 새빌 추모 방송 세편을 내보냈다.
이 사건이 공론화된 것도 3일 영국 <아이티브이>(ITV)가 다큐멘터리 '새빌의 다른 면'을 방송하면서부터다. 몇몇 소녀들이 <비비시>의 드레스룸에서 새빌 일행에게 성폭행·성추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는데, 방송 이후 전국에서 피해자들의 신고와 제보가 빗발쳤다. 영국 런던 경찰국은 재수사 결과, 1959년부터 2006년까지 200명 이상의 소녀가 피해를 당했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는 2명의 소년도 있다. 사건의 면면은 숫자보다 더욱 추악하다. 새빌은 1970년대 병원 기부금 모금 행사에서 환자였던 17살 소녀를 성폭행했다. 1971년에는 고아원에서 11살, 9살 자매를 성적으로 학대했다.
피해자들 증언과 경찰 수사내용이 공개되면서, <비비시>가 세계적인 공영방송으로서 쌓아온 신뢰와 도덕성도 새빌과 함께 무덤에 파묻힐 처지가 됐다. <비비시>의 부인에도 새빌이 50년간 저질러 온 범죄를 세계 최고의 취재력을 자랑하는 방송사가 몰랐다고 믿는 영국인은 별로 없다. 특히 리펀은 지난 2일 자사 블로그를 통해 "새빌 의혹을 방송하지 않은 것은 편성상 이유였으며, 경찰 수사보다 새로운 점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후 일부 취재 내용은 경찰도 몰랐던 새로운 혐의라는 것이 확인됐다. <비비시>는 결국 "리펀의 해명이 부정확하고 불완전하다"며 해임을 결정했지만, 의혹의 화살은 지난해까지 <비비시> 사장이었다가 올해 <뉴욕 타임스> 사장으로 내정된 마크 톰슨과 현 <비비시> 사장 조지 엔트위슬에게까지 향하고 있다. <비비시>는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해 진상조사에 나섰지만, 영국 하원은 엔트위슬 사장에게 23일 하원 출석을 명령했다.
<뉴욕 타임스>는 <비비시>의 베테랑 특파원 존 심슨을 인용해 "<비비시>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전정윤 기자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