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의 옥스포드 출신 지식인 계층으로 형성된 라파엘 전파는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를 중심으로 헌트(Hunt), 밀라이(Millais)등 으로 구성된 예술가 집단이었다. 라파엘 전파는 르네상스 미술가 라파엘로(Rafaello)이전의 자연에 '진실한'예술로 돌아가자는 모토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미술적 지향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되었지만, 이들이 19세기 영국 미술에 일으킨 반향은 큰 것이었다. 특히, 이들은 상념의 젖은 여인들의 모습을 그리기를 즐겼는데, 실제로 라파엘 전파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이미지는 당대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작품 속의 여인들의 의복 스타일등을 따라하는 것 또한 큰 인기 였다고 한다. 다시말해, 이들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대중문화가 없던 19세기 여성들 사이에서 '워너비 스타일' 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도판 1> William Morris, La belle Iseult, 1858.
그러나 이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라파엘 전파에 나타난 여성들의 이미지는 상념에 가득 차 있으며, 비극적인 상황으로 인한 고뇌가 엿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도판 1에 나타난 이졸데의 모습은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 비극성이 엿보인다. 특히 그 비극성은 남녀 관계로부터 오는 긴장감이나 상념을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림 속에 이졸데 또한 마르크 왕과 트리스탄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며, 그녀의 붉은 드레스와 짙은 머리카락, 그리고 흐트러진 침대를 통해 성적인 암시를 드러낸다. 라파엘 전파 회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림 속의 여인들은 남성화가의 애인이거나, 아내인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이 작품 속에 나타난 이졸데 역시 모리스의 아내인 제인 버든(Jane Burden)으로 알려져 있다.
<도판 2> John Everett Millais, Ophelia, 1851-2
도판 2의 “오필리아”역시 사랑으로 인한 비극적인 여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작품 속 인물의 모델은 로제티의 연인인 엘리자베스 시덜이었다. 이러한 라파엘 전파 남성 작가들의 시선에 주목한다면, 라파엘 전파의 '그녀들'은 '그들'에게 수집(collect)되었을 뿐, 그의 재능이나 미적 능력이 인정받았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오필리아”의 모델인 엘리자베스 시덜은 말레이의 모델이 된 후, 라파엘 전파의 다른 화가들과 교류를 하게 되면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미적 감각이 있었던 그는 그들의 조력자 역할을 하였으며, 후에는 로제티의 아내가 되었다. 이에 베링거(Tim Barringer)는 라파엘 전파 화가들과 그들의 모델이자, 뮤즈이자, 아내 이자, 연인이었던 여인들에 대해 “남성의 창조적 기호가 될 뿐”이라는 지적을 한다(베링거 159). 다시 말해 라파엘 전파를 둘러싸고 있던 여인들은 사실상 그들에게 ‘보여 지는’ 존재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라파엘 전파를 구성하고 있는 화가들에 비해 계급적 지위가 낮았으며, 그들에 의해 ‘선택된’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화가에 의해 선택된 여인들은 신분이 낮았음에도 지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 스스로의 예술적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남성들로부터 얻었으나, 그들의 예술은 인정되지 않았다.
써스맨(Herbert Sussman)도 라파엘 전파 예술의 ‘남성적’ 측면에 주목한 바 있다.
"헌트 말라이와 로제티의 관행을 특징짓는 몇몇의 형식적인 특성은 그들의 예술을 남성의 영역, 남성적 지식의 영역에 결합시킴으로써 그들의 예술을 고귀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나타낸다…. 헌트나 말라이에 의해 창조된 예술은 명백한 남성적 형태의 지식으로 생각된다. "
라파엘 전파는 정신적 토대를 러스킨에게 두고 있었으며, 윌리엄 모리스,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존 말라이 등과, 그들과 연인이자 가족관계로 얽힌 여성 예술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칼 제조업자의 딸로 태어난 엘리자베스 시덜은 말레이의 모델이 되면서 라파엘 전파 화가들과 교류하게 되며, 옥스퍼드 마부의 딸이었던 제인 버든은 절세미인이라는 이유로 모리스의 모델이 되면서, 후의 모리스의 아내가 되며, 로제티와는 연인이 되었다. 모리스와 약혼한 후, 제인 모리스는 교육을 받은 후 라파엘 전파에 속한 예술가가 된다. 또한, 폭스 메덕스 브라운의 가정부이자 모델이었던 엠마 힐은 그의 연인이 되었으나, 브라운은 그녀가 교육을 마치기 전에는 그녀를 대중 앞에 소개하지 않았다.
19세기 영국 여성들의 아이콘과도 같았던 작품 속 모델들은 왜 '잘난' 옥스포드 출신의 남편, 혹은 애인의 여자로 소위말하는 '신분 상승'을 했는 데도 불구하고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19세기는 격동의 시대였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교육받은 영국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가정교사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여자에게도 일자리의 기회가 생기고, 이에 따라 여성들도 투표권을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라파엘 전파의 '그녀들'은 빼어난 미모를 타고 태어나 훌륭한 예술가들에게 낙점되어 라파엘 전파의 그룹 안에 속해 있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들의 정부, 혹은 남편의 '모델'이 되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시덜은 그림에도 탁월한 재주가 있었으나 그녀의 재능은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작품 속에 드러난 그녀들의 슬픈 표정은 이러한 과도기에 위치한 여성의 지위와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여성들도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라파엘 전파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팀 베링거, 『라파엘전파』권행가 옮김, 도서출판 예경, 2002.
솔로몬 피시맨, 『미술의 해석』. 학고재, 1999.
Kate Flint The Victorians and the Visual Imagination, Cambridge, Cambridge UP, 2000.
Herbert Sussman, Victorian Masculinities. Cambridge: Cambridge UP,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