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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공간, 독서와 함께한 무진 여행기

임은혜 |2012.12.17 11:03
조회 56 |추천 0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고 나의 청각이 문득 외부로 향하면 무자비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소음에 비틀거릴 때거나, 밤 늦게 신당동 집 앞의 포장된 골목을 자동차로 올라갈 때, 나는 물이 가득한 강물이 흐르고 잔디로 덮인 방죽이 시오리 밖의 바닷가까지 뻗어나가 있고, 작은 숲이 있고, 다리가 많고, 골목이 많고, 흙담이 많고, 높은 포플라가 에워싼 운동장을 가진 학교들이 있고, 바닷가에서 주워 온 까만 자갈이 깔린 뜰을 가진 사무소들이 있고, 대로 만든 와상이 밤거리에 남아 있는 시골을 생각했고, 그것은 무진이었다.

-<무진기행> 中

김승옥의<무진기행>을 들고 무작정 떠났다. 목적지는 책의 배경으로 알려진 순천.

<무진기행>의 '무진'은 실존하는 지명이 아니다. 그러나 작가가 이 작품을 창작할 때 ‘순천과 순천만 연안 대대포 앞바다와 그 갯벌’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렸다고 밝혔다.

홀로 오른 기차 안에서 다시 한 번<무진기행>을 읽었다.

<무진기행>은 승진을 앞둔 남자가 떠난 여행(무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서술자로 등장하는 '나'는 서른셋의 나이로 제약회사 중역이다. 며칠 후에 제약회사 전무가 되기 때문에 아내와 장인은 그에게 잠깐 휴가를 떠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어머니의 묘가 있고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무진으로 내려간다.

그는 무진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중학교 선생이 된 후배 박, 무진의 세무서장으로 있는 조, 그리고 음악교사인 발랄한 처녀 하인숙 등이다.

하인숙은 그를 유혹한다. 그는 하인숙의 유혹에 몸을 맡기고 그가 폐병으로 요양했던 바닷가 옛집에서 정사를 나눈다. 그는 무진을 탈출하고 싶어하는 하인숙에게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하고 사랑을 느낀다. 그녀를 서울로 데려가겠다고 말한다.
다음날 그는 서울로 오라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 갈등한다. 그는 하인숙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쓰고 결국 찢는다. 그는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서울로 간다.

책을 덮으니 순천역에 도착했다.

무진의 향기가 가장 잘 나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했다. 순천만이었다.

올겨울 가장 추운 날이라던 12월 9일, 오히려 순천도 춥기를 바랐다.

혼자 떠나는 여행과 추운 날씨, 그리고 갈대밭.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을 그대로 느끼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좋았다.

순천만에는 눈으로 덮인 하얀 풍경이 없었고, 내리쬐는 햇살과 노란 갈대밭은 오히려 따뜻하게까지 느껴졌다.

대한민국생태수도로 불리는 순천만은 세계 5대 연안습지다. 매년 약 십만 마리의 철새가 순천만을 찾아오며, 갈대와 철새를 보러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그러나 혼자 떠나는 여행과 <무진기행>은 그 자체로 어울렸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향해 걸어가고, 지나가는 이들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힘들면 어떠한 부담 없이 그저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무진기행>의 서술자 ‘나’도 목적지가 무진이었기 때문에 온전히 본인에게만 귀를 기울일 수 있었을 것이다.

따뜻하게만 보이는 순천만에도 외로움이 있었다.

너른 갈대밭 사이에 흐르는 강물과 그 위에 떠있는 배는 외로움을 느끼기 충분했다.

어쩌면 갈대도 혼자 있기 외로워서 이렇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지 모른다.

순천만에 있는 갈대밭은 약 163만 평의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그 갈대가 비바람이 불거나 눈보라가 쳐도 절대 꺾어지지 않는 이유는, 함께 있는 무수한 갈대가 서로 의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갈대밭 사이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샛길이 마련돼있다. 갈대의 높이는 사람의 키와 비슷하다. 그래서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은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나의 모습도 내가 본 사람들에게 똑같이 보일 것이었다.

▲순천문학관 ‘김승옥관’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에는 순천문학관이 있다. 그곳에서 김승옥 작가의 인생을 볼 수 있었다.

김승옥은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6·25전쟁 이후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문학계에 혁명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문학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는 대표작 <무진기행>을 통해 감각이 잘 묻어난 문체를 선보였고, 배경과 인물을 적절하고 담백하게 배치해 완성도 높은 소설을 썼다. 그는 소설의 구성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문학사적으로도 의의가 높다.

평론가 53인이 뽑은 한국 단편문학의 최고, <무진기행>.

이 작품은 개인의 꿈과 낭만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 때문에 단편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삶을 그렸다. 이는 문명화된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주체성을 버려야 하는 당대 상황을 그려, 1960년대 새로운 화두를 사회에 던진 것이었다.

‘김승옥관’에는 그의 문학생활이 시기별로 정리돼있다.

▲김승옥의 문학 생활. (왼쪽 위) 유∙소년기(60년대 이전) / (오른쪽 위) 청년기(60년대)

(왼쪽 아래) 청년기(70년대) / (오른쪽 아래) 중년기(80년대 이후)

▲(왼쪽) 김승옥 <무진기행>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안개’의 포스터 /

(오른쪽) 영화 안개(1967)의 가장 유명한 장면, 바닷가에서 윤정희(왼)와 신성일(오)

<무진기행>은 1967년 흑백영화 ‘안개’로 제작되었다. 김승옥 작가가 직접 각색한 이 영화는 김수용 감독의 작품으로 주연배우로는 신성일과 윤정희가 나온다. ‘안개’는 개봉 년도인 1967년부터 각종 상을 받았다.

‘안개’는 한국영화의 근대화를70년 앞당겼다는 평을 듣는다. 김수용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능한 모든 카메라의 기술과 편집을 동원, 문학이 영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가에 관한 실험을 시도했다. 그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무진기행을 또 다른 시각으로 접하고 싶다면,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인 ‘안개’로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문학관을 모두 둘러보고 되돌아온 순천만은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해가 지면서 여행도 끝났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은 5시까지 입장할 수 있다. 공원에 가로등이 없어 어둠이 깔리면 풍경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조명이 없는 이유를 묻자 관계자는 “새들도 밤에는 쉬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자연이 먼저라는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의 생각에 감동했다.

갈대밭 위에는 순천만에 대한 시가 펼쳐져 있다.

‘당신이 삶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무렵 당신은 먹먹한 외로움에 옆구리를 쓸어 안으며 이곳 순천만을 찾아도 좋다. 그러면 더 오래된 외로움이 당신을 안아주리라(중략)’

연말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 순천만으로 여행을 가보자!

다른 이와 함께 떠나는 것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더 좋을 수 있다.

여행을 가서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2013년의 새로운 채움을 위해 비우는 시간을 가져보자.

만약 그곳에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더 오래된 외로움’이 위로해 줄 것이다.

순천만은 분명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큰 선물을 줄 것이다.

* 김승옥의 단편 소설

<서울, 1964년 겨울>

<서울 1964년 겨울>은 현실에서 소외되고 목표를 잃은 세 사람이 우연히 만나서 무심히 헤어지는 일상을 그리고 있다. 선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동갑내기인 이들은 결코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도 철저히 익명성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 느꼈던 것만을 얘기한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을 통해 사회적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완전히 상실한 비극적이고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을 말한다.

<환상수첩>

윤수는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다양한 문제로부터 윤수의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출구로 다가온다. 그러나 수영의 여동생이 강간당한 것을 복수하려고 시도하던 윤수는 결국 죽게 된다. <환상수첩>에서는 입체적으로 변화하는 인물 윤수와 죽음에 가까운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한밤중의 작은 풍경>

<한밤중의 작은 풍경>에는 김승옥 작가의 36편의 콩트가 담겨있다. 대표적인 콩트로는 ‘남편의 호주머니’란 것이 있다. 다방 레지가 장난으로 넣은 입술연지가 묻은 손수건 덕분에 아내가 자신의 호주머니를 검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고 강변도로를 걷다가 죽는다. 병원 측에서는 죽은 남편의 피투성이 양복을 내주고, 호주머니에서 나온 유서에는 '앞으로 남편의 호주머니를 뒤지지 말 것'이라는 유서가 나온다. 그것을 비롯하여 비롯해서 '한방중의 작은 풍경', '미경이의 결혼', '우등생'등 인간의 내면을 살피는 짧고 위트 있는 콩트를 수록한 책이다.

 

 

 

 

 

출처: 영삼성

[원문] [불금엔~고전!_7] 연말에는 내 안의 공간, '무진'으로 떠나요!_순천만<무진기행>

http://www.youngsamsung.com/travel.do?cmd=view&tid=404&seq=68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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