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저는 인천에 사는 18살 흔녀입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제가 이 분을 알게 된 계기를 말하고자 합니다.저는 2012년에 역사UCC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꽤 큰 대회여서 주제를 고르는 것도 엄청 신중하게 했지요. 저는 많은 분들이 알고있는 독도문제,위안부,동북공정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하고싶지않았어요. 이런 것들은 방송국에서 많이 방송해주고있었고 저는 이런것보다는 우리가 잊고있던 것들에 대해서 동영상을 제작해 알리고싶었습니다. 생각을 되짚어보다 떠오른것은 헤이그 특사였어요. 헤이그 특사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다가 낯선 한 분이 눈에 들어와서 검색해 보니 그 분은 '호머 헐버트'라는 분이셨어요. 업적을 읽는데 이런 노력을 하신분을 이때까지 모르고있었다는 생각에 죄스러워지더라고요. 역사ucc 수상해서 더 많은 분들이보고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호머 헐버트박사의 업적을 주제로 삼게 되었습니다.
제가 첨부한 동영상은 대회에 냈던 동영상을 편집한거에요. 짧으니까 간단히 보실수있습니다.

하핳...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호머 헐버트박사의 업적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
때는 1886년 7월 4일, 인천 제물포항에 어느 한 미국인이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게 됩니다. 이름은 호머 헐버트. 당시 그의 나이는 23세였습니다. 고종 황제께서 영어 및 서양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설립했던 육영공원 (Royal English School)의 교사로 우리나라를 찾은 호머 헐버트. 이 젊은 외국인 청년은 후에 호머 헐버트 박사라 불리며 우리 민족의 많은 존경을 얻게 됩니다. 올해는 호머 헐버트 박사가 서거한지 63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한국을 사랑한 미국인,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매우 가치있게 여겼던 호머 헐버트 박사,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하여 한글 사용을 주장하였습니다. 박사의 제자인 주시경 선생과 함께 띄어쓰기를 강조하였고, 서재필 박사를 도와 우리나라 최초 한글신문인 ‘독립신문’ 창간을 도와 영문판 주필을 담당하였습니다. 한성사범학교와 관림중학교(경기고등학교의 전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우리나라의 한글 보급과 근대교육에 앞장섰습니다.
한글학회 김종택 회장의 추모사는 참석한 이들에게 큰 감동을 불러왔습니다. 추모사 이후에는 서울경찰악대의 아리랑 연주가 있었는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아리랑과는 다른 음이었습니다. 고종 황제가 구두로 부르던 아리랑에 음을 입혀 작곡을 해 음악으로 탄생시킨 이가 바로 헐버트 박사입니다.
헐버트 박사는 아리랑과 한국 전통 음악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1896년 박사가 저술한 『한국의 소리 음악 Korean Vocal Music』이라는 논문을 번역하여 발간하였는데요. 박사는 이 논문에서 아리랑을 역사상 최초로 제보하였으며, 이 논문 번역본을 통해 우리 음악인 아리랑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게 되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헐버트박사는 한국인으로서는 하루도 잊을 수 없는 인물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당시 여순 감옥에서 일본 사까이 경시에게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헐버트 박사에 대하여 1909년 12월 2일 다음과 같이 공술하였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혹독한 정략을 쓰고도 각국의 이목을 가리고 있을 때 헐버트는 한국을 위해 분개하고 각국을 향해 한국의 진정을 발표해 준 사람이다. 한국을 위해 진력한 공을 몰각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인으로서는 하루도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안중근 의사는 비록 미국인이지만 헐버트 박사의 업적을 매우 높게 평하였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독립 운동에도 매진하였는데, 루즈벨트 미 대통령에게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호소하기 위한 고종황제의 친서를 전달하는 특사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1907년 제2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는 특사로 임명되었는데,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도와 일본의 부당성을 세계 각지에 고발하였습니다. 이 일 때문이었을까요? 박사는 일제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추방된 이후에도 뉴욕타임스 지와의 회견에서 “한국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진행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
미국으로 추방된 지 40여년 만인 1949년, 해방된 우리나라에 다시 찾아온 헐버트 박사는 국민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 86세의 노구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여독으로 박사는 우리나라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서거하였고, 서거 후 1949년 8월 11일 서울시청 옆 부민관에서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사회장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한국 땅에 묻힘으로써, 평소 소망이었던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었습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본받아 다가오는 8·15 광복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출처:http://mpva.tystory.com/1860>
호머 헐버트박사의 업적을 제가 쓰기에는 너무 많고 여러분에게 자세히 설명될 것 같지도 않아서 블로그의 한 부분을 퍼와서 조금 지운내용입니다.박사는 다른 독립운동가들 못지않게 한국을 사랑하셨습니다. 외국인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더 자세한 내용은 역사스페셜 http://www.kbs.co.kr/1tv/sisa/historyspecial/view/vod/1726343_30885.html이나 http://mpva.tystory.com/1860에 들어가셔서 추모영상을 보시면 좋으실거에요
저는 이 글을 딱한번만이라도 문화사대주의자들이 봤으면좋겠어요 무조건 미국미국 외제외제 하는사람들이말이죠. 우리 한국이 이런 위인들이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지키려했던 나라니까 좀 소중히여기고 우리 고유의것들도 좀더 관심갖고 바라보길 소망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ㅎ
이 글 비록 복사,붙여넣기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은근 고생하면서 쓴글이랍니다. 더 많은 분들이 볼수있게 추천,댓글해주세요!! 그럼 이만ㅎㅎㅎㅎ